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dsome Since Birth, Road to Stardom RAW novel - Chapter (289)
289
나는 옅게 웃었다.
“계속 남이 되어야 하잖아요. 남을 따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작은 사람들이거든요. 물론 누구나 예외는 있지만요.”
그래서 악역이 위험했다.
“그게 왜 마음이 다친다는 거지?”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걸 알게 되거든요. 살인마 역을 했는데, 살인마를 이해해 버린다든가. 이런 거요. 아, 물론 역이랑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면 되긴 해요. 그래서 가족과 일상이 중요하단 얘기를 들었어요.”
뭐, 다 그렇다는 건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절반은 그랬다.
“음, 안 믿으실지 모르지만요.”
나는 배시시 웃었다.
“엄마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어요. 저도 배우라서, 그 마음을 잘 아니까요.”
“돌아올 곳 말이냐?”
“네. 그런 효도를 꼭 하고 싶었어요.”
할머니는 무드등을 한번 터치했다. 주황색 불이 보라색 불로 변했다.
“솔직히 아직도 널 왜 데려왔는지 모르겠다.”
“음, 귀여워서 아닐까요.”
“내 딸은 그냥 귀여워서 애를 데려오는 머저리 천치가 아니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엄마는 항상 운명이라고 하시잖아요. 그래서 저도 운명이라고 믿어요.”
“그딴 게 뭐가 운명이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운명이 별거인가요. 엄마가 운명이라면 운명이죠.”
나는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이분의 마음을 알 거 같았다.
‘근본적으로 자랑스러운 딸이, 자신의 애도 아닌 남의 애를 키운다는 거, 마음에 안 들겠지.’
아무리 엄마의 선택이라도 할머니라면 그럴 수도 있었다.
“알아요.”
“뭘 말이냐.”
“솔직히 제가 엄마 인생에 별로 도움이 안 되죠. 족쇄가 되는 느낌이긴 해요.”
엄마가 나로 인해서 건강해지긴 했지만, 과연 행복해졌을까.
“연기해서 다른 사람이 되었다가 돌아왔을 때, 안식처 비슷한 게 되어주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하다 보니까…….”
나는 부끄러워서 살짝 뺨을 긁었다.
“오히려 제가 더 의지하고 있는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꿈을 펼칠 수 있었다.
“항상 힘이 되어주셨어요. 제가 하고 싶은 거면 뭐든 가져다주셨어요.”
“알긴 아는구나.”
“어떻게 그렇게 저를 사랑해 주시는 걸까요. 그래서 이해해요. 할머니가 저 싫어하는 거요.”
나는 활짝 웃었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할머니는 뭐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제 나름으로는 효도하려고 하는데, 이것 봐요. 또 이렇잖아요.”
할머니는 다시 무드등 색깔을 바꿨다. 보라색에서 빨간색이 됐다.
“항상 협박거리만 되는 거 같아요.”
“내 딸은…….”
빨간색이 초록색으로 변했다. 아무래도 여기서 나가게 되면, 저거 드려야 할 거 같았다.
“널 보면 웃지.”
어라.
“네가 오기 전에는 웃지 않았어. 카메라 앞에서는 웃었는지 모르지만. 항상 딱딱하게 굳은 채, 가끔 죽은 아이 사진이나 봤지.”
할머니는 더는 무드등 색을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여전히 초록색이었다.
“네가 오고, 마리가 돌아왔지.”
아시는구나.
“성실하지. 착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래도 안 돼.”
아니, 잘 나가다가 왜요.
“네 경우는 기적일 뿐이야. 보통은 이런 건 파탄이다. 남의 아이를 데려와서 잘되는 경우는 별로 없어.”
저기요, 할머니. 행복하게 잘살고 있는 입양 가족도 많은데요.
나는 방긋 웃었다.
“제가 증명할게요.”
“뭐?”
“제가 평생에 걸쳐서 증명할 테니까, 입양 가족 비하는 그만 하세요.”
뭐, 나야 괜찮다 칩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들으면 피눈물 흘리잖아요.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방긋 웃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할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수정이는 나를 닮았어.”
겉모습은 맞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할머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수정이랑 같은 선택을 할 뻔했지.”
어라, 이건 좀 다른 얘기였다.
“고아원에 후원 때문에 간 적 있었다. 거기서 굉장히 이끌리는 아이를 봤지. 이상하게 눈에 남아서 내가 키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굉장히 의외였다. 할머니께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분이었나?
“아이는 굉장히 예뻤다. 키우자고 결심하고, 조사했지. 어떤 연유로 고아원에 들어온 아이인지 말이야.”
음, 할머니다우셨다.
“그냥 평범한 아이라면 좋았겠지. 그런데 그 아이는 남편의 사생아였어.”
와. 이러기도 쉽지 않겠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쩌다가 그 아이가 고아원에 있었던 건가요?”
“아이가 버려지는 이유야 차고 넘치지. 하지만 조금 다르긴 했었어.”
할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를 그 고아원에 데려다 놓은 건, 내 남편이다.”
나는 눈을 깜박였다. 이건 굉장히 놀라웠다.
“왜, 왜요?”
“성진 그룹이 관리하는 곳이니까. 물론 내가 그걸 알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언감생심, 내가 키워주기도 바라더구나.”
와, 염치가 강화 철판인가 보다.
“진짜 싫으셨겠다.”
“글쎄. 사실 그것도 그동안 내가 겪은 거에 비하면, 진짜 별거 아니었다.”
할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뇌리에 콱 박힌 일이긴 하지.”
아마 별거 아닌 건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진짜 그랬다면 잊었겠지.’
이 할머니가 히틀러 사상을 가지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지 않을까.
“저 처음 왔을 때, 바로 그거부터 알아보셨겠네요.”
