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Price Pawn Shop RAW novel - Chapter (46)_8
태식은 그곳에서 이현을 불러냈 다.
이현은 예와 다르지 않은 초점 없는 눈동자로 태식 앞에 섰다.
태식은 별말 없이 암흑 슈트를 걷어 냈다.
그제야 이현의 눈동자가 퍽 심 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금세 체념한 듯 고개를 숙였다.
“쓸모가 끝난 겁니까?”
“아니. 가장 큰 쓸모가 남은 거 지.”
“죽는 겁니까?”
“왜? 말 잘 들으면 살려 줄 거 라고 생각했어?”
“그렇진 않습니다.”
“그럼 된 거지 뭘.”
태식은 무심히 도미니오를 꺼냈 다.
이현은 그 칼날이 자신을 덮쳐 올 것을 직감했음에도 도망가지 않았다.
용서를 빌거나 자비를 구하지도 않았다.
이미 알고 있다. 그저 잠시 유 예되었던 예정된 죽음이 찾아왔 음을.
덤으로 살고 있던 삶이 여기서 끝난다는 것을 말이다.
“쓰기 좋은 칼이었다는 건 부정 하지 않으마.”
태식이 검을 내리그었다. 수 갈 래로 갈라진 도미니오가 이현을 움켜쥐었다.
그러곤 그 의식 깊은 곳에 웅크 리고 있는 마성을 이끌어 낸다.
무심으로 이루어진 벽이 마성의 분출을 막고 있는 형국이지만 큰 장애물은 아니다.
태식은 그것을 힘으로 깨부수곤 도미니오를 더욱 깊이 찔러 넣었 다.
그 심연 밑바닥에서 절제되지 않은 욕망 덩어리가 금방이라도 깨어날 듯 뭉클거린다.
그 욕망은 어떠한 특정 없이 포 괄적 이었다.
색욕이 될 수도 있고 물욕이 될 수도 있으며 권력욕이 될 수도 있다.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손에 쥐려 하는 아귀와 같은 욕망이 다.
다만 대장군급의 마족을 현신하 기엔 그 힘이 모자라다.
그간 무심의 벽에 짓눌려 있던 탓이다.
이 또한 문제 되지 않는다.
태식의 의식 속에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전해 져 온 마성이 적층되어 쌓여 있
다.
어차피 차고 넘치는 힘이니 아 까워할 것 없이 쏟아부어 주면 그만이다.
그 욕망 덩어리는 태식이 전이 한 마성이 제대로 접촉하기 전부 터 끓은 화산처럼 들끓었다.
마성과 접촉하는 그 순간 큰 스 파크가 일어나며 하얀 벽으로 감 싸진 의식의 공간이 단번에 허물 어졌다.
단숨에 비대하게 자란 욕망이 그간의 억눌린 욕구를 풀어헤치 듯,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 삼키 려 뻗어 나갔다.
그 힘은 태식의 마성을 받은 탓 인지 자신을 가두고 있는 의식의 공간을 찢어 낼 정도로 강력했 다.
“천성 어디 가는 게 아니라지.”
이현의 욕망이 육신을 넘어서 현실의 물리력을 발휘한다.
먹잇감을 찾듯 뻗어 나간 욕망 줄기는 교도소 안의 죄수들을 닥 치는 대로 집어삼켰다.
이쯤이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오늘을 위해 준비한 것은 아니 다만, 이렇게 잘 영글어 있다면 흡족할 일 아닌가.
태식은 그대로 도비니오를 비틀 어 뽑아냈다.
움켜쥐고 있던 육신은 검은 먼 지가 되어 흩어지고 그 안엔 붉 은 핏빛의 뿔이 남았다.
제 힘을 주체 못 하는 듯 어지 럽게 휘돌던 뿔에서 뼈마디 맞춰 지는 소리와 함께 사지육신이 뻗 어 나왔다.
