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dsome Since Birth, Road to Stardom RAW novel - Chapter (195)
195
나는 눈을 깜박였다.
‘확실히 안 해본 역이긴 하다.’
나는 내가 맡았던 역을 꼽아봤다.
‘희생당하는 역이랑, 피해자, 납치당하는 아이, 사랑받는 아들…….’
대체로 이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악역을 한 번도 안 해봤다는 얘기지.’
아무도 나에게 악역을 원하지 않았다.
씩 웃음이 나왔다. 와, 선우영재 PD님. 대단하시네.
‘이렇게 특이한 역을 가져오시다니 말이야.’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떨리는 심장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진짜 야심가죠?”
“으하하. 야심가 맞아요. 우리 공자가 의심이 많네요.”
“여자아이 역할을 한 뒤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걷기로 했거든요.”
선우영재 PD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나중에 들었습니다. 그거 소년 역인 줄 알았다면서요.”
“네.”
“큽. 저런. 고생했군요. 그런데 잘 어울렸습니다. 얼마나 새침해 보이는지, 제가 여주인공 아역으로 두 번이나 부탁했으니까요.”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다시는 안 해요.”
선우영재 PD는 나를 찬찬히 봤다.
“공자가 큰 만큼, 제가 늙는 거 같습니다.”
음,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지. 속셈이 무엇입니까, 고객님.
선우영재 PD는 아련하게 천장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가면, 지위도 달라지는 법이죠.”
“무슨 일 있으셨어요?”
“PD들 사이에서 물밑싸움이 거세져서요. 추잡한 짓이 많이 일어난답니다.”
뭐,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죠. 그런데 중요한 건 말입니다.
‘그래서, 이기나요?’
내가 알기로는 선우영재 PD가 이기긴 했다. 그래서 무난하게 HGS 드라마 국장까지 갔었다.
‘그런데 그건 선우영재 PD님이 잘해서라기보다는…….’
할 사람이 없었다.
‘다른 드라마 PD들이 다 망했지.’
그나마 성과 있던 사람이 선우영재 PD였다. 그래서 빈자리 싹쓸이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초반에 그래서 자리 잡기 힘들었다고 들었어.’
뭐, 워낙 조연만 하던 나랑은 상관없는 얘기라서 어깨너머로만 듣던 얘기였다. 그래서일까. 지금 상황이 좀 궁금했다.
‘음, 그래도 대놓고 묻긴 좀 그런가.’
아직은 천사 같은 마공자라서, 캐묻기는 좀 그랬다.
그때, 선우영재 PD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PD님?”
“부탁입니다. 공자야.”
“어, 어떤 걸요?”
“나는 원래 국장까지 넘볼 재목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우리 공자랑 함께한 인연으로 이제득 PD를 이겨 버리는 바람에 말이에요. 그 승리를 맛본 방송국은 그때부터 나를 주목했죠.”
아, 아니 저 없어도 그 드라마는 잘됐습니다.
“잘되면 좋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차기작이 잘된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그 증거로 저도 홀짝이었습니다.”
음, 잘됐다가 다음 작품은 별로고, 그다음은 또 잘됐다는 말이죠?
‘창작자들에게 흔히 있는 상태 아닙니까.’
솔직히 작품이 잘될지 말지는 운 아닙니까. 그거 알면 다 성공하죠.
‘물론 전 아니지만요.’
어떤 작품이 잘될지 알고 있으니까요.
‘음, 그런데 이제 이것도 아닌가.’
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미래가 많이 변했지.’
비슷하긴 했지만, 똑같지 않았다. 출현했던 작품 수만큼 변수가 늘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눈앞에 있는 선우영재 PD도 마찬가지였다.
뭐, 나쁜 건 아니었다.
‘[인연>이 시청률이 많이 나오고 아랍권에 인기 있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지.’
나라는 변수가 만들어낸 좋은 결과였다.
선우영재 PD는 내 손을 잡고 간곡하게 말했다.
