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Price Pawn Shop RAW novel - Chapter (4)_11
“술을 따라 줄 거면 라면 말고 안주로 해 줘야지.”
“라면에 술 먹어도 괜찮아. 자 자, 얼른 가세요 나, 이거 정리해 야 해.”
이린은 석우의 등을 떠밀어 방 밖으로 내밀었다.
드르륵 탁. 부드럽게 방문이 닫 힌다.
“그냥 나오지 그랬어요.”
“그럴까 했는데, 아무래도 오빠 잖아요. 동생 사무실에 외간 남 자가 마음대로 들락거리면 좋아 하겠어요?”
“어머머, 그런 것도 신경 써 주 는 거예요?”
“왜 이래요, 이거. 내가 얼마나 세심하고 배려 있고 속 깊은 사 람인데.”
이린은 큰 눈을 껌뻑거렸다. 간 만에 놀라는 얼굴이다.
“제가 지금 이 타이밍에 웃어야 하는 거죠?”
“그렇게 묻는 거부터가 늦은 거 예요.”
태식은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농담한 것도 아닌데 왜 웃어요?”
“ 아하하하.”
어색하게 웃은 이린은 다과를 내어왔다.
“안 그래도 마침 리스트에 대한 보완이 완료되어서 연락하려던 참이었어요.”
“그건 그냥 사장님이 가지고 계 세요.”
“직접 손을 쓰려고 한 거 아니 었나요?”
“굳이 제가 일일이 할 필요는 없죠.”
“귀찮아서요?”
태식의 눈이 가늘어졌다.
“웃어야죠. 농담인데.”
이린은 당황하여 얼른 말을 이 었다.
“저한테는 정답이라서요. 하하 하. 아이고 재미있어라.”
“아이, 참—.”
“그런 그렇고, 월터는 어때요?”
“생각 이상이었어요. 원소 협응 특형이라니. 화학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특형 아니겠어요.”
“그런 재주를 가지고 마약이나 만들던 놈이죠. 너무 특별 대우 해 줄 필요 없어요.”
“네, 일단 삼엄한 경비하에 밀 착 마크 중이에요.”
태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한 물건을 내어줬다. 태식이 늘 입 에 물고 다니는 담배다.
“그놈한테 이 담배를 분석하라 고 하세요.”
“분석만 하면 되는 건가요?”
“아니요. 결과물이 나와야죠. 그 녀석이라면 살펴 보는 순간 알 거예요. 뭘 만들 수 있는지.”
“저도 알수 있을까요?”
“간단하게 설명하면 마약 중독 치료제쯤 되겠네요.”
“저번에 연구하라고 하신 포션 과는 다른 성질인 거죠?”
“네. 그건 해독의 개념이고 이 건 중독 치료의 개념이요.”
“알겠어요. 바로 조치할게요.”
“조만간 전국의 모든 판매상이 소탕될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수요가 사라지는 건 아니거든요. 유통망을 유지하면서 중독자를 최대한 확보한 후, 치료제를 풀 거예요.”
중독자들에게 치료제를 마약이 라고 속여서 파는 거다.
마약 중독자치고 제 발로 치료 센터를 찾아오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치료 센터를 만들어 두고 찾아 오는 사람을 치료해 주는 것보다 그게 낫다고 본다.
물론 그렇게 타의로 치료받은 사람들인 만큼 다시 쉽게 마약에 손댈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그만 이다.
지금은 우선 꼬임에 넘어가 중 독자가 된 사람들이 신경 쓰일 뿐이다.
“그런 목적이라면 점유율 100% 목표로 유통해야겠네요.”
“그렇죠. 그래야 치료제가 완성 되면 치료율 100%가 될 테니까 요. 여력 되겠어요?”
“해야죠. 안 되면 2팀의 지원을 받아서라도 해야죠.”
“그리고 추가로 이건 복제품을 만들라고 하세요.”
태식은 투명한 앰플 하나를 내 어 줬다.
홀리스틱. 몽마의 원정을 뽑아 만든 것이다.
그 목적은 폭정을 일삼는 놈들 중에서도 쾌락적 향락을 즐기는 것들 자연스럽게 솎아내기 위함 이었다.
마약을 하는 이유가 더 큰 쾌락 을 때문인 만큼, 무소불위의 권 력을 가진 놈들이 눈치 볼 것 없 이 쾌락을 추구하는 방식은 마족 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추악하고 더럽고 잔인했다.
그것을 정화하기 위해서 만든 성스러운 몽둥이가 홀리스틱이 다.
