Half Price Pawn Shop RAW novel - Chapter (46)_6
제니는 창밖의 하늘을 보았다.
“네, 좋아요.”
그러곤 탕비실로 가 걸레부터 빨아 온다.
“보라색으로 보이지 않아?”
“보라색요?”
“하늘 말이야. 보라색 필터가 껴 있는 것처럼.”
“조금요.”
제니는 다시 한번 하늘을 내다 본 후 가볍게 대답했다.
능력이 출중하지 않은 이들에게 도 보랏빛 하늘이 보일 정도면 이제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세 상이 바뀌었다고 봐야 한다.
예상은 했었다.
우주에서 쏟아지는 다크매터를 보았을 때, 언제고 이렇게 되리 라 직감했다.
그 직감이 여지없이 맞아 들어 가는 중이다.
세상은 이미 변하였고 이 변한 세상은 마족과 마물에게 더없이 친숙한 환경이 될 것이다.
생활하기 좋고 잉태하기 좋으 며, 번식하기 좋은 환경으로 말 이다.
태식은 괜스레 손톱을 내려다봤 다. 손톱 뿌리가 피멍이 든 것처 럼 검붉다.
“제니.”
“네.”
“본부에서는 연락 없어? 그때 이후로 말이야.”
“네. 연락 온 적은 없어요.”
“아이디는?”
“아이디요?”
“권한 살아 있냐고.”
“네. 축소되거나 제한된 것 없 이 그대로예요.”
하지만 서버에는 아무런 정보가 올라오지 않는다.
열쇠의 기능은 이전과 다름이 없다만 집이 허물어진 꼴이다.
제니는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 았다. 괜찮기 때문이다.
돌아갈 곳이 사라진 것이냐 묻 는다면 자리할 곳이 생겼다고 대 답하면 될 뿐이다.
“오늘도 외근하세요?”
“외근? 해야지. 할 일 많은데.”
태식은 소파 등받이 깊게 몸을 기대었다. 그러곤 눈을 지그시 감는다.
여러 상념들이 쏟아져 들어온 다.
권속들이 보내오는 것이다.
하나하나 읽어 내는 것이 고달 프긴 하지만 그렇다고 차단해 둘 순 없다.
사람도 못 믿는데, 마족 따위를 믿을까.
직접 살피지 않고 넘기는 건 성 격상 그냥 두질 못한다.
쏟아지는 의식이 너무 많아 정 신적 과부하가 걸릴 때면 의식적 으로 다크매터를 끌어와 보조한 다.
그것이 쉬지 않고 반복되다 보 니 태식의 몸은 항상 다크매터가 순환하는 중이었다.
쉬지 않고 힘이 돌고 있다 보니 몸의 활력이 항상 깨어 있는 상 태가 되고 그 활력은 태식이 가 진 본연의 투지를 자극한다.
그리고 그 투지는 분명한 살심 과 살기로 기반한다.
처음 힘을 느끼고 그 힘을 쌓아 가던 순간부터 근간으로 삼았던 기운이기에, 힘의 근원에 녹아 있는 살기를 지운다는 것은 자신 의 성장을 있는 그대로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커피요.”
제니가 진하게 탄 커피를 내 왔 다.
태식의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능력자가 아닌 일반인이 보 아도 알 수 있을 정도다.
가게는 태식이 편히 있는 장소 이다 보니 더욱 쉽게 눈에 띈다.
“어, 고마워.”
태식은 그것을 찬물 마시듯 들 이켰다. 속을 훑어 내는 것 같이 썼지만, 그 정도는 되어야 좀 시 원하다.
커피 한 잔 비운 태식은 몸을 일으켰다.
“외근 간다. 시간 되면 알아서 퇴근해.”
“네. 다녀오세요.”
매번 하는 인사 간단히 남기고 공간을 건너뛴다.
시끄러운 중장비음과 신경 곤두 선 공사 관리인의 목소리가 사방 에서 울려 퍼진다.
공사는 한창이다. 기초를 다지는 게 제법 오래 걸 렸다 싶었는데, 기초 다지는 게 끝나고 나니 뼈대 올라가는 것은 하루가 다르게 진행되는 중이다.
“수고 많아요.”
“어서 오세요.”
이린은 태식을 보곤 테이블에 어지럽게 늘어져 있는 문서들을 치웠다. 그러곤 재떨이를 먼저 가지고 온다.
태식은 자신 앞에 놓인 재떨이 를 옆으로 쓱 밀어 놓았다.
“커피 있으면 커피로 주시죠.”
“콜드브류〒에 없는데 괜찮아 요?”
“믹스커피라고 해도 좋습니다.”
이린은 얼른 커피를 내 왔다.
“담배 끊었어요?”
“요즘 입이 하도 떫어서, 잘 안 들어가더라고요.”
태식은 커피를 물처럼 비웠다.
“건설 현황은 어때요?”
“착오 없이 올라가고 있어요. 긴급 운영을 한다 치면 당장의 의료 센터로써의 기능은 수행할 수 있을 정도예요.”
