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 Carry Support RAW novel - Chapter (101)
리턴 매치
「그냥 떨어뜨릴 생각이었는데, 지금 보니 이 방법이 더 확실했던 것 같아.」
「저 광경은… 조금 오싹하구나.」
쿠르르르!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통로를 가로막던 거대한 문이 열렸다.
오망성의 마법진의 핵심 기관으로 향하는 길이다.
「빨리 움직이자. 부수고 다시 돌아가야 돼.」
현은 루이즈를 재촉했다.
지니의 보고에 따르면 하늘다리의 심연 유저들의 수는 점점 줄어드는 중.
게다가 방금 루이즈도 검은 바람을 남발하는 바람에 제법 많은 마기를 소모하게 되었다.
천공이 이쪽을 눈치 챘을 가능성이 높아졌으니 자신들은 좀 더 서둘러야만 했다.
***
우웅. 우우웅.
여러 신관들이 누군가에게 마법을 걸어주며 물었다.
“준비되셨습니까?”
“물론. 오늘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낮고 절제된 목소리가 답했다.
마지막 의식을 치루기 전 신관은 다시 한 번 경고했다.
“맹세하십시오. 당신의 개인적인 의지보다 신탁의 뜻을 우선할 것을.”
“뭐, 되도록 노력해 보지.”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전송을 시작하겠습니다.”
300, 299, 298.
카운트가 줄어드는 동안 라티스의 머릿속엔 무수한 기억들이 떠오르고 가라앉았다.
무빙의 이론, 스킬의 연계, 쿨다운 등등.
지난번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감각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전송을 앞둔 라티스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신탁이란 게 도움이 된다면, 곧 그녀를 마주치겠지. 다시 한 번 모든 것을 걸고 싸우게 될 것이다.
승리를 확신하고 있진 않다.
오히려 조금 불리하지 않을까 예상했다.
얼핏 오만하기까지 한 그의 성격을 아는 사람들은 경악할 만한 일!
그만큼 라티스가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인.’
라티스는 그 이름을 곱씹었다.
수도 없이 아인의 플레이를 분석한 지금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아무리 실력을 키워도 그녀를 상대론 ‘확실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대를 부수기 위해선 자신이 부서질 각오를 해야만 했다.
‘이번엔 너도 집중해야 할 거다.’
하지만 이제는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라티스는 조용히 호흡을 가라앉히고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
“지시대로… 북쪽의 기관을 완벽히 파괴했습니다.”
현과 루이즈가 원래 위치로 도착했을 땐 낭보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직선인데다 거리도 가까웠기 때문에 샤틴은 빠르게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보고 중엔 의미심장한 내용이 섞여있었다.
“도중에 적들의 습격이 있었습니다….”
“적…?”
“인간인 것 같았습니다만… 전부 사살했습니다….”
‘인간인 적이라고?’
샤틴의 보고를 들은 현의 표정은 한층 심각해졌다.
천인의 감옥에 ‘인간 간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적들의 정체는 마기의 낌새를 느끼고 온 정찰대.
아래층의 적들이 감옥으로 흘러들어왔다는 뜻과 동일했다.
‘생각보다 더 시간이 없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쪽의 계획도 차근차근 진행되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현, 방금 기관을 부쉈어!」
아인이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
팟! 커플링의 능력을 사용하자 아인은 즉시 앞에 소환되었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며 당황한 듯 소리쳤다.
“뭐? 내가 꼴찌야…?!”
“네가 맡은 구역이 제일 멀었잖아.”
그렇게, 오망성의 꼭짓점 중 세 곳을 파괴했지만 아직 부숴야할 기관은 두 군데가 남아 있었다.
가장 멀리 떨어진 두 곳. 현은 이번에도 아인에게 한 곳을 맡겼다.
그리고 자신은 나머지 일행은 모두 데리고 반대쪽으로 이동했다.
마지막 기관을 파괴하기 위해서.
