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 Carry Support RAW novel - Chapter (22)
기사단장의 퀘스트
일행은 마력 승강기를 타고 기사의 관 최상층까지 올라갔다.
건물 전체가 웅장하고 귀족적인 분위기지만, 이곳 최상층은 다른 곳과 비교해도 더욱 화려했다.
그야말로 제국이라는 분위기가 물씬 피어난다.
고딕 양식으로 세워진 거대한 두 기둥의 사이로 향하는 통로에는 두 명의 기사가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었다.
“현아… 여긴 분위기가 좀 무거워 보이네…?”
“그러게요. NPC밖에 없는 것 같군요.”
프렉티스와 지니가 중얼거렸다.
둘의 말대로 최상층의 장소는 시간마저 멈춰있는 듯 정적이 흐르는 엄숙한 분위기였다.
누가 봐도 통로의 방 안에는 굉장히 높은 사람이 머무르는 공간이라 추측할 수 있었다.
“제국의 제 2기사단장이 있는 곳이야. 경계가 삼엄한 건 당연하지.”
“그렇담 굉장히 높은 사람 아니야?”
“맞아, 기사단장 정도쯤 되면 상당한 네임드 NPC거든.”
조금 전, 현은 기사단장의 히든 퀘스트를 받아내겠다고 장담한 뒤였다.
평범한 유저가 대면하기도 힘든 인물에게 어떻게 접근하겠다는 것일까?
아인을 제외한 둘은 의구심 섞인 눈빛으로 현의 다음 행동을 지켜보았다.
“방법만 알고 있으면 어려운 것도 아니지, 내 실력을 보여줄 테니 다들 지켜보라고.”
현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아인을 불렀다.
아인은 자신의 욕망과 반대되는 것이 아닌 것에 한해 현의 부탁을 거절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동화 하려는 거지?”
“맞아, 잠깐 몸 좀 빌려 달라고.”
팟-! 갑자기 현의 몸이 빛으로 흩어지자 프렉티스와 지니는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현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여기.”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는 둘에게 아인이 자신을 가리켰다.
“지금의 내가 현. 동시에 아인이기도 해요. 두 명이 하나의 신체에 담겨 있는 거죠.”
지니와 프렉티스는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인의 목소리에는 현 특유의 말투가 녹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화라는 스킬을 설명해 주었다.
한 개의 몸에 두 영혼을 담아내는 스킬.
동화하는 동안 모든 감각, 심지어 촉감까지도 공유된다는 사실을 듣고 난 지니는 충격적인 눈동자로 아인을 바라보았다.
그럼… 현이 아인의 몸을 좋을 대로 하고 있다는 건가?
순간, 현의 인성에 관련된 평가가 잠시 흔들릴 뻔 했다.
“아인은 이상한 짓 당하거나 하진 않나요?”
“무슨 소립니까. 이상한 짓은 오히려 아인이 하는데요.”
“네…? 그게, 무슨 말….”
“아, 아닌데? 혀, 현 갑자기 무슨 거짓말을 하는 거야…!”
“있지 않냐? 얼마 전만 해도.”
현과 아인이 같은 몸을 이용해 서로 목소리를 높였다.
목소리가 똑같은데도 누가 말하는지가 확실히 구분되는 것이 신기했다.
지니는 다시 한 번 우려하며 물었다.
“아인, 당신 괜찮은 건가요…?”
“어… 뭐 그냥?”
갑자기 아인은 시선을 피하며 침묵했다.
그런 아인의 모습으로부터 무언가 감을 잡은 지니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잠깐, 두 명이 한 몸을 조종하다는 건 설마!”
옆에서 프렉티스가 손뼉을 마주쳤다.
“영상에서 두 가지 움직임이 섞여 있었다고 생각되던 건… 한 쪽이 너였구나! 그래, 말도 안 되는 멀티태스킹의 비결이었어!”
동화라는 스킬을 보여준 것은 제법 여파가 컸다.