“외관상으로는 아직 한참 남은 것 같던데.”
“입원실이나 치료실을 후순위로 두고 배양실과 수술실을 먼저 완 성했거든요. 저래 보여도 당장 수술은 가능해요.”
이린은 언제나 그렇듯 똑 소리 나게 대답했다.
“유토 시티 들어서는 건요? 군 산에도 계획이 있다는 것 같던 데.”
“물론이죠. 군산뿐 아니라 전국 도시급 지역에 전부 준비되고 있 어요.”
“한 번에 그렇게 올리면 부담 되지 않아요?”
“태식 씨가 자금 융통해 줬잖아 요. 그리고 이 계획 자체도 내수 활성화를 위한 것이고요. 돈을 풀려거든 단번에 확 풀어야 체감 이 되죠.”
“그래요. 그런 것이야 사장님이 더 잘하겠죠. 그보다 내가 봐 줄 건 없어요?”
“태식씨가 봐 줄 건…… 발전소 연결 관련해서요. 해저케이블을 심으려 하는데, 아무래도 처음 하다 보니 갈피를 못 잡는 중인 것 같아요.”
“그것 말고는요?”
“다른 건 공항 건설일까요? 게 이트가 위치할 곳을 빼놓긴 했는 데, 설계적으로 안정성이 확보된 것인지는 정확히 진단하기 어렵 다는 의견이 많아서요.”
“알았어요. 다른 건요?”
“다른 건 딱히 없어요.”
“군산팀은 말썽 없고요?”
“그럼요. 다들 의욕적으로 열심 히 하고 있는 걸요.”
“중화제 보급은 차질 없죠? 생 산량 말이에요.”
“네. 국내 보급은 충분히 소화 할 수 있어요. 국외까지는 당장 은 무리고요.”
태식은 잠시 눈을 감았다.
속이 좀 탄다.
껄끄러운 생각이 든 탓이다. 그 러면 연결되어 있는 의식 속에서 그와 비슷한 텁텁한 기억들이 마 구 딸려 나온다.
“물 좀 더 주세요.”
“아, 네.”
“커피 있으면 더 좋고요.”
“커피로 드릴게요.”
이린은 적잖이 놀란 얼굴이 되 어 커피를 준비했다.
고작해야 캡슐을 열어 물에 섞 기만 하는 되는 것인데, 괜스레 손이 떨려 잘되질 않는다.
“여, 여기요.”
“고마워요.”
태식은 다시 한 잔을 단숨에 들 이켰다.
“저, 태식 씨. 괜찮아요?”
“속이 좀 쓰려서요.”
“검사라도 받아 보세요. 위궤양 이나 그런 것일 수 있잖아요.”
“내 몸은 내가 잘 알죠.”
“저희 아버지도 그 말씀 하시다 쓰러지셨어요.”
“파하하하하. 나랑 회장님이랑 은 다르잖아요. 나는 진짜 내 몸 잘 알아요.”
태식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 를 톡톡 튕겼다.
“여기에서 오는 거니까, 검사 같은 걸로 해결될 게 아닙니다.”
“안색이 너무 안 좋아서요.”
“말 안 듣는 놈을 챙겨 주자니 신물이 올라와서요.”
중화제에 대한 보급은 이미 시 작되었다. 양산 체계도 문제없고 생산량도 부족하지 않다.
내수로만 활용할 것이라면 말이 다.
하지만 다른 국외는 어떨까 싶 다.
한국을 제외한 다른 모든 국가 에서 이 중화제를 필요로 할 것 이다.
아니, 이미 필요한 상황이다.
공기 중의 다크매터 농도가 이 토록이나 진한데, 암흑중독이 발 병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 잠복기가 길어 아직 티 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 발병을 보이기 시작한다 면, 그때는 이미 둑이 터진 것이 나 다름없다.
미리 보내서 준비시켜야 된다.
그러자니 속이 쓴 것이다.
“말이나 잘 듣는 놈들이면 챙겨 주고라도 싶지. 이건 뭐, 챙겨 주 는 사람이 비는 경우니.”
태식은 눈가를 꾹꾹 누르며 말 했다.
“중화제 말씀하시는 거죠?”
“네.”
“미국의 경우는 생산 공식과 설 비를 우선 공유하였어요. 민우가 현장에서 신경 썼는데, 긍정적으 로 받아들인 것 같아요.”
“그래요?”
“네. 미국은 공항 관련해서 유 기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관계잖 아요. 신약을 허가해 준 것에 대 한 값도 있고 해서 한발 먼저 접 근했어요.”
“잘했네요.”
이린은 말을 멈추었다. 태식의 목소리가 지쳐 보인 탓이다.
“커피 한 잔 더 드릴까요?”
“아니요. 있다가 마실 거 생각 하면 한 템포 쉬는 게 나아요.”
태식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후우-. 다른 나라에도 인도적 기술 지원을 하겠다는 연락을 해 두세요.”
“예외 없이 진행할까요?”
