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 Carry Support RAW novel - Chapter (102)
비상
아인과 떨어진 직후.
현은 나머지 일행을 데리고 남은 한 곳의 기관으로 향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상황은 긴박함의 연속이었다.
「감옥 쪽으로 누군가가 넘어갔어요! 그쪽의 위치를 파악한 것 같아요!」
현에게 지니의 보고가 넘어갔다.
일행이 NPC무리를 맞닥뜨린 것은 그로부터 몇 분 뒤였다.
“찾았다!”
“마기를 지닌 자들이 여기도 있어!”
‘이런.’
현은 침음을 흘렸다.
지니는 하늘다리의 심연 유저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은 천공의 영역. 심연 유저는 목숨을 걸어야 간신히 올 수 있는 장소다.
시간이 지날수록 루이즈의 연막이 될 심연 유저들이 죽어갈 것은 당연했다.
‘들켰나.’
즉, 일행이 발각될 것은 처음부터 정해진 수순이었다.
여기서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나도, 천공의 NPC들이 벌떼처럼 몰려들 것이다.
“샤틴, 네가 후방을 맡아 줘!”
“예. 분부대로…”
감옥의 끝.
샤틴에게 방어를 부탁하고, 현은 루이즈와 함께 앞으로 나아갔고, 이번에도 오망성의 끝에서 마주친 간수를 처치했다.
그렇게 봉인 마법진의 기관을 부수는 것까진 그래도 어찌어찌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 순간.
‘왜 아인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지?’
혹시 죽은 걸까 가슴이 철렁했지만, 온라인 상태로 표기된 친구 창을 보고야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현은 재차 귓속말을 보냈다.
「아인, 어디쯤인데.」
「이쪽은 끝났어!」
「거긴 아직이야…?!」
오망성의 끝에 위치한 다섯 개의 핵심 기관들을 모두 부수지 않으면 봉인은 해제되지 않는다.
파피와 라디에트를 구할 방법도 사라진다.
10초, 20초… 시간이 계속 지날수록 현은 초조해졌다.
다시, 지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파이 역할을 맡던 천공 유저들까지 거의 다 사망했습니다! 퀘스트 알람으로 NPC들을 붙잡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할 것 같아요!」
이번에도 악재가 도착했다.
급속히 적들의 수가 늘어나는 걸 보면 자신이 하늘다리에 살아남은 최후의 심연 유저일지도 모른다.
쿵! 샤틴의 육중한 몸이 무언가에 맞고 튕겨나는 순간, 현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골렘이 날아갈 정도라고…?’
현은 적들의 무리 속에 숨어있는 강적을 찾아냈다.
저 녀석을 빨리 죽이지 않으면 위험하다…!
‘투명화, 어둠의 검!’
보이지 않는 곳에, 암흑으로 이루어진 대검이 생겨났다.
파앙! 현은 루이즈의 바람을 받아 튀어나갔다.
위험한 그 녀석을 암살하기 위해서였지만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카앙! 어둠의 검이 누군가의 무기와 맞부딪치는 순간, 현은 사정없이 튕겨나갔다.
천인까지는 아니지만 적들 중에도 네임드 NPC가 섞여 있던 것.
그는 방금 공격을 날린 현을 보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호오, 유저가 맞나…? 마기의 위력이 월등히 강한데.”
‘제길…!’
현은 힐끗 적들의 진형을 살폈다.
신성력을 온몸에 두른 기사. 한눈에 봐도 위험해 보이는 녀석이 이쪽으로 검을 뻗고 있었다.
게다가 옆에는 그의 부하들로 보이는 자들이 십여 명이나 더 있었다.
‘성기사인가?’
곧바로 힘의 격차를 깨달았다.
이런 녀석들을 상대할 방법은 없어.
시간을 끄는 것도 고작 10초가 한계일 텐데…!
「현, 나 끝났어!」
아인의 귓속말이 들려온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드드득!
