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dsome Since Birth, Road to Stardom RAW novel - Chapter (223)
223
마당에는 하얀 털이 떠다녔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털 뭉치를 잡았다. 확실히 사모예드라서 그런가. 털이 장난 아니었다.
‘아니 그런데 왜 앙드레 빗질을 여기에서 하는 거지?’
나는 마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섬세한 이목구비를 가진 미남이 환하게 웃었다.
얼굴이 저래서 그런가. 솔직히 저 황당한 모습이 박물관에 있는 그림 같긴 했다.
나는 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저기요…….”
“안녕. 마공자. 좋은 오후야.”
마신은 상큼하게 웃었다. 이온 음료 CF를 찍어도 좋을 만큼 청량한 미소였다.
“왜 여기 계세요?”
“음, 이 집이 내 집이니까?”
순간 할 말이 없었다.
‘그, 그렇긴 하지.’
여기는 마신 녀석의 집이었다.
‘생각해 보니까, 내가 여기서 더부살이에 가깝겠구나.’
뭐, 구박받지는 않지만.
마신은 앙드레 빗질을 계속했다. 오후의 햇살을 받은 성진 그룹의 후계자는 굉장히 상큼해 보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후계자, 바쁘지 않나?’
이렇게 한가하게 개를 빗질하고 계셔도 됩니까?
“한가해 보이시네요.”
내 눈빛을 읽은 마신이 말했다.
“나는 천재니까.”
뭐, 뭐라는 거지.
“천재는 뭐든지 쉽게 해치우지. 내가 한가한 이유는, 뭐든 빠르게 익히기 때문이야.”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평범한 잘난 척이었군요.
“물론 할머니가 준 과제들은 좀 힘든 거긴 해. 그래서 나는 그동안 일부러 늦게 끝냈어.”
이건 또 무슨 말이지?
“빨리 끝내면 다른 과제를 받을 뿐이었거든.”
아하.
‘더 할 수 있어도 안 했다는 거구나.’
마신은 계속 빗질을 하면서 말했다.
“마공자는 내 이런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잘했어요.”
뭐, 할머니 성격이면 진짜 엄청나게 많은 걸 하라고 했겠지. 게다가 굉장히 꼼꼼했을 것이다.
‘마신처럼 하는 게 정답이긴 하지.’
마신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피식 웃었다.
“진짜?”
“네. 고생하셨겠네요.”
마신은 빗질을 멈추고 앙드레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재미있네. 요령 부려서 야비하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아니, 뭐 그걸 야비까지 갑니까.
“요령 부리는 게 어때서요.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마신 녀석은 이번에는 소리 내 웃었다.
“성실하다고 평가받는 마공자가 이런 말을 할 줄이야.”
“제가 성실하긴 한데요.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도 생각하거든요.”
이왕이면 효율적인 게 좋지 않을까.
‘머리가 좋아서 능률 높으면 그게 최고지 뭐.’
내 말에 마신 녀석이 다시 웃었다.
“아무튼, 그래서 한가해. 앙드레 털 빗을 정도로.”
뭐, 여유가 있는 건 좋은 거였다. 억만금을 줘도 시간은 살 수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앙드레는 나를 보자 꼬리를 흔들었다. 마신은 빗질을 그만두고 개에게 말했다.
“자, 앙드레. 하고 싶은 걸 해.”
마신이 앙드레 엉덩이를 두 번 치니, 앙드레는 힘차게 나에게 달려왔다.
“어?”
하얀 털 뭉치가 나를 덮쳤다. 앙드레는 정신없이 내 얼굴을 핥았다.
‘이 녀석, 또 이러네.’
그때는 코인 효과로 그런 줄 알았는데…….
나는 앙드레를 바라보았다. 까만 눈동자가 무지하게 귀여웠다.
나는 웃으면서 앙드레를 쓰다듬었다. 폭신폭신한 털을 가진 사모예드는 나를 계속 핥아댔다.
“앙드레, 잘 있었어?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다.”
앙드레는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었다. 나는 푹신한 강아지를 꽉 안았다. 귀여운 건 왜 이렇게 좋은 걸까. 순간 머릿속에 엔도르핀이 팡팡 도는 느낌이었다. 정말 너무 행복했다.
마신은 그런 나를 보며 말했다.
“앙드레가 너 보고 싶어 했어.”