“이건 어떤 효과가 있는 약인데 요?”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극한의 황홀경을 이끌어 오죠. 단 한 번만 투약해 도 벗어날 수 없고 반복할수록 감각을 붕괴시켜요.”
“무서운 약이네요……
“그래도 나쁜 약은 아니죠. 다 른 사람 끌어들일 정신머리를 남 겨 두지 않거든요. 그리고 감각 이 다 붕괴하고 나면 성인군자가 되기도 하고요.”
“성인군자요?”
“해탈이라고 하죠. 속세의 모든 것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지 요.”
“그 상태가 되면 어떻게 되는 거죠?”
“보통 둘 중 하나더라고요. 종 교에 귀의하거나 자살하거나. 그 래서 홀리스틱이라고 이름 지었 었는데. 후훗, 이름은 적당히 바 꿔도 상관없고요.”
“그럼 이건 참작의 여지가 없는 완전한 마약인 거네요? 그것도 심각한 마약요.”
“관점에 따라 다르죠. 극한의 마약이 될 수도 있고, 치료제가 될 수도 있고. 구충제가 될 수도 있고.”
“마약이나 치료제는 그렇다 하 는데, 구충제요?”
태식은 이현의 기억 속에서 본 것들을 잊지 않았다.
그 기억 안에 있던 수많은 범죄 들 중엔 그 어느 것도 당위성이 라 부를 만한 게 없었다.
감정적이든, 논리적이든 하다못 해 명분이든.
정말이지 참작의 여지가 한 톨 도 없는 순수한 악업이었다.
살아 있을 이유는 고사하고 사 라져야 할 이유만 많은 것들이 다.
“사회의 해충을 솎아내는 개념 에서 보면 구충제도 적당하지 않 겠어요?”
태식은 피식 웃었다.
그 미소엔 어떠한 죄책감이 없 었다. 그렇다고 사명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때마다 구충약을 먹 듯, 바퀴벌레가 보이면 바퀴약을 놓는 것처럼.
태식은 그러했다.
아그니 (2)
태식은 아직은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개찰구로 첫차가 들어온다.
주말임에도 바쁘게 움직이는 사 람들이 많다.
차가운 의자에 온기가 묻는다.
태식은 한자리에 엉덩이를 붙였 다.
덜컹덜컹 객차는 달린다.
서다 가다를 반복하다 보면 사 람들도 이리저리 뒤바뀐다.
그러다 한 역에서 우르르 사람 들이 몰려들었다.
금요일 밤을 꼬박 새워 불태우 고 첫차를 타러 온 사람들.
그들의 몸에선 커피 탄 내 같은 담배 냄새가 풍겨 온다.
굳이 숨을 킁킁 들이켤 게 없 다. 익숙한 냄새다.
태식은 짐짓 고개를 끄덕였다. 한 정거장 더, 한 정거장 더. 호 선을 갈아타고 다른 정거장까지.
지하철로 마실을 다니는 노인인 양 이리저리 떠돌다 집으로 돌아 왔다.
“집에 있는 줄 알았더니 나갔다 왔어?”
“바람 좀 쐬고 싶어서.”
아무리 미주가 담이 크다고 한 들 마약이니 뭐니, 괜히 떠들 필 요는 없다.
“요즘 뭐 하는 일이 잘 안 되 니?”
“너무 잘돼서 탈이지. 엄마 아 들이 어디 일 못 할 사람인가.”
태식은 밝게 말했다. 연기일 것 도 없다. 정말 일이 잘되고 있으 니까.
“일을 못 해서 문제가 아니라 게을러서 문제지.”
“아이고, 마마님. 마마님께서 뭔 가를 잘 모르시나 본데, 소자의 게으름은 선택적 게으름이옵니 다.”
“어이구, 아드님. 주둥아리 닫고 여 앉으시지요.” 미주는 집게를 흔들었다. 주말 은 보통 아침부터 고기다. 뭐 사 실, 대부분 아침부터 고기이긴 하다.
“생선 비린내 나는데, 뭐야?”
“장어.”
“장어? 웬 장어?”
“맨날 뽈뽈거리고 돌아다니는 데, 어디 가서 힘이라도 잘 써야 지.”
“마마님. 소자 힘쓸 일이 없사 옵니다.”
“까불지 말고 주면 그냥 주는 대로 먹어. 날 더워지는데 탈 나 지 말고.”
미주는 장난을 받아 주기 싫다 는 눈빛으로 태식을 쏘아봤다.
태식은 어깨만 으쓱하며 자리에 앉았다. 핸드폰을 킨다.
