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dsome Since Birth, Road to Stardom RAW novel - Chapter (280)
280
어쩌면 그냥 고용 관계일 수도 있었다. 안산댁은 솔직히 남이었다.
‘하지만 우리 20년 함께 있었다고요.’
나는 안산댁과 덕수 씨의 음식을 먹고 자랐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남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또 마리 누나에게도 이분은 가족이었다.
“공자야…….”
“이모가 얼마나 살뜰히 돌봐줬는지, 제가 더 잘 알아요.”
그냥 돈 받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 어깨가 축축이 젖었다. 나는 계속 엉거주춤 선 채, 근육을 최대한 조절해서 안산댁 등을 토닥였다.
“그러니까, 제발 살 곳은 우리가 마련하게 해주세요.”
“그러지 않아도 된다니까. 이모, 그렇게 양심 없지 않아.”
“거절하지 마세요. 자주 놀러 갈 거예요. 제가 이번에 집 나가 보고 알았잖아요. 있을 곳이 별로 없더라고요.”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 같다 싶긴 하지만.
“아시죠? 저 진짜, 이모라고 생각하는 거요.”
“귀한 애가, 이런 나를 친지라고 여기면 어떡하니”
안산댁은 내 어깨를 토닥였다.
“이모. 제가 조금 유명하긴 하지만, 이모 같은 분들 때문에 제가 가끔 귀한 아이가 되는 거예요.”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저는 진짜 이모가 이모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편하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이왕이면 은퇴도 늦게 해주시면 좋겠고요.”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정든 사람들이 떠나는 건 그만큼 힘들긴 했다.
‘변화란 자연스럽지만, 왜일까.’
가끔은 이렇게 잡고 싶었다.
안산댁이 울면서 속삭였다.
“내가 진짜 박복했는데, 어쩌다 말년이 이렇지?”
나는 계속 힘 빼고 토닥였다. 안산댁이 그렇게 한창 있을 때였다. 헛기침이 들렸다.
‘어?’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가, 조금 놀랐다.
‘음, 한 3년 만인가?’
좀 의외이긴 했다. 얼굴은 이 주 전에 뵈었지만, 별채에 오신 건 정말 오래됐었다.
나는 방긋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할머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안산댁이 할머니를 발견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왜일까. 할머니께서는 굉장히 기분이 안 좋아 보이셨다.
* * *
안산댁이 다기를 가져다줬다. 나는 능숙하게 할머니께 차를 올렸다.
‘그러고 보면, 이거 할머니께 배웠지.’
가끔 해서인지 이제 제법 능숙했다.
‘물론, 힘 조절을 잘해야 하지만…….’
나는 할머니께 솔직하게 말했다.
“조심하고 있지만, 다기가 부서질지도 몰라요.”
“아직도 힘을 주체를 못 하는 거냐?”
구겨진 미간이 펴실 생각을 안 했다. 정말 기분이 안 좋은 거 같았다.
“네.”
“하여간 미덥지 못한 건 여전하구나.”
나는 찻잔을 드리며 싱긋 웃었다.
“노력하고 있어요.”
“이래서 혈통을 봐야 하는데…….”
정말 한결같은 분이네. 그래도 한 삼 년 전부터 저 히틀러 발언은 좀 줄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기분이 진짜 안 좋으시네.’
하긴, 후계 과정으로 복잡한 거 같았다.
“들었다. 습격당했다며?”
“네.”
“그래.”
할머니는 내가 드린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숨이 고른 거 보니까, 향이 마음에 드시는 거 같았다.
“약 기운은 아직 덜 빠졌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빨리 마시렴.”
“네. 그럴게요.”
나는 할머니를 보며 방긋 웃었다.
“저 괜찮아요.”
“그래.”
“걱정하셨죠? 죄송합니다.”
“아니. 내가 널 왜 걱정하지?”
여전하시네. 정말 단단한 철옹성이었다.
“얌전히 있어라.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너는 수정이의 짐이야.”
이런, 미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닌데. 괜히 짐짝이 되어서 사사건건 발목을 잡다니…….”
할머니는 내가 영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참 이분도 영원히 평행선이네.’