“진짜요? 앙드레. 너 나 보고 싶었니?”
개는 당연히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냥 내 얼굴을 핥으려고 할 뿐이었다.
마신은 조금 웃었다.
“어, 사실 농담이야.”
저기요.
“앙드레는 말을 할 수 없잖아. 그래도 널 보면 좋아할 거라는 건 알았어. 그때도 봤지만, 여전히 신기하네. 앙드레 나 외에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야.”
진짜일까?
나는 앙드레의 푹신한 털에 얼굴을 묻었다가 뗐다.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는데?’
마신은 내 옆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아하, 알 거 같다.”
뭐가?
“귀여워서 그런가 보다. 앙드레, 예쁜 거 좋아하는구나.”
그, 그런가.
‘개도 귀여운 얼굴을 좋아하나?’
고개를 갸웃거리자, 마신은 또 자기 혼자 웃었다.
“그것도 농담이야.”
저기요.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마신은 킥킥거리며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 나는 인간이라서 앙드레 심리까지는 몰라. 그런데 앙드레가 널 좋아하는 건 맞아. 저렇게 꼬리를 흔들잖아.”
그건 저도 알겠습니다.
나는 한숨을 내뱉었다.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저기요, 마신 형. 형은 천재죠? 뭐든 잘하죠?”
“그렇지?”
“그런데 저는 방금 형이 못하는 거 발견했어요.”
“뭐? 그, 그게 뭔데?”
마신이 눈을 깜박였다. 진짜 모르는 모양이었다.
“개그요. 형은 어디 가서 농담하지 마세요. 진짜 재미없어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신은 한참을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다가, 갑자기 입을 가리고 웃었다.
“풋! 푸하하하하하!”
아니, 왜 웃는 거지?
“나한테 뭘 못 한다고 한 애는 네가 처음이야.”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 형 또 시작이네.’
재벌 3세 나오는 일일 드라마 같습니다그려. 이 형은 왜 시도 때도 없이 네가 처음이라고 하는 거지.
마신은 한참을 웃다가 눈물을 닦았다.
“아, 진짜. 웃겨라.”
저는 어떤 게 재미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너 있어서 나왔어. 창밖에 네 모습이 보이더라.”
“그렇군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가지 마. 나랑 얘기해.”
아니, 왜요.
내 표정을 읽은 마신은 앙드레에게 말했다.
“앙드레, 마공자를 덮쳐!”
저기요!
하얀 개는 바로 앉아 있던 내 위로 뛰어올랐다. 그러더니 풍성한 털로 나를 바닥에 눌렀다.
“형, 아니, 앙드레. 진정해. 귀 핥지 마.”
“음. 덮치라고 했는데, 앙드레가 너무 좋아하네. 진짜 마공자를 좋아하나. 마공자에게는 개가 좋아하는 페로몬이 나오나?”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나는 사모예드에 깔려서 허우적거렸다. 앙드레 녀석은 주인 말을 아주 잘 따랐다. 녀석은 계속 내 몸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하얀 깃발 대신, 하얀 사모예드 털을 흔들었다.
“항복이요.”
“좋아. 항복을 받아들이겠어. 앙드레, 그만해.”
앙드레는 슬그머니 내 위에서 내려왔다. 나는 숨을 헉헉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온몸을 개털로 샤워한 기분이었다.
마적 녀석은 그런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음, 털이 덕지덕지 붙었네?”
“형이 그렇게 만들었잖아요.”
“가려고 해서 그렇지. 이건 다 네 탓이야.”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뭐랄까. 천재라던데, 굉장히 모자라 보였다.
“앙드레로 협박했잖아요.”
“그냥 덮치라고 했을 뿐인데?”
“그게 그거라고 생각합니다.”
“음, 그런가? 그렇다고 치지 뭐.”
기운이 쭉 빠지는 대화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요. 해봅시다. 대화. 용건이 뭐예요.”
“음, 용건이라. 딱히 없어.”
진짜 이 사람, 좀 모자란 거 아닐까?
“그냥 너랑 대화하면 안 돼? 잡담하면 되잖아.”
“그 잡담을 왜 당신과…….”
“앙드레!”
“해요. 해! 잡담!”
마신은 생글생글 웃으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턱을 괴고 한숨을 내쉬었다. 앙드레는 그런 우리 둘 옆에 앉았다.