그리고 전방의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천인의 칭호를 지닌 자는 추위를 느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현은 순간 싸늘한 공기가 모공을 찌르는 기분을 느꼈다.
“아슬아슬했군.”
어느새 일행의 앞에 나타난 남자가 중얼거렸다.
라디에트. 지상에 내려왔던 유일한 S급 천인.
스르르르. 꽁꽁 얼어붙은 십여 명의 기사들은 잠시 후 빛의 가루가 되어 흩어져 내렸다.
방금 전까지 이쪽을 압도적으로 밀어붙이던 자들의 최후치곤 너무나 허망했다.
이어서 라디에트는 나머지 일행을 향해서도 손을 뻗었다.
“조금은 더 안전하게 해 주지.”
콰득! 푸른빛의 막이 현의 전신을 둘러쌌다.
샤틴의 몸체에도 동일한 보호막이 생겨났다.
“…!”
현은 라디에트의 모습을 보고 숨을 삼켰다.
라디에트의 전신이 새하얀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이펙트.
‘소멸의 각오…?’
궁극기를 사용한 아인의 모습이 앞의 라디에트와 겹쳐졌다.
현의 눈썰미는 정확했다.
그 마법은 천인의 자아를 불태우는 기술.
소멸의 각오와 비슷하지만, 한편으로는 전혀 달랐다.
아인은 도중에 궁극기를 해제할 수 있지만, 천인은 자아가 붕괴되는 현상을 스스로 멈출 수 없기 때문이었다.
꿀꺽. 침을 삼키며 자신을 바라보는 현에게, 라디에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긴장한 눈빛으로 볼 필요 없다. 그대가 나를 속인 것에 보복할 생각은 없으니.”
“…….”
“참, 아직 갇혀있는 녀석이 한 명 남아 있었군. 잠시만 기다려라.”
라디에트는 나타났을 때처럼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현이 아인을 소환하고 나서 몇 초 뒤에
팟,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자아를 불태우고 있는 천인은 천사와 동레벨의 천사와 비슷한 수준의 힘을 지니게 된다.
짧은 거리를 순간이동하는 것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닐 것이다.
「파피!」
루이즈가 불쑥 소리쳤다.
파피는 정신을 잃은 채였다.
「무사한 겐가?!」
「괜찮아. 호흡은 제대로 하고 있어.」
「이런 꼴이 되다니…」
갑자기 솟아오르는 루이즈의 죄책감.
지금은 쓸데없는 감정이었기에 현은 억지로 그 기분을 억눌렀다.
“봉인이 해제되는 반동으로 정신을 잃은 것뿐이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다.”
“고마워.”
정신을 잃은 파피는 샤틴이 맡아주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녀는 한손으로도 적당히 싸울 수 있기 때문.
“그리고… 너도 오랜만이군.”
라디에트는 아인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나 말이야…?”
“그래.”
다른 사람인 것은 알고 있지만, 다시 보아도 흠칫 놀라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연인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뀌었으니까.
“좋아. 널 다시 보니까 결심이 확고해졌어.”
라디에트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허공에 대고, 마치 누군가에게 맹세하듯 중얼거렸다.
“내 마지막 육신은 그대를 위해 바치겠다.”
“으응…?!”
“잘 따라와라. 조금 소란스러울 거다.”
라디에트는 다시 앞장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를 뒤따라가던 도중, 현에게 아인의 귓속말이 들려왔다.
어째선지 조금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현, 질투 한 거 아니지…?」
「뭐야?」
「걱정하지 마. 현도 언제든 내 몸을 맘대로 쓸 수 있으니까!」
순간 현의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파피를 신경 쓰느라 라디에트와 아인의 대화를 잘 듣지 못했는데…. 둘이 무슨 말을 했기에 아인의 입에서 저런 대사가 나오는 건지.
어쨌든 라디에트가 자신들을 도와주는 것은 확실했기에 현은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내고 움직였다.
