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dsome Since Birth, Road to Stardom RAW novel - Chapter (284)
284
이번 쇼에 런웨이가 꽤 길었다. 내가 나오자,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나는 익혔던 워킹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기록으로 남을 테니까, 지금 내 모습을 언젠가 이걸 알려주셨던 모델 선생님이 보시겠지.
‘스승님, 제자는 잘하고 있습니다.’
인간 승리라며 탄산수 마시며, 손가락을 치켜세우겠지.
‘가르쳐 주시느라 고생하셨지.’
감사합니다, 스승님. 언젠가 같이 제로 음료나 한잔해요. 그런데 스승님, 요즘도 쫄쫄 굶으시나요.
‘셀러리라도 싸갈까.’
가끔 생각하지만, 이 업계에 체중 조절이란 슬픔과 한의 역사를 가득 담고 있었다.
‘가끔 리얼프로에서 먹는 거 보고 착각하지 마세요.’
전생 후생 통틀어서, 이것에 관해서는 살벌합니다. 오죽하면 언제나 아름답고 멋있는 제 어머니 마수정도, 영화에서 마른 체형을 원하면 살벌하게 빼십니다.
‘인간의 본능을 억제한다는 건 쉬운 게 아니라고요.’
나는 계속 나아갔다. 수많은 사람의 서신이 느껴졌다.
이걸 부담스러워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하지만 이럴 때, 절실하게 느꼈다.
‘좋다.’
역시 나는 관심 좋아하는 거 맞는구나. 직업이 배우인 게 어쩔 수 없다니까. 뭐, 의외로 많은 사람 앞에 나서는 기회가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말이다.
‘시상식이나 시사회 말고는 별로 없긴 해.’
연극을 하면 좀 다를까. 그러고 보니 연극 무대 위에 안 선 지 꽤 됐다.
‘아동극 한 거 외에는 없지.’
음, 대학 생활하면서 한번 서볼까? 그런데 한국대는 연극 하나? 가장 기초라서 할 거 같긴 하지만.
키즈 모델들이 스쳐 지나갔다. 패션쇼가 꿈과 미래를 테마로 해서 그런가. 나도 지난날과 앞날이 자꾸 떠올랐다.
‘뭐, 무대 중간까지 무표정이 필요하기도 했으니까.’
리허설 때 그렇게 주문받았었다.
나는 천천히 나아갔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웅성거림이 들렸다.
‘어라?’
1미터 앞에서 워킹 하던 키즈 모델이 쓰러졌다. 아이는 당황했는지 움직이지 못했다.
앞에 있는 스탭들은 필사적으로 손짓했다. 아마 나오라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될 리가 없었다. 아역 모델은 당황했는지 그 자리에서 울기만 했다.
아이가 계속 가까워졌다.
‘한 7살쯤 되나?’
뭐, 요즘 아이들은 길쭉해서, 나이 가늠이 잘 안 되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아이랑 겹치는 동선에서 가볍게 아이를 들어 올렸다. 사람들이 놀라는 게 느껴졌다.
딱 이 부분부터는 내가 연기를 하는 구간이었다. 바로 조명과 음악이 바뀌었다.
나는 아이를 들고, 뭔가를 찾는 시늉을 했다.
아이는 내 품에 안긴 채 눈만 깜박였다. 동그란 뺨 위로 눈물 자국이 얼룩져 있었다.
나는 아이를 고쳐 안고 뒤를 돌아봤다. 곧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모델이 뛰어나왔다.
나는 다리를 굽힌 채 그녀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입을 살짝 벌렸다. 이 모든 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음. 원래는 꿈과 인간의 만남이지만…….’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살짝 걱정되긴 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무대를 하는데, 우는 아이를 무시한 채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테마가 꿈과 미래, 꽃과 나비인데, 아이를 버려두면 안 되지.’
완벽한 내 애드리브. 움직일 때마다 아이의 등에 달린 날개가 팔랑거렸다. 아이는 아무래도 나비인 거 같았다.
‘내 손을 잡은 모델은, 꽃이지.’
나는 환하게 웃었다. 꿈이 나비를 안은 채, 꽃의 손을 붙잡은 셈이었다.
‘뭐, 좀 이상하지만 괜찮을 거야. 이런 해석은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라서 말이야.’
나는 환하게 웃으면서 여자 모델분 손을 붙잡고 뛰어갔다. 어색하지 않게 하는 게 포인트였다.
무대 끝까지 뛰어가서, 여자 모델과 마주 보고 섰다. 그러곤 조용히 이마를 댔다.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조명이 눈부시게 내려왔다. 아이는 눈물 자국이 남은 채, 멍하니 나를 보고 있었다.
