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 Carry Support RAW novel - Chapter (4)
히든 네임드 사냥준비
아스리안 온라인이 출시된 이후 서현의 일과는 대체적으로 정해져 있었다.
우선, 학교를 들려 출석만 하고 나온다.
조별 과제가 있는 수업은 필수 과목을 제외하곤 되도록 수강신청을 넣지 않았다.
아스리안 온라인에 빠져든 서현은 어느 때보다도 게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이제 하루가 시작한다.
우선, NFM사의 주식 확인부터.
아스리안의 개발사인 NFM의 주가는 게임 출시 이후 연일 상한가를 치고 있는 중이다.
최근 게임 관련 인터넷 뉴스는 NFM에 관련된 기사로 도배가 되어 있다.
NFM은 원래도 작은 회사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3개월 전에 비해 80배의 주가가 오르며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이제는 엔터테이먼트의 역사를 새로 쓰는 중이었다.
아스리안 온라인이 세계적인 흥행을 거두었고 그에 따라 주가는 하루하루 폭등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서현 자신은 주식을 하는 방법도 모르고, NFM의 주식을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아스리안이란 게임이 커져가는 것만 봐도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자, 그럼 다음으로 가볼까.”
서현은 곧장 아스리안 커뮤니티로 접속했다.
애석하게도 공식 홈페이지는 아직도 게임에 관련된 정보가 하나도 공개되지 않았다.
직접 플레이하며 게임을 차근차근 즐기라는 개발진의 의도일까?
때문에 서현은 공지를 읽을 때를 제외하고 언제나 커뮤니티 전문 사이트로 접속했다.
뻘글을 보며 히히덕거리는 것이 주요 일과이긴 했지만, 가끔씩 쓸 만한 정보나 소식을 발견하기도 했다.
공략 글 하나가 커뮤니티 메인에 올라가 있었다.
이미 한참 전에 15레벨을 넘은 서현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다음으로 글로 넘어간다.
또 다른 글이 우연히 서현의 눈에 들어왔다.
‘의대지망생’이라는 닉의 유저가 쓴 글이다.
게시글을 클릭해 몇 줄 읽자마자 서현의 눈동자가 이채를 발했다.
-이 게임, 급소를 때리면 무조건 치명타가 발동하는 것으로 예상됩니다. 근데 대충 맞추면 안 되고 굉장히 정확하게 힘을 집중해야 되는 거 같아요.
-지금까지 알아낸 부위는 머리, 심장, 명치, 팔다리관절, 낭심, 그 외 11군데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실제 인체의 급소와 동일한 지점을 타격하면 치명타가 터진다는 것이지요.
유익한 정보 글이지만 유익하지 않은 댓글이 제법 많았다.
-그럼 여자는 남자보다 급소 하나 적은 거잖아. 이거 완전 밸런스 차별 아님?
-꼬우면 여캐하시든가 ㅎㅎ.
-아니 XX새끼야 어떻게 하냐? 니가 바꿔줄 거 아니면 닥치고 있어라?
서현은 컴퓨터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무의미한 댓글보다는 글의 본문에만 집중했다.
사사로운 키보드 배틀까지 신경 써줄 여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글을 읽으면서 어제의 결투를 복기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아인이 높은 확률로 계속 치명타를 터트리던 원리가 저것이군… 아스라 온라인에는 존재하지 않던 방식이야.’
급소를 때리면 치명타가 터진다.
결투 당시의 아인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자신의 급소를 마구 난자했었다.
결투에서 현도 어느 정도 추측하고 있었지만, 지금 이 글로 확신할 수 있었다.
현실 같은 전투 시스템.
어쩌면 이것도 아스리안이 최초로 감각이 결합된 게임이기에 가질 수 있는 특징이리라.
“우선, 새로운 시스템에 익숙해지는 게 중요하겠네.”
서현은 글의 내용을 상기하며 인터넷 창을 닫았다.
거기까지 하면 서현의 일과는 거의 마무리된다.
주식을 확인하고, 커뮤니티의 눈팅도 끝냈다.