***
콰지직!
라디에트는 감옥의 천장을 뚫고 일행을 위쪽으로 이끌었다.
드디어 하늘. 천인의 모든 제약이 해제되는 공간!
루이즈와 현이 지닌 마기 또한 모든 천인들의 기감에 들어오게 될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 존재하는 심연을 눈치 챈 자들이 일행의 방향을 바라보았다.
평소였다면 목숨이 수백 개라도 모자란 상황이지만, 지금은 문제없었다.
수백 명보다 든든한 아군이 일행을 보호하고 있었으니.
“잠시 움직이지 마라.”
콰드드드득!
라디에트의 손짓에 모든 공간이 꽁꽁 얼어붙었다.
그 범위는 그의 시야가 미치는 모든 곳!
평범한 인간들은 그 한 수에 사망했고, 네임드 NPC마저 ‘빙결’의 상태이상이 걸려 얼음 조각상이 되어 버렸다.
조금이라도 저항할 수 있던 것은 라디에트와 같은 천인들뿐이었다.
“이게 무슨….”
“천사께서 싸움을 멈추시려는 건가?”
천인의 힘은 하늘에서 강력해진다.
또한, 자아를 완전히 불태우기로 마음먹은 천인은 일순간 초월자와 동일한 힘을 행사할 수 있다.
다른 천인들이 라디에트를 잠시 ‘천사’라 착각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천사가 아니야!”
“라디에트다!”
하지만 곧 누군가가 라디에트의 얼굴을 보고 소리쳤다.
“저 자가 어떻게 여길….”
“마기를 지닌 인간과 함께 있어! 역시 반역자였다! 강림의식이 실패한 이유가 있었던 거야!”
“라디에트… 님?”
잠깐의 정적이 지나간 뒤, 천인들의 반응은 두 종류로 나뉘었다.
라디에트를 적대하는 자들과, 순수하게 놀라는 자들로.
조화의 세력을 지휘하던 미스티아는 후자에 포함되어 있었다.
‘반역자라.’
전장에 섞인 모든 목소리가 라디에트의 귀로 들어왔다.
“그 호칭이 마음에 드는 날이 올 줄은 몰랐군.”
라디에는 미미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팔에 갖가지 신성의 문양들이 깃들었고..
우우웅. 허공에 겹겹이 쌓인 마법진들은 이윽고 하나의 마법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끝없이 중첩되어 가는 마력과 신성력. 누군가가 다급히 소리쳤다.
“막아!”
“저 마법이 완성되게 놔두면 안 된다!”
신성의 화살, 심판의 고리, 천뢰… 셀 수도 없는 마법들이 라디에트에게 쇄도했다.
수십에 달하는 천인들의 일제 공격!
허나 그 모든 마법들은 라디에트의 보호막에 닿는 순간 허무하게 흩어져 버리고 있었다.
마법진이 완성되기 직전, 라디에트는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심연에도 선(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자는 눈을 감아라.”
요란스런 소음에 섞인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연일까? 그것은 조화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말이었다.
선악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으니 모든 피조물은 서로 도와야 한다고.
전장을 둘러본 라디에트는 천인들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살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자. 그렇지 않은 자.
“크아아악!”
다음 순간, 비명의 합주가 전장을 가득 메웠다.
하늘애서 내리치는 벼락이 수많은 천인들의 몸통을 꿰뚫었다.
F급 천인들은 대부분 즉사했고, 그 윗 단계의 천인들은 소멸하기 직전에 자아를 소모해 순간이동했다.
번개로부터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은 눈을 감고 있던 천인들. 조화를 섬기는 자들뿐이었다.
“라디에트님 당신께서도….”
미스티아의 혼잣말은 아주 작았다.
“….”
라디에트는 까마득히 멀리 떨어진 미스티아를 힐긋 바라보다가 곧 고개를 돌렸다.