「미안. 말을 깜빡했네.」
달리던 중, 현은 아인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깜빡한 거?」
「고맙다고.」
「응…?」
「약간 무리한 부탁이었는데, 넌 당연히 해낼 거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
「아, 아니… 별로 무리한 거 없는데?!」
「미안. 그래도 반지가 있으니까, 너한테 맡길 수밖에 없었어.」
특별한 내용도 없는 짤막한 대화.
하지만 귓속말을 마친 뒤 아인의 눈동자는 놀란 듯 동그래졌다.
입꼬리도 실실 올라가고 있었다.
방금 거 고백이었지?
부끄러우니까 괜히 돌려서 말한 거 같은데…?!
현이 커플링을 운운하며 고맙다고 말할 이유는 그것 외에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어느새 아인은 자신의 몸이 타오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어.
현에게 어떤 드립을 쳐도 애매하게 끝나는 이유는… 아마 자신이 고등학생이었던 이유가 클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학교에는 안 가는데. 그럼 이제 학생의 신분은 벗어난 거잖아?
그러면… 그동안 생각만 해 두었던 일을 슬슬 시도해 봐도 되는 거 아닐까?
‘아니야, 이런 건 다 끝나고 생각해야지!’
아인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현이 맡긴 부탁. 절대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임무를 해내지 못한다면 여태껏 현의 노력도 헛수고로 돌아가 버리니까.
‘방향은… 이쪽이야!’
복잡한 마법진이 가득한 감옥의 통로들을 가로질렀다.
좀 더 빠르게!
도중에 만나는 몬스터들을 베며 기회가 될 때마다 잠력폭발을 중첩시켰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 아인의 전신은 붉은 기운에 휩싸여 있었다.
마력, 민첩 양쪽이 최대중첩에 도달하며 생겨나는 현상이었다.
‘응?’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아인은 의문을 터뜨렸다.
기관부로 향하기 위해선 문지기가 지키는 방을 통과해야만 한다.
그런데 방엔 이미 전투의 흔적이 가득했다.
곳곳에 복구 마법진이 깔려있기 때문에 이러한 ‘흔적’은 오래 남지 않는다.
즉, 이것은 최근에 이곳에서 싸움이 일어났다는 뜻.
‘누가 있나?’
아인은 의문을 가지면서도 천천히 나아갔다.
목표는 핵심 기관을 부수는 것.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면 오히려 환영이었다.
그렇게 아인이 기관부로 향하는 통로로 이동하려는 순간.
“웃…!”
콰드득!
그녀의 발치에서 갑자기 얼음이 솟아올랐다.
한기가 뺨을 스치고 지나간 직후, 생각했다.
공격? 어디서?!
아인은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근처에 숨은 적을 찾기 위해서였지만 굳이 찾을 필요가 없었다.
“역시, 반응이 빠르군.”
또각. 또각.
낮은 목소리를 지닌 인영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얼굴은 어둠에 가려 아직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인은 장검을 든 실루엣으로부터 인영의 정체를 직감할 수 있었다.
그 특유의 목소리와 분위기는 누군가가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기에.
“너라면 당연히 피할 줄 알았지.”
라티스는 차가운 미소를 흘겼다.
자신의 공격이 빗나갔음에도 오히려 마음에 드는 것처럼.
“앗, 넌…!”
둘이 마주하는 것은 오늘이 두 번째다.
첫 번째의 만남 이후 약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라티스는 단 하루도 그 날을 잊은 적이 없었다.
일루나에서 아인에게 농락당했던 때.
그렇다, 3개월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 라티스는 그 때의 것이 ‘농락’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또 오늘만을 고대해 왔다.
자신이 그 때와 달라졌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아인.’
라티스는 신탁이란 것이 나름 쓸모 있다고 느꼈다.
덕분에 자신은 그녀과 단 둘이 대면할 수 있지 않았는가?
“이곳에 있던 가디언은 네가 잡은 거야?”
갑작스런 아인의 물음.
라티스는 살짝 주위를 둘러보고 답했다.