“그래. 네 친엄마부터 찾았다.”
빠르시네. 나는 그 부분은 알아보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궁금하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궁금할 텐데.”
“아니에요.”
“누군지 알아야 원망이라도 할 거 아니냐.”
음, 뭐라고 말해야 하나.
“제가 그럴 거 같나요?”
“그래.”
“저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항상 똑같이 말하는데요. 진짜 솔직하게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원망 안 해요. 뭐 이유가 있었겠죠. 그런데 그 이유를 알고 싶지 않아요. 제 일인데도 남의 일처럼 느껴지거든요.”
공감을 못 해주니, 들으나 마나였다.
“오히려 감사해요.”
“태어나게 해주는 거 말이냐?”
“뭐, 그것도 있죠. 한 사람을 태어나게 하는 것도 힘든 거니까요. 그런데 그거 때문만은 아니에요.”
나는 정말 솔직하게 말했다.
“안 찾아오잖아요.”
“뭐?”
“저 웬만한 사람이 다 알잖아요. 돈 많이 번다는 거 모를 리 없죠. 그런데 안 찾아오잖아요. 이 정도면 제가 감사해야죠.”
진짜였다. 찾아주지 않아서 너무 감사했다.
“찾으면 어쩔 거냐?”
“그때부터는 별로인 사람들 되는 거죠, 뭐.”
“안 돌아간다는 말로 들리는구나.”
“당연하죠. 제 엄마는 마수정입니다.”
“피가 통하지 않아도?”
“전 그거 의미 없다고 생각해요.”
할머니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번에는 내가 무드등 색을 바꿨다. 몇 번 터치하니,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제 친구 수윤이는, 친부모에게 학대당하고 갈취당했어요.”
그 애가 그 뒤로 벗어나기 위해 한 일은 굉장히 힘든 여정이었다.
“핏줄이 다가 아니에요. 그거로 모든 게 설명되지도 않고. 그러면 친족 범죄는 왜 있는데요?”
나는 무드등을 몇 번 터치해서 빨간색으로 바꾸었다.
“애초에 성진 그룹도 집안일로 싸우는 거잖아요.”
“그렇지.”
“그래서 제 가족은 엄마와 누나예요.”
“수정이가 갑자기 미쳐도 그럴까?”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엄마도 누나도 그럴 사람이 아니어서요.”
“만약 그러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럼 가족이 아니었겠죠. 사랑하는 걸 그만뒀을 테니까요.”
버전이 좀 다른 수윤이가 되지 않았을까.
“우리나라는 부모와 자식의 인연이 천륜이라 그러지만, 하늘의 뜻을 왜 굳이 땅으로 가져오나요. 땅의 법칙은 땅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만드는 거죠.”
이 말을 한 사람은 우진이 형이었다. 매일같이 탭댄스를 추지만, 대본을 많이 봐서일까. 가끔 하는 철학적인 말이 가슴을 사무치게 했다.
‘이 말 들었을 때 수윤이 울었지.’
한 번은 슬퍼서, 또 한 번은 한우진의 말에 깊이 감동하고 운 것이 낯 팔려서.
애초에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습니다. 할머니.
“세상을 너무 좁게 보지 마세요. 할머니는 세상이 강한 사람이 지배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죠?”
“그건 법칙이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진짜 약육강식이었으면 인간은 이렇게 늘어나지도 못해요. 뭐, 전투기랑 탱크가 강하기도 한데요.”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요. 지하철에 떨어진 아이를 구하려고 한다던가, 먹을 게 하나도 없지만 후대를 위해 씨앗을 먹지 않는 사람이 더 강해 보여요.”
나는 조금 웃었다.
“엄마는 언젠가, 빈민가를 보고 충격을 받았대요. 왜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한가 싶어서요. 그 뒤로 돕는 걸 아끼지 않으셨어요. 저는 그런 사람의 아들이에요.”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무드등 색을 바꿨다. 초록색이었다.
“세상엔 수많은 강함이 있어요. 그런데 그중에서 제가 가야 할 길은 그거예요. 엄마가 미리 닦아주셨고, 도와주신 그 길이요.”
“그래서 자선 재단을 만들었다고?”
“그거 처음에는 덜 까이려고 만들었어요. 제가 가진 걸 욕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네가 가진 게 뭐가 있다고. 성진 그룹에서 네 몫은 없을 텐데.”
“배우 마수정이 제 엄마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차고 넘쳐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그런데요. 그냥 성인이 되어서 드는 생각인데요. 할머니랑 여기 갇혀 있어서 그런가.”
나는 돗자리 위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텁텁한 공기가 맴돌았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뭐?”
“제가 엄마 아들이 된 이유요.”
할머니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피식 웃었다. 왠지 마음에 있는 말을 다 하게 되는 거 같았다.
조금 이상하네.
‘사고 났을 때, 머리 다친 거 아니겠지?’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시답지 않은 말을 하는구나.”
“그러게요. 할머니, 누우세요. 우리 앞으로 나흘이나 버텨야 해요. 체력을 아끼는 게 좋아요.”
할머니는 못마땅한 얼굴로 나처럼 누우셨다.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배낭에 있던 옷을 몇 개 드렸다.
“더 입으시거나 덮으세요. 한기가 올라올지도 모르니까요.”
할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나를 향해 작게 중얼거렸다.
“옛날에 수혜기금 10억 낸 적 있다.”
많이 내셨네.
“세금이나 다름없었지만.”
아하.
나는 피식 웃었다.
“그렇군요.”
“그때 수해에 집을 잃은 사람이 내 치맛자락을 붙잡고 말했지. 복 받을 거라고.”
할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 번도 그걸 받고 있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 지금 느껴지는구나. 그 복…….”
할머니는 나와 등을 지며 돌아섰다.
“지금 받는 거 같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