대부분의 천인들은 무력화되었지만, 벼락으로부터 무사한 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B급 이상의 천인들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여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라디에트가 그들을 일일이 상대하기엔 시간도, 생명력도 모자랄 것이다.
“가자.”
콰아아아!
라디에트의 손에서 뿜어 나온 신성의 빛이 천장을 녹였고.
플라이(Fly). 이어서 모두에게 비행마법이 걸렸다.
일행은 그저 라디에트를 따라갈 뿐이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한가한 상황은 아니었다.
다들 전투의 여파를 피하는 것만 해도 벅찬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위험… 하네.’
현은 바짝 긴장했다.
일행을 둘러싼 보호막에 금이 생겨나고 있었다.
라디에트에게 보호 마법을 갱신해 달라 부탁할 수 없는 까닭은 그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소멸의 오오라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꺼지기 직전의 촛불처럼….
「안 된다!」
그 와중에 사건이 터졌다.
콰앙! 갑자기 날아든 폭발에 샤틴이 휩쓸리는 순간, 루이즈가 고함을 질렀다.
「괜찮아. 아무도 안 죽었어!」
현은 루이즈를 진정시켰다.
샤틴의 팔 한쪽이 날아갔지만, 그녀는 골렘. 내구도만 남아있다면 언제든 수복이 가능했다.
정신을 잃고 있는 파피 또한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샤틴, 계속 움직일 수 있겠어?”
“움직이는 건 문제없습니다만… 더 이상 누군가를 부축하진 못합니다.”
재빨리 상황을 판단해 보았다.
샤틴이 공격당한 이유는 그녀의 속도가 가장 느리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서 한쪽 팔까지 부서졌으니 샤틴에겐 더 이상 파피를 맡겨둘 수 없었다.
「루이즈, 네가 파피를 업어!」
「무, 물론… 해 보겠다!」
「이제 동화는 못 해줘, 샤틴하고 함께 지켜!」
「현, 그대는…?」
「난 아인의 몸을 빌릴 거니까.」
***
하늘다리의 최상층까지 오르는 길은 험난했다.
곳곳에 설치된 방어 마법진들도 작동을 시작했다.
라디에트를 노리는 천인들의 공격도 위협적이었다.
여기서도 총이 큰 도움이 되었다.
타앙! 타앙!
충격 증폭이 더해진 탄환이 투사체들의 궤도를 빗겨가게 만들었다.
정확도 높은 경계의 총과 ‘기초 사격’ 스킬이 조합되자 물리적 형태를 지니는 마법들은 날아오기 전에 요격해 낼 수 있었다.
번개나 신성력 등, 무게가 없는 형태의 공격들은 피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물러서라.”
어느 순간, 라디에트가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우우웅. 그의 손에는 수십 겹에 달하는 마법진이 겹쳐져 있었다.
현조차 한눈에 파악할 수 없는 수의 마법이 중첩되었고, 응축된 기운은 전방으로 터졌다.
콰아아아!
그와 동시 온 세상을 뒤덮는 푸른 빛.
‘크윽…!’
갑자기 폭발한 어마어마한 기운에 현은 신음을 흘렸다.
빛으로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천지동결.
플레인 급을 넘어선 천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
그것이 라디에트의 손에서 발현되었다는 것은 지금의 그 역시 천사와 동일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리라.
마침내 라디에트의 마법이 그치고, 세상의 모든 것들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추격해오던 적들도, 하늘다리에 설치된 마법진, 거기다 방어탑까지 냉기의 폭풍에 휩쓸려 움직임이 멎었다.
단 한 번의 마법으로 마공학의 결정체였을 하늘다리의 상층부 일대가 빙하기에 멸망한 문명의 흔적처럼 뒤바뀐 것이다.
“굉장해….”
현은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스라에서도 천사가 전력으로 사용한 마법을 볼 기회는 흔치 않았다.
