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Price Pawn Shop RAW novel - Chapter (7)_1
사고 (2)
“저, 사장님. 점심 식사해야 하 지 않겠습니까?”
“점심‘?”
감겨 있던 태식의 눈이 지그시 떠졌다.
“예, 예. 12시 반을 넘겼습니다. 나가시기 귀찮으시면 제가 배달 해 오겠습니다.”
“후우우-. 그래, 적당히 사 와.”
“그럼 늘 드시던 소고기김밥에 코끼리만두로 하시 겠습니까?”
“날도 푹해지는데, 좀 시원한 거 먹자. 시원한 거 뭐 있냐?”
“건너 골목에 있는 횟집이 하나 있는데, 거기 물회 파는 걸 봤습 니다. 물회로 드시겠습니까?”
“그래, 그거 먹자.”
“예,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방우는 유성에게 눈빛을 보냈 다.
“사장님, 그러면 저도 아이스크 림이라도 사 오겠습니다.”
“냉장고에 있는 거 다 먹었냐?”
“그거야 저번에 다 먹었습니다. 냉장고 텅텅 비어 있습니다.”
“그래라, 그럼.”
태식은 다시 눈을 감았다.
오늘은 유난히 덥다.
아직 초여름도 아닌 시기인데 이렇게 더운 걸 보면 올여름도 알 만하다.
태식은 물끄러미 구닥다리 에어 컨을 쳐다봤다.
80년대 복덕방 같은 가게 분위 기가 참 마음에 든다만, 저것만 큼은 좋은 마음으로 봐지지가 않 는다.
괜히 성수기 때 주문 밀리느니 지금 주문하는 게 낫지 싶다.
“아이고, 머리야.”
태식은 담배를 물었다.
계속 고민을 하던 차에 다른 생 각 거리가 들어오니 머리가 지끈 거렸다.
담배 한 대 피우고 냉수로 입가 심하던 차에, 방우와 유성이 양 손 바리바리 비닐봉지를 들고 들 어왔다.
“뭘 그렇게 많이 사 왔어?”
“그냥 반찬이 많아서 그런가 봅 니다. 모둠회 한판에 물회 3인분 했습니다.”
“유성이 너, 또 아이스크림 잔 뜩 사 왔냐?”
“하루에 네댓 개씩 해서 일주일 이면 다 먹는 양입니다.”
그러고 보면 점심을 먹고 아이 스크림을 하나씩 꼭 먹었다.
딱히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는데, 유성이 맨날 먹으라 고 하는 통에 입에 달고 살았던 거 같다.
싫은 건 아니라 뭐라고 할 일은 아니다.
“사장님, 드십시오.”
새콤달콤한 물회 향을 맡으니 답답한 게 조금 풀리는 것 같다.
태식의 눈치를 보고 있던 유성 이 냉큼 방우의 옆구리를 찔렀 다.
“저, 사장님. 혹시 무슨 고민 있 으십니까?”
“고민? 삶 자체가 고민이지. 에 어컨 좀 하나 좋은 거 사 봐. 다 른 건 둬도 에어컨은 좀 바꿔야 지.”
“예, 그럼 바로 대호전자 거 주 문하겠습니다.”
태식은 젓가락을 휘휘 저으며 대답을 넘겼다.
“그리고 유성이.”
“예, 사장님.”
“내가 하루 종일 고민을 했는데 말이야.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안 나온다.”
태식의 미간이 잔뜩 찡그러져 있다. 유성은 뭔가 큰일인가 싶 어 고개를 쭉 뺐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큰일입니까?”
“승주 말이야.”
“승주요? 승주가 왜요? 그때 다 잘 해결된 것 아닙니까?”
“잘 해결되기야 했지. 문제는 시간이 겹친다는 거다.”
“시간이 겹쳐요?”
“학교랑 우리 영업시간이랑 겹 치잖아.”
야자를 빼고 와도 이동 시간을 생각하면 마감을 친 이후다.
“아••••••
“근무시간 엄수인데. 영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고 주말 과외를 해 줄 순 없잖아.”