라면으로 끼니를 간단히 때우고, 찬물로 샤워도 마쳤다. 미리 화장실에 가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자리에서 10시간씩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그렇게 경기 전 프로게이머급의 준비를 모두 마치고 아스리안에 접속한 서현.
[AIN님이 접속하셨습니다.]아인의 접속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녀는 언제나 오후 5~6시쯤 접속해 새벽 3시쯤 게임을 종료한다.
어떻게 보면 매일 새벽까지 아스리안을 플레이하는 아인도 상당한 게임중독자였다.
물론 폐인에 가까운 자신에 비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문득 아인에 대한 궁금증이 솟아난다.
플레이 시간대를 보면 어쩌면 아인은 급식을 먹을 나이대가 아닐까?
하긴, 그 키랑 그 얼굴은 성인이라고 봐주기 힘들겠지.
높게 쳐봐야 고등학생, 어쩌면 중학생일지도 모른다.
온라인에서 나이를 묻지 않는 건 불문율이기에 서현은 추측의 선에서만 끝내기로 했다.
AIN : 오늘도 유령 사냥 갈거야?
아인은 접속하자마자 캡슐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현과 아인은 유령 사냥을 위해 칸타스 성에 머무르며 사흘 동안 유령 노가다에 매진했다.
극초반에는 레벨 격차가 심해서 파티를 하면 아인에게 경험치가 분배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레벨까지는 쩔로 커버하고, 얼추 비슷한 레벨을 만든 뒤부터는 같은 수준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파티를 맺고 사냥했다.
현 Lv.42
아인 Lv.40
그 결과, 둘은 어제 막 40레벨을 넘어설 수 있었다.
아인에게 유령 몰이사냥을 보여주던 첫 날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했다.
유령들과 함께 스턴에 걸린 것마냥 입을 다물지 못하던 아인의 모습이.
“괴, 굉장하네 이건… 현 치고도….”
그런 모습을 보며 현은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었다.
명예의 전당에 공개된 랭커들 수준이 20레벨 정도인 지금, 자신들보다 높은 레벨의 유저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해… 레벨만 높아서는 언젠가 따라잡히고 말 거야.’
그리고 현은 격차를 유지하는 방법도 누구보다 확실히 안다.
시간이 지나 랭커들의 수준이 상향평준화 된다 하더라도 자신만은 예외가 될 것이다.
‘늦기 전에 슬슬 움직여야겠어.’
그 첫 번째 단계는 바로 네임드 처치. 최초 사냥의 업적이다.
요즘 커뮤니티들을 보면 상위권 길드들 사이에서 심상치 않은 분주한 움직임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들이 분주할 이유는 오직 하나. 네임드 공략!
‘내로라하는 여러 길드들에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네임드 공략을 시도하겠지.’
대략 2주 정도 지나면 수많은 길드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피 튀기는 쟁탈전을 벌일 것이 분명했다.
모두가 노리는 것은 당연히 최초 네임드 킬 업적 보상!
최초 킬은 일반적인 사냥보다 큰 보상을 준다.
특히 몇몇 히든 네임드들은 영구적으로 스탯을 올려주는 업적까지 존재하니 다들 눈이 돌아갈 수밖에.
혹은 길드 홍보를 위해 네임드 토벌에 뛰어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이 적기라는 것이다.
남들보다 한 박자씩 빠르게 앞으로 나아간다.
‘모든 네임드를 독식할 순 없겠지… 아스라 대륙은 말도 안 되게 넓으니까.’
현이 노리는 것은 바로 특수 네임드들!
특히, 스탯 보너스를 보상으로 주는 놈들만 골라서 빼먹을 생각이었다.
최초 네임드 킬의 업적은 최초의 단 한번만 주어지는 만큼 서둘러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인도 데려가야겠지?’
근접 마법사의 주력인 ‘화염의 손톱’은 과도한 마나를 대가로 말도 안 되는 데미지를 뽑아낸다.
노가다 사냥에서는 그만큼 쓸모없는 직업도 없지만 네임드 보스를 잡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짧은 시간 내의 극딜이다.
아인에 비할 딜러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었다.
‘몸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긴 해도, 그건 서포터인 내가 커버해줄 수 있어.’