그런 마법이 완벽한 감각을 전하는 아스리안에서 펼쳐지니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충분해! 이 정도 피해를 줬으니까 적들도 더 이상…. 아.”
라디에트의 활약에 감사를 표하려던 현은 뒤늦게 깨달았다.
선두를 이끌던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라디에트의 자리엔 빛의 알갱이들이 안개처럼 퍼지며 일행을 적시는 중이었다.
한계 이상으로 과부하 된 라디에트의 영혼이 최후의 마법과 함께 산화해 버린 것이었다.
‘이건….’
현은 갑자기 느껴지는 끈적한 기분에 몸을 떨었다.
예전 마리아가 죽었을 때, 루이즈는 공기 중에 퍼진 그녀의 잔향을 느끼며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공감력이 높아졌기 때문일까? 현은 지금 그때의 루이즈가 어떤 느낌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영혼이 불타는 냄새 따위가 존재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만약 존재한다면, 그것에는 인간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존재하리라.
어느새 현의 뺨엔 두 줄기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 생각했는데 저절로 흘러내렸다.
자신의 것인지, 동화하고 있는 아인의 것인지 또한 알 수가 없었다.
「현, 나 지금 저절로 눈물이….」
「조심해.」
현은 꽁꽁 얼어붙은 눈물을 떼어내며 아인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지금 울 때가 아니야.」
추격자들은 전부 죽거나, 몇몇 천인들만이 본거지로 순간이동해 도망쳤을 테고, 주위에 널린 방어 마법진도 대부분 파괴되었다.
조금 전처럼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니지만 끝까지 안심할 수는 없었다.
가끔씩 파괴되지 않은 방어 마법진이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끝까지 집중하자.」
현은 영혼이 타오르는 냄새를 애써 무시하며 하늘다리의 최상층을 향해 위쪽으로 날아갔다.
얼음가시 던전의 끝에서 보았던 이벤트 영상대로라면 그곳에 수송선 하나가 놓여있을 것이다.
기만이 ‘조화’의 세력들을 통해 준비해 둔 것.
만약 없거나, 파괴되었다면… 그 때는 바람 장벽으로 하늘을 건너는 수밖에 없겠지.
현은 기만이 장난질을 한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파피는 꿈을 꾸었다.
백년도 더 지난 일이었다.
세상 모두가 자신을 반역자라 손찌검할 때, 누군가가 구원의 손길을 뻗어주었던 꿈.
어릴 때의 일이기 때문인지, 천사의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그녀가 일반적인 천사의 이미지와 다른, 가슴이 패인 복장을 입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큭.’
파피가 정신을 차린 것은 일행이 하늘다리의 끝자락을 통과하던 도중이었다.
의식만 회복했을 뿐 아직도 완전히 정신을 되찾진 못했다.
희미한 시야로 비치는 비친 광경은 하늘.
누군가가 자신을 보호한 채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천사님…?’
파피는 아직도 꿈에서 깨지 못했나 생각했다.
아니면 그 때처럼. 천사께서 자신의 기도를 듣고 구원하러 와주신 걸까?
그게 정말이라면 자신은 평생 그녀만을 섬길 거라 맹세했다.
이어서 파피는 자신을 들쳐 메고 있는 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자신보다도 조금 작은 체격.
얼마 전부터 입기 시작한 괴상한 복장까지.
“신녀… 님… 이었습니까?”
그는 루이즈의 얼굴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오오, 정신이 들었는가! 다행이구나… 다행이야!”
“여긴 어디….”
“설명하려면 너무 길다. 지금은 내게 모든 걸 맡겨라.”
파피는 곧 이상한 점들을 눈치 챘다.
신녀님의 옆에선 팔이 잘린 골렘 하나가 사악한 마기를 흩뿌리고 있었다.
즉시 위험하다 경고하려고 했지만, 곧 그것이 자신을 보호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콰앙! 골렘은 한쪽만 남은 팔로 이쪽으로 향하는 포격을 막아내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된 거지?’