그만큼 상식을 벗어나는 스킬이며 서포터인 현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스킬이기도 했다.
“다들 잠깐 기다리고 있어요.”
아인의 몸에 동화된 현은 경계를 서고 있는 기사에게로 다가갔다.
히든 퀘스트를 받아올 시간이었다.
현이 다가가자 기사들은 곧바로 창대를 X자로 교차시켜 길을 가로막았다.
“이곳은 지날 수 없다.”
“유저인가? 돌아가게, 여기는 유저에게 출입이 허락된 장소가 아니다.”
기사들에게 가로막혔음에도 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히든 퀘스트를 발동시키는 데에는 언제나 몇 가지 조건이 존재한다.
지금 필요한 조건은 바로 그랜드마스터 이상의 권한을 가질 것, 천인의 문양을 획득하는 것, 그리고 키워드를 말할 것.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니 현에게는 여유가 가득했다.
“후후… 잠시 기사님께 전할 말이 있습니다.”
“음…?”
현이 말을 꺼내는 순간 기사의 머릿속에 경계심이 솟아올랐다.
겉모습은 어리고 순수해 보이는 작은 소녀.
하지만 그런 소녀의 흐느적거리는 말투가 묘하게 불쾌함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이 참극에 가까운 언밸런스는 현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탓이었다.
「……」
아인은 그저 자신의 몸을 멋대로 움직이는 현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또한, 프렉티스와 지니도 멀리서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자신의 모습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오직 현 자신 뿐.
현은 수상한 녀석을 바라보는 기사의 시선을 깨닫지 못하고 준비해온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후, 저는 천인 라디에트님의 전언을 기사단장님께 전하려고 합니다. 여기 신분증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랜드마스터 등급인데다 천인의 문장도 가지고 있지요. 그런고로… 잠시 이곳을 지나가겠습니다.”
“불가하다.”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 네, 뭐라고요?!”
“불가능하다고 했다.”
“왜요?”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군.”
“아니 잠깐만요. 뭔가 이상한데…?”
“귀찮게 하지 마라. 지나갈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기사의 대답에 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히든 퀘스트를 발동시키는 대화의 흐름이 아스라에서 기억하던 것과 한참 어긋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억하기론 확실히 모든 조건을 빠뜨리지 않고 말했음에도 눈앞의 기사에게 대화를 거부당하지 않았는가.
‘어떻게 된 거지… 내가 모르는 조건이 또 있었나?’
생각해보니 이상한 점이 또 있었다.
지금의 기사는 현이 입을 벙끗하기만 해도 험악한 인상을 쓰며 쫓아내려고 했다.
조건이 틀리더라도 대화 자체를 거부당하는 일은 없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설마, 새로운 패치로 히든 퀘스트 자체가 막혀버린 것일까?
혼란에 빠진 현을 멀리서 지켜보는 둘이 있었다.
“과연 히든 퀘스트는 해금 방식도 평범하지 않군요… NPC의 심기를 건드려서 자신을 인식시켜야 하는 걸까요?”
“그게 아니라,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지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고, 프렉티스는 갸웃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프렉티스의 예상대로 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일행이 있는 장소로 되돌아왔다.
이후로 계속 대화를 시도해본 것 같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아인의 목소리를 사용해 ‘이럴 리가 없는데….’ 라는 말을 자꾸만 중얼거렸다.
‘뭐가 잘못된 거지…? 그랜드마스터 이상, 천인, 라디에트 그리고… 또 필요한 뭐가 있었나…? 분명 없는데 말이야.’
현이 생각지 못했던 것은 바로 아스리안이 아스라 때보다 더욱 발전한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스리안에서는 NPC들의 인공지능이 더욱 발전된 만큼 그들도 유저의 모습을 오감으로 느끼고 판단한다.
경계를 서는 기사의 입장에서 중2병 걸린 것 마냥 실실 웃는 수상한 자를 통과시킨다?