“그 고철을 말하는 거라면 맞아. 결투에 방해가 될 만한 것들은 다 치워놨지.”
“결투? 가디언을 처리해 준 건 고맙지만 결투는 나중에 해줄게.”
아인은 그를 지나치려 했지만.
콰직! 재차 솟구친 얼음의 칼날 때문에 물러서야만 했다.
다시, 바닥에 장검을 꽂아 넣은 라티스를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오늘은 좀 바빠서.”
어느새 아인의 눈빛도 라티스와 비슷하게 변해 있었다.
“못 봐줄 텐데?”
철컥. 아인의 양손에 경계의 낫이 생겨나는 순간, 라티스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랭커에게 정보력은 필수였다.
아니, 랭커가 아니더라도 아스리안에 관심이 있는 유저라면 그 무기를 최근에 어디선가 봤을 것이다.
“그게 네 무기였을 줄은 몰랐는데. 흡…!”
찰나, 라티스의 동공이 확대되었다.
아인이 대답 대신 공격을 날렸기 때문이었다.
순간적으로 날아드는 섬광!
그 이후 0.2초의 딜레이를 주고 날아드는 불꽃!
움직임의 반경을 차단하고, 후속타를 노리는 이 패턴은 처음 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하지만 라티스에겐 처음이 아니었다.
사도의 시험에서 수백의 종류의 방법으로 죽었고, 이미지 트레이닝에선 수천 종류의 패턴들을 상상해 봤다.
라티스는 무의식 속에서 가장 리스크를 줄이는 방식으로 움직였다.
그 결과는 불꽃이 살짝 스치는 정도의 피해량.
[1517의 피해를 입었습니다!]‘위험했다!’
고작 한 합을 주고받았을 때 라티스는 확신할 수 있었다.
‘사도 퀘스트 때와 비교할 수 없어!’
실제의 아인이 그림자 아인보다 몇 수나 위!
콰지지직! 수 가닥의 반월이 라티스가 서있던 자리를 찢어발긴 것은 다음 순간이었다.
***
「아인, 이쪽은 끝났어!」
현의 귓속말이 들려온 것은 벌써 세 번째.
「그쪽은 아직이야?!」
아인은 아직 귓속말에 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라티스와의 전투가 30초 이상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쳇, 궁극기를 썼으면 처음에 끝난 건데…!’
현의 귓속말에 답해줄 여유는 없었다.
지금은 우선 이 녀석을 죽이는 것이 급선무니까.
콰득! 콰드드득!
소멸의 각오를 사용한 순간 아인의 전신은 꽁꽁 얼어붙었다.
서리로 이루어진 귀와 꼬리를 가진 아인은 늑대도, 여우도 아닌 고양이와 닮아 있었다.
겉모습은 조금 귀여워졌을지 몰라도, 그 위력까지 귀엽게만 볼 순 없으리라.
스킬 레벨이 상승하며 이프리트의 발톱과 프로시아의 얼음칼이 동시에 활성화되었기 때문이었다.
‘뭣?’
아인이 낫을 뒤로 재끼는 순간, 라티스의 눈썹이 가늘어졌다.
서로간의 간격은 10미터 이상.
분명 위험 거리가 아닌데… 어째서 등줄기가 오싹한 것인가?
타앙! 콰드드득!
총성이 울린 것과, 라티스가 얼음을 솟아올린 것은 거의 동시였다.
수십 발을 뭉텅이로 발사하는 샷건 모드.
연구가 부족한 샷건 모드의 데미지, 정확도는 처참한 수준이지만, 몸무게가 가벼운 사용자는 그 반동을 이용해 순간적으로 속도를 높일 수 없다.
루이즈의 바람과 같은 원리로, 아인의 몸은 탄환의 반작용을 받아 전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라티스가 세운 얼음기둥들이 일순간 두부처럼 썰려나갔고.
카앙! 경계의 낫은 라티스의 장검과 부딪치며 날카로운 한기를 흩뿌렸다.
‘무슨 속도가…!’