물론 이런 말을 하면서도, 내 정수리 냄새를 맡는 건 잊지 않으셨다. 할머님은 나와 있을 때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할머니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봤다.
“도움이 된다 싶어도, 결국 이렇다니까. 쓸데없이 정만 많아서 고용인한테 퍼준다니까.”
나는 방긋 웃었다.
“들으셨어요?”
“어쩌다 보니 다 들었다.”
“이모잖아요. 이모 음식 먹고 건강하게 자랐는걸요.”
“돈 주면 다 그 정도는 일하는 법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다 수정이가 돈을 줘서지.”
“돈으로 한결같은 정성은 살 수 없어요.”
뭐 돈을 정말 많이 주면, 최상급의 서비스는 받을 수 있겠지. 그런데 사람이 그게 다는 아니잖아.
“쓸데없는 짓을 하는구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모인데요.”
“누가 들으면 진짜 이모인 줄 알겠구나. 하여간 수정이가 함부로 데려와서 그런지 정이 헤퍼.”
나는 이마를 짚었다.
“그렇다고 칠게요.”
“뭐?”
“할머님, 저 광고 많이 찍어요. 어쩌다 보니, 대한민국에서 제일 비싼 존재가 됐어요.”
꾸준히 쌓아온 이미지가 강력했다.
“그래서?”
“그러니까, 제가 모든 게 넘쳐흘러서 그러는가 보죠, 뭐.”
“연예인 해봤자 몇 억 정도밖에 안 될 텐데?”
이 사람들이 진짜. 아무리 돈이 돈을 부른다 쳐도, 억이 흔한 줄 아네.
이쯤 되면 신기했다.
“할머님은 진짜 안 변하시네요.”
엄마랑 사이 안 좋은 이유가 있다니까.
“이 나이에 변하면 죽는다.”
“정정하신 건 좋지만요.”
할머니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별말 안 했다. 예전 같으면 ‘정정하질 않길 바라는가 보구나.’라고 말씀하셨을 텐데.
“너는 정이 헤퍼.”
“네, 네.”
“알 수 없단 말이야.”
나는 뒤에 이어질 할머니의 비관적인 평가를 기대했다. 하지만 의외로 뒤의 말이 없었다.
짧은 침묵이 내려왔다. 할머니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말했다.
“이상하게 수정이를 닮았어.”
어라?
‘20년 만에 듣는 신선한 말이다.’
할머니는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가끔은 마리보다 더 닮아 보여.”
엥? 그건 아니죠.
“마리 누나는, 엄마 젊었을 적이랑 똑같은데요.”
“그런데 너를 보면, 수정이의 표정이 보여.”
순간 조금 웃음이 나왔다.
“그건 당연하죠.”
“왜지?”
“엄마와 저는 서로 사랑하니까요. 사랑하면 서로 닮잖아요.”
정말 별거 아닌 말이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라?’
뭔가 반응이 예전이랑 달랐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할머니께서 말했다.
“쓸데없는 말을 하는구나.”
거칠었지만, 좀 이상했다.
‘나 이 말, 한두 번 한 거 아닐 텐데?’
분명히 예전에도 이 말을 했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자세가 예전 같지 않았다.
할머님은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찻잔은 벌써 바닥을 보였다. 나는 말없이 다음 잔을 준비했다.
“신이 형에게 들었어요. 상황이 복잡하다고요.”
“그렇게 됐더구나.”
음, 사생아랑 마적이 어머님이 날뛰고 있다니.
나는 우러난 차를 건넸다. 할머니는 내가 주는 차를 빤히 바라보았다.
“희한하단 말이야. 내가 마실 수 있는 차는 신이랑 너밖에 못 만들어.”
어라. 이건 몰랐네.
조금 웃음이 나왔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왜 웃지?”
“생각해 보면 당연해서요. 할머님과 오랜 시간 함께 있는 아이는, 신이 형과 저뿐이잖아요.”
순간, 할머니의 눈동자가 떨렸다.
‘어라. 이게 그렇게 충격받을 일인가?’
뭔가 오늘 반응이 굉장히 신선했다.
할머니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일단 방긋 웃었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할머님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황하셨는지, 중심을 잃으셨다.
“위험해요.”
나는 바로 부축했다. 할머님은 허리를 감싼 내 팔을 한참을 봤다.
