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 Carry Support RAW novel - Chapter (130)
전환의 계기 (1)
“배울 건 배워야 합니다. 상대의 뛰어난 점이 있다면 받아들여야 하고요!”
간부진들이 모인 가운데, 엑스라지는 열변을 토했다.
언제나 침착하고 조용하던 그가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인원이 열 명도 안 되는 쉐이드 길드는 어떻게 가파른 급성장을 할 수 있었을까요? 시스템, 인재풀, 정보 수집력, 그 외 대부분의 지표들은 다크니스가 앞서는데도 말이죠.”
“…….”
“쉐이드 길드원들의 능력이 너무나 뛰어나서? 아뇨, 그것만으론 설명할 수 없어요. 열 명도 안 되는 유저들끼리 도시를 만들고, 관리하고, 전쟁의 판도까지 뒤바꾸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엑스라지의 입이 열렸다.
“그 차이는 바로 NPC입니다.”
쉐이드 길드의 근처엔 언제나 유저가 아닌 누군가가 있었다.
경계의 도시를 해골들이 지키고, 천인이 관리한다는 사실은 이미 유저들 사이에서 유명한 이야기였다.
카린타 섬에서 수만의 마물을 불러낸 것도 현이 친분을 쌓아둔 NPC의 힘이 분명했다.
“우리는 1.5세대 이상의 인공지능을 너무 간과하고 있었어요.”
유저가 NPC의 신뢰를 얻기란 쉽지 않다.
돈을 지불하면 용병을 맡아주고, 호감도를 올리면 숨겨진 퀘스트를 주기도 하지만, 딱 거기까지.
NPC들은 신기하리만큼 유저들을 비즈니스 관계로만 인식했다.
마치 유저가 그들을 데이터쪼가리로 인식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친해질 수 없었으니, 유저들은 점점 NPC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
“다크니스는 지금부터라도 그들을 포섭해야 합니다.”
하지만 NPC들 중에도 특별한 몇몇이 존재한다.
다른 자들보다 쉽게 감정에 휩쓸리는 극소수의 이들이.
단상에서 연설을 펼치던 천인과, 무섭도록 메이데이를 추격해오던 여기사의 표정은 놀랍도록 생생했다.
그리고 은발을 휘날리며 달리던 그 여인은… 누구보다도 절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들은 평범한 NPC들과 다른 존재다!
메이데이의 방송을 보던 엑스라지는 곧바로 그 사실을 직감했다.
다음 세대라 불리는 NPC들.
세계관의 핵심을 담당하는 그들이 바로 다크니스가 아군으로 만들어야 할 대상이었다.
“다 좋은데, 어떻게 그들을 포섭하겠단 거야?”
부길드장인 레이나가 질문을 던졌다.
“세계관 핵심 NPC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고, 만나도 포섭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잖아?”
그 말대로, 대부분의 유저들은 고위 NPC들과 접점을 갖기 힘들었다.
게다가 강한 힘을 지닌 NPC일수록 약자를 하찮게 보는 경향이 있었으니, 그들과 깊은 관계를 맺기란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러한 레이나의 의문에 엑스라지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성공해 본 사람이 방법도 가장 잘 알겠죠.”
“…?”
“현에게 물어볼 생각입니다.”
“…!”
좌중은 다시 침묵에 휩싸였다.
한참 만에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과연 그가 알려줄까요?”
“당연히 공짜로 알려주진 않겠죠.”
“그럼 어떻게….”
“메이데이가 현과 정보 거래를 하고 있거든요.”
시선이 주목된 가운데, 엑스라지는 천천히 중얼거렸다.
“현의 노하우를 얻으려면 우리도 동등한 가치의 물건을 제시할 수밖에 없어요.”
“설마…!”
“맞아요, 그 정보를 풀 생각입니다.”
너무나 꺼내기 아까운 패였다.
그 정보는 쉐이드 길드의 미친 성장을 견제할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기에.
하지만 다크니스의 앞날을 위해 엑스라지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
‘임시동맹이라고?’
지니의 이야기를 들은 현은 황당한 심정이었다.
갑작스런 다크니스의 제안은 솔직히 말해, 어이가 없었다.
‘동맹? 내가 굳이 왜?’
다크니스와 쉐이드는 경쟁자의 위치에 있다.