다시 뒤를 돌아보았고, 재차 경악했다.
그곳엔 낫을 든 사신이 자신을 추격해 오고 있었다.
“신녀님… 위험!”
“뭐야, 깨어났어?”
현의 목소리에 파피는 퍼뜩 놀랐다.
어째선지 사신의 얼굴이 익숙했다.
머지않아 아는 얼굴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신녀님이 도움을 받았다는 그 유저였다.
“당신은…!”
“다 끝나가니까 이제야 일어났네.”
“신녀님을 도와 절 구한 겁니까?”
파피의 물음엔 루이즈가 답했다.
“아니야, 그가 널 구했고, 내가 약간의 보탬이 된 것이다.”
“그게 무슨….”
“모두 설명해 주겠다. 천공도 더 이상은 쉽게 쫓아오지 못할 테니.”
일행은 어느새 최상층에 놓인 거대 수송선에 도착했다.
이벤트 씬에서 본 대로, 수정구 위에 손을 얹자 기관의 작동을 위한 마법진들이 일제히 점화되어 가동되기 시작했다.
콰아아! 마력엔진의 작동과 함께 일행은 서서히 하늘다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멀리서 본 하늘다리는 대각선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라디에트가 발동시킨 최후의 마법 때문인지, 하늘다리의 윗부분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일행은 그 거대한 구조물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때까지도 이쪽을 추격해오는 적은 아무도 없었다.
드디어 루이즈는 천공의 추격으로부터 해방된 것이었다.
“어찌어찌 도망친 모양이네.”
“그렇구나….”
한참 뒤.
루이즈는 파피를 바라보았고.
“이 몸은 악마다.”
단도직입적으로 첫 마디를 내뱉었다.
“지금은 완전한 악마가 아니고… 악마의 씨앗이겠구나.”
“무슨 뜻입니까…?”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의 의미다.”
「아인, 우린 잠깐 빠져 있자.」
중요한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기색이었기에, 현은 아인을 데리고 갑판으로 나왔다.
루이즈의 이야기는 길었다.
자신의 정체부터 그녀가 5년간 파피를 이용했던 것까지,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고백했다.
파피는 한동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조금 전, 기울어진 하늘다리의 광경을 보지 못했다면 루이즈의 말을 농담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악마라고요?”
“그래.”
“신녀님께서, 본래 악마였다는 말입니까?”
“신녀도 아니었겠지. 이 몸은 천사를 강림시킬 능력도 없으니 말이다.”
파피는 한참 침묵을 이어가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절 구하러 오신 겁니까. 그것도 본인의 목숨을 담보로.”
“그댄 유저가 아니지 않은가?”
“…?”
“부활도 불가능한데, 당연히 구해야 하겠지!”
루이즈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었다.
자각한 적은 없지만, 루이즈는 파피를 가족과 같은 존재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 한 마디의 대답으로도 루이즈의 감정은 파피에게 전해졌다.
오히려 그 때문에 더 혼란스러워졌지만.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어째서냐?”
“악마는 모두 사악하기 때문입니다.”
“그… 미안하다. 그대에게 사악한 짓을 하고 말았구나….”
“신녀님께서 사악하지 않은 걸 알기에 지금 혼란스러운 겁니다.”
파피는 악마에게 속았던 때를 잊지 않았다.
보유한 신성력이 마기로 바뀌고, 그 탓에 주위로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던 때.
영원히 치부로 남을 그 사건을 루이즈에게도 알려주었다.
모든 사정을 들은 루이즈는 괜히 자신이 미안한 듯 의기소침해졌다.
“물론 어딘가엔 나쁜 악마도 있겠다만….”
“알고 있습니다. 신녀님은 목숨을 걸고 절 구하셨지요.”
순간 파피는 감옥에 함께 갇혀 있던 한 죄수의 말이 떠올랐다.
