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dsome Since Birth, Road to Stardom RAW novel - Chapter (300)
300 (외전3)
마수정은 사는 게 지겨웠다.
‘살기 싫으면 죽어야 하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목을 긋거나, 어디에서 뛰어내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좀 별로였다.
‘왜일까?’
솔직히 마수정은 살 만했다. 뭐든 잘됐기 때문이었다.
마수정은 배우로서 승승장구 중이었다. 충무로는 항상 자신을 원했고, 수많은 작품 중에 하나를 고르기만 하면 됐다.
‘영화는 즐거워.’
연기는 항상 짜릿했다. 다른 이가 되는 건 언제나 황홀한 일이었다. 마수정은 그래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일을 쉬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달랐다.
그래도 지겨웠다. 너무 힘들고 짜증 나서, 신경질도 종종 부렸다.
‘이거 우울증인가?’
마수정은 피식 웃었다. 하긴, 우울증에 걸릴 만할 것이다. 마루가 죽은 뒤에, 가슴이 뻥 뚫려 버렸으니까.
‘이 공간은 그 어떤 거로도 채워지지 않겠지.’
심지어 그 구멍은 점점 커졌다.
처음에는 잊으려고 술도 마셨다. 하지만 그건 알콜을 먹고 점점 거대해졌다.
이건 얼마나 커지는 걸까. 이게 계속 자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아직 죽을 수는 없어.’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자신의 연락을 피하는 마리와 어떻게든 만나야 했다. 대화하고, 아이를 달래야 했다. 하지만…….
‘힘이 나지 않아.’
힘을 내려고 하면 그 구멍이 자꾸 자신을 잡아먹어 버렸다.
의욕, 희망, 바람.
사는데 반짝이는 것들은 죄다 저기로 흘러갔다.
‘웃기다. 진짜.’
모조리 빼앗기고 있는데 왜 저항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 걸까.
‘지겨워.’
죽고 싶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을 죽이면, 저항하고 싶지 않았다.
마수정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야.’
그런데 제정신으로 언제 돌아올 수 있지?
마수정은 천장을 보며 눈을 감았다. 해소되지 못한 구멍은 오늘도 조금씩 커졌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피곤하세요?”
오랜 시간 같이 있던 매니저였다. 마수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그냥 눈이 좀 부셔서.”
“언니, 지쳐 보이세요. 제가 약 드릴까요?”
마수정은 조금 웃었다.
“괜찮아.”
“언니 얼굴색 안 좋아요. 오늘 스케줄 이거로 끝이면 좋을 텐데, 하나 더 있잖아요.”
“아, 자선 행사…….”
마수정은 쓰게 웃었다.
“보여주기식으로 사진 찍는 날이었지.”
“네. 성진 그룹 관련 일이에요.”
“매년 징하게 한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게다가 아이들이 있는 곳이잖아. 아이들은 나 싫어한다고.”
“언니, 기운 내세요.”
그건 매니저 말이 맞았다.
“오늘 어디 간다고 했더라?”
“수녀님이 운영하시는 고아원이요.”
“아, 거기. 작년에도 갔었지.”
마수정은 한숨을 내쉬었다. 영 내키지 않았다.
“그냥 가지 말까.”
“어, 언니.”
마수정은 다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카페 천장에 달린 형광등이 파르르 떨렸다.
매니저가 눈치만 보고 있었다. 마수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가야지. 그래. 일은 해야지.”
“언니…….”
“걱정하지 마, 미진아. 갈 거야. 그냥 지금 내가…….”
마수정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지쳤나 봐.”
그게 맞았다.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착실히 커지는 구멍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런데 힘내는 방법을 모르겠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언니, 안 되겠다. 제가 약 사올게요.”
“소용없어, 미진아. 몸 문제가 아니니까.”
매니저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 착한 매니저는 차마 뭐라 말하지 못하고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보았다.
“미진아. 그거 아니?”
마수정은 기운 없는 웃음을 입가에 머금었다.
“나 오늘 진짜 마가 꼈나 봐.”
“오늘 좀 이상해요. 타이어가 터졌잖아요. 점검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마가 껴서 그래. 오늘 아침, 멀쩡하던 시계가 떨어져서 산산조각이 났어. 반찬에는 돌이 있었고. 신호는 족족 걸렸지?”