흰색 창을 열어 두고 반디를 검 색해 본다.
우르르 게시글이 늘어진다.
“하여간 일들 잘한다니까.”
반디. 태식이 넘겨준 담배로 월 터가 만들어 3팀에서 유통하는 신형 마약의 은어다. 만족도에 비해 그 부작용이 대 마나 일반 담배보다도 낮다.
태식이 사령관으로 있을 때 군 보급품으로 배급했던 물건인 만 큼 효능과 안정성은 확실하다.
물론 어느 정도 중독성이 있어 담배처럼 끊기 어려운 것은 맞지 만, 신체가 무너지거나 건강상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반디로 기존에 유통되었던 마약 의 대체재 역할을 감당할 것이 다.
필로폰같이 갈 데까지 간 사람 들은 어쩔 수 없다. 그 사람들은 반디로는 성에 차지도 않을 거 다. 자업자득이다.
그런 사람들까지 일일이 쫓아다 니면서 도와줄 마음은 없다.
태식이 하고자 하는 것은 선량 한 사람들이 피해 보지 않게 할 울타리를 만드는 것이지, 제멋대 로 놀다가 고꾸라진 사람들을 일 으켜 세워 주는 게 아니다.
민생에 대한 것은 이만하면 충 분하다. 오히려 오버한 것 같기 도 하다. 시작하면 가닥을 봐야 하는 성미 때문이다.
한 상 거하게 먹은 태식은 그대 로 소파에 늘어졌다. 주말은 원 래 이렇게 보내는 거다.
“아들, 집에 있을 거야?”
“왜, 나가게?”
“응. 반상회 갈 거야.”
“뭐 하나는 하고 있죠?”
미주는 손목을 흔들었다. 태식 이 챙겨 줬던 팔찌가 찰랑거린 다.
미주가 나가고 태식은 베란다 창 사이로 불어 드는 바람을 맞 으며 선선한 낮잠을 즐겼다.
당장 짜증스러운 것들을 죄다 치워서 그런가, 머릿속이 퍽 시 원하다.
솔솔 잠이 온다. 잠을 자려고 누워 있는 것이긴 하다만, 정말 잠이 오니 한숨 자는 것도 나쁘 지 않다.
태식은 생각하는 것을 멈추곤 적극적으로 잠에 빠졌다.
간만에 자는 낮잠이다.
머리가 맑으니 풍경도 밟다. 탁 트인 시야에 푸른 하늘과 우거진 녹음이 있다.
태식은 한 발 뛰어 하늘을 올랐 다. 산을 뛰어넘고 구름을 타 오 른다.
지평선이 둥글게 보일 정도가 되면 온 세상이 한눈에 들어온 다.
하늘에 별이 손에 잡힐 높이가 되면 물에 눕듯 찬찬히 몸을 누 인다.
힘들여 잠을 청해도 자각몽 속 으로 들어오는 태식에게 이 우주 유형은 꽤 좋은 휴식이다.
콰르르르릉!
한참 아래에서 구름이 진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검게 그르렁거리는 구름은 소나 기 같은 낙뢰를 뿌려 댔다.
‘하, 이놈들. 어떻게 내 꿈속인 데 지들 멋대로 나오나 몰라.’
태식은 침대에서 내려오는 것처 럼 폴짝 뛰어 구름으로 내려왔 다.
‘용사여-! 네 힘으로 자연의 질 서를 관장하는 우리의 힘을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으냐!’
천둥으로 이루어진 대장군 테오 데움이 번개의 삼지창을 휘두르 며 소리쳤다.
‘이놈아. 너, 애저녁에 죽었어.’
태식은 놈을 향해 주먹을 움켜 쥐었다.
사방으로 뻗쳐 나가던 천둥이 우그러든다.
그렇게 압축된 천둥은 하나의 점으로 뭉쳐 사라졌다.
‘어디 보자. 이놈 하나만 나왔을 게 아닌데.’
태식은 지상을 살폈다.
꼭 나오면 여러 놈이 뭉쳐서 나 온다. 그래도 원소를 다루는 자 연계 마족들은 요란한 편이라 찾 기가 쉽다.
‘미약한 너희가 할 수 있는 것 은 그 보잘것없는 일신을 나에게 공양하는 것뿐이니라!’
거대한 불길이 일어난다. 자연 계 중에서도 가장 요란한 화염계 다.
‘이놈아. 너, 불장난 좋아하면 밤에 오줌 싼다.’
‘누가 감히 원소의 제왕인 이 몸 앞에서 두려움을 망각하였는 가!’
