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 Carry Support RAW novel - Chapter (144)
빛의 사원 (2)
공감의 흐름
메인 퀘스트가 끝나고
시간이 멈춘 동안
재국으로
국경에서의 습격
조화에 숨겨진 것들
북족의 차가운 도시
조화의 대신전
3차 전직
기적의 힘 (1)
빛의 사원 (2)
사원 꼭대기로 향하는 길은 전투의 연속이었다.
파피의 마법은 일행을 끝까지 숨겨주지는 못했다.
아니, 들키지 않고 탑의 꼭대기까지 도달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해!’
그러니 현은 잠시도 발을 멈출 수 없었다.
라비우스를 사냥한 효과가 사리지기 전에, 그리고 적들이 몰려들기 전에 퀘스트를 마치기 위해서!
‘앞으로 10분 내로…!’
화악! 마기가 공간을 찢었다.
일행을 이끌며 쇄도하는 자신의 모습을 본 현은 문득 예전 아스라 시절 군대를 이끌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탑을 오르던 일행과 마주친 정예 경비병들은 소리칠 새도 없이 목숨을 잃었다.
천인도 아닌 자들이 어둠의 검을 앞세운 현과, 그를 보좌하는 아인의 진격을 저지할 수는 없었으니까.
‘충분히 할 수 있어!’
몸이 가볍다.
600이 넘는 민첩이 전신을 깃털처럼 가볍게 만들어 주는 덕분이다.
몇몇 유저들 사이에선 너무 높은 민첩은 비효율적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
일정 수준에 이르면 민첩 수치와 속도가 정비례하지 않기 때문이지만….
현은 그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민첩으로 인한 속도의 차이를 체감할 수는 없어도, 순간 가속도는 확연히 달라진다.
그렇다, 민첩이 600이 넘어가게 된다면 이렇게 관성을 무시하는 움직임도 가능해진다.
서걱!
길목을 지키던 경비대장의 목이 간단히 잘렸다.
현은 정면으로 달려드는 척 그의 후방을 잡았고, 다시 측면에 나타나 검을 휘둘렀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이중 페이크 공격!
마치 스킬처럼 보이는 이 기술은 현이 아스라 시절 뼈를 깎아내는 연습 끝에 만들어낸 최고난이도의 무빙 중 하나다.
유저든, NPC든, 죽고 나서도 자신이 어떻게 당했는지 깨닫지도 못하겠지.
“아인, 지금 때려 줘.”
“으, 응…!”
경계의 낫이 현을 강타할 때마다 그림자 방패의 이펙트가 웅웅 빛났다.
아인은 딜러일 뿐 아니라 서포터의 역할도 겸해주고 있었다.
끊임없이 차오르는 마기 덕분에 현의 손에 쥔 어둠의 검은 시들 줄을 몰랐다.
“현, 내가 맡은 곳은 다 정리했다!”
마침 살론의 외침이 들려왔다.
콰아아! 거대한 장창을 든 그의 전신에 마기의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귀찮을 것 같은 녀석들은 이 몸이 전부 잡아 두었지!”
그리고 말투로 보아 루이즈인 듯한 살론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둘은 탑의 통신병들이나 마법진의 관리자들을 최우선적으로 처리하라는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모양이었다.
“잘했어. 그렇게만 해.”
살론에게 동화한 루이즈는 죽음 그 자체를 불러오는 암살자가 되었다.
‘콤보’와 ‘검은 바람’.
속도를 높여주는 두 종류의 스킬이 중첩되자 루이즈는 그야말로 이동기를 난사하는 치트 플레이어가 되었다.
이동속도만 놓고 보면 600의 민첩을 지닌 자신보다도 더욱 빠를 것이다.
“나오너라.”
루이즈의 활약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녀의 중얼거림에 곳곳에서 마물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평생 마기에 더럽혀진 적이 없던 빛의 사원에 수많은 마물들의 울부짖음이 메아리쳤다.
팟!
이어서 루이즈는 ‘반전’을 사용해 자신을 드러내고 마물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이 후방을 맡아 주거라.”
“어둠의 분부를… 받듭니다.”
샤틴이 루이즈의 지시를 받들었다.
그 뒤편엔 유령기사, 리치 등, 수십 마리의 고위 마물들이 함께 무릎을 꿇고 있었다.
루이즈가 보다 약한 마물들을 소환하지 않은 까닭은, 천인과의 싸움에서 그들이 개죽음을 당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무리하면 안 된다. 위험할 것 같으면 반드시 내게 말해야 돼!”
또한, 고위 마물들에게도 안전을 우선시하라는 명령을 덧붙였다.
아니면 그들은 스스럼없이 자신들의 목숨을 던져버릴 지도 몰랐기에.