기사의 의무를 내팽개친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연유로 입구 컷을 당했던 것이지만 현은 첫인상부터 실패했다곤 전혀 생각지 못하니 고민해 봤자 해답을 찾을 리가 만무했다.
프렉티스가 슬쩍 조언을 건넸다.
“…진정하고 다시 해보는 게 어떨까? 조금 더 차분한 말투로 말야.”
아인이 불쑥 말했다.
“내가 해 볼까?”
“안 될 거야.”
현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누가 하든지 마찬가지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패치 때문에 막혔다고밖에 생각할 수밖에 없어.”
“그래도… 내 연기력이 현보다는 낫잖아,”
“후… 정 믿지 못하겠으면 뭐,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없겠지.”
2차시도.
현은 동화를 해제하고 아인에게 모든 걸 맡겼다.
아인은 잠시 기다려 경비 기사가 교대를 마치기를 기다렸다.
현이 삽질을 해둔 상대로는 설득할 가능성이 없었기에 당연한 판단이었다.
이윽고 교대가 끝났고, 아인이 들어서려는 순간 기사들은 이번에도 통로를 가로막았다.
“유저는 들어오지 못한다.”
“부탁. 하나.”
“음? 부탁?”
아인의 말은 짧은 단어 위주로만 구성되어 있었지만 적어도 현이 내던 것처럼 음침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청아한 음색 덕분에 누가 봐도 ‘나이대의 소녀’라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기사단장을 만나고 싶어.”
“흐음… 그건 힘들겠군. 단장님은 아무나 뵐 수 있는 분이 아니란다.”
“하지만… 천인.”
“천인?”
“천인 라디에트님의 전언을 전해야 한다고 들었어.”
의외로 단어 하나씩 끊어 말하는 아인의 화법이 효과가 있었다.
천인을 언급한 동시, 아인의 말에 기사는 진중한 표정이 되어 되물었다.
“정말인가?”
“그래. 이게 증거야.”
아인은 자신의 손등을 내밀었다.
물결치듯 흔들거리는 푸른 번개의 문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인의 문양. 평범한 천공의 문양과는 차별화된 룬이 새하얀 빛을 내뿜고 있었다.
아인의 말에 절대적인 신뢰가 생겨나는 순간이다.
“이것은…!”
아인의 손등의 룬을 목격한 기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확실하군, 단장님의 방으로 안내하마.”
“잠시만.”
아인은 슬쩍 뒤를 돌아 나머지 일행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동료가 있는데, 함께 가도 돼?”
“음… 문제없다.”
후훗, 아인은 일행을 돌아보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현은 어이없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뭔데? 그냥 통과되는 거지…? 기사들마다 되는 놈이 있고 안 되는 놈이 있는 건가?”
“뭐, 됐으니 고민할 필요 없잖아.”
프렉티스가 현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웃었다.
현은 오랫동안 생각했지만 한참이 지나도 영문을 파악할 수 없었다.
프렉티스의 말대로 어쨌든 계획대로 진행되었으니 상관없으려나?
일행은 재빨리 일어나 아인을 따라 들어갔다.
***
모두는 곧 기사단장과 대면했다.
출입이 허락된 이유는 네 명의 힘을 합쳐도 암습이나 기습의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사단장은 현재 시점에서 유저보다 압도적으로 강력한 네임드 NPC였다.
다행인 점은 아스리안의 공용어에 경어체가 존재하지 않기에 아인이 반말을 지껄여도 기사단장과 대화하는데 차질이 없다는 것이었다.
기사단장 올리는 아인의 이야기를 경청한 뒤에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허어, 심연의 세력이 날이 갈수록 사악한 짓을 꾸미려고 하는군. 허나, 라디에트님이 자네를 눈여겨보았다고? 그건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천인의 눈은 틀리지 않으니까.”
갑자기 기사단장은 인상을 찌푸렸다.