우선 양쪽 모두의 능력치, 스킬들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현은 아인에게 물었다.
“너 스탯 포인트 몇 개 남았어? 아직 하나도 안 썼지?”
“어… 지금 70개있네.”
“70개?”
현은 재빨리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 보았다.
아인의 레벨이 40이고, 레벨업마다 2의 스탯 포인트를 주니까… 분명 포인트 78개가 남아 있어야 맞는데…?
계산을 잘못 했나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나머지 8개의 스탯은 어디로 간 거지?
이어지는 아인의 말로써 현의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나 힘을 8 만큼 올린 거 같아.”
“…힘?”
“응.”
마법사가 힘을 어디에 쓰지?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건가.
이번에도 현의 의문은 금방 해소되었다.
배시시 웃음을 짓는 아인의 이마로 살짝 땀이 흐르는 것이 보였다.
“실수로 나 늑대인간인 줄 알았어. 그… 싸우는 방식이 예전하고 비슷하니까… 아마 습관대로 올린 거 같은데… 뭐, 괜찮지 않을까…? 어쩌면 힘을 올린 게 나중엔 더 좋을 지도 모르지.”
“크음….”
“뭐, 스탯 좀 잘못 찍어도 나 정도의 컨트롤이면 극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인의 변명에서 현은 데자뷰를 느꼈다.
애써 행복회로를 돌리는 그 모습이 꼭 누군가를 닮았다.
아마 서포터를 직업으로 고른 그 녀석을 보는 기분이다.
행복회로를 돌리는 건 혹시 히든 직업 특성 중 하나가 아닐까? 라는 어처구니없는 상상이 잠깐 떠올랐다.
“…남은 스탯이라도 잘 올리자.”
“응….”
정적 속에서, 아인은 하나씩 스탯을 올렸다.
아인 (Lv. 40)
체력 : 200/200
마나 : 1000/1000
직업 : 근접 마법사 (히든)
[힘 23] [민첩 30] [생명력 5] [마력 85(+15)] [화염의 손톱 Lv.0]-손에 불꽃을 둘러 [마력]X5의 피해를 추가합니다.
-1초당 10의 마나를 소모합니다.
[※ 미사용 스킬 포인트가 39 존재합니다!]칭호 –
근접 마법사에게 가장 효율이 좋은 스탯은 당연히 [마력]이었다.
최대체력은 생명력이 그대로여도 레벨에 따라 조금씩 오르는 반면 마나는 마력수치가 그대로인 한 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마법사 계열은 대부분의 스킬에 마력 계수가 붙어있으니 고민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리고 스킬 운용을 돕는 약간의 [민첩]까지.
아인은 근접전투를 벌이는 근접마법사이기에 체술도 소흘히 할 수 없었다.
마력과 민첩의 균형을 맞춰야만 스킬의 시너지와 스탯의 범용성이 동시에 갖춰지는 것이다.
‘생명력이 낮긴 하지만… 내가 있으니 상관없겠지?’
피할 수 없는 형태의 스킬을 난사해대는 네임드들도 존재하지만 그것들을 사냥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 노리는 것은 자신들의 조합으로 카운터가 가능한 네임드 보스들이니까.
‘스킬은… 일단 놔두자.’
스킬 포인트가 남기는 했지만 서둘러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아인이 가진 불꽃의 데미지는 한방에 500이 넘는다.
그게 어느 정도냐 하면, ‘1초 무적’으로도 완전히 막아낼 수 없는 수준.
40레벨 수준의 데미지 치곤 과분했다.
엄청난 마나소모라는 치명적 단점만을 제외한다면 근접 마법사란 직업은 아마 히든 클래스 중에서도 최상위급 DPS(Damage per second)를 뽑아낼 것이다.
‘딜은 지금도 충분하니까.’
계산에 따르면, 50레벨의 네임드 보스도 5분 컷이 가능했다.
앞으로의 문제는 딜이 아니라 다른 것들.
그리고 그런 보조들을 맡아야 하는 자가 다름 아닌 나.
서포터의 역할이다.
***
아르넨, 헬더스트.