“처음은 그렇게 해야죠. 물론 싫다고 하면 굳이 여러 번 권할 건 없고요.”
“네,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 어쭙잖게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면 단번에 잘라 내 세요. 재주 부리는 놈 따로 돈 버는 놈 따로인 경우는 못 보니 까.”
“네, 그것도 그렇게 할게요.” 이린은 큰 폭으로 고개를 끄덕 였다. 그러곤 냉큼 빈 잔을 정리 한다.
어서 일어나라는 투다.
“급한 안건은 전부 다루었으니 그만 가 보세요. 좀 쉬셔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안 좋아 보여요?”
태식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사무 실 한쪽의 거울로 갔다.
눈동자에 실핏줄이 죄다 터져 붉게 충혈되어 있다.
그런데 거기에 검은 그림자까지 드리워져 있으니 꼭 눈동자가 온 통 검은색으로 변한 것 같이 보 인다.
마족의 눈이다.
“에헤이-.”
태식은 다시 눈꼬리를 꾹꾹 눌 렀다.
검은 기운이 스르륵 밀려들어 갔다.
“괜찮은 거죠?”
“사장님까지 묻지 말아 줘요. 괜찮다는 말 하도 많이 들어서 아주 귀에 딱지 생기겠네요.” 태식은 쉽게 웃어 보였다. 다만 이린은 마주 웃지 못했다.
“그럼 일 보세요. 일어납니다.”
태식은 염려하는 이린의 시선을 마주하고 있기가 불편해 한발 먼 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군산팀으로 향했다.
굳이 팀장을 부르진 않았다.
그저 슬쩍 보고 지나가면 그만 이다.
연구진의 표정은 하나같이 만족 스러웠고 불편한 기색이 없었다. 그리고 그 얼굴 안에 자긍심이 가득했다.
일찍이 바이러스 사태를 누구보 다 빠른 대응으로 초기 진압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성공의 희열이 채 가 시기도 전에 암흑중독에 대한 치 료 성과를 내었고 이제는 중화제 까지 보급에 성공했다.
벽면에 붙어 있는, 우리의 근로 는 국민의 생명과 치환된다는 슬 로건이 자못 오만하게 읽힐 수도 있겠다만, 이들의 성과는 그 정 도 오만은 용인될 정도로 큰 것 이었다.
일선 연구진을 훑은 태식은 군 산팀의 핵심인 월터 최도영을 찾 았다.
그는 자신의 전용 연구실에서 선임연구원 명찰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쳐 둔 채 게임을 하는 중 이었다.
실상 보이는 것만 보자면 연구 실인지 게임방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태식은 그래서 괜찮다 싶었다. 그의 표정에 지루함이나, 무료 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떠한 상승에 대한 열 망도 없었다.
세상을 바꿀 정도의 천부적 능 력을 갖춘 연구원이 할 일 없이 출근해서 대기만 하고 있는 상황 이라면 이보다 좋은 형태는 없 다.
이 연구실에 매여 있는 것에 불 만 없이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으 니 굳이 얼굴 비춰 가며 당부를 할 필요는 없지 싶다.
“이러면 생약 쪽은 별 탈 없 고……
태식은 머릿속 체크리스트에 삭 선 하나를 더 그었다.
이제 몇 가지 남지 않았다.
마의 기원 (3)
태식은 7층의 만년설 뒤덮인 산 봉우리에 내려앉았다.
올을히 풀려나오는 어둠을 입은 채 지상을 내려다본다.
몇 개의 팀이 빠르게 7층을 가 로지르는 중이다.
그들의 움직임은 조직적이었고 유기적이 었다.
흡사 훈련받은 군대가 적진을 침투하듯, 빠르고 확실하게 거점 을 정리하며 찍어 나간다.
7층 입구에서는 일단의 무리가 진지를 구죽하는 중이다.
헌터들의 간이로 사용하는 쉘터 의 개념이 아닌 완전한 군용 진 지다.
장기간 주둔은 물론이며 적의 공격으로부터 능동적인 방어가 가능한 그런 전략 진지말이다.
그 의도는 명백하다.
7층의 입구를 틀어막겠다는 것 이며 그로 하여금 7층에 대한 지 배력을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그 진지 건설의 총책임자가 박 소장이다.
홀리 랜드에 얼굴이 보이지 않 는다 싶더니 어느새 여기까지 들 어와 있다.
박 소장이 저기 있다는 것은 제 법 여러 의미가 있다.
우선 유성과 박 소장이 가까이 협력할 정도의 긴밀한 사이가 되 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입고 있는 심계복이 7층의 입구 의 부하를 견딜 정도의 성능이 나온다는 점이었다.
“승주도 이제 손 갈 필요 없겠 네.”
태식은 피식 웃으며 가슴을 쓸 어내렸다.
속이 쓰다.
신물이 올라오는 느낌이기도 하 고 폐렴에 걸린 것처럼 가슴 깊 이 쿰쿰한 느낌이기도 하다.
다크매터가 계속 도는 탓이다.
순환되어 돌아 나간다고는 하지 만 그 양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