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Price Pawn Shop RAW novel - Chapter (5)_1
태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보게?”
“응. 이모도 있고 하니까.”
태식은 허공을 가르며 마이린에 게 전화를 걸었다.
-네, 태식 씨.
“사장님 지금 바빠요?”
-강원도에 산불이 크게 났다고 해서 와 있어요.
“그래요? 나도 지금 강원도로 가는 길인데. 어디예요?”
-헬기 타고 이동하는 중이에요. 팀장님이랑 같이요.
“목걸이 가지고 있죠?”
_네.
태식은 이린에게 준 목걸이의 좌표점을 기준으로 잡고 허공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아이, 깜짝이야.
맞게 찾았다.
태식은 그대로 이린의 옆자리로 넘어갔다.
“같이 가요.”
시야가 높다. 저 멀리 뿌옇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온 하늘을 뒤 덮을 정도다.
대낮임에도 붉은 불길이 치솟는 게 훤히 눈에 들어온다.
“사장님이 가면 조치할 수 있는 게 있어요?”
그녀를 무시하는 게 아니다. 현 실적인 효용성을 묻는 것이다. 이린은 태식의 뜻을 오해하여 듣 지 않았다.
“그룹 내에서 가용할 수 있는 능력자들을 대동해 가는 길이에 요. 직접적으로 불을 끄지 못하 더라도 구조 활동이나 저지선을 만드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 을까요?”
“좋은 판단이에요. 그리고요?”
“그리고요? 아, 그러니까, 그리 고……. 일단 제가 직접 피해 상 황을 파악하고 실시간으로 구호 물품 지원과 피난민 임시 거처 지원 같은 것을 할 수 있어요.”
태식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 다. 하지만 아직 원하는 답은 나 오지 않았다.
“더 있을 건데요.”
“더요? 뭐가 더 있죠? 긴급한 상황이잖아요. 그냥 알려 주세 요.”
“제가 사장님한테 쓰라고 준 것 들이 있는데, 왜 그것들은 쓸 생 각을 안 해요?”
“아! 위상변환기! 팀장님, 당장 헬기 돌려요! 당장!”
마이린 외침에 헬기가 기우뚱 기운다. 급선회다.
“팀장님, 그냥 가는 데로 가세 요.”
태식이 말했다. 김 팀장은 중간 에서 우왕좌왕했다.
“사장님, 어떻게 할까요?”
“일단 태식 씨 말대로 해요.”
“알겠습니다.”
변경되려던 노선이 다시 원래 방향을 찾았다.
“태식 씨. 위상변환기를 쓰려고 한 거 아닌가요?”
“지금은 제가 가니까요. 굳이 위상변환기를 가져올 필요는 없 어요. 이럴 때 활용할 수 있다는 것만 기억해 두세요.”
“위상변환기를 사용하면 불을 끌 수 있는 건가요?”
“기능적으로는 가능한데, 추가 조작이 들어가야 해요. 서해팀은 그런 조작을 못 하죠.”
“그럼 어떻게 불을 끄죠?”
“바람의 방향을 바꾸도록 세팅 이 되어 있잖아요. 지금 산불은 바람 때문에 타고 일어나는 거 고. 그대로 가지고 와서 작동만 시켜도 산불이 퍼지는 건 막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럼 다른 때에 똑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태식 씨가 말한 대로 조치해도 되는 거죠?”
“그래도 되죠.”
태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린은 태블릿에 간단한 메모 를 추가했다.
“그런데 추가적인 조작법은 까 다로운가요? 홍수나 태풍 같은 것도 막을 수 있는 거잖아요?”
“너무 치트 키 같이 막 사용하 면 안 좋아요.”
“뭔가 부작용이 있는 건가요?”
“있죠, 아주 큰 부작용. 그렇게 내가 다 해결해야지, 내가 다 도 와줘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 어 느 순간 그 생각에 함몰돼요.”
오파츠에 대한 것인 줄 알았더 니 사람에 대한 걱정이다.
“그리고 괜한 죄책감을 가지게 되거든요. 선행은 의무가 아니라 덤 같은 거예요. 힘을 가지고 있 다고 해서 모든 타인의 불행이 내 책임인 것도 아니고요. 그렇 게 생각 해야 오래갑니다.”
이린은 태식의 조언을 달게 들 었다. 그게 꼭 경험에서 우러나 하는 이야기 같아서 말이다.