“그냥 해 주면 되는 것 아닙니 까? 사장님께서 어려우시면 제가 하겠습니다. 어차피 지금은 특형 발현기니까 저도 봐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니지. 내 주말이 소중하면 네 주말도 소중한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주말 근무는 아니야. 남의 행복 찾아 주자고 내 행복 저당잡는 게 말이 되냐.”
“하하하, 사장님, 저당까지 야……. 그냥 어린애 좀 도와주 는 건데요.”
“이게 단발성이 아니잖아. 조금 고생하고 마는 게 아니라, 앞으 로 꾸준하게 이어 가야 하는 거 라고. 일상의 범주에 넣어야 나 중에라도 차질이 없어.”
“그럼 그냥 승주보고 반 교시만 하라고 하시죠. 확인증 같은 거 끊어 주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 까?”
“그게 되나? 무슨 명목으로?”
“연예인들도 다 빠지는데 못 뺄 이유 있겠습니까. 저희 길드 이 름으로 공문 넣을 수 있습니다.”
“그래? 그게 돼?”
“예, 제 길드는 헌터청 공식 등 록 길드에 실적도 높으니까요.”
“이야-. 내가 좋은 직원 뒀구 만.”
“그럼 공문 넣습니까?”
“일단 그건 승주 아버지하고 이 야기 한번 해 보고.”
“저한테 번호 있으니까 제가 연 락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내부적으로 어떻든 대외적으로 따지면, 태식의 인지도와 유성의 인지도는 비교할 거리가 아니다.
유성이 나서는 게 훨씬 낫다. 물론 편하고 말이다.
“제가 교육해야 된다고 생각하 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저도 사 장님께 승주를 거두라 말했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순 없 죠.”
“좋은 마음가짐이구먼.”
“아, 그래서 말씀인데 1층을 정 리해서 다목적실로 쓰면 어떻겠 습니까?”
수업을 가게에서 할 것도 아니 고 수련을 가게에서 시킬 것도 아니다.
3층 일반 가정집의 구조라 휴게 실의 개념으로 두고 있는 차였기 에, 수업 및 수련을 할 공간을 빼자면 1층이 딱 맞다.
“1층? 어차피 안 쓰는 층인데, 그래도 되지.”
“그러면 절반 나눠서 절반은 수 련실로 꾸리고 나머지 절반은 작 업장으로 세팅할까요? 어차피 승 주가 엔지니어가 되면 작업장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계속 생각하고 있었나 보네?”
“네, 사장님 손타는 일 없이 기 초는 제가 다 잡아 놓겠습니다.”
“파하하, 그래 알았다. 기초 교 육은 너한테 일임한다.”
태식은 기분 좋게 일어났다.
방우가 유성을 보며 눈을 찡긋 했다.
방우는 후다닥 테이블을 정리했 고 유성은 냉큼 커피를 말았다.
먼저 옥상에 올라간 태식은 대 충 의자를 쓱쓱 훔쳐 내곤 재떨 이를 한 번 비웠다.
방우와 유성이 아이스크림과 커 피를 들고 올라왔다.
“아, 내가 깜빡하고 있었네. 방 우 너는 호텔 한번 갔다가 와 라.”
“네, 사장님.”
“뭔지도 모르고 그냥 네냐.”
“누구 말씀이신데요. 사장님이 시키시면 그냥 하는 거죠.”
“파하-.”
“사장님, 이 깡패는 생활 뛰는 동안 딸랑거리는 거만 익혔나 봅 니다.”
“이것도 기술이다. 이게 말로는 싫다고 해도 다 먹히더라.”
많이 봤다.
폭정을 일삼는 왕만 그런 게 아 니다.
대부분의 왕과 대영주들은 듣기 좋은 소리 하는 자들이 하나씩은 옆에 있더라.
굳이 왕까지 갈 것도 없긴 하 다.
다들 그렇다. 듣기 좋은 소리 해주는데 굳이 저리 가라 할건 아니니까.
“방우정도 되면 거의 경지에 오 른 거지. 역시 니가 제격이다. 대 호에서 명함 하나 멋진 걸로 하 나파 줄 거야.”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걸로 뭘 하냐는 질문이 나올 법도 한데, 또 질문이 없다.