중요한 일정이 잡혀 있어 대부분의 인력이 빠져나가 있었기에 기사단은 지금 공백 상태에 가까웠다.
하지만 소녀의 말대로 심연 세력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면 한시라도 빨리 대응해야만 했다.
그것이 바로 현이 지금밖에 퀘스트의 기회가 없다고 판단한 부분이었다.
“인원이 모자라니 어쩔 수 없지. 바쁘지 않다면 그대들이 나의 의뢰를 받아 주겠나? 우선은 자네들에게 하나의 정찰 임무를 맡기려고 한다.”
띠링- 기나긴 대화가 끝났을 때 모두의 시스템 창에 메시지가 한꺼번에 떠올랐다.
-놀랍게도 제국의 기사단장이 유저에게 의뢰를 맡겼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최초의 일이 아닐까요? 의뢰의 내용은 특정 장소를 정찰하는 것입니다. 단장의 말에 따르면 ‘악의 씨앗’이 피어난 장소라고 하는군요. 단장의 퀘스트는 정말 흔치 않은 기회랍니다!
[보상]-천공 명예 훈장 X 10
-성과에 비례하여 스킬 포인트 획득 (최소 +1 ~ 최대 +10)
-성과에 비례하여 신뢰도 상승
“오우!”
퀘스트 보상 내용을 확인한 프렉티스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이런 거 처음 봤어. 스킬 포인트를 10개까지 준다고?!”
“뭐 그건 최대수치인 경우지만.”
“이건… 굉장하네요.”
지니의 반응도 프렉티스와 크게 다르지 않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아스리안을 플레이하며 이 정도로 통 큰 보상을 본 것은 난생 처음.
천공 명예 훈장 10개란 ‘천공 상점’에서 유니크 아이템 하나 정도를 구입할 수 있는 굉장한 보상이었다.
게다가 스킬 보너스까지!
현과 아인은 스탯이나 스킬 포인트를 보너스로 주는 상황을 제법 경험했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유저들은 그렇지 않았다.
‘정말로 이런 퀘스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공유할 수 있다고…?’
지니의 생각이 깊어졌다.
앞서 몇 번 오해할 뻔 했지만, 아마도 이것이 그의 본모습이 확실했다.
현에게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그가 의식하지 않았다 해도… 무작정 받기만 할 수는 없어!’
스타더스트 내에서도 지니는 계산이 빠르기로 유명했다.
남들보다 빠르게 경중을 판단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덕분이었다.
지니는 이번에도 순식간에 계산을 마쳤다.
보상이 아무리 좋다고는 하나, 현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더욱 큰 이득이라고.
그렇다면 자신은 다음에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
‘…….’
지니가 잠시 눈을 감은 채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동안 기사단장의 말이 이어졌다.
“악의 씨앗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일행은 고개를 저었다.
기사단장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퀘스트에 필요한 내용의 설명이 시작되었기에 모두는 기사단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악의 씨앗이란 한 존재를 지칭하지. 그것으로부터 악마가 태어나고 심연의 세력들이 힘을 얻는다.”
“씨앗이라… 좀 불길한 단어네.”
“그래 불길하지. 하지만 씨앗이기에 그 존재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아. 교활하게도 모습을 숨기고 있다.”
단장은 숨을 고르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소문에 의하면 그것은 평소에는 평범한 소녀의 형상을 하다가 특정 상황에 본색을 드러낸다고 하더군.”
‘소녀라고…?’
그 말에 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다. 씨앗이라는 악마는 인간 소녀의 형상을 하고 있기에 인간의 무리에 섞여 있더라도 쉽게 발견할 수 없다지만… 한 가지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현은 기사단장의 말이 이어질수록 불안한 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악마, 그리고 소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오직 한 사람의 얼굴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으로 이어진 기사단장의 말을 듣자마자, 현은 자신의 불안이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로 태양의 힘을 빌리는 방법이지. 씨앗은 햇빛 아래에서 악의 형상을 발아한다. 이것이 천사로부터 받은 신탁이라네. 그대들에게 의뢰한 정찰도 그곳에 악의 씨앗이 출몰했다는 정보가 들어왔기 때문이야.”
