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Price Pawn Shop RAW novel - Chapter (46)_9
“이유 없이 참하는 것이 인간이 지만 이유 없이 돕는 것 또한 인 간이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일을 겪은 내가 고작 네놈 혓바 닥에 놀아날 것 같으냐.”
“파하하하하! 옳다. 크게 이룰 자여-. 그리하여 너였음이다.” 마왕의 목소리로 터져 나온 웃 음은 더없이 명쾌했다.
“오롯이 너였다.”
까드득 어금니가 갈린다.
더 듣고 있을 수 없다.
다음은 너라는 한마디 저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나라를 멸할 힘을 가지고 있다 고 한들, 본질을 갉아먹은 말에 는 얼마든지 현혹될 수 있다.
태식은 멸마검을 어깨 위에 올 렸다. 그대로 검을 돌리면 목이 떨어진다.
다음이 걱정되긴 한다만, 나름 뿌려 둔 씨앗들이 있으니 잘해 주지 않을까 여긴다.
“사장님-.”
거봐라. 저기 오고 있지 않나.
유성이 제 몸이 하얗게 식어 가 는 줄도 모르고 온통 피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다.
그 길을 내어주는 것은 소용돌 이치는 안개 뭉치다.
그 뒤로 수백의 능력자들이 진 을 짜고 따라 붙는다.
전투 여파를 막기 위한 인원이 다.
새벽의 습격 때 경험한 것을 토 대로 그에 대한 대안책을 강구했 나 보다.
봐라. 경험한 것을 그대로 흘려 보내지 않고 개선하려 노력하잖 나.
무슨 일이 있으면 이렇게 달려 오지 않나.
그러니 앞으로도 그리할 거라 생각한다.
“유성아. 무슨 초상났다고 우 냐.”
“왜 그러십니까! 왜 혼자 다 짊 어지려고만 합니까!”
“내가 내지르고 다닌 거잖아.”
태식의 손이 반 틈 비틀렸다. 멸마검의 칼날이 목줄을 파고든 다.
“그러지 마십시오! 그러지 말란 말입니다!”
유성은 온몸의 피를 짜내 혈수 본을 뻗었다.
그렇다 한들 태식의 손을 막진 못한다.
“야야. 가르쳐 준 거 까먹었냐.
멋진 거 하라니까. 영웅이잖냐.”
“그런 영웅 따위-!”
서걱-.
세상이 검게 물들었다.
팟-.
작은 빛이 들어온다.
“정신이 드나?”
귀가 윙윙 울린다.
주변이 소란스러운 게 병원인가 싶다.
아마 자신이 병원으로 간다면 당연히 외상 센터로 가겠거니 한 다.
이 교수가 아무리 수술을 잘해 도 목이 떨어진 것도 치료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이어진 다.
“보아라.”
마왕의 형상이 눈앞에 있었다.
“너-!”
태식은 온 힘을 쥐어짜 손을 움 켜 쥐었다.
공간이 일그러지고 시간이 잘려 나가야 할 것인데, 아무런 반응 이 없다.
그저 몸이 나른하다.
물속에 녹아 있는 것 같은 느낌 이다.
“마의 기원이, 마족의 시작이 어디라 생각하는가?”
“어떤 개소리를 늘어놔도 다음 이 내가 될 일은 없어. 나와 너 는 태생이 다르다. 나는 사람으 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았다.”
“알고 있다. 그리고 누구보다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도, 누구보 다 안타까워 한다는 것도. 그렇 기에 너다.”
“계속 같은 소리 지껄이며 끼워 맞추려 하지 마라. 쓸 곳 없다.”
태식은 주변을 둘러봤다.
모든 것이 일렁거린다. 그 일렁 거림에서 넘을 수 없는 공간의 거리감이 느껴진다.
“함께 가둔 것이냐? 시간 놀음 을 하자는 거라면 상관없다. 뭐, 나쁘지 않지.”
시간을 벌어 준다 생각하면 그 리 나쁠 것 없다 여긴다.
수십 년을 고독 속에서 헤매 봤 다.
또 한 번 같은 것을 반복한다 쳐도 그때보다 여유롭다.
“마는 인간으로 붙어 왔다. 마 의 기원은 인간이며 그 영속 또 한 인간으로부터 이루어진다.”
마왕이 길을 이끌었다.
공간 자체가 휩쓸리며 풍경이 변한다.
“여기, 그 기원이 있다.”
동굴 안에 사람이 보인다. 원시 인이라 해야 할까 싶은 모습이 다.
등과 무릎이 굽어 어리숙해 보 이지만, 몸을 이루는 근육은 충 분한 야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글거리는 두 눈은 욕망과 시기를 함께 가진 인간의 눈이었다.
“악의로 인한 첫 번째 살인이 다. 경쟁으로 말미하지 않은 순 순한 악의로 인한 살인.”
무쇠 같은 주먹엔 핏자국이 가 득하다.
그 주먹 아래 형체를 알 수 없 는 몰골의 누군가가 누워 있다. 그 살인자가 내뿜은 거친 숨소 리가 길게 이어진다.