나는 그런 앙드레를 바라보았다.
‘마신의 명령만 듣는 개인데, 어쩔 수 없다.’
귀여워.
나는 앙드레의 털을 쓱쓱 긁어줬다. 그게 또 좋은지, 앙드레는 꼬리를 흔들었다.
“잡담은, 역시 근황이지. 요즘 어때?”
저기요. 뜬금없는데요.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요?”
“요즘 사극 촬영하는 건 알아. 퓨전 사극이라며? 어제 의상은 포니테일에 크림색 후드티였고.”
그랬나.
‘어제 입었던 옷 같은 건 잘 생각 안 나는데…….’
워낙 입혀주는 대로 입어서 말이다.
“촬영은 어때?”
굉장히 오랜만에 만난 삼촌 같은 대화였다. 나는 순순히 대답했다.
“할 만해요. 이번 역 재미있으니까요.”
“야망 있는 서자라며.”
“네, 여태 해보지 않았던 역이라서요. 게다가 연기자로서, 깨닫는 것도 많아요.”
항상 담백하게 연기해 왔는데, 그게 능사가 아니란 걸 알았다.
‘연기는 알면 알수록 깊다니까.’
나는 얼마나 나아갈 수 있을까. 또 어떤 것이 기다릴까.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세상에 수많은 역이 있다는 게 괜히 행복했다.
“행복해 보이네.”
“행복합니다.”
“흐음. 그래. 뭐 문제는 없고?”
정말 오랜만에 만난 고모 같은 대화였다.
‘문제라…….’
딱 하나 있긴 했다.
나는 마신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면 이 녀석도 많이 겪었을 거 같긴 했다.
“마신 형. 형도 누가 물건 가져가요?”
마신이 눈을 깜박였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네, 역시 마공자야. 재미있어.”
무슨 말이 저렇지.
“음, 누가 가져가긴 했어.”
“진짜요?”
“어머니 유품인 만년필을 마적이가 가져갔었어. 그래서 나무에 매달았던 거 같다.”
비슷한 얘기를 마적이에게 듣긴 했다.
“순순히 잘못했다고 해서 풀어줬어.”
“그, 그렇군요. 그건 마적이가 잘못한 거 맞으니까요.”
처벌이 좀, 아니 많이 격하지만 말이야.
“얌전히 돌려줘서 그쯤 한 거야.”
나는 내 방에서 뒹굴뒹굴할 마적이를 떠올렸다.
‘마적아, 너 죽을 뻔한 거 같다.’
네 사과가 목숨 줄을 이었어. 이래서 사람은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나 봐.
“뭐, 나에게 중요한 건 만년필밖에 없어서. 자잘한 걸 가져가는 사람도 또 있긴 했지.”
“누구냐고 물어봐도 돼요?”
“응. 너도 아는 사람일 거야. 마적이 엄마.”
아.
‘이 사람, 물건을 함부로 가져갔었구나.’
왜지. 그 사람도 충분히 좋은 물건을 쓸 텐데.
“특정인의 물건을 훔친다는 건, 그 사람이 부럽기 때문이야.”
그, 그런가.
‘곽동운아. 너 나를 부러워하니?’
좀 그렇지 않니? 12살짜리를 부러워해서 물건을 가져간다는 게?
“누가 물건 훔쳐 가? 학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친구들은 착해요.”
“그럼 촬영장?”
“네. 동료 배우가 자꾸 자잘한 물건을 빌려 가고 돌려주지 않아요.”
“절도네.”
“그렇다고 고소하는 건 제 손해라서요.”
마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공자 물건을 훔치는 배우로 유명해질 수도 있겠구나. 부정적이라도, 이슈는 확실히 되니까.”
“네.”
나는 다리를 쭉 폈다. 앙드레는 그런 내 다리 위에 얼굴을 올렸다.
“그냥 빌리기만 해? 훔치려고는 안 해?”
“훔치려고도 하는 거 같아요. 선생님이 블랙박스에서 밴에서 기웃거리는 걸 봤대요.”
“아하, 그러면 간단하네.”
아니, 뭐가?
“그럼 비싼 것을 훔쳐 가게 만들어. 그리고 망신을 줘. 촬영진이 구경하게 하는 게 좋겠다. 고소는 하지 말고.”
와.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