‘아직까진 순조로워.’
현은 잠깐 전황을 살펴보았다.
지니는 꾸준히 회복 및 버프 스킬을 사용하며 파티를 지원하고 있다.
파피 또한 사일런스로 소리를 죽여 루이즈의 암살을 돕거나, 환상 마법으로 적들의 시선을 분산시켜 주고 있었다.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완벽하게 맡아주고 있어.
덕분에 일행은 아무런 방해 없이 탑의 꼭대기를 향해 질주할 수 있었다.
‘…너무 순조로운 거 아니야?’
다시, 현의 마음속에 아까와 같은 불안감이 솟아올랐다.
이렇게 문제없이 메인 퀘스트가 진행되었던 적이 있었나?
아니면 공감의 힘이 너무 오버밸런스였던 걸까?
확실히, 공감이 없었다면 스탯 증폭은커녕, 가슴이 요동치는 탓에 정상적인 전투를 벌일 수도 없었겠지.
‘잠깐만.’
그렇게 상황을 납득하려던 순간, 현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빠르게 탑을 오르는 데만 집중한 나머지 그동안 인식하지 못하던 의문이었다.
‘우리가 사원에 들어오고 나서 천인을 마주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
물론, 탑 곳곳의 경비병들이나 관리자들 사이에 F급 천인 몇몇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말하는 건 그런 자들이 아니었다.
일행을 몰아넣을 만큼 강력한 천인.
특히, C급 이상의 천인은 여태껏 한 명도 등장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순조롭다는 생각이 든 까닭은 그들의 방해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사원의 경계가 약해져 있을 거란 기만의 말이 있긴 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곤 생각지 않고 있었다.
‘침입자가 들어왔는데 천인이 한 명도 안 온다고?’
아까 번개마법을 사용했던 자들이 천인의 전부였을까?
그렇다면 ‘시간정지’라는 상태이상에 지레 겁을 먹고 쫓아오지 않는 걸지도 모르지.
천인들은 막강한 힘을 지녔을 뿐 인간보다 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겁쟁이니까.
그래, 기만의 말대로 빛의 사원이 빈 집이 되어버렸다면 천인을 마주치지 않는 것도 아주 이상한 건 아닐지도.
“도착이다!”
현이 여러 가능성을 떠올리던 때, 마침 루이즈의 외침이 들려왔다.
잔잔한 안개가 옥상에 도착한 일행을 맞이했다.
사원에 들어온 일행이 탑의 꼭대기에 도달하기까진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저거다!’
현은 곧 옥상 한가운데 새겨진 기하학적인 문양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 어둠의 힘을 봉인해 둔 마법진.
루이즈를 마법진 위에 올리는 순간 어둠은 힘을 되찾고 그걸로 메인 퀘스트는 마무리될 것이다.
“여기가 끝인 가요…?”
“좀 더 위험할 줄 알았는데요.”
지니와 타르타르가 그리 중얼거렸다.
사원의 꼭대기에 도달하는 것이 생각보다 수월했다는 사실은 모두가 느낀 듯했다.
퀘스트를 시작하기 전, 현이 아주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던 걸 고려하면 조금 싱거운 결과였다.
“우리가 너무 강해져 버린 건지도 모르지.”
살론이 한 마디를 보탰다.
그는 루이즈와의 동화도 해제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쉬운 퀘스트는 아니었잖아. 우리가 평범한 파티였다고 생각해 봐. 사원에 들어올 수나 있었겠어?”
정말 살론의 말대로, 일행의 전력이 넘쳐났던 것이라면 문제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니, 오히려 잘 되었다.
경계가 이 정도로 약하다면,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것을 넘어 사원을 통째로 무너뜨리는 일까지 가능할 테니까.
오늘 당장 세세리 오빠의 원한을 갚아 줄 수도 있겠지.
“어쨌든 되었다.”
루이즈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드디어 때가 된 모양이구나.”
우웅. 우우웅.
탑의 옥상 정중앙에 새겨진 기하학적인 문양 위에선 검은색의 빛이 뿜어 나오고 있었다.
마그마를 분출하기 직전의 화산처럼, 마법진 안에 마기가 들끓고 있는 것이다.
루이즈는 마법진에 갇혀 있는 마기를 빤히 바라보았다.
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다.
저것은 어둠의 땅이나, 경계의 도시에 흐르는 것처럼 정제되지 않은 신력이 아니야.
오히려 가장 순수한 어둠의 기운.
당장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어둠의 힘이다.
마법진 위에 올라서는 순간 그 기운은 주인을 찾아 원래의 장소로 돌아가리라.
그 때.
“이상한 기분이다.”
마법진으로 향하던 루이즈의 잠시 발이 멈추었다.