천공과 심연을 선악의 경계로 나눌 수 없다고 했었나?
지금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운명이란 황당할 만큼 우스웠다.
실제로 자신의 기도를 들어준 존재는 천사가 아닌 악마였으니.
“그대는 이제 어떻게 할 텐가?”
모든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을 때, 루이즈가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를 속였던 걸 용서받을 수 있을까?
악마인 걸 밝혔는데 아무 문제도 없을까?
그런 고민들을 하는 모습이 뻔히 보여 파피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루이즈의 얼굴을 다시 봐도 악마라곤 전혀 생각되지 않았기에.
“천공으로 돌아갈 순 없겠지요.”
예전에도 마음에 들지 않던 천인들이 지금에 와선 더욱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모르던 자신을 다짜고짜 죽이려던 자들이니까.
이대로 신녀님을 따라가면 그때부턴 진짜 반역자가 되어버리고 말 테지.
천공에 미련은 없지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긴 했다.
“제가 섬기는 천사가 한 분 계십니다.”
“천사…?”
“네. 어릴 때부터 전 그분에게만 기도를 바쳤죠. 신녀님을 따라가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 분을 배신하는 게 아닐까 두렵습니다.”
“누군지 물어봐도 되겠느냐?”
진실, 빛, 혹은 그들의 하수인 중 한 명.
루이즈는 그런 대답을 예상했지만, 파피의 입에서 나온 것은 전혀 다른 이름이었다.
“…지금은 ‘조화’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계신 것 같습니다.”
***
하늘다리 사건.
이번 일은 아스리안의 수많은 커뮤니티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우선,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현의 정체가 드러났다.
네 명의 사도들을 상대로 총이란 무기를 사용하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
그것만 해도 충분히 놀라웠지만 그로부터 몇 시간 뒤, 길드 임무 의뢰소에 갑자기 생겨난 퀘스트는 모든 커뮤니티를 다시 한 번 뒤흔들었다.
-쉐이드 길드가 어딘데?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길드.
그곳에서 의뢰한 퀘스트의 내용도 죽음을 각오해야 할 만큼 말도 안 되게 위험했다.
만약 퀘스트의 이름이 특별하지 않았더라면 대부분의 유저들은 그 의뢰에 관심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두 명의 이름이 유저들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다시 보상목록을 살펴본 이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퀘스트 보상으로 이런 장비가 주어지는 경우는 아스리안 최초로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총이라고?
-옵션 봐! 이거 방금 화제글에 올라온 그거잖아!
아스리안 커뮤니티들은 마침 ‘총’을 사용하는 현의 활약을 목격하고 시끄럽던 참이었다.
그 와중 현의 이름이 걸린 퀘스트에서 총이라는 보상이 등장했으니 유저들이 흥미를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아까 누가 저거 한 자루 만들려면 연구기관에 몇 억씩 주고 의뢰해야 한다 하지 않았냐?
-화제 글 보면 맞음. (링크)
-억 단위인거 확실함? 진짜면 지금 바로 하러 가게.
-ㄴ당연히 구라지 ㅋㅋㅋ 500자루가 넘는데 하나에 1억이라 치면 500억을 그냥 뿌린다고? 말이 되나 ㅋㅋㅋ
-ㄴ해석 : (나 혼자 할테니 님들은 제발 하지 말아주세요 ㅠㅠ)
또한 이 퀘스트는 성공과 실패로 판가름이 나는 것이 아니라, 등수로 우선권을 얻는 방식이었다.
등록된 총은 다 합쳐서 517자루.
517등 안에만 들 수 있다면 한 자루의 총을 보상으로 얻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또한 등수 내에 들지 못해도 퀘스트에 참가한 유저 모두는 수상한 보상을 얻을 수가 있었다.
[쉐이드 길드 포인트]-훗날 특정 장비 및 아이템과 교환하는 데 사용됩니다.
(※주의 : 현재 해당 포인트로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이 존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