씩씩거리는 거친 호흡이 계속될 수록 그 눈에 깃든 악의가 옅어 진다.
“보이는가.”
마왕이 물었다.
보인다.
저 살인자의 숨에 검은 마기가 섞여 나오는 것이.
그 숨이 식어 가는 주검에 깃든 다.
처음은 검은 연기였던 것이 피 와 섞여 들어 몽글몽글 점액질처 럼 변이했다.
그것은 아직 멈추지 않은 혈액 을 따라 주검 곳곳으로 퍼져 제 몸을 키울 양식을 참했다.
꼭 그것이 물질적인 에너지원뿐 인 것은 아니다.
죽어 가는 자의 분노와 울분이 더 크다.
순수한 악의, 오로지 복수를 하 고자 하는, 그것이 그 순간일지 라 하여도 그 무엇보다 큰 살의. 마성은 그것을 먹으며 제 육신 을 키워 나갔다.
“이게••••••
“그렇다. 마는 인간에게서 왔다. 상징적인 개념을 운운하는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마는 인간 이 품은 순수한 악의에서 탄생했 다.”
“마족이 먼저가 아니었던 거 냐?”
“보는 그대로 아닌가.”
로아에선 그랬다.
마족이 먼저라고.
마족이 먼저 세상에 존재했고 로아의 주인이었다고.
인간은 그 마족의 돌연변이, 수 많은 하위 개체 중 유달리 출중 한 생존력과 번식력을 가진 한 갈래라고.
그래서 인간임에도 마족의 술법 인 마법을 쓸 수 있는 것이고 그 렇기에 마족이 인간을 먹어 살이 찌는 것이라고.
로아의 인류에겐 그 근원적인 열등감이 있었다.
아무리 마를 멸한다고 한들, 자 신들의 태생이 마족의 찌꺼기였 다는 벗어날 수 없는 열등감 말 이다.
하지만 지금 보고 있는 이것이 거짓 없이 진실 된 사실이라면 근원이 뒤바뀌는 것이다.
“인간이 마족의 먹이였던 게 아 니구나. 마족이 인간의 찌꺼기였 어.”
“찌꺼기? 적절하지 않다. 오히 려 공생이지.”
마왕이 다시금 공간을 이끌었 다.
시공간이 빠르게 뒤바뀐다.
움집 늘어선 군락이 보인다. 제 법 많은 원시인들이 기거하고 있 다.
그런데 하나같이 눈빛에 살의가 가득하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부풀 어 있는 살의는, 단지 기회를 노 리고 있을 뿐이지 어떠한 절제도 느껴지지 않았다.
“인간이 가진 마성의 파장은 그 무엇보다 강하다. 감당할 수 없 는 영향력으로 모든 인간을 물들 이지.”
주검에서 태어난 작은 마물이 그 군락 안으로 숨어들었다.
악의 가득 찬 인간의 몸에 빙의 하여 그 마성을 빨아들인다.
하나씩, 하나씩.
마물은 악의를 먹어 가며 몸을 키웠다.
그럴 때마다 살의로 가득 찼던 사람들의 눈동자에 인성이 찾아 들었다.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마족 은 인간의 살의를 해소하며 자라 났다. 마족의 번영은 그만큼 큰 인간의 마성으로부터 기원한다.
“이걸••••••
“믿으라 하지 않는다. 이미 경 험하지 않았나. 그대는 왜 스스 로 마성을 쌓았나? 수많은 인간 이 가진 마성을 스스로 받아들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이 악의니까. 그것에 세상 을 불행하게 만드니까.
그것 이외의 다른 이유는 없다.
“나는 눈에 거슬리는 쓰레기를 치운 것이지 몸을 키울 먹이를 탐한 게 아니야.”
“하나 같지 않나. 그 과정이 같 고 결과가 같다면, 그 근원 또한 다르다 할 수 있는가?”
“허튼소리!”
“하여 말하였다. 처음부터 너였 음을. 크게 이룰 자여. 진정한 희 생의 이름을 알라.”
사람들의 마성을 흡수하여 성장 한 태초의 마가 인간의 육신을 뛰어 넘고 오롯이 일어났다.
[고스……. 고스 에질렌.] 여섯 쌍의 날개와 다섯 개의 뿔 을 가진 마는 스스로를 그리 칭 했다.크게 이루는 자.
인류가 가진 악의를 감당하기 위해서, 마를 크게 이루어야 할 자.
“처음부터 너의 이름이었다.”
마의 기원 (6)
“하, 하하하하. 웃기는구만. 이 거 웃기는 일이야.”
태식은 파하 숨을 토해 냈다. 어이가 없고 황당하여 실소가 나 온다.
“하하, 파하하하하.”
태식은 한참을 그렇게 웃었다.
지금까지 행해 왔던 일들이 짧 은 파노라마로 흘러간다.
처음부터 오만 곳에 오지랖 부 리고 다닐 생각은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 하나씩 치워 가 자는 것 정도였고 이왕 하는 것 확실하게 해 놓지 않으면 뒷손 가는 경우가 많으니 딴에는 조금 더 신경 쓴 것뿐이었다.