아그니 (3)
“네, 염두할게요.”
이린은 말로만 끝내지 않고 메 모를 적었다. 태식은 후훗 웃으 며 헬기 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대로 하늘을 걷는다.
시야를 넓게 둔다. 속초 시내 곳곳 능력자들의 능력 발현이 눈 에 들어온다.
국과심에 소속되어 있는 연구원 들도 파견된 모양이다.
“영- 우왕좌왕하는구먼.”
태식의 눈에는 그랬다.
두셋 단위, 많게는 대여섯.
유기적인 움직임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 정도가 한계였다.
딱 한 파티 인원이다.
해 봐야 길드 단위로 움직이던 이들이라 이런 대규모 연합 작전 에서 합을 맞춰 본 적이 없다.
더욱이 개개인이 출중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 상호 보 완을 하기보다는 자신이 나서서 무언가를 하려는 움직임이 더 컸 다.
“쯧. 그래도 없는 것보다야 낫 긴 하겠지.”
없는 것보다야 낫긴 하지만, 있 다고 딱히 크게 도움이 되는 것 도 아니다.
불길을 잡지 못한다.
태식은 더 기다릴 것 없이 바람 을 휘감아 산소를 뽑아 올렸다.
불은 산소를 먹고 자라니, 산소 만 분리해 내면 쉽게 끌 수 있 다.
공략법도 대응법도 능숙하다. 한창때 겪었던 것에 비하면 규모 도 작은 편이라 손쉬운 축이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불던 바람이 하늘로 솟구치며 불줄기까지 함 께 끌어올렸다.
붉은 화염이 용오름이 되어 하 늘로 이어진다. 산소를 쫓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쫓아온 불줄기는 하늘 위에서 흩어 버리고, 분리된 것 들은 지상에서 사그라진다.
분명 눈에 띄는 짓이다. 모르긴 몰라도 방송국 카메라만 수십 대 일 것이고, 핸드폰으로 촬영하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 다.
자신의 모습은 가렸지만 이 신 기한 현상만으로도 무언가 유추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방아 에 오르내릴 거다.
“이상한 소문 나는 건 사장님이 알아서 커팅 해 주세요.”
태식은 헬기로 돌아오며 말했 다. 마이린은 어린아이가 마술을 본 것처럼 손뼉을 쳤다.
“정말 대단해요. 이만한 불을 이렇게 간단하게 진화하다니요. 태식 씨의 능력은 끝이 어딘지 모르겠어요.”
“아직 상황이 다 끝난 거 아니 에요. 잔불씨는 많이 남아 있습 니다. 2차 사고도 발생할 수 있 고요. 잔불은 소방관들이 잡을 테니 능력자들한텐 2차 사고 예 방에 집중하라고 하세요.”
“네, 팀장님, 저기 화재 구역으 로 이동하면서 상황을 보죠. 피 해를 본 아파트가 있는 것 같은 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지 모르잖아요.”
“예, 알겠습니다.”
헬기는 방금까지 불길이 치솟았 던 지역 위를 빙 둘렀다.
“당장 눈에 보이는 아파트만 해 도 열 동은 넘게 불에 탔네요. 이재민이 많이 발생하겠어요.”
수재민은 집이 허물어진 것만 아니면 복구가 비교적 쉽지만, 화재는 청소를 한다고 해서 당장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집이 다시 마련될 때까지 지낼 임시 거처가 필요하다.
이린은 석우에게 전화를 걸었 다.
“오빠. 대단위 건설 들어갈 때 컨테이너로 올리는 직원 기숙사 말이야. 그거 장기간 지낼 만해? 그래? 응. 여기 속초 산불 난 곳 이야. 보니까 많이 필요할 것 같 아서. 지원할 수 있어? 응, 알았 어. 연락 줘.”
통화를 끝낸 이린은 태식을 바 라봤다. 뭔가를 바라는 눈치다.
태식은 엄지를 치켜 올려 줬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아앙-!
지축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거 대한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충격파가 헬기를 때린다. 동체 는 균형을 잃고 쓰러졌고 프로펠 러는 자세를 유지하지 못했다.
“끼야아아아—!”
“단단히 붙잡으십시오! 단단 히!”
김 팀장이 조종간을 잡고 안간 힘을 써 보지만 그게 그런다고 될 게 아니었다. 이미 헬기는 빙 글빙글 도는 중이었다.