그녀의 얼굴엔 조금 쓸쓸한 미소가 담겨 있었다.
“너무도 긴 시간일 텐데 그대에겐 찰나에 불과하다니….”
“…기다릴 수 있겠어?.”
“물론이다.”
루이즈에게 특별히 해 줄 말은 없었다.
몇 년이 걸리든, 설령 몇 십 년이 걸릴지라도, 기다려 달라는 말밖에는.
“그러면 잠시 이별이다.”
이후 루이즈는 천천히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잠깐만…!”
바로 그 순간, 아인이 소리쳤다.
현은 이상한 직감을 느꼈다.
라비우스를 잡은 이후부터 계속 멍한 상태였던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나 또렷했고, 또 다급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유 없이 심장이 덜컥 떨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지금, 목소리가 들렸어!”
이어지는 아인의 말에 불안감의 원인을 깨달을 수 있었다.
“케이드리알이야!”
“뭐라고 했는데?!”
“당장 쟤를 멈추래! 그리고 스크롤을 써서 이곳을 벗어나라고 말했어!”
아인의 이야기로부터 현은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한 걸까?
어쨌든 확실한 것은, 케이드리알의 말은 그냥 무시할 만큼 가볍지 않다는 사실이다.
“기다려 루이즈!”
현은 루이즈를 향해 고개를 휙 돌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마법진으로부터 끌어내릴 생각이었지만.
[8503의 피해를 입었습니다!]“웃…!”
날카로운 것에 베이는 감각을 느끼고 재빨리 손을 뺐다.
콰아아아, 마법진으로부터 갑자기 솟아오른 기운은 순식간에 소용돌이를 이루고 있었다.
“루이즈, 들려?!”
불러 봐도 루이즈는 대답이 없었다.
콰아아아! 마기와 신성력이 뒤섞인 회오리에 감싸인 그녀는 잠에 빠진 것처럼 가만히 눈을 감고 있을 뿐.
띠링! 그와 동시, 현의 귓가엔 알람소리가 들려왔다.
어째서일까.
끝나야 할 메인 퀘스트가 새로 갱신된 것이었다.
-루이즈가 자신의 힘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마기에 신성력이 섞여 있습니다!
-어둠의 힘을 정제하기 위해선 약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천공의 공세로부터 그녀를 보호하세요!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
백색의 띠가 아스라를 뒤덮은 것처럼, 혹은 검은 안개가 어둠의 땅을 감싸고 흐르는 것처럼.
마법진으로부터 솟구친 흑백의 기운이 라딕스 섬을 통째로 뒤덮은 것이었다.
그것은 루이즈가 ‘힘의 정제’를 하며 일어나는 현상이었지만, 일행이 그 사실을 알 리는 만무했다.
‘뭐야…?’
현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눈앞에 흘러가는 메시지의 폭포를 지켜보았다.
한 번 읽어선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문장들.
허나, 그 문장들을 읽을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신탁이 정말이었군.”
뒤편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현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강한 적대감을 눈에 담은 수상한 남자가 흑백의 기운이 요동치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빛께서 미래를 예견하신 것이겠죠.”
위쪽에도 모르는 얼굴이 등장했다.
고풍스런 의복을 차려입은 그의 손등에 빛나는 것은 강렬한 번개의 문양.
몇 번이나 보아온 천인의 문양이다.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야…?!’
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여기까지 루이즈를 데려다 주면 끝나는 거 아니었어?
각성에 추가로 시간이 걸릴 거란 말은 없었잖아….
게다기 이 녀석들은 자꾸만 어디에서 튀어나오고 있는 거야?!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어둠의 종자들이여.”
현이 다급히 머리를 굴리는 와중에도 새로운 천인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었다.
앞에서도,
“당신들의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리고 뒤에서도.
“여태껏 네놈들의 악행을 가만히 지켜보느라 고통스러웠다. 이젠 죗값을 치러야겠지.”
일행이 수십 명의 천인들에게 둘러싸이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루이즈가 잠들어 있는 방향을 향해 손이나 지팡이를 겨누었다.
그 수는 총 여덟 명.
하지만 고작 여덟이라 생각할 수 없는 까닭은 그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었다.
손등에 새겨진 문양의 밝기로 추측컨대 최소 C~D급, 혹은 그 이상일 가능성도 있었다.
아까 번개 마법을 쓰던 천인들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강하다는 뜻이었다.
‘함정이다!’
천인은 1.5세대 인공지능. 평범한 NPC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유연한 판단력을 지니고 있다.
어쩌면, 이쪽이 귀환 스크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루이즈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붙잡아 둔다는 발상을 떠올리진 못했겠지!
입술을 깨문 현은 자신이 외통수에 걸렸음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