둘은 게임 초창기 때부터 함께 해온 만큼 유대감이 깊었다.
초반에 우연히 만났고, 어쩌다 보니 파티 사냥을 같이하다 보니 길드도 같은 곳에 들어가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넨과 헬더스트는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마음을 놓을 친구가 되었다.
왜냐면, 둘은 게임만으로 먹고 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슬슬 자리가 잡히고 있는 것 같네.”
“그러게 말야. 게임을 시작한지 한 달도 안 되었는데, 벌써 굶지 않을 정도는 벌린다고.”
“그만큼 이 게임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겠지.”
아스리안은 전 세계 동일 서버.
억 단위에 가까운 유저수에 수천만의 동시접속자.
전례 없는 거대한 스케일과 게임의 완성도를 내세우며 지금도 기하급수적으로 신규 유저를 끌어 모으고 있었다.
아르넨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 게임은 지금도 계속 커지고 있으니까… 우리의 앞길도 커질 일만 남았지.”
“하긴 그래.”
헬더스트가 마주 웃으며 대답했다.
아르넨도 헬더스트도, 아스리안 온라인을 전업으로 하며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왜냐면 자신들의 벌써 30레벨에 도달해 있었으니까.
랭킹 순위를 매겨본다면 상위 0.01퍼센트 안에 들 수 있으리라.
다른 말로는 천상계!
일반 유저들이 까마득하게 올려봐야만 하는 곳이다.
“랭킹 10위권이 아마 35레벨인가 그랬지? 그 정도면 우리랑 얼마 차이도 나지 않아. 곧 따라잡을지도 모르지.”
“이러다 자칫하면 우리 랭커까지 갈 수도 있 는거 아니냐?”
“진짜로 가능할지도 몰라. 운이 좋으면 조만간 우리도 랭커가 될 수 있을지도… .”
“랭커들은 전부 다 떼돈을 번다지? 나는 로스앤젤레스에 건물이나 한 채 사야겠군.”
“난 스포츠카부터 갖고 싶어.”
“함께 랭커가 되면 한번 현실에서 만나 보자구. 괜찮은 생각이지?”
“좋네. 과연… 상류층끼리의 만남이라는 건가.”
일반적으로 랭커의 기준은 명예의 전당 1000위까지.
1000위라 말하면 얼핏 별거 아니게 들리겠지만 퍼센트로 따져보면 약 상위 0.001% 안쪽의 엘리트, 백만분의 일에 속하는 괴물들이다.
아르넨과 헬더스트는 자신들도 거기에 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자신감은 결코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었다.
며칠 전 길드원 중 한 명이 히든 네임드에 관련된 정보를 알아내는 쾌거를 이뤘다. 당연히 길드 내에서는 난리가 났다.
일반 네임드만 발견해도 길드 사이에서 정보 통제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그 와중에 한 단계 높은 히든 네임드라는 것을 발견했으니 난리는 당연했다.
길드에서는 예정된 일정을 모두 중지했고, 모든 길드원들이 모여 미팅을 가졌다.
어떻게 히든 네임드를 발견했는지, 정말로 믿을만한 정보인지, 레이드 성공 가능성까지 꼼꼼하게 따져 보았다.
결론은, 아슬아슬하게 사냥이 가능할 것 같긴 하지만 성공을 확신하진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우선 선발대를 보내고 나서 판단하기로 결정되었다.
설령 공략에 실패하더라도 보스의 패턴이나 약점을 알아낼지도 모르는 일이니 손해는 아니었다.
그렇게 편성된 20명의 선발대.
아르넨과 헬더스트도 길드의 선발대에 속해 있었다.
선발대의 일차적 목적은 탐색이지만 도중에 공략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그냥 잡아버려도 상관없었다.
아르넨은 논리적으로 레이드 성공 가능성을 따져 보았다.
“히든 네임드가 출몰한다는 이곳 어둠의 숲 몬스터들은 대략 20레벨 정도야. 네임드라면 레벨은 25정도? 높아봐야 30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
하지만 길드 선발대 역시 정예들만 모였다.