‘누구긴 이 자식아. 세상을 구한 용사님이지.’
태식은 아그니 또한 테오데움과 같은 방식으로 압축했다.
그러곤 입에 문 담배 끝에 붙여 두곤 들숨으로 혹 들이켰다.
‘크하아아-.’
증기기관처럼 연기가 뿜어져 올 랐다.
‘그래도 너는 이런 맛이라도 있 으니까 좀 반갑지.’
태식은 불 맛 가득한 담배를 피 우며 다시 우주 위로 올라갔다.
아무리 꿈속이라지만, 마족들이 난리를 펴 둔 지상으로 내려가는 것은 싫은 일이다.
‘킁킁, 응? 냄새가 뭐가 이상한 데?’
대기권 밖에 있으니 지상에서 나는 냄새가 올라올 일이 없는 데, 코끝으로 탄내가 자꾸 들어 온다.
“가스 불!” 태식은 눈을 번쩍 뜨며 일어났 다.
반사적으로 주방으로 몸을 날렸 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풍기는 냄새는 아직 남아 있는 장어구이 냄새였고, 들리는 소리 는 베란다의 블라인드 흔들리는 소리뿐이다.
“후우-. 꿈을 개떡 같은 걸 꿔 서는……
태식은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다시 누우려 해도 잠이 다 깨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일을 찾아서 할 건 아니다. 직접 신경 써서 움직 여야 하는 일들은 다 끝냈다.
태식은 언제나 그렇듯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까딱였다.
드라마 재방송도 좋고 철 지난 영화도 괜찮다.
고등학교 때 보던 오래된 예능 을 다시 보는 것도 추억을 떠올 리기 좋은 일이다.
초점 없는 눈으로 TV를 보던 중, 긴급 속보가 태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강원도 일대에 큰 산불이 발생 했다는 속보다.
“불이 크게 나긴 크게 났나 보 네.”
어지간한 산불로는 이런 긴급 속보까지 하지 않는다.
채널을 돌려 본다. 딱히 뉴스 시간이 아니라 그런가 다루는 채 널이 없다.
그러면 핸드폰을 보면 된다.
산불 관련 뉴스가 실시간검색어 에 주르륵 올라와 있다.
속초 인근의 산에서 새벽쯤 발 생한 산불이 아직까지 꺼지지 않 았다.
초동 조치를 하고 강원도 일대 의 소방 인력이 전부 동원되었지 만, 그럼에도 불길을 잡지 못하 는 중이었다.
현재는 전국 소방서에서 지원 인력이 강원도로 급파되는 중이 었다.
커뮤니티 곳곳에서 고속도로를 줄지어 이동하는 소방차 행렬을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어우. 뭐야, 이거. 생각보다 엄 청 심각하네.”
산불이라기에 이맘때만 되면 항 상 있었던 그런 산불인 줄 알았 다.
산에서만 타는 산불 말이다. 그 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산에서 시작한 산불이 바람을 타고 속초 시내까지 내려오는 중 이었다.
산과 인접하여 자리 잡고 있는 아파트 중에는 벌써 불길에 휩싸 인 곳도 있었다.
“ 아들.”
미주가 예상보다 일찍 돌아왔 다. 불안한 얼굴이다.
“뉴스 봤어, 뉴스?”
“속초 산불 난 거? 지금 보고 있어.”
“불이 엄청 번졌나 봐. 네 이모 한테 들었는데 전쟁터가 따로 없 대.”
“이모? 아 막내 이모 속초 살 지?”
“응. 바닷가 쪽에 살아서 문제 는 없다고 하는데, 그래도 혹시 몰라서 양양으로 피난 가 있다 네.”
“깜짝아, 다행이네.”
“네 이모 말이 그 산불 나서 번 진 곳 근처에 유류 저장고가 있 대.”
“주유소 말하는 거야?”
“아니. 주유소 말고 나라에서 비상시에 사용하려고 모아 두는 유류 저장고. 거기에 불길이 옮 겨붙으면 엄청 큰일이라고 하더 라. 그 안에 소방관들도 들어가 있대.”
“저 불길 속에? 소방차로 막을 수 있는 불이 아니잖아.”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 없는 것 아니겠니. 소방관이잖아.”
“어휴, 그래도 해서 되는 일을 시켜야지. 되는 일을.”
TV 화면으로만 봐도 불가능이 다. 불의 세기를 보면 그냥 사람 타죽으라고 공양하는 것 밖에 안 된다.
위에서는 누가 되었든 일단 들 어가라고 했겠지. 그래서 저 젊 은 가장들이 저기에 있는 것일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