라티스는 눈을 부릅떴다.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신성의 울타리’로 아인의 돌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면 지금쯤 자신의 목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으리라.
간담이 서늘해진 라티스는 아인의 위험거리를 상향조정했다.
‘공격 범위도 이전보다 길어졌어. 15미터 내로 접근하면 위험하겠군!’
일반적인 유저들이 결투에서 3미터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고려했을 때 지금 라티스의 조치는 과할 정도.
허나 라티스는 그조차 위험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 기술도 있으니까.’
아인에겐 사전 모션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이동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해당 스킬이 빠지기 전까진 자신의 이동스킬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스슥. 라티스의 움직임이 기묘하게 바뀌었다.
스킬이 아닌 무빙으로 아인의 공격에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이 움직임은?’
아인도 라티스의 변화를 눈치 챘다.
뒤쪽 대각선으로 잔상을 남기는 무빙.
공격의 기회를 포기하는 대신 회피에만 집중하고 싶을 때 유용한 움직임이다.
‘뭐야, 시간을 끌려는 거야…?!’
전략을 수정했다.
이 구도가 지속될 경우 결투가 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구석에 몰아넣어야 돼!’
장기전에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빠르게 결착을 내려면 상대가 저 무빙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벽을 등지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어느 순간, 경계의 낫이 공간을 휩쓸었다.
거인 가르기.
일순간 사거리가 8미터, 힘이 800이 상승하는 일격이 라티스의 몸통을 노렸다.
800이란 수치의 힘은 네임드 NPC에게서도 쉽게 보기 힘든 스펙이다.
그것이 유저의 손에 들리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카아앙! 장검과 낫이 부딪친 순간, 라티스는 거의 50미터가량 튕겨나갔다.
벽에 충돌하지 않았다면 그보다 더 멀리 날아갔을 게 분명했다.
‘좋아, 됐다!’
아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신의 걸음으로 따라붙은 뒤, 허공에 잔상을 만들어 적의 이동 경로를 제한했다.
잔상 베기.
낫을 활용한 모든 종류의 공격에 약 1초의 잔상을 남기는 기술이다.
잔상은 그저 모양뿐이 아니라, 데미지도 충격량도 지니고 있었다.
‘이럼 못 빠져나가지!’
그렇게 벽을 등진 상대를 마무리하려던 순간.
드드드득!
무수히 많은 얼음이 바닥에서부터 솟아올랐다.
서걱! 서걱! 날카로운 잔상에 잘려나가는 얼음기둥들.
어느새 둘은 매끈하게 잘린 얼음기둥들 한 가운데 놓이게 되었다.
씨익. 거칠게 숨을 내쉬는 라티스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큭, 너무 깔끔하게 자른 게 실수였군.”
‘응?’
“웬만하면 다른 기술을 쓰고 싶지 않았다만… 너만 새로운 스킬을 배운 게 아니거든.”
‘뭐야? 웃…!’
화악! 등 부분이 욱신거리는 동시 아인은 몸을 비틀었다.
고양이에 버금가는 반응속도로!
[5552의 피해를 입었습니다]하지만 그 때는 이미 1/4에 가까운 체력이 깎여나간 뒤였다.
‘방금 뭐에 맞은 거야?!’
아인은 재빨리 생각했다.
어떻게 등 뒤에서 공격이 날아왔던 것일까?
전방을 바라보고서 깨달았다.
화아아아!
저격 총에 달린 레이저처럼, 라티스의 검에선 빛줄기가 뿜어 나오고 있었고.
‘빛…?’
그 빛줄기는 주변에 가득한 얼음기둥들에 이리저리 반사되어 자신의 등을 비추고 있었다.
[눈덩이의 광휘 Lv.3]-적을 겨냥한 뒤 광휘를 발사합니다.
-‘신성의 얼음’에 반사될 때마다 위력이 2배씩 증가합니다. (최대 5회)
-5회 이상 반사된 광휘는 대상에게 낙인을 생성합니다.