아르넨과 헬더스트를 포함한 스무 명 중에 레벨이 25가 안 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검사, 도적, 사제, 마법사의 비율도 완벽했다.
게다가 이들 모두는 컨트롤 실력까지 갖춘 최상급 유저들이었다.
아무리 30레벨의 네임드라 할지라도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어떻게 생각해?”
“뭘?”
“우리말이야. 정찰만 하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만약 공략에 성공해 버린다면?”
큭큭- 헬더스트가 웃으며 대답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우리 실력이면 30레벨 네임드는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몰라.”
“넌 어떻게 생각하냐 타르타르.”
아르넨은 옆의 소년에게 물었다.
타르타르 역시 둘과 함께 선발대에 속한 소년이다.
얼마 전 길드에 들어왔고, 현실 나이는 중학교 3학년으로 길드 내에서 가장 막내이기도 했다.
“어… 아르넨님 말이 맞지 않을까요.?”
“않을까요가 뭐냐! 남자라면 자신감이 있어야지!”
“그런가요? 하하….”
아르넨은 어색하게 웃는 타르타르의 등을 팡팡 두드렸지만, 타르타르는 솔직히 기쁘면서도 부담스럽다.
자신이 길드 내에서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 빼고 다들 대단한 거 같아.’
솔직히 타르타르가 길드 입단테스트에 붙은 것은 운이 좋아서였다.
처음에는 유명 길드에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 방방 뛸 정도로 기뻤지만 시간이 흐르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세상엔 고수가 이렇게 많구나.’
사냥을 같이하며 느꼈다.
길드원들의 컨트롤 실력이나 게임 센스를 보면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들의 플레이를 도저히 따라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유트브 매드무비에서나 보던 플레이를 매일같이 볼 수 있었다.
아르넨도, 헬더스트도, 다른 길드원들도 타르타르에겐 하나의 우상과도 같았다.
‘나도 노력해야지.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면….’
자신은 없지만 컨트롤도 하다 보면 늘지도 모른다. 타르타르는 좀 더 어깨를 폈다.
자신감을 갖자고 다짐하면서.
“잠깐 다들 정지.”
어둠의 숲을 계속 나아가던 도중.
선발대 대장 가이가 손을 들어 일행을 저지했다.
“여기 근처인 것 같군요.”
일행은 숲의 한복판에서 넓은 공터로 향하는 길을 발견했다.
공터의 한가운데는 신기하게 생긴 사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숲 한가운데 사원이 홀로 서있는 부자연스런 풍경.
선발대의 표정은 긴장으로 일렁거렸다.
“여기가 그 푸른 사원인가? 확실히 히든 네임드란게 있을 것만 같은 장소네.”
“주위의 온도가 굉장히 낮아진 것 같지 않아?”
일행 누군가의 물음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가을 저녁처럼 시원하던 바람은 어느새 차가운 정적으로 변해 있었다.
이질적인 얼음으로 뒤덮인 장소.
바닥의 풀에도 옅은 서리가 끼어있을 정도로 서늘한 공기가 흐르는 이곳은 숲의 깊은 곳에 위치한 빙결의 사원이었다.
모든 것들은 미리 전달받은 길드의 정보와도 맞물려 떨어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히든 네임드가 나온다는 정보도 신빙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진짜였어.”
“정말로 히든 네임드가 나오는 건가.”
“후후 몸이 달아오르는걸? 히든 네임드를 발견할 수 있는 건 아마 우리 길드가 최초겠지. 그만큼 먼저 상위권에 올라설 수 있다는 뜻이야.”
“모두 조용히!”
대장인 가이의 외침에 소란이 가라앉았다.
“벌써 레이드에 성공한 것처럼 떠들지 마십시오. 히든 네임드는 아마도 평범한 네임드들을 상회하는 스킬을 갖고 있을 테고 그만큼 강력할 테니까요.”
다시 한 번 일행을 주의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네임드 공략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무조건 제 지시를 따라 주셔야 합니다. 만약 개별행동을 하다 죽더라도 길드 차원의 보상은 없습니다. 그렇게 혼자 죽으면 자기만 손해다 이겁니다.”
“주의하지.”
“어차피 난 안 죽을 거지만.”