“부름을 받고 현신했나이다.” 욕망의 군주 디가이츠는 무릎을 꿇으며 태식 앞에 부복했다. 하 지만 그 고개는 빳빳이 치켜든 채다.
그 노골적이고 농밀한 시선은 자신의 창조자에 대한 찬미보다 갈망하는 힘에 대한 욕심이 더 컸다.
나무라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 는다.
건방지다 여겨지지도 않고 짜증 스럽지도 않다.
곁에 둘 사람이 아니라 편히 쓸 도구니 제 할 일만 잘하면 그만 이다.
더욱이 욕망의 군주인 만큼 이 정도 욕망을 표출하는 것이 그 성능의 방증 아니겠나.
태식은 다른 권속들에게 한 것 처럼 그 의식에 공간을 분할해 주고 자신의 의식과 연결했다.
“가서 뜻대로 행하라.”
사전 작업을 했으니 이제 가동 을 하면 된다.
태식은 공간을 열어 심계 밖으 로 디가이츠를 내보냈다.
디가이츠는 처음 새장 밖으로 나서는 새처럼 몸을 날렸다.
“저 욕심만큼만 일해도 다른 놈 들 곱절은 하겠네.”
태식은 흡족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탁탁 털었다.
일 하나 말끔히 해치운 기분이 다.
다음은 반달섬을 세부적으로 살 피고 1층, 2층 필드를 점검하면 얼추 되지 싶다.
반달섬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순 간 태식은 우뚝 멈춰 섰다.
무언가 놓쳤다는 찝찝함이 손톱 가시처럼 걸린다.
그냥 별것 아니라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지만, 평소의 예 민한 성격 탓인지 그냥 넘어가 지질 않는다.
“아—!”
태식은 크게 탄성하며 디가이츠 를 다시 불러들였다.
그러곤 이현에게서 회수한 암흑 슈트를 결박의 삼아 놈의 몸을 옭아맸다.
“멋대로 설치지 말고 의식에 따 라야 할 거다.”
태식은 그 명령 어둠으로 벼려 날카롭게 심은 후에야 디가이츠 를 다시 밖으로 내보냈다.
순간 머리가 아찔하다.
“후우-.”
디가이츠가 어떤 놈인지 잘 알 고 있다.
욕망대로 뻗치는 놈이고 그렇게 뻗치다 보면 어느새 제 욕망마저 주체하지 못하고 설치던 놈이다.
그 탓에 마왕군 내에서도 독립 편대로 운용되던 것이 놈의 부대 였다.
말이 독립 편대지 실상 따지면 따돌림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태식은 그것을 직접 보았기에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 다.
그런 그놈을 마냥 설치라고 풀 어 주면 동화율과 상관없이 마구 잡이로 사람을 잡아먹고 다닌다.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이 또한 이미 경험했던 것이다.
오래전 일이라 잊고 있었던 것 은 아니었다.
디가이츠의 얼굴을 보자 마자 놈이 벌였던 욕망의 흔적들이 꼬 리를 물고 따라붙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것은 신경 쓰지 않은 것이다.
떠오르는 게 없다고 해도 한 번 더 점검했어야 마땅한데, 오히려 묵과해 버린 꼴이었다.
태식은 마에 대한 자신의 익숙 함이 계단식으로 상승함을 느꼈 다.
이제 정말 만곡점을 넘기기 직 전이다.
“하하, 더 준비할 것도 없겠네.” 다음은 너라는 말.
질리고 질리도록 들은 그 저주.
아니, 암시.
태식은 바토리를 끄집어냈던 그 순간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선을 넘겼음을, 앞으로 더욱 더 멀리 넘게 될 것임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참을 수 없었다.
다시 그 상황이 되도 같은 선택 을 할 것이다.
눈앞에 마족보다 더한 괴물이 있는데 어떻게 그냥 참고 넘어갈 까.
아무렇지 않게 약한 이를 짓밟 고 선량한 이를 기만하며 어리숙 한 이를 착취하는 것들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이대로 묵인하고 넘어가면 그 착취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을 뻔히 아는데.