-낙인이 찍힌 적은 10초간 ‘눈덩이의 광휘’에 32배의 피해를 받습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 1초)
(신성력 소모 : 1000)
스스스. 이마에 ‘낙인’이 생겨나는 동시, 아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알고 있는 스킬이었다.
또한 이 스킬이 지금의 자신에게 얼마나 위험한지도 잘 알고 있었다.
‘실수했어!’
급하게 승부를 결정지으려 했던 게 잘못이었을까?
아인은 어떤 반격이 날아오든 자신은 피할 수 있다고 단정했다.
하지만 아주 가끔, 아스리안엔 절대로 피하지 못하는 형태의 공격이 존재했다.
특히 체력이 낮은 자신이 그런 공격을 받아내야 한다면….
어쩌면 이것으로 승리보다 패배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을지도 몰랐다.
***
‘드디어….’
낙인이 생성된 동시 라티스는 승리를 직감했다.
생각해 보면 행운의 연속이었다.
첫 공격을 우연히 빗겨낸 것부터, 수십 종류의 페이크가 섞인 난격을 모조리 피해낸 것까지.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졌거나, 하나라도 이지선다를 잘못 선택했다면 죽는 것은 자신이었겠지.
허공에 칼날의 거미줄이 생겨났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아인은 마음이 급했던가?
어쨌든 그 덕분에 얼음기둥을 직접 베어내는 수고를 줄일 수 있었고, 빛의 낙인을 발동시키는 것까지 성공했다.
아무리 반사신경이 좋아도 ‘빛’을 피할 수는 없는 법!
이 스킬은 아인처럼 재빠르지만 체력이 낮은 유저에게 치명적인 카운터가 되는 스킬이었다.
‘이겼다!’
낙인의 지속시간은 10초. 반면, 광휘의 재사용 대기시간은 1초.
10번 중 3~4번만 더 맞춰도 아인의 체력은 고갈될 것이다.
낙인이 찍힌 대상에겐 항상 스킬의 최대 데미지가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사형 선고를 내리듯 라티스가 검을 뻗자 아인의 가슴팍에 빛줄기가 투영되었다.
그렇게 겨냥을 마치고, 라티스는 광휘를 한 가닥씩 발사하기 시작했다.
‘사신의 걸음!’
번쩍! 광휘가 번쩍이는 즉시 아인은 이동기를 발동시켰다.
[5013의 피해를 입었습니다!]간발의 차로 피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1/4 근처의 체력이 더 깎여나갔다.
이제 남은 체력은 절반보다 조금 많은 정도.
‘또 온다!’
반격할 틈 따위는 없었다.
상대의 공격은 1초마다 한 번씩 날아오니까!
하필이면 근처에 엄폐물도 없었다.
낙인이 발동된 이후 라티스가 주변의 얼음기둥을 전부 소멸시켜 버렸기 때문이었다.
“크읏…!”
다시 시야를 스쳐가는 빛줄기!
힘껏 몸을 비트는 동시 아인은 뺨이 살짝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얼굴에 스쳤다.
하지만 빛에는 ‘스친다’는 판정이 존재하지 않으니 이런 사소한 형태의 피해마저도 그대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힐끗 체력을 보니 앞으로 두 번만 맞으면 끝.
만약, 치명타가 터지면 한 방에 끝날지도 몰랐다.
‘위험해…!’
찰나, 아인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최고조에 이른 집중력이 짧은 순간에도 수많은 생각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빛을 보고 피할 순 없어.
최대한 빨리 반응해도 인간의 뇌가 신호를 보내기까진 최소 0.1초의 시간이 소모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피할 수 있지?
“…!”
번쩍! 광휘가 다시 번쩍였다.
아인은 뒤늦게 깨달았다.
방금 자신은 완벽하게 빛을 피했단 사실을!
‘안 맞았어?!’
왠지 지금이라고 생각해서 방향을 바꾸자 공격이 날아왔다.
‘왜 안 맞았지…?’