“공자가 책임져야 해요.”
저, 저기요.
“공자가 제 작품을 견인했잖아요.”
“PD님, [인연>에 주연분들 다 훌륭했어요!”
“압니다. 하지만 초반 주목은 공자 때문이었어요. 솔직히 저, 섭섭했어요.”
뭐, 뭐가.
“내 작품에 출연 안 해줘서요.”
“여주인공 아역이었잖아요.”
“하지만 딱, 그것뿐이었는걸요.”
선우영재 PD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항상 온유하고 예의 바른 분이었는데…….’
왜일까. 지금 눈에 은은한 광기가 흘렀다.
‘도, 도대체 왜?’
답은 금방 나왔다.
“저는 리더가 싫어요. 그런데 제가 왜 리더죠? 단지 성과를 보인다는 이유로요?”
저, 저런.
‘이래서 사람이 살짝 가셨구나.’
선우영재 PD는 내 손을 꼭 붙잡고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공자 탓이라니까요. 그게 시청률 잘 나올 줄 알았나.”
저기요. PD님. 그때 PD님도 [서산별곡> 이기려고 최선을 다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책임져야 해요. 저와 함께 작품을 탄생시켜 봐요. 새롭고 신선합니다. 이게 아니면 다른 아이라도!”
나는 나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 집이어서 다행이다.’
단어 선택 이상합니다, PD님.
나는 일단 선우영재 PD를 달랬다.
“지, 진정하세요.”
“진정 못 합니다. 공자, 나와줘야 해. 나와 함께 찍어!”
“……PD님 이러신 분 아니잖아요.”
내 말에 선우영재 PD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리고 건전지 떨어진 장난감처럼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감독님?”
“그래요. 저는 이런 사람이 아니죠. 후우.”
선우영재 PD는 작게 중얼거렸다.
“과도한 경쟁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수험생 캠페인 문구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PD님. 일단 차라도 드세요.”
선우영재 PD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와 쿠키를 먹었다.
“아, 좀 낫군요.”
원래 달고 따듯한 것이 들어가면 화가 누그러지는 법이었다. 선우영재 PD는 계속 차를 홀짝였다.
“이거 무슨 차인가요?”
덕수 씨가 쿠키를 더 내오며 말했다.
“페퍼민트입니다.”
“그런데 박하 향이 나네요.”
“민트니까요.”
“아!”
무슨 반응이 이렇지.
나는 선우영재 PD가 안정되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PD님은 예전으로 돌아오셨다.
“부끄럽군요. 이성을 잃었어요.”
네, 그래 보이십니다.
“힘드셨나 봐요.”
“요즘 좀…… 그렇습니다. 공자 앞이라서 자세한 이야기는 안 꺼내지만요. 그거 꺼내면…….”
선우영재 PD가 중얼거렸다.
“더러워서 공자가 업계를 뜨면 안 되니까요.”
아니, 어느 정도길래.
“그런 걸 얘기할 정도로 양심이 없지는 않습니다.”
실컷 얘기하셨는데요.
‘혼란스러우신가 보다.’
그렇다 치자.
나는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PD님. 저 역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아, 이런. 제가 한탄하느라 본론으로 안 갔군요. 아까 말했다시피 모티브는 연잉군입니다. 영조죠. 영조는 오래 산 왕입니다. 무수리인 숙빈 최씨에게서 태어난 왕자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 인현왕후랑 장희빈, 그리고 숙빈 최씨가 헨리 8세보다 재미있다니까.’
아마 그러니까 그때의 이야기가 수없이 만들어진 거겠지.
“진짜 역사 인물은 아닙니다. 그런데 호기심이 생기지 않습니까. 무수리에게서 난 아이가, 왕이 되는 거요. 무슨 일이 있었을 거 같습니까?”
나는 씩 웃었다.
“착하진 않았을 거 같아요. 착한 척은 할 거 같지만요.”