“네. 게다가 오늘따라 가는 길에 사고는 얼마나 잦은지 모르겠어요. 우리 촬영장에 한 시간이나 늦었잖아요. 7중 추돌 사고가 두 개나 있다니! 도로가 아주 주차장이었어요.”
마수정은 쓰게 웃었다.
“오늘 진짜 별로지?”
“맞아요. 안 되겠다. 언니, 제가 부적 사 올까요?”
“부적을? 지금?”
“근처에 성당 있던데요? 부적은 무리더라도 성수는 받아 올게요.”
“그거 그냥 가면 있는 거야?”
“그, 글쎄요. 저는 성당 안 다녀서요.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서 사장님도 가끔 이러시던데요.”
마수정은 피식 웃었다.
“괜찮아.”
“그러다 큰 사고 닥치면 어떡해요.”
“닥치면, 뭐 닥치는 거지.”
“언니!”
마수정은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
유난이 별로인 날이었다. 이런 날은 뭐든 극단적인 일이 생겼다.
‘데뷔작이 결정됐을 때 이랬고, 마루가 죽었을 때도 비슷했지.’
인생에 큰일이 날 때는 항상 이렇게 마가 껴 있었다. 마수정은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 생길까?’
마수정은 피식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일이 일어날 거 같지 않았다.
‘그럼, 힘든 일을 당하게 되나?’
그거 당하면 아프려나. 많이 아파지려면 차라리…….
갑작스럽게 든 생각에 마수정은 주먹을 꽉 쥐었다.
“언니, 진짜 저 성수 받아 올게요. 보니까 성당이 100m 뒤에 있더라고요.”
“괜찮대도. 이런 건 못 피해, 미진아.”
“네, 언니.”
“나 피곤해. 그런데 쉰다고 나아질 거 같지 않아.”
마수정은 이마를 짚었다.
“미안. 오늘 약한 소리 너무 많이 한다.”
“아니에요.”
“마루가. 내 아들이 보고 싶어.”
마수정은 한숨을 토해냈다. 눈을 감으면 아직도 죽은 아이가 눈에 선했다.
“어제 꿈에 우리 마루가 나왔어.”
“그, 그래요?”
“응. 우리 마루가 종이비행기 타고, 나를 지나치는 거 있지? 그래서 내가 죽자 살자 뛰었어.”
마수정은 담담하게 말했다.
“마루 잡으려고 그렇게 달려갔는데 말이야…….”
마수정은 피식 웃었다.
“갑자기 우뚝 서더니, 손가락으로 동글동글한 걸 가리키더라.”
“그, 그게 뭔데요? 알?”
“아니, 알은 아니었어. 뭔가가 있긴 한데, 눈이 부셔서 잘 보이지 않더라. 마루가 막 잘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켜서, 눈 비비면서 봤는데도 모르겠더라.”
마수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파닥거리긴 했어.”
“네?”
“날개 같더라. 새였나? 미진아. 이게 무슨 꿈 같니?”
매니저는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글쎄요.”
“아무튼, 꿈에서 내가 이게 뭐지 하고 보고만 있으니까, 마루가 그 파닥거리는 거 날개를 잡고 냅다 나에게 던졌어.”
“어, 어머나?”
“나 얼떨결에 받았잖아.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까, 마루가 웃으면서 뭐라고 외쳤는데…….”
마수정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생각이 안 나.”
“어머. 진짜요?”
“응. 그리고 매정하게 위로 날아가더라고. 내가 파닥거리는 걸 안고 위를 쳐다봤어. 내 새끼가 그렇게 위로 올라가는데 보이는 건…….”
마수정은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맨발뿐이더라.”
“네?”
“마루 맨발에 붉은 점이 있거든. 그것만 보이더라고.”
매니저는 상큼하게 결론을 내렸다.
“언니.”
“응?”
“평범하게 개꿈 같은데요?”
“역시 그렇지?”
마수정은 어색하게 웃었다.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뭔가를 받은 건 태몽 같긴 한데, 그 과정이 지나치게 이상해요.”