안전벨트를 하지 않고 있었으면 밖으로 튕겨 나갈 정도다.
태식은 순간 어둠을 일으켜 헬 기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헬기는 시간이 점춘 것처럼 그대로 허공 에 고정되었다.
“ 괜찮아요?”
“아아-. 하아아아-. 흐아아아.”
이린은 가쁜 숨을 토해 내며 몸 을 바들바들 떨었다. 담이 작은 사람이었으면 심장마비가 걸렸어 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헬기가 돌기 전, 완전히 화염 줄기에 휩싸였으니 말이다.
[쓰으으읍! 불의 원천이 가득하 구나! 순결한 가스와 농밀한 진 액이다!]하늘 높게 타오르는 불길 속에 서 익숙한 언어가 들린다.
바람이 내지르는 비명 같은 느 낌.
분명한 마족어다. 정확하게는 요정어의 악센트가 섞인 마족어 였다.
“오늘 꿈이 예지몽이었나.”
태식은 쯧쯧 혀를 차곤 헬기를 살폈다. 기능 고장이라 어둠을 거두면 그대로 떨어질 판이다.
“헬기는 어떻게 안 되겠네요. 일단 나가죠.”
태식은 이린과 김 팀장을 근처 의 건물 옥상에 옮겨 줬다.
콰가가강-!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화염이 치솟아 오른다.
[누가 감히 화염의 힘을 거스르 는가! 나는 원소의 왕, 원소 중 의 원소, 불의 화신이다-!]태식은 꺾이지 않고 치솟는 불 길을 향해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늘 모르고 치솟기만 하던 불 길이 천장을 만난 듯 우그러들었 다.
[이놈아. 너, 내가 불장난하면 밤에 오줌 싼다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그새 까먹었냐?]태식은 같은 마족어로 말을 걸 었다.
불길에 사람의 형상이 나타난 다. 화염으로 나부끼는 머리카락 은 꼭 사자의 갈기 같다.
[감히 하등한 이즘 따위가 고귀 한 자연의 이름을 흉내 내는가.] [이즘이란다. 간만에 들어 보 네.]이즘. 마족의 언어로 인간을 이 르는 말이고, 그 뜻은 먹기 좋게 사육된 가축이다.
[아무도 나한테 이즘이라고 하 지 못했는데.]가볍게 말아 쥔 태식의 손에 힘 이 꽉 들어갔다. 울큰불큰 몸을 부풀리려던 화염이 더욱 바짝 움 츠러들었다.
아그니의 붉은 몸체가 점점 노 랗게 물든다. 그것이 다시 흰색 으로 변해 간다. 급격히 온도가 올라가고 있다.
[이까짓 힘으로 나에게 대항하 려 하는가! 내 발아래 무한한 에 너지가 있다! 무한한 기운이 있 다!]자신만만하게 힘겨루기를 겨뤄 온다. 불의 성질이 본래 거칠지 만, 이번은 유독 거칠었다.
[보아라, 무한한 힘을 얻는 나 를 어찌 이즘 따위가 거스른단 말이냐!]백색의 화염이 넘실넘실 출렁거 린다. 이제 백색을 넘어 청색으 로 변해 간다.
태식은 놈의 발치를 보았다. 보 랏빛으로 불타고 있는 그 자리엔 LPG 가스 충전소가 있었다.
[겨우 그걸로? 옛날 가락 다 어 디 갔냐. 귀엽게 노네.]겨우 저것을 가지고 저렇게 으 스대는 게, 꼭 두발자전거를 배 운 초등학생 같다.
태식은 공간 분리의 진을 펼쳐 충전소 일대의 지역을 통으로 잘 라 냈다.
그리고 그 공간 그대로 압축을 가했다.
불길이 순식간에 쪼그라든다 싶 더니 촛불 꺼지듯이 훅 사그라졌 다.
그런데 손맛이 없다.
삼일 밤낮을 두들겨 팼을 때의 그 손맛이 아니다.
콰앙-!
또 한 번의 거대한 폭발이 일어 났다. 이번엔 주유소다.
[불은 자연의 기운, 자른다고 잘릴 것 같으냐!]아그니는 다시 한번 제 몸을 크 게 부풀리며 거대한 위상을 뽐냈 다.
“이 자식이 나랑 놀자네.”