순간, 아인도 자신이 어떻게 피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누가 묻는다면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 본능의 정체는 리듬.
라티스는 낙인이 찍힌 10초 동안 최대한 많은 공격을 퍼붓기 위해 쿨다운이 차오를 때마다 빛줄기를 날리고 있었다.
즉, 정확히 1초마다 한 번씩.
번쩍!
그리고 아인의 생체시계는 무의식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재고 있었다.
방금 것이 우연이 아님을 증명하듯, 빛줄기는 다시 한 번 아인을 빗겨나갔다.
1초라는 시간을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쪼개지 못한다면 불가능한 움직임.
‘나 지금 빛을 피하고 있는 건가…?’
정작 그렇게 움직이는 아인의 머릿속에 리듬이란 단서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저 무의식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피한다.
마치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는 맹수처럼!
상황이 급변하는 결투 속에서 ‘이론’과 ‘본능’이 동일한 결과를 낼 수 있다면 당연히 본능 쪽이 더 유리했다.
계산이 필요 없다면 불필요한 곳에 의식을 분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뭐라고!’
라티스의 눈이 커진 것은 낙인의 지속시간이 절반 이상 지나갔을 때였다.
‘우연인가?’
자신은 분명 빛줄기로 아인의 몸통 정 중앙을 겨냥하는 중이다.
그리고 광휘가 작렬하는 속도는 말 그대로 빛의 속도와 같다.
인간이 반응하긴 불가능할 터.
그런데 아인은 두 번이냐 연속으로 공격 타이밍에 맞춰 방향을 꺾었다.
마치 자신의 생각을 읽어내는 것처럼.
‘아니, 우연이 아니다!’
찰나, 라티스의 머릿속이 번쩍였다.
아인은 공격이 날아올 타이밍을 ‘감지’하는 것이다!
자신은 낙인이 찍힌 10초 내에 최대한 공격하기 위해서 쿨다운이 돌아오는 즉시 광휘를 발사하고 있었다.
때문에 1초마다 공격이 날아가는 ‘리듬’이 생겨났다!
그 사실을 깨닫는 즉시 공격의 패턴을 바꾸었다.
이번엔 불규칙하게.
‘어떻게….’
하지만 다음 순간, 라티스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방금은 분명 박자를 어긋나게 공격했는데. 이번에도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라티스는 뒤늦게 이유를 깨달았다.
‘그렇군, 절반의 확률이다.’
아인은 마치 두 명처럼 흐릿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짧은 거리를 빠르게 왕복하는 무빙.
일루나에서 자신도 활용했던 기술이다.
빛의 공격판정은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하다.
그러니 두 잔상 중 어느 쪽을 노려도 50퍼센트의 확률로 빗나갈 가능성이 있었다.
다급해진 라티스는 낙인의 지속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살폈다.
남은 시간은 3.5초.
‘앞으로 세 발 남았나…!’
아인의 속도는 어지러울 만큼 빠르고, 불규칙했다.
잠깐 정신을 차리면 움직임을 놓칠 만큼.
라티스는 최대한 정신을 집중해 광휘를 발사했다.
번쩍! 번쩍!
한 발은 적중했지만 나머지 한 발은 빗나갔다.
아인의 체력은 바닥에 가까움이 분명했다.
남은 최후의 한 발.
맞출 수 있을까 없을까?
화악! 아인이 갑자기 돌진해 온 것은 라티스가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던 때였다.
아까와 같은 왕복 무빙을 응용한 돌격.
라티스는 마치 두 명의 아인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착각을 느꼈다.
‘응?!’
찰나, 라티스의 눈이 번쩍였다.
두 잔상의 일부가 겹쳐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기 때문에.
‘저 부분을 맞추면 이길 수 있다!’
만약 잔상의 겹친 부분을 정확히 노린다면 명중률은 50퍼센트가 아니라, 100퍼센트가 된다!
극히 좁은 면적이었지만, 라티스는 극한의 집중력을 이끌어냈고.