“처음 봤을 때는 콩알 같았지. 말도 못 하고 이상한 옹알이만 했어,”
음, 제가 뿌뿌빠빠만 하긴 했습니다.
“그런 애가 이렇게 되다니…….”
할머님은 내 팔을 만지작거렸다.
“시간이 지났으니까요.”
“세상은 네 이야기를 질리게도 많이 하더구나.”
“제가 좀 유명하죠.”
“좋은 얘기만 들려. 어딜 가도 네 칭찬만 해.”
음, 제가 열심히 살긴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 모임이시라면, 높으신 분들 아닌가.
‘거기서도 칭찬만 한다고?’
좀 의외였다.
‘걸러 듣긴 해야지.’
아무래도 정부 행사를 많이 해서 평가가 좋은 거 같긴 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긴 했다.
“그렇군요.”
할머니는 나를 빤히 보면서 중얼거렸다.
“너는…….”
나는 뭐요?
나는 다음 말을 기다리며 부드럽게 웃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뒷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건넨 지팡이를 짚고 걸어갈 뿐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 반응이 이상하네.’
후계 때문에 색다른 경험을 많이 하셨나.
나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문득, 뒷모습이 많이 여위신 거 같았다.
아까 안산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자란 만큼, 세월이 갔다고 하셨나?’
항상 쌩쌩하셔서 몰랐지만, 지금은 알 거 같았다.
‘나이가 많이 드셨네.’
게다가 몇 년간 외도와 사생아 문제로 골머리를 앓으셨을 것이다.
‘스트레스 심하셨겠지.’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나는 팔짱을 끼고, 주인 잃은 차를 바라보았다. 손을 대보니 아직 따듯했다.
‘복잡한 분이시라니까.’
나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털어냈다.
‘성진 그룹과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래도 사랑하는 어머니께서 성진 그룹의 셋째딸, 마수정이어서 그런가. 이상하게 묘하게 얽히는 느낌이었다.
* * *
약이 완전히 체내에서 빠져나갈 때까지는 집에서 요양하는 게 좋았다. 나는 물을 많이 마시며 평소처럼 지냈다.
다행히 급한 스케줄은 없었다.
나는 땀을 닦으며 물을 마셨다. 숨을 고르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봐도 살벌한 스케줄이라니까.”
나는 방긋 웃었다.
“스케줄 없고, 집에서 운동한 건데요. 이거 일상이잖아요.”
“그 운동량이 질린다는 거다, 공자야. 뭐 마라톤이라도 나갈 거니? 무섭게 뛰던데?”
“오늘 그냥 달리고 싶었어요. 집에만 있으니까요.”
서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도 그만하니 다행이다.”
나는 방긋 웃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도 너무한 거 아니냐. 아니, 도대체 험한 일은 왜 다 너에게 몰려오는 거 같냐.”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번에는 불법체류자 습격이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호신술 배워놓기 잘한 거 같아요.”
“인간은 배움이 끝이 없어야 한다니까. 뭐든 다 도움이 된다니까.”
“네.”
“그나마 힘이 강해서 다행이다.”
나는 한 손을 쫙 폈다가, 다시 주먹을 쥐었다.
“그건 그렇지만, 조절이 돼야죠.”
근력 생각만 하면 진짜 눈물이 나올 거 같았다.
“이거 때문에 연기가 힘들잖아요.”
“액션만 피하면 되잖니.”
“저는 액션 연기가 꿈이라고요. 삼촌.”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코인이 나에게 뒤통수를 친 거지만.’
매번 말하지만, 자막님아. 너무하잖아.
서 사장은 다른 수건을 건네줬다. 나는 다시 땀을 닦았다. 그러고 보면 좀 이상했다.
“오늘 무슨 일로 오셨어요? 전화로 하셔도 되는데요.”
“그럴 수 없지. 우리 탑 라인의 보배에게는 내가 직접 가야지. 공자야. 고백 하나 하자.”
서 사장은 내 손을 꽉 잡았다.
“너 못 준다. 아무에게도 양보하지 않을 거야.”
음? 무슨 말이지?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나는 너를 놓지 않아. 나 질긴 놈이다?”
저기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