궁금한 걸 참는 눈치가 아니다. 정말 알 필요가 없다는 태도다.
혀만 나불거리는 아부는 하수 중에 하주다. 이렇게 당연하다는 자세.
이 진심에서 우러난 자세가 나 와야 제대로 된 아부, 아니 이쯤 되면 이미 아부가 아니라 공경이 된다.
타인이 자신을 공경하는데, 기 분 나빠 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래, 빵우 너한테 큰일 맡기 는 거다. 잘해 봐. 자세한 설명은 가서 듣고.”
“예, 사장님. 실망시키지 않겠습 니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칭찬을 들은 방우가 괜히 유성 을 한번 쳐다봤다.
“저, 사장님. 사장님께서 저에게 승주의 교육과 전당포 운영을 일 임해 주셨지 않습니까?”
“왜? 뭐 하려고?”
“제가 가만 생각을 해 보니, 제 가 전당포를 관리하면서 승주의 교육까지 담당하는 건 아무래도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 었습니다. 그래서 믿을 만한 외 부 강사를 하나 초빙할까 하는데 요.”
이게 뭐라고 이렇게 진지한지. 태식은 피식 웃고 말았다.
“훗. 그래, 누구? 누구 데려오 게?”
“사장님도 아는 얼굴일 겁니다. 그때 저랑 같이 있던 파티원 중 한 명인데, 포지션은 서포터 중 에서도 가장 하이 클래스인 미들 서포터입니다. 아이템 튜닝하는 솜씨는 저보다 훨씬 뛰어나고 요.”
“그때 봤던 파티원?”
“예, 외국인 두 명 말고 한국인 있었지 않습니까? 제 의동생으로 두고 있을 만큼 손발도 잘 맞고 믿을 수 있는 녀석입니다. 길드 에서는 부길마를 할 정도로 통솔 력과 지도력도 있는 녀석이고 요.”
태식은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 여기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그 생각이 떠올랐다.
“이놈 이거 머리 쓰네. 너, 승주 핑계로 걔한테 나 인사시키려고 그러지?”
“아,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사장님!”
유성은 펄쩍 뛰며 손사래를 쳤 다.
“정말?”
“정말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방 금 사장님께서 말하기 전까진 그 런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럼 지금은?”
“ 예?”
“방금까지 아니면 지금은?”
“아니, 저 그게, 지금은. 그런 의도는 아닌데요. 사혁이를 불러 오게 되면 어찌 되었든 사장님께 인사는 시켜야 하지 않나요? 사 장님께서 귀찮다고 하시면 다 없 던 일로 하겠습니다.”
유성은 땀을 뻘뻘 흘려 가며 변 명 아닌 변명을 하려 애썼다.
간만에 방우가 깨소금 먹는 표 정이다.
“사장님, 정말 아닙니다. 저, 잔 머리 굴리지 않았습니다. 저 그 런 놈 아닙니다. 믿어 주십시 오!”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다. 방우 랑 같이 있으면 유독 더 그러는 것 같다.
“야 야, 오버하지 마.”
태식은 키득키득 웃으며 유성을 일으켰다.
“믿어 주시는 거죠?”
“나 사람 안 믿는다〜”
“사장님!”
“담배 다 피웠으면 내려가자. 둘 다 할 일 많아.”
태식은 배를 두드리며 소파에 앉았다.
손님은 드문드문이고 할 일도 딱히 없다.
방우는 언더마켓의 아이템 리스 트를 정리하는 중이다. 딱히 할 일 없을 때 하는 일이다.
유성은 이곳저곳 전화 몇 통 돌 리고 나서는 역시나 할 일이 없 는지 진열장에 놓여 있는 아이템 들을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를 반복한다.
딸깍거리는 클릭 소리와 덜그럭 거리는 소리는 태식의 귀에 일상 처럼 녹아든 소리다.
그 잔잔함 속에 이따금 불협화 음이 섞여 든다.
가마솥 뚜껑 쓰러지는 소리라든 가, 시장 바닥의 부산함이라든가, 성격 급한 사람의 클랙슨 울리는 소리라든가.