물론 자신의 그 조금 더가 다른 통념적인 기준에선 조금이라 부 를 수 없는 정도라는 것쯤은 알 고 있었다.
그것으로 어떤 여파가 생길지는 정확히 몰라도 자신의 능력으로 처리하지 못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무리 일 이 커졌다고 한들 되돌리려거든 얼마든지 되돌릴 수 있는 선들이 있었었다.
그런데 되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분야에, 더 큰 오지랖을 부려 왔다.
너무 지독해서, 도저히 눈 뜨고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그토 록 돌아가고 싶었던 자신의 고향 이 이렇게나 추악한 곳인 게 참 을 수가 없어서.
그래서 그랬다.
문제의 경중이나 사건의 크기는 딱히 상관이 없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비슷하다.
사람이 가진 이기심과 욕심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어디에나 그런 인간들이 있었 다.
법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법을 만드는 이들 중에도 있고 법을 판결하는 이들 중에도 있으 니 말이다.
정의를 실천하는 곳에도 마찬가 지다.
그 정의로 사사로운 욕심을 챙 기고 진정한 약자가 아닌 강한 힘을 가진 악자를 따른다.
생명을 중시해야 할 곳에서 생 명을 돈으로 치환하고 자애를 보 여야 할 곳에선 계산된 자애로 아직 틔우지도 못한 아이들을 팔 아먹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집단 전체를 소거할 수는 없다.
유지되고 있는 시스템을 허무는 짓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씩 치우기로 한 것 이다.
보이는 것들마다 그때그때 치우 다 보면 언제고 깨끗해지겠지.
조금은 나아지겠지.
쓰레기는 보는 사람이 먼저 치 우면 되는 일이라 여기며 참 부 지런히도 오지랖을 부려 왔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더 큰 오물더미를 마주한 기분이 었다.
로아의 권력자들의 행태를 보며 그렇게 역겹다 여겼는데, 이곳이 라 하여 다르지 않다.
사람이란 본질이 다르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 여김이다.
그러니 더 확실하게 골라내면 된다 여겼다.
어설프게 눈에 보이는 것만 치 울 게 아니라, 이왕 하는 것 집 안 대청소를 하듯 깔끔하게 전부 훑어 내면 그나마 효과가 있지 싶었다.
그래서 바토리를 권속으로 삼았 고 다른 고위 마족들 또한 권속 으로 삼은 것이다.
사람들이 가진 마성을 색출하기 위해서.
이 사회를 좀먹는 그 마성을 제 거하기 위해서.
“이러면 외통수네.”
과정이 같다느니, 결과가 같다 느니 그런 말은 상관없다.
처음부터 너였다느니, 크게 이 룰 존재라는 말도 별 의미 없는 헛소리다.
원하는 목적에 딱 맞는 도구 아 닌가.
사람들의 마성을 제거하고자 하 였는데, 마족의 구성 자체가 그 것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라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러면 외통수야. 이게 사실이 라고만 한다면 내가 이 미끼를 물지 않을 수가 없어.”
“거짓이라 보는가?”
“환상일 수 있잖아. 니들 맨날 하는 게 기만인데 충분히 가능하 지.”
“너라면 간파할 수 있을 터. 신 중히 살피라. 나는 숨기는 것 없 이 밝힘이다. 이것에 거짓이 있 는가.”
“그래, 없지. 너는 허튼 거짓말 을 하는 놈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받으라. 너의 이름이 다.”
마왕은 검은 형체 일렁이는 손 을 내밀었다.
태식은 그것이 태초의 마성임을 본능적으로 인지했다.
이것이 마왕의 권위다. 이것을 흡수하면 그것으로 진정한 마의 정점에 설 수 있다.
“좋은 도구다. 잘 받으마.”
태식은 태초의 마성을 손에 움 켜쥐었다.
“좋다. 이제 너다.”
마왕의 형상이 가까이 다가와 태식의 몸에 완벽히 겹쳐져 하나 로 융합되었다.
파앗-순간 어둠으로 암전되었던 시선 에 다시 빛이 들어왔다.
첫 번째로 느껴지는 감각은 목 언저리가 마취를 한 것처럼 지근 거린다는 것이었다.
시선이 아래로 간다.
목에 멸마검이 반쯤 박혀 있다.
“ 아-.”
태식은 가볍게 손을 틀어 멸마 검을 뽑아냈다.
그 깊은 상처에서 피가 솟구치 는 게 아니라 검은 연기만 스멀 스멀 흘러나왔다.
“필요 없습니다-!”
그다음으로 인식한 것은 자신을 향해 달려들고 있는 유성이었다.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는 눈 동자가 심하게 흔들린다.
“넌 왜 또 난리야.”
태식은 목에서 멸마검을 뽑은 움직임 그대로 유성을 향해 가볍 게 내리그었다.
그 궤적을 따라 어둠의 기둥이 떨어진다.
유성은 그 힘을 감히 비켜 내지 도 못하고 휩쓸려 나가떨어졌다. 길을 내고 있던 진인의 안개는 물론이고 싸움의 여파를 막으려 했던 수호단까지 단번에 휩쓸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