‘얌전히 있어 줘서 다행이야.’
끝까지 할 일을 해야 했다. 나는 조용히 뒤를 바라보았다. 디자이너 정리리 선생님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모든 사람이 일어나서 손뼉을 쳤다. 정리리 선생님은 웃으면서 나를 보며 윙크했다. 내 애드리브에 만족했다는 듯이.
‘다행이다.’
뜻깊은 쇼를 망치진 않은 거 같았다. 나는 아이를 살짝 고쳐 안았다. 그러자 아이는 내 목을 껴안았다. 그래서일까. 갑자기 우유 냄새가 확 다가왔다.
사람들은 그런 아이를 보고 다시 웃음이 터졌다. 나는 아이의 등을 최대한 살살 토닥였다.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졌다.
약간 이상한 기분이었다.
‘애가 참 작네.’
나도 이럴 때가 있긴 했지.
‘대중들이 그때 나를 좋아했던 이유를 알 거 같다.’
작은 귀여움을 한껏 이용하긴 했지만, 사실 이해를 못 했었다.
‘내가 페트병 맞을 때, 왜 그렇게 화낼까 싶었는데 말이야.’
이렇게 작은 애가 다쳐서 그런 거구나.
나는 아이의 등을 계속 토닥였다.
‘아이를 다치게 하는 사람은 벌 받아야지.’
아니, 이렇게 조그마한 존재에게 왜 손을 올려.
아직도 박수는 그치지 않았다.
정리리 선생님이 내 뺨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볼에다가 가볍게 뽀뽀하셨다. 받고만 있을 수 없었다. 나도 가볍게 볼에 입 맞추자, 정리리 선생님이 크게 웃으셨다.
‘그간 고생 많으셨어요. 최고의 은퇴식이 되었길.’
존경받아 마땅한 선생님.
우유 냄새와 갈채 속에서 아름다운 순간이 지나갔다. 나는 아이를 토닥이며 앞을 바라보았다.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이야.’
아이는 내 목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
‘돕는 것도 잊지 말아야지.’
이미 자선 재단 잘 운영하고 있지만 말이다.
플래시가 사방에서 번쩍였다. 일로써 온 거지만, 어째 내가 배운 거 같았다.
* * *
나는 옷을 갈아입고 갈 준비를 했다. 요란하고 무거운 의상을 입다가 편한 걸 입으니까 살 거 같았다.
매니저가 옆에서 말했다.
“옷은 멋있었지만, 무겁죠.”
덕수 씨 후임으로 온 사람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역시 패션은 잘 모르겠어요.”
“공자는 체형에 맞게 잘 입고 있어요.”
“저는 주는 대로 입는 편이에요. 솔직히 어떤 게 멋있는지 몰라서요.”
유행은 계속 휙휙 바뀌고, 나는 아직도 보는 눈이 없었다.
“솔직히 패션은 난해하긴 하죠. 힙스터와 별로인 옷의 차이는 조명인가 싶기도 하고요.”
“가끔은 자신감이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아니에요, 공자. 제가 단언하는데요.”
매니저는 갑자기 진지하게 말했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입니다.”
매니저는 내 어깨를 잡았다.
“저랑 공자랑 같은 옷을 입었다 쳐요. 지금 입고 있는 거, 편한 니트죠?”
“그, 그렇죠?”
“저는 집에서 막 입는 늘어진 옷이겠지만, 공자는… 말 그대로 패션이에요.”
매니저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봤다가 고개를 저었다.
“공자는 날씬하고 길쭉하니까 더 그래 보여요. 그래서 문제라는 거예요. 공자는 마스크만 쓰면 세상 사람들이 나를 몰라보겠다 하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데 그럴 리가 없어요, 공자. 제가 말하는데요. 공자는 멀리서도 길쭉하고 하얘서 눈에 띄거든요.”
뭐, 키가 크고 체형이 좋긴 합니다.
“아무리 마스크를 써도 눈이 보이잖아요. 공자 눈매, 속눈썹, 눈 형태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이 몇이나 돼요?”
그, 그 정도입니까?
‘하긴 어렸을 때부터 쭉 노출됐으니까…….’
그러고 보면 곰자님들은 내 실루엣만 나와도 찰떡같이 알아맞히셨다.
“곰자 카페에 공자 그림자 맞추기 놀이도 하잖아요.”
“아, 그렇죠.”
나는 뺨을 살짝 긁었다.
“매니저 형. 의외로 마스크 쓰면 말 안 걸던데요.”
물론 들킨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다들 그냥 지나치는 편이었다.