현의 예감은 적중했다.
기사단장이 설명하고 있는 인물은 루이즈가 분명했다.
그렇다, 처음 루이즈를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태양에 닿으면 안 되는 마법, 저주에 걸려 있었다.
우연이라면 좋겠지만 그럴 확률은 낮았다.
“현…?”
안색이 굳은 현의 모습을 발견한 아인이 당황해 했다.
이 자리에서 자세히 묻지는 않았지만, 현은 항상 붙어 다녔던 자신조차 쉽게 볼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
현, 아인, 프렉티스, 그리고 지니까지.
급조된 파티였기에 간단한 준비를 마치고 나서 ‘단장 퀘스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스타더스트 게임단에 소속된 둘도 주말인 오늘은 자유롭게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악의 씨앗이라….’
퀘스트 장소로 이동하는 중에도 현의 머릿속은 여러 생각들로 복잡했다.
얼마 전.
아니, 아스리안의 시간으로 치면 5년도 더 지난 날.
던전에서 홀로 울음을 터뜨렸던 루이즈의 모습은 마치 어미를 잃은 작은 동물 같았다.
떨리던 목소리로 자신과 함께 가주지 않겠느냐 묻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 녀석이 정말 악마라고?’
악마란 순수할 정도로 사악하며 교활한 존재들이다.
죽이는 것에 거부감을 갖지 않으며 세상의 혼란을 보며 쾌락을 얻는다.
아스라에서 악마들은 인간을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자신들을 숭배하는 인간, 그렇지 않은 인간.
숭배하는 건 대부분 심연 세력을 택한 ‘유저’들. 혹은 몇몇 괴짜 NPC들이지만 그렇다고 악마들이 심연의 유저들에게 호의적인 것도 아니었다.
복종하는 인간들은 그저 장기말, 그렇지 않은 인간들은 죽여야 할 대상이다.
모든 악의 결정체라는 말이 가장 정확히 악마를 부르는 말이리라.
루이즈의 성격상 그녀가 악마라고 생각하긴 힘들었다.
‘뭐가 어떻게 꼬여 있는 건지….’
아스라 시절과 비교해, 기사단장의 퀘스트는 내용과 목표는 동일하나 비롯한 사소한 설정들이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특히, 루이즈에 관련된 내용은 이전에 없던 것이다.
패치 이후 아스리안의 역사는 어째선지 약간 뒤틀린 듯했다.
심연, 악마들의 세력이 더욱 강성해졌고, 천공과 심연 사이의 대립도 훨씬 날카로워졌다.
게다가 ‘루이즈’라는 정체모를 NPC도 생겨났으니 현이 기억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세상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이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고민해도 지금은 답이 없으려나.’
달라진 부분에 대해선 예전의 지식을 그대로 가져와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다.
과거는 참고로만 사용할 수 있을 뿐.
‘곧 알게 되겠지. 루이즈를 만날 수만 있다면….’
그렇다, 루이즈를 만나고 나면 이 답답한 실타래가 전부 풀어질 것만 같았다.
기사단장의 설명으로부터 추측하면 악의 씨앗이란 바로 루이즈를 지칭하는 듯하니… 씨앗의 흔적을 따라가면 루이즈의 흔적을 찾을 수 있겠지.
‘일단은 퀘스트에만 집중하자.’
그렇게 현은 일행을 데리고 퀘스트 장소를 향해 발을 옮겼다.
현을 포함한 일행은 퀘스트 장소로 향하기 위해 먼 곳까지 여정을 온 상태였다.
기사단장이 언급한 악의 씨앗이 위치하는 장소는 북극 근처의 루루메아 산맥.
원래의 장소로부터 수천 킬로미터만큼 떨어진 곳이었기에 텔레포트로 이동해야만 했다.