태식이 두 손을 맞대어 넓게 펼 쳤다.
갈라진 공간 안에서 스며 나온 어둠이 태식을 감싼다.
검은 그림자로 일렁거리는 멸마 갑은 순수한 다크매터의 집합 그 자체다.
태식은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 쥐었다. 태식의 손에서 뻗어 나 간 거대한 어둠이 손톱을 세워 아그니를 움켜쥐었다.
순결한 어둠은 순식간에 아그니 의 원천으로 파고들었다.
[크엑-! 크아아악-!]붉은 불꽃이 출렁거리는 것이 흡사 피를 토하는 것 같다.
주유소의 기름을 먹고 한껏 부 풀어 올랐던 화염은, 배수구로 빠져나가는 물처럼 태식의 손안 으로 빨려 들어갔다.
깨어진 원정에 힘을 보태기 위 함이다.
[나는 원소 그 자체다. 사라지 지 않는다. 사라질 수 없다!]주유소가 폭발하면서 근처의 변 전소까지 날아갔다. 대낮이라 티 가 잘 나진 않지만, 속초 일대는 전부 정전이 되었을 것이다.
여러 원소의 왕 중에서도 불은 특히나 위험하다.
태식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놈의 원정을 그대로 박살 내 버 렸다.
퍼석-, 호박 깨지는 듯한 느낌 이 손아귀에 확실히 전해졌다.
“이놈은 꼭 일을 크게 벌여.” 난장판이다.
그나마 탄약고가 터지지 않은 건 다행이다. 탄약고가 터졌으면 그 근처에 유류 저장고까지 폭발 했을 것이다.
휘이이이-.
바람이 돈다.
아그니는 힘을 잃었지만, 주유 소와 가스 충전소에 붙은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원소의 정령은 자연에서 태어난 다. 그렇기에 완전한 소멸이란 있을 수 없다.
[나는…… 자연 그 자체다. 나 는, 불이다. 나는 사라지지 않…….] [어딜 가려고!]태식은 불꽃 속으로 흩어지는 아그니를 붙잡았다.
이대로 놓아두면 또 어디서 이 만한 사고를 칠지 모른다.
[나는-.] [시끄러워.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서는.]태식은 양손을 모아 손에 쥔 화 염을 응축시켰다.
탄소가 다이아몬드로 변형될 만 한 압력이 가해진다. 너울거리던 화염은 응축되어 소멸했다.
하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다. 원 소는 사라지지 않는다.
태식은 발아래 있는 불꽃을 당 겨 와 손안에 넣었다. 그리고 잔 잔한 숨결로 다크매터를 불어 넣 었다.
사라진 듯 보였던 불꽃이 다시 살아난다.
성냥불만 한 게 촛불이 되고 다 시 호롱불이 되었다. 이 이상 키 우면 안 된다.
“삐엑j 삐에엑!”
봐라. 벌써부터 빽빽 울어 대는 게 보통이 아니다. 불이라 그렇 다.
“삐에에-! 삐에에에-!”
놈은 털만 북슬거리는 치와와 같은 꼴로 삐약삐약 울었다.
“피이이이이—.”
압력밥솥 김새는 소리가 난다.
수증기가 풀풀 피어나는 게 원 소 폭발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하여간 조막만 한 놈이 성질머 리는 정말.”
태식은 아그니의 콧잔등에 딱밤 을 먹여 줬다.
“캥-!”
아그니는 나 죽는다고 하며 뒤
로 나자빠졌다. 냉큼 다시 일어 나 불꽃을 피운다.
“넌 진짜 안 되겠다.”
태식은 원소 제어구를 꺼내 아 그니의 목에 채웠다. 원소 제어 구가 바짝 조여들며 아그니의 목 을 옥죈다.
태식은 놈을 무허의 공간에 던 져 넣었다.
“일단 큰불은 껐고.”
남은 건 수습이다.
LPG 충전소와 주유소가 폭발한 건 확실히 여파가 컸다.
그 충격파만으로도 일대의 유리 창이 전부 깨질 정도니 말이다.
피해에 휩쓸린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건물이 붕괴된 곳도 꽤 있었다. 혼잡한 곳이라 소방관들이 제대로 들어가지 못 한다.
능력자들이 힘을 쓰고 있었지만 역시나 탐탁지 않다.
그래도 애쓰고 있으니 초를 칠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