자신이 아스리안의 왕좌를 노리듯, 그들 또한 마찬가지다.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는 없는 법!
동맹 제안을 보낸 의도조차 의심스러워, 현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 제안을 거절하려고 했다.
메이데이의 귓속말이 도착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현, 메일은 읽어봤나요?!」
「어… 방금 그 용건으로 연락하신 모양인데…」
메일로도 모자라 귓속말까지 보내는 건가?
메이데이와 약간의 친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은 그것만으로 다크니스의 제안에 수락할 생각은 없었다.
「저희가 정보를 거래하지만, 동맹까지 맺을 이유까진 없잖아요? 그러니 안타깝지만 이번 제안은 없던 걸로….」
「아직 메일 안 읽어보셨군요!」
메이데이가 재빨리 소리쳤다.
「임시동맹은 정보거래의 연장선이에요! 메일에 적어둔 내용을 잘 보시면…」
「네…?」
「아니, 그냥 제가 지금 설명하는 편이 더 빠르겠네요!」
현은 어리둥절하면서도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이전에 현이 회귀자 길드의 동향을 알려달라고 말했잖아요? 최근에 특급 정보를 얻었어요.」
「특급… 이라고요?」
「네, 제가 연락드린 이유도 이 정보를 거래하기 위해서였죠.」
「무슨 내용인데요…?」
「회귀자들이 꾸미고 있는 음모에 관한 이야기에요.」
다음에 튀어나온 말은 현이 생각지도 못하던 내용이었다.
「그들이 경계의 도시를 무너뜨리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 현은 알고 계셨나요?」
「…!」
현의 표정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었다.
방금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 녀석들이 경계의 도시를 무너뜨릴 거라고?
「그게 정말인가요…?」
「거의 확실해요. 지금 그들의 계획이 1/3정도 완성됐다는 사실까지 파악한 상태니까요.」
「…….」
쉽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최근 살론의 보고에 따르면 도시의 치안도 점점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사건이 터질 전조조차 일어나지 않았는데,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모종의 계획이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는 걸까?
「임시동맹은 현이 그 사건을 해결할 때 다크니스가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제스처에요.」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메이데이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 외에 다른 의도는 없어요. 정말로.」
「…그렇군요.」
모든 이야기를 들은 뒤, 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데이가 원하는 것이 뭔지는 이미 파악한 상태였다.
거래는 서로가 동등한 가치의 물건을 필요로 할 때 이루어진다.
저울의 균형추가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게 되면 서로간의 신뢰는 깨지고, 한 번 깨진 관계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쪽은 뭘 원하죠?」
메이데이는 귓속말로 답하지 않았다.
띠링! 대신 꼼꼼히 준비해 둔 장문의 메시지를 전송했다.
「…….」
현은 전송된 메시지를 천천히 읽어나갔다.
메시지에 적힌 것은 NPC들의 이름.
대부분은 자신의의 머릿속에 담겨있을 만큼 유명한 녀석들이었다.
도중에 한 곳에서 시선을 멈추고, 잠시 깊은 생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전부 포기하는 게 좋아요..」
「네…?」
「이 녀석들, 고집이 너무 세서 호감도조차 못 쌓을 걸요.」
「그, 그런가요…? 하지만…!」
당황한 메이데이의 귓가로 다시 한 번 현의 귓속말이 들려왔다.
「대신, 다른 이름을 하나 알려 드릴게요.」
「누구요?」
「그건….」
저울이 균형을 이루려면 양팔에 동등한 무게의 추가 놓여야만 한다.
제안을 받은 쪽이니까, 나중에 추를 올려놓는 정도는 상관없겠지?
「누구로 할지 생각 중이에요.」
현은 상대가 지닌 정보의 가치부터 파악해 보기로 했다.
***
무수한 길드들의 프라이빗 룸 포탈이 즐비한 중앙 광장은 경계의 도시에서도 가장 사람이 북적이는 장소였다.
극소수의 유저들만 아는 사실이지만, 쉐이드 길드의 프라이빗 룸도 이곳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게 소란스러운 번화가 한 곳에서.
한 제과점 주인은 평소보다 가게를 일찍 닫고 도시를 걷기 시작했다.
도시의 밤거리는 화려했다.