극지방의 끝자락인 외지에는 일 년 내내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텔레포트 게이트로부터 퀘스트 장소까지 이동하는 것조차 만만히 볼 수 없었다.
인적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데다 갖가지 몬스터들이 튀어나와 자잘한 전투가 계속 이어졌다.
“나, 마나가 다 떨어졌어.”
퀘스트 장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아인이 멋쩍은 듯 웃으며 중얼거렸다.
근접 마법사의 약점!
절망적일 정도로 마나 소모량이 많다는 점이 아인의 발목을 붙잡았다.
현과 아인이 그동안 사냥 노가다를 시도하지 않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근접 마법사는 태생이 노가다 사냥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벌써? 싸우기 시작한 이후로 30분밖에 안 지났는데…!”
프렉티스가 몬스터의 공격을 반격해 내며 황당한 듯 소리쳤다.
카앙-! 신성마법으로 털고블린의 방망이를 막던 지니도 그 말에 놀라 소리쳤다.
지니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아인이란, 무자비하게 유저들을 학살하며 웃는 모습뿐이었는데, 마나가 떨어져서 웃고 있다니?
“마나 없으면 아예 못 싸우나요?”
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 당당하게 긍정하는 아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지니의 등에 불안감이 스쳤다.
현이 조그만 목소리로 파트너의 입장을 변호했다.
“뭐, 아인도 일단은 마법사니까… 마나가 없으면 할 게 없어요.”
“그렇군요… 그래도 사제인 제가 파티의 선봉을 담당하게 될 줄이야.”
“뭐, 자잘한 전투는 맡길게요. 저랑 아인은 잡몹 처리에는 잘 맞지 않거든요.”
1초 무적, 반탄, 혹은 무력화의 파장으로도 지원할 수는 있었지만 그래봤자 사냥 속도는 비슷하기에 현은 참여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대신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기로 했다.
하지만 눈 덮인 산맥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현의 모습은 어딘가 자신감이 부족해 보였다.
“음… 여기가 아닌가…?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아인, 넌 혹시 기억나?”
“현이 모르면 나도… 모르지.”
아인은 도리도리 고개만 저었다.
그런 둘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스타더스트의 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앞으로의 일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일행은 길을 잃은 듯하다.
“후… 근데 여기 엄청 춥네.”
주변의 몬스터를 대충 정리한 프렉티스가 손이 시린 듯 손바닥을 비볐다.
지니 역시 강렬한 한기 때문에 지속적인 고통을 견뎌내는 중이었다.
스타더스트 두 명의 상태 창에는 이러한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후우우웅- 또 찬바람의 돌풍이 일행이 위치한 장소를 휩쓸며 지나갔다.
프렉티스는 북극의 날씨가 만들어내는 대자연의 추위에 기가 질렸다.
“와, 진짜 장난 아닌데? 한겨울에 태풍이 부는 것 같아!”
현실에서도 경험하기 힘들 정도의 추위였다.
어느 순간, 현과 아인의 옷차림을 눈치 챈 프렉티스는 경악했다.
“세상에… 현아, 그렇게 입고도 안 추워? 아인도 그렇고.”
놀랍게도 둘은 얇은 옷가지 하나만을 걸치고도 멀쩡한 모습이었다.
두꺼운 옷을 잔뜩 싸매고도 벌벌 떠는 자신이나 지니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아, 이거? 칭호 때문에 그래. 나랑 아인은 추위를 느끼지 않거든.”
천인의 칭호에 달린 여러 효과 중에는 추위를 느끼지 않게 되는 것도 존재했다.
강추위 속에서도 둘이서만 멀쩡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런 칭호라니 대단하네요… 아니, 그건 저도 갖고 싶은데요…?”
대화를 듣고 있던 지니가 덜덜 떨며 중얼거렸다.
프렉티스 역시도 너무 날씨가 추운 탓인지 현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못 찾았어? 이젠 정말 죽을 것 같다…!”