“아, 그건 피해주는 것일지도 몰라요.”
엥?
“보통 곰자님들이 많이 그러세요. 공자가 외출했구나. 마스크 썼으니까 피해주자.”
와.
‘그, 그건 진짜 몰랐다.’
하긴 아는 척은 안 했지만, 신경 쓰고 있는 걸 알긴 했다.
“그냥 다른 사람이 뭐 사는지 궁금해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공자는 눈만 봐도 이미 절반은 안다니까요.”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곰자님들의 사랑, 신비하고 놀랍네.’
참 상냥하신 분들이었다. 물론 극성 사생이 없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아역부터 보아오셔서, 나를 아직 아기 취급하시지만 말이야.’
그래서 가끔 아주 사소한 걸 좋아하셨다.
‘촬영장 비하인드에서 한수윤에게 분장 때문에 손 두 개 써서 음식 먹여주는 걸 굉장히 좋아해 주셨지.’
그냥 친구에게 밥 먹여준 거뿐인데, 너튜브에 아직도 편집 영상 본이 남아 있었다.
매니저가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공자, 그거 알아요? 공자가 다른 배우들에게 귀염받는 영상 편집이요. 그거 또 조회수 엄청나게 나왔대요.”
“아, 그거 팬분이 편집해 주신 줄 알았는데, 방송사가 했더라고요.”
“다들 방송사가 마공자 재롱에 진심이라고 하던데요.”
음, 이제 20살인데도 단어가 사무쳤다. 재롱이라니요.
“그런데 영상이 길었어요.”
“아기 때부터 나와서, 거의 한 시간이더라고요.”
“타 방송사도 없고, 공영방송 하나일 텐데 그렇더라고요.”
보관 자료를 탈탈 터셨는지, 내가 뿌뿌빠빠 하며 한우진에게 안겨 있는 영상까지 다 있었다.
‘뭐, 조회수 잘 뽑아서 돈 번다는 거 알아도 말이야.’
어렸을 적 모습이 모조리 너튜브에 있다는 건, 좀 신기한 기분이었다.
“그거 보고 곰자님 되시는 아이들이 많대요.”
“네. 뭐, 그래서 곰자 카페 아직도 연령층이 다양하다고 들었어요.”
“꿈이 공자인 아이도 있어요.”
이런.
나는 균형을 잃고 살짝 비틀거렸다.
“그거 요즘도 있어요?”
“네. 아니, 공자 왜 부끄러워하세요. 그거 꽤 오래되지 않았어요?”
“그렇긴 해요. 하지만 제가 엄청난 일을 한 건 아니잖아요. 그냥 연기했을 뿐이죠.”
“자선 재단 있잖아요. 그리고 공자는 뭐랄까, 착함이 뿜어져 나와요.”
음, 없는 착함이 어떻게 나온다는 거지.
“롤 모델은 중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공자랑 일하는 걸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기요.
“거기까지 가지 마세요! 그건 아니에요!”
“히히히. 그렇게 정색하는 공자도 참 좋아요.”
이런.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덕수 씨 대타로 오셨던 매니저분들은 참 많았다. 서 사장이 신경 써서 붙여줘서인지, 하나같이 일도 잘하고 성실했다.
‘그런데 다들 나를 너무 좋게 본단 말이야.’
꼭 그러지 않아도 될 텐데.
‘나 보다 보면 이미지랑은 많이 다르다는 거 알 텐데…….’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게다가 롤 모델은 왜 아직도 계속 되지?
‘내가 워낙 벌인 일이 많긴 한데, 그렇다고 아이들 존경까지 받을 정돈 아니라고.’
재단으로 남을 돕긴 했어도, 내 몸을 직접 날려서 생명을 구한 적은 없잖아.
‘나보다는 소방관, 구급대원 이런 분들이 더 존경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솔직히 따지자면, 성실하게 묵묵히 복지 일하고 계시는 모든 분이 이런 존경을 받아야 했다.
‘언제 한번, 제대로 언급해야겠어.’
이런 건 타이밍이 중요했다. 언제가 좋을까 고민할 때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어라?’
매우 익숙한 분이 복도 끝에 서 계셨다.
좀 의외였다. 이런 곳에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는 호신봉을 손에 쥐었다. 일단 경계가 매우 필요했다.
“마공자.”
그래도 언젠가 한 번 볼 거 같단 생각은 했다.
‘그런데 그게 오늘인지 몰랐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경호원이 앞을 가렸다.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누구세요?”
물론 정체는 압니다만, 그래도 한번 물어봤어요.
왜냐하면, 그게 그쪽을 화나게 할 거란 걸 알아서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