선우영재 PD는 따듯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공자는 역시, 캐릭터도 잘 보내요.”
“헤헤. 저 대본 읽는 거 좋아해요.”
“압니다. 아직 세상은 공자의 외모만 주목하지만, 예전부터 알았습니다. 작품을 보면 압니다. 공자는 연기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열심히 하는 게 즐거울 뿐이에요. 천재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아요.”
“항상 겸손하죠. 보는 어른들이 부끄러워질 정도로요.”
음, 사실인데.
‘역시 너무 좋게 본다니까.’
어렸을 때부터 날 본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했다. 덧붙여 이 선입관이 세서 솔직히 고생이었다.
‘내가 담배를 피워도 이럴까.’
물론 성인이 된 후에 말이다.
‘그런데 착하지 않은 캐릭터라니…….’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악역인가요?”
“남자 주인공 아역입니다. 단지 선량하지 않을 뿐입니다.”
아, 설마.
“야망이 넘치나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야사처럼, 왕인 형을 죽일 정도로요?”
선우영재 PD는 활짝 미소 지었다. 내가 아는 게 굉장히 기뻐 보였다.
“역시 공자군요.”
“드라마로 많이 나온 시대니까요.”
“그렇습니다. 공자가 맡을 역할은 야심이 많은 남주인공의 아역입니다. 이리저리 신하를 재고 따지면서, 권력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갑니다.”
척 봐도 여주인공에게 차이겠다 싶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해피엔딩인가요?”
“절반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조라면 저게 당연하긴 했다.
‘사도세자의 아버지니까.’
아무나 자식을 죽일 수 있는 건 아니지. 대부분의 조선의 왕들은 자식을 사랑했다.
‘아닌 경우가 몇 있는데, 그중에 대표가 영조지.’
아무튼, 이 역이 좀 신기했다.
“성인 역은 정해졌나요?”
“아직이요. 이 역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역이지만, 거침없이 나아가거든요. 독살도 합니다.”
“실제 인물이면 큰일 나겠네요.”
“네. 그렇죠. 사실 퓨전 사극은 중심 잡기가 힘듭니다. 허구의 세계이기 때문에 까딱 잘못하다가는 붕 뜰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공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나는 대본을 쓸어보았다.
‘이거, 좋은데?’
나는 여태 착한 역만 맡았었다. 물론 그중에는 마냥 선량하지 않은 역도 간혹 있었지만, 대체로 모두 착한 역이었다.
‘이건 그 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아역의 고착화를 없앨 기회였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요, PD님!”
선우영재 PD라면, 아마 설득도 쉬울 것이다.
“그렇습니까? 매우 기쁩니다만…….”
선우영재 PD는 내 손을 꽉 잡았다.
“꼬옥, 꼬옥, 꼬오오오옥 이어야 합니다.”
꼭 아니면 큰일 나겠군요.
“공자가 저를 살릴 수 있습니다. 으하하하하. 경쟁 사회 다 엿이나 먹었으면 좋겠군요.”
스트레스가 크시군요.
‘그런데 전생에 이런 작품이 있었던가?’
선우영재 PD의 작품은 대강 아는데, 이런 주인공이 베이스 된 건 없었다.
선우영재 PD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공자 아니면 절대 시작도 안 할 작품입니다. 대본을 보는 순간, 이건 공자구나 싶었어요. 왜냐하면 이 작품이 당위성을 얻으려면 말이죠…….”
선우영재 PD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 무엇인데 이러시나요. 그냥 평범하게 연기력인가요?’
선우영재 PD는 나를 아래위로 훑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공자도 잘 알 거라 생각합니다.”
“몰라요. PD님.”
“어, 정말 모릅니까? 의외군요. 하긴 공자는 자각이 별로 없어 보이긴 했습니다.”
아니, 뭔데 이래.
선우영재 PD님은 진지하게 말했다.
“공자의 외모가 필요합니다.”
엥?
“공자의 외모만이 이 작품의 개연성을 충족시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