“아, 찾은 것 같아! 기억났어, 저쪽이다!”
현이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는 동시에 일행은 우루루 달려갔다.
한시라도 빨리 퀘스트를 끝내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우우웅- 지니가 파티 전체에게 이동속도 버프를 걸자 일행은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긴… 산꼭대기잖아.”
“분화구 형태를 보니 오래 전에 화산활동을 멈추었을 것으로 보이는군요.”
분지 형태의 장소에 들어오니 바람이 불지 않아서 추위도 조금 버틸 만 했다.
스타더스트의 둘도 훨씬 안정되었다.
드디어 퀘스트를 시작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던 때에 중얼거린 아인의 한 마디가 나머지 일행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만들었다.
“현, 여기 맞아? 아닌 거 같은데….”
아인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눈을 가늘게 좁혔다.
“여긴 ‘얼음가시 던전’ 입구잖아… 300레벨 이상의 몬스터들 구역 아니야?”
“맞아.”
“뭐어?!”
현과 아인의 대화를 듣고 있던 프렉티스와 지니의 입이 동시에 벌어졌다.
“잠깐만, 현아 우리 퀘스트 장소는 80레벨 수준부터 시작되는 ‘악의 씨앗’ 던전이라며?!”
프렉티스의 말대로였다.
애초에 기사단장이나 되는 인물이 깨지도 못할 퀘스트를 떠넘길 이유는 없으니 300레벨 몬스터 구역으로 보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현은 그저 일행을 개고생시키기 위해서 전혀 엉뚱한 장소로 왔다는 것인가?
“잠깐만요, 누나! 추운 바닥에 주저앉지는 말아요!”
“전작 랭킹 1위가 길을 잃었다니요….”
“아뇨 맞아요, 제대로 왔다니까요?!”
일행들이 절망하려는 기색이 보이자 현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퀘스트 내용을 보면 ‘성과에 따라’ 보상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있어.”
“맞아, 그랬지.”
프렉티스가 퀘스트 창을 확인하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현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우리의 임무는 정찰이야. 정찰에서 ‘성과’란 어떤 것을 의미할까? 우선 그것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겠지. 현실에선 당연히 정보량이겠지만 게임에는 그보다 명확한 지표가 있을 테니까.”
현은 잠시 숨을 고르고.
“바로 이동거리야.”
“거리…?”
“그래. 던전을 얼마나 깊숙이까지 도달하는가. 그게 바로 성과에 해당하는 지표라고.”
현의 말은 이러했다.
아스라, 혹은 아스리안에서 ‘정찰’ 퀘스트는 알려지지 않은 구역의 맵을 얼마나 많이 밝히느냐가 관건이란다.
즉, 정찰 퀘스트는 구역의 끝까지 도달하는 방법이 가장 확실하다는 뜻이다.
“퀘스트 목표인 악의 씨앗은 굉장히 긴 던전이에요. 깊이 내려갈수록 난이도도 상승하고요. 일반적인 방법으로 그 퀘스트를 진행하려 한다면 아마도 한 달…? 어쩌면 그 이상으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죠.”
“한 달이라고요…?”
“당연히 그렇게 오래는 못 하죠. 그러니까 우리는 한 가지를 이용하는 겁니다. 두 던전의 내부가 군데군데 통로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죠.”
현은 잠시 숨을 고르고 이어 말한다.
“이쪽 던전의 우회로를 사용하고 도중에 연결통로를 탈거에요. 악의씨앗 끝까지 도달하기 위해서!”
“현아, 그런데 우리가 갈 던전은 300레벨 몬스터들 구간이라며… 그럼 시작부터 막히는 거 아니야?”
현의 설명을 들은 프렉티스가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충분히 타당한 의문이었다.
마침 지니 역시도 같은 것을 물어보려던 참이었으니까.
대답 대신 현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현은 정확한 때를 기다리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