흑색 안개의 다리를 가로지르고, 마력등불이 마구 번쩍이는 예술의 거리도 지나쳤다.
가게를 나선 지도 벌써 20분. 그는 아직도 인적이 드문 거리를 걷고 있었다.
눈썰미가 좋은 자라면 벌써 이상한 점을 눈치챘으리라.
도시에서 장사를 허가받은 모든 사람들은 유저다.
하루의 일과를 마친 유저들은 곧바로 로그아웃하기에 집으로 귀가하는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 남자는 대체 20분이나 도시를 걸어서 어디로 향하는 중일까?
「현, 네 말대로 흔적을 찾았다.」
살론이 현에게 귓속말로 보고했다.
아니, 지금의 그는 살론이 아니라 ‘살귀’라는 이명을 지닌 고독한 암살자!
제과점 주인이 가게를 나선 순간부터 그를 쭉 미행해 오던 중이었다.
「좋아요, 계속 그대로 진행해 줘요.」
현 또한 귓속말로 대답했다.
메이데이에게 받은 메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회귀자 길드는 경계의 도시 안에서 모종의 계획을 꾸미고 있다.
-아직까지 계획이 발각당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현과 아인의 위치가 함께 특정될 때만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크니스의 스파이 한 명이 작성한 보고서.
현은 보고서를 참고하여, 아인을 데리고 프라이빗 룸 근처의 카페에서 시간을 때우는 중이었다.
물론 데이트 같은 것은 아니고, 누군가의 시선을 교란시키려는 목적이지만 말이다.
「크흠, 확실히 이 근처엔 마물들이 전혀 배치되어 있지 않군. 수상한 짓 벌이기 딱 좋겠어.」
살론이 신음을 흘렸다.
제과점 주인의 행동들이 현에게 미리 들은 것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계의 도시에도 뒷골목이 존재했을 줄이야.」
「살론, 혼자 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현의 물음이 이어지자, 살론의 목소리엔 곧바로 웃음기가 섞이기 시작했다.
「흐흐, 현, 아직 못 들어본 건가? 살귀가 지나간 곳엔 십자가만 남는다는 소문을.」
「십자가…?」
「이 몸이 다녀간 곳에 남기는 표식이지.」
「음… 대충 뭔지 알 것 같은데.」
현은 살론이 자신의 역할에 너무 몰입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다.
「어쨌든 너무 일찍 들키면 안 돼요.」
「큭, 그거야 내 전문이지!」
살론은 차가운 눈동자로 주위를 살폈다.
이 뒷골목의 감시자는 총 다섯 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곧 알 수 있었다.
그렇다, 자신의 사냥감도 총 다섯 마리!
살론은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한 사냥감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터벅, 터벅.
가만히 밤거리를 걷던 살론의 신형은 어느 순간 사라졌고… 다시 나타났다.
정말로 아무런 소리도, 비명도 들리지 않았다.
눈을 잠깐 감았다 뜨니 다섯 명의 감시자는 네 명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쉽군.’
단검을 숨기며, 살론은 허탈한 기분을 느꼈다.
암살자는 침묵 속에서 살아간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것은 너무나 조용했다.
나머지 네 명은 아직까지도 동료의 죽음조차 모르고 있지 않은가?
이어서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다음 사냥감을 향해 걸어가던 살론은.
‘투명화,’
스르륵, 다시 한 번 공기 속에 자신의 몸을 녹였고.
‘콤보 메모라이즈!’
-최근 1시간동안 가장 높았던 콤보수치와 동일한 효과를 획득합니다.
보이지 않는 검이 급소를 관통하자, 사냥감은 또다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빛으로 흩어졌다.
‘너무 쉬워.’
스킬의 쿨다운이 돌아올 때마다 하나의 영혼이 사라졌다.
그렇다, 살론은 지금 ‘투명화’를 자신의 스킬처럼 사용하는 중이었다.
혼돈의 힘으로 맞바꾼 투명화는 PK에 가장 최적화된 스킬.
자신의 일격에 소리 없이 픽픽 죽어나가는 적들을 보니, 살론은 마치 전설의 암살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뒷골목의 감시자 다섯이 모두 죽음에 이르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영혼이 사라진 바닥마다 하나같이 새겨진 십자가.
그 흔적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살귀가 다녀갔음을 누구도 알지 못하리라.
다음 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