태식은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렇기에 마족을 현신시켜 수족 으로 부렸고 그것으로 하여금 마 성을 쌓았다.
그 지겨운 악몽에 시달리며 기 다리고 있을 바에야, 직접 불러 낸다는 생각으로.
사람들의 마성이 합치되어 고위 마족을 불러내는 것처럼.
조건만 충분하다면 마왕을 불러 내는 것 또한 별다를 것 없는 일 아니겠나.
이제 충분한 상황이 만들어진 듯하다.
그러니 지체할 게 없다.
태식은 의식 속 마성을 심연 깊 이 밀어 넣었다.
크로우가 웅크리고 있는 자리이 다.
억눌려 있던 크로우는 그 마성 에 반응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곤 그곳이 본래 자신이 있 어야 할 곳인 양 힘차게 날개를 나부끼며 마성 속으로 파고들었 다.
삐이 이 이—.
머릿속을 울리는 계명성이 엄습 하는 죽음처럼 스산하다.
검게 물든 눈으로 사위를 내려 다본다.
온통 어둠으로 들어차 있다.
그것이 자신이 뿜어낸 어둠이 세상을 메우고 있는 것인지, 아 니면 시야를 가득 메운 죽음의 기운 때문인지 구분이 잘 안 된 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의식이 미치 는 모든 곳의 마성이 손안에 쥔 것처럼 너무도 선명하다는 것이 었다.
이 손아귀 가볍게 움켜쥐어 슬 쩍 당겨 내면 어찌될까.
저들의 마성이 그 혼과 함께 딸 려 오게 될까?
고민하지 않는 무심함이 쉬이 손을 말아 쥐게 할 것만 같다.
“파하-.”
태식은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의 식을 다잡았다.
그러곤 저들의 생명을 움켜쥐는 대신 자신의 손자국 가득한 검 손잡이를 쥐었다.
그것을 역수로 쥐어 본다.
항상 멸해야 할 적을 향해 있었 던 칼날이 자신을 향해 있다.
잠시 손이 떨린다.
실수하는 게 아닐까, 혹여나 이 때문에 무고한 이들이 고통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와 같은 생각이 스쳐 간다.
“그래. 아직은 정신머리 잡고 있네.”
피식- 웃음이 난다.
그것은 언제나 자조였다.
푸욱-.
역수로 잡은 검은 너무도 쉽게 그 심장을 파고들었다.
마의 기원 (5)
도미니오가 태식의 육신을 침식 해 들어간다.
천 년을 정련하여 빚어낸 듯한 그 강건함이 어떠한 저항도 없이 저며 오는 칼날을 받아들였다.
갈라진 온몸에서 짙은 어둠이 뿜어져 나온다.
방류하는 댐처럼 쏟아져 나온 어둠은 온 세상을 휩쓸어 버릴 기세로 퍼져 나갔다.
“크으윽-.”
태식은 어금니를 악물며 양손을 뻗었다.
한 손엔 오직 마를 멸하기 위한 검인 멸마검을, 다른 한 손엔 시 간과 공간을 갈라내기 위한 검인 창파검을 움켜쥔다.
서걱-.
가볍게 내려 그은 검에 공간이 쩍 갈라졌다.
저 밖으로 보랏빛의 서울 하늘 이 비춰진다.
대기 중의 다크매터는 강력한 인력에 반응하여 갈라진 공간 틈 으로 빨려 들어왔다.
범람하는 강과 같은 다크매터 줄기가 태식에게 들이닥쳤다.
벌어진 상처에서 뿜어진 어둠이 다크매터 줄기를 움켜쥔다.
아무리 방대한 힘일지라도 한 줌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그 큰 힘을 전부 빨아들인다.
“쿨럭-.”
검은 피를 토한다. 심장이 관통 된 것을 생각하면 별것 아닌 반 동이다.
다른 상처에서도 검은 피가 흘 러나온다.
하지만 그 무엇 하나 낙하하지 않는다.