아무래도 좋다. 머릿속이 고요 하면 이 정도 불협화음은 불편하 지 않다.
구르르릉—.
“응? 너네 느꼈냐?”
“뭐 말씀입니까?”
“진동 살짝 왔잖아, 방금.”
“진동요? 깡패야. 너 느꼈냐?”
“잘 모르겠습니다, 사장님. 저 컴퓨터에 집중하느라 못 느꼈습 니다.”
“큰 지진 같은 거면 저희도 느 꼈을 텐데, 별것 아니지 않겠습 니까.”
“맞습니다. 몬스터 같은 게 출 몰했으면 재난 알림이 올 텐데 그런 것도 없습니다. 사이렌 소 리도 없고요. 아, 1층 청소 중인 소리 아니겠습니까?”
“벌써 왔어?”
“예, 아까 통화할 때 오면 그냥 바로 작업 시작하라고 했습니 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가까이서 투 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린가 보네.”
“내려가서 좀 조용히 작업하라 고 할까요?”
“됐다. 철거 작업하는데 어떻게 조용히 작업해. 뭔가 싶어서 물 어본 거다.”
태식은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 다.
“오늘 수고했다. 대충 정리하고 퇴근해라.”
태식은 보람차게 하루를 마감하 고 집으로 돌아갔다.
고소한 삼치구이 냄새가 먼저 마중을 나온다.
“엄마, 오늘은 삼치구이?”
“생선도 가끔 먹어야지.”
“좋지, 좋지. 오이소박이도 같이 했지?”
“그거 없으면 니가 생선을 먹 니.”
태식은 냉큼 의자에 앉았다.
미주의 시선은 TV에 고정되어 있다.
“저 봐. 저 봐. 어떻게 서울 한 복판에서 저런 사고가 나니 그 래.”
영웅들 (1)
“무슨 사곤데?”
태식의 눈도 자연스레 미주의 시선을 따라갔다.
TV는 건물이 붕괴된 현장을 비 추고 있었다.
“공사 중인 건물이 그대로 무너 졌데 글쎄. 도로에 지나고 있는 차를 그냥 덮친 거 있지. 저 봐 봐. 저저-.”
자료 화면으로 CCTV 화면이 나온다.
철거 중인 5층짜리 건물이 차선 으로 쓰러지면서 도로를 덮치는 화면이었다.
어디 도로 뿐이겠나, 인접해 있 는 인도 또한 말할 것도 없다.
옆 건물까지 잔해가 쏟아져 들 어갔으니 피해 규모가 상당할 것 같다.
“어후. 저게 뭐야? 한국에서 난 일이야?”
“누가 아니라니. 오늘 을지로에 서 일어난 일이래. 무슨 쌍팔년 도도 아니고, 공사를 하는데 안 전장치를 저렇게 허술하게 해 놓 고 한다니.”
태식은 아차 싶었다.
“저거 사고가 몇 시쯤에 난 거 야?”
“오후 4시쯤인가? 그쯤이라는 데?”
“아…… 탄식한다. 그때면 아마 맞지 싶 을지로면 가게에서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깝다. 저만한 건물이 저렇게 와르르 쏟아졌다면 느낄 수 있을 만한 진동이다.
“저 봐 봐, 저. 이왕 도와줄 거 일찍 도와주면 좀 좋아, 그래.”
미주는 허벅지를 때리며 탄식했 다.
CCTV 화면은 특형 능력자들이 콘크리트 더미를 치우기 위해 안 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뭣들 하는 거야, 저게. 얼른 들 어서 치우지 않고. 아들, 저 사람 들은 왜 저기서 저렇게 우왕좌왕 하고 있는 거라니?”
“구조 훈련을 받은 적이 없을 거야. 완력형 능력자도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밑에 사람이 깔 려 있는데 마구잡이로 부술 수도 없는 일이잖아.”
태식의 이마에 골이 파인다.
강원도 화재 사건 때와 다름이 없다.
능력이 있어도 제대로 쓸 줄 모 르면 그게 무슨 소용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