“하긴. 미진아, 참고로 난 태몽 꿀 일 없다? 나 사귀는 사람 없는 거 알지?”
매니저는 웃으면서 시선을 피했다. 마수정은 피식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마루 봐서 좋았어.”
“언니, 힘드시죠.”
“응.”
“상담받아 보실래요?”
마수정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받으면, 기운이 날까?”
“적어도 나아지겠죠.”
“그래야 할 거 같은데, 왜일까. 그러고 싶지도 않아. 미진아. 극복해 봤자, 뭐하지?”
“네?”
“내가 마루의 죽음을 극복한다고 쳐. 그런다고 마리와의 관계가 나아질까?”
아이는 도통 연락을 받지 않았다. 마치 단단한 껍질 속에 자신을 숨긴 거 같았다.
“마리도 고민이 많겠죠.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글쎄. 잘 모르겠어. 내가 섣불리 손을 대면 안 될 거 같아.”
마루의 죽음으로 정신을 놓고 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마수정은 이마를 짚었다. 길이 없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다.
마수정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 속 구멍은 오늘도 이렇게 부피를 늘렸다.
얼마나 그렇게 시간이 지났을까.
매니저는 안절부절못한 채, 자신을 보고 있었다. 마수정은 조금 웃었다.
“괜찮아. 일은 열심히 하잖아.”
“언니…….”
“상담, 생각해 볼게.”
매니저는 조금 안심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수정은 알았다.
‘아마 가지 않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마수정 곁에 다가왔다.
“손님?”
이 카페 주인인 거 같았다. 사인을 원하나 싶어서 마수정이 고개를 들 때였다. 카페 주인은 쿠키가 소복이 담긴 바구니를 내밀었다.
“서비스인 포춘쿠키예요. 각자 하나 가져가세요.”
마수정은 감사 인사를 하며, 매니저와 한 개씩 가져갔다. 포춘쿠키는 알록달록한 포장지에 감싸여 있었다.
마수정은 단 걸 좋아하지 않았다. 아마 평소라면 매니저에게 줬을 것이다. 하지만 왜일까. 마수정은 포장지를 벗기고 포춘쿠키를 꺾었다.
바삭-
쿠키가 부서지니까 접은 종이가 드러났다. 마수정은 종이를 펴봤다.
[당신의 행운이, 운명처럼 다가옵니다.>마수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행운이라니.
‘게다가 오늘은 마가 낀 날인데 말이야.’
구멍은 착실히 커졌다. 마수정은 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미진아, 슬슬 다음 스케줄 가자.”
“네. 샵 들렀다가 가면 딱 맞겠어요.”
“응. 아, 진짜 가기 싫다.”
마수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이는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왜일까.
마수정은 쪽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왠지 버려서는 안 될 거 같았다.
* * *
아이들은 마수정을 보자마자 울거나 도망갔다. 마수정은 처음에는 참았지만, 점점 자신을 제어할 수 없었다. 우는 애들이 다 마리 같았다.
그래서 자신답지 않게 심한 말이 튀어나왔다.
“나 이런 거 싫다니까!”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돌아봤을 때였다. 그때, 마수정은 자신이 본 걸 믿을 수 없었다.
뭔가, 아주 조그맣고 귀여운 존재가 자신을 보고 웃고 있었다.
‘저건 뭐지?’
마수정은 자기도 모르게 천천히 다가갔다.
한걸음, 한걸음.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유난히 길었다.
왠지 숨이 가빴다. 그 아이를 본 순간, 어젯밤 꾸었던 꿈이 떠올랐다.
작고 파닥이던 것.
마수정은 손을 뻗었다. 꿈속에서 봤던 소중한 것이, 점점 가까워졌다.
마수정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름이 공자라고요?”
아이는 꿈에서 본 존재처럼 손과 발을 파닥거렸다. 그게 눈물이 날 만큼 귀여웠다.
마수정은 손을 뻗었다. 아이의 작은 손이 잡혔다.
따듯하고 좋은 향기가 났다. 아이가 자신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구멍이 줄어들고 있었다. 마수정은 망막에, 아이를 새겼다.
천사가 삶에 들어왔다. 마수정의 운명은 그렇게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