피 한 방울 떨어져 나가지 않고 그 주위를 부유한다.
홉사 철가루가 자기장을 따라 형태를 갖추는 것처럼, 검은 피 또한 태식의 힘에 반응하여 어떠 한 형태를 갖추어 갔다.
여섯 장의 날개와 다섯 개의 뿔.
그것은 세상 만물의 위상을 관 조하고 모든 권위의 정점에 있던 마왕의 상징이었다.
“용사여-.”
이질적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분명 태식의 목을 거쳐 입으로 말해진 것이지만 그 음성은 어느 것도 태식과 같지 않았다.
“오롯이 너였다.”
그 짧은 목소리에 더 없는 오만 이 담겨 있다.
모든 것을 확신하여, 의지에 벗 어남이 없을 거란 오만.
“ 데오메트-.”
“보아라. 너라 하였지 않나. 처 음부터 오롯이 너였음이다.”
“그래, 참 엿같이도 엮여 왔다. 이제 진짜 끝내자.”
태식이 멸마검을 치켜들었다. 스스로의 날개를 자르고 뿔을 뽑 아낸다.
하지만 핏물로 만들어진 뿔과 날개는 검날에 잘려 나간다 하여 흩어지지 않았다.
“근원을 이루었다. 참할 수 없 음이다.”
“참할 수 없다면 권속으로 삼아 부리겠노라.”
도미니오를 역수로 잡아 뽑아낸 다.
온몸이 잘려 나가는 듯한 격통 이다.
“보라-. 스스로 택한 자여. 너 와 나의 기원이 다르지 않음이 다.”
콰르르르릉-.
검게 뭉친 어둠이 성난 화산 분 출하듯 폭발했다.
어둠의 기둥이 심계의 공간을 가르고 치솟아 하늘을 꿰뚫었다.
우주에 가득한 힘과 어둠이 맞 닿는다.
태식은 온몸이 바스러질 것 같 은 힘의 파동에 휩쓸렸다.
이대로 육신이 허물어지고 나면 마왕의 현신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둘 수 없다.
“널 멸한 게 나다. 그런 네놈에 게 당할 것 같으냐!” 태식은 기합과 같은 고함으로 힘을 뻗어 냈다.
멸마검의 참격은 존재하는 모든 마성의 갈라낼 듯 뻗어 나갔고 창파검의 참격은 자신을 가두는 모든 공간의 제약을 허물어트렸 다.
마가 멸하고 세상이 허물어진 다.
깨져 나온 공간의 파편이 노을 진 하늘에 별가루처럼 퍼져 나오 고 마성을 잃은 마물들은 육신을 잃고 그 거친 힘의 격류에 휩쓸 렸다.
위이이이잉-.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먹먹한 귓속으로 파고든다.
온 나라의 빛이 환히 밝혀진다.
해안선을 따라 설치된 해안 초 소의 탐조등은 풍랑 치는 바다를 가리켰고 부유체에서 뻗어 나온 빛은 하늘을 검게 물들이는 어둠 의 존재를 향해 쏘아졌다.
“보라-. 저들의 마성을. 인간이 가진 마성이야말로 그 진화의 본 질이다. 네 검이 아무리 엄하다 한들, 이를 모두 제거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쏟아져 내린 어둠이 수천만의 의식을 휩쓸어 온다.
그 안에 가득한 시기와 질투, 욕망으로 가득 찬 이기심. 그 모 든 것의 합치로 만들어진 순수한 마성들.
감히 품을 수 없는 마성이 태식 의 의식을 덮쳐 왔다.
“빛과 어둠은 항상 공존한다. 어둠이 크다면 빛 또한 크다. 이 이치를 모르는가.” 태식은 멸마검을 휘둘렀다.
크게 덮쳐 오는 마성을 갈라내 고 잘라 내 그 안에 움츠리고 있 는 인성을 드러냈다.
공감하여 측은하고, 애정하여 사랑하며, 온정으로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