번쩍! 최후의 빛이 작렬했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와중 그 미세한 구간을 저격해 낸 라티스의 능력은 가히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광휘는 금속의 표면에 맞고 허무하게 튕겨나갔다.
회심의 일격이 경계의 낫에 가로막힌 순간이었다.
‘핫, 막았어!’
아인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마지막 공격은 반드시 그곳으로 날아오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아주 작은 빈틈.
아마 현이었더라도 상대와 똑같은 곳을 노렸겠지?
‘이번엔 무조건 잡았지!’
돌진을 그대로 이어 받아, 아인은 라티스의 코앞까지 거리를 좁혔다.
눈을 부릅뜬 상대의 표정이 그대로 보일 정도의 거리.
그 자리에서 이프리트의 발톱을 두 번.
바로 낫을 꺼내며, 프로시아의 얼음 칼 세 번을 그어 내렸다.
불꽃 사이에 얼음을 숨기는 연계 수법이다.
일순간 다섯 번의 공격이 작렬했고.
‘…….’
놀랍게도, 아인의 손에 걸리는 느낌은 마지막 한 번 뿐이었다.
라티스가 서있던 장소엔 빛의 알갱이가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사망 이펙트가 뒤늦게 빛나고 있던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본 뒤에야 아인은 상대의 죽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얼마나 지난 거지?’
아인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결투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시간감각이 사라져 버렸다.
현의 상황은? 아까 굉장히 급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나?
내가 빨리 마법진을 부숴줘야 해!
아인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며 귓속말을 보냈다.
「현, 방금 나 라티스랑 싸웠어!」
“…….”
대답이 없었다.
덜컥 겁에 질린 아인은 친구 창을 살피고 나서야 안도했다.
현은 아직 온라인 상태였다.
답장이 없는 이유는 방금 나처럼, 귓속말도 못 할 만큼 급한 건지도 몰라!
「방금 잡았으니까, 지금 바로 마법진 부술 게!」
카드드드득!
궁극기가 지속되는 지금, 프로시아의 얼음칼로 핵심 기관들을 파괴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재사용 대기시간이 돌아온 ‘거인 가르기’까지 사용하자 마법진으로 가득하던 주위는 완전히 초토화되어 버렸다.
「됐다, 현, 나 끝났어!」
「현…?」
「무슨 일 있는 거야?!」
그렇게 소리치던 순간.
갑자기 허공이 일렁이더니, 팟, 아인의 몸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
[사망했습니다!] [스킬로 사망 패널티가 완화됩니다!] [24시간동안 접속할 수 없습니다!]메시지가 떠오르고 한참 동안 라티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꺼져버린 캡슐 안에서 가만히 방금 결투를 떠올렸다.
무엇이 부족했나? 패배의 원인은?
큭큭. 이윽고 라티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나 큰 아쉬움, 분함, 그리고 기쁨까지.
수많은 의미가 섞인 웃음이었다.
라티스가 웃음을 멈춘 것은 한참 만이었다.
“좋아….”
라티스는 다시 마지막 순간을 떠올려 봤다.
잔상이 겹친 부분.
그곳을 공격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공격이 살짝 빗나갔다면 자신은 승리했을 것이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저지르지 않았어.
오히려 실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패한 것이다.
“적어도 지난번보단 훨씬 낫군.”
오늘의 아인은 전력을 다했다.
그리고 분명 자신은 그런 아인을 죽음 직전까지 밀어붙였다.
그동안의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직이야.”
거의 막상막하였으니까 비슷한 실력이었다?
결투를 지켜본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리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정작 라티스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승부를 판가름한 한 끝 차이.
그것이야말로 거대한 차이이며 메꾸는 데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거대한 차이다.
“조금만 더 가면 닿을 수 있겠어.”
할 일이 생겨났다.
라티스는 방금 녹화되었던 영상을 스크린에 띄웠다.
24시간.
우연한 계기로 사망 패널티가 줄어들었으니 라티스는 오늘을 결투를 하루 종일 분석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