모든 일행이 가이의 지시에 따라 사원에 가까이 다가갔다.
이제 어떻게 히든 네임드를 불러내야 하는지 방법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대기의 밀도가 무거워졌다.
공기의 입자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얼음처럼 싸늘해졌다. 모두가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기운이었다.
사원을 중심으로 차가운 안개가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쿠아아아- 한기의 소용돌이는 점점 거세지고 거대해졌다.
이윽고 땅과 하늘을 잇는 얼음의 회오리가 일행의 눈앞에 펼쳐졌다.
[한기로 인해 움직임이 둔해집니다!]문득 떠오른 메시지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일행은 눈앞의 장관에 압도되었다.
가상현실이라 생각지 못할 정도로 빠져들었기 때문이었다.
콰드득- 갑자기 사방에 우리처럼 솟아오른 얼음 기둥들이 일행을 둘러싸며 가두었다.
얼음은 하늘의 햇빛마저 굴절시켜 차단해 버렸다.
여기에 발을 들인 이상 나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일행은 얼음으로 만들어진 경기장에 가둬진 검투사가 된 느낌을 받았다.
“와우 대단한 연출인데…?”
“영화의 한 장면 같네.”
몇몇이 긴장을 떨치기 위해 태연한 듯 중얼거렸지만 목 뒤로 흐르는 식은땀까지 감출 순 없었다.
“다들 준비하세요! 네임드가 곧 나옵니다!”
소용돌이의 중앙에 나타난 희끄무레한 인영을 보고, 가이가 소리쳤다.
아마도 저것이 히든 네임드이리라.
네임드 특유의 위압 때문인지 온몸이 떨림이 전해져 왔다.
그렇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떨고 있었다.
가이는 이를 악물었다.
최고 레벨인 자신이 이만한 위압감을 느낄 정도면 다른 사람들의 상태는 더 심각할지도 몰랐다.
“이게 네임드…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떨려오는군.”
아스리안의 홈페이지에 명시되어 있다.
이 게임은 인간의 감각까지도 컨트롤할 수 있다고.
뇌파의 조작으로 공포나 경외감 등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기술이지만 부작용은 없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었다.
감각과 감정을 컨트롤 당한다는 것.
그동안은 체험할 일이 없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네임드 보스 앞에 서니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이 몸을 찾아오셨나.”
서리만큼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울려서 방향을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일행은 놀라 두리번거렸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목소리의 주인이 안개처럼 일행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얼음의 소용돌이가 사라진 자리에는 백색의 로브를 입은 늙은 마법사가 서 있었다.
온 몸에 마법진 같은 문양들을 둘러싼 그는 오만한 시선으로 그들을 주시했다.
[잊혀진 마법사 ‘혼령 레오파드’가 등장합니다!]-레오파드는 20년 전의 제국과의 전쟁에서 악명을 떨친 마법사입니다. 그는 자신을 천인이라 말하며 마법의 시험을 위해 수많은 무고한 영혼을 죽였습니다. 그 방법이 너무 악랄한 나머지 레비아 왕실의 명으로 사형을 선고받아 처형되었지요. 하지만 천인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해 악령이 되고 말았답니다.
생전의 이명은 쾌속!
특기인 어떤 마법은 너무나도 빨라서 누구도 목격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수많은 이들이 그의 마법에 목이 떨어졌습니다. 당신의 목도 곧 그의 마법에 의해 땅바닥에 굴러다니게 되겠지요!
레오파드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지상의 미천한 놈들이로구나.”
팟- 레오파드의 로브가 빳빳해졌다.
전신으로 내뿜는 한기의 영향이다.
“지상의 인간은 천인을 거역할 수 없노라. 다시는 이곳에 발을 딛지 못하도록 온몸에 공포를 새겨주는 편이 좋겠군.”
오만한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한기와 살기가 폭사되었다.
선발대원들의 어깨가 동시에 움찔거리며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와 동시에, 전원에게 일어난 현상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감각동조 기반 특수 기능인 최면효과.
인간의 감정마저 강제로 변화한다.
캡슐에서 발생된 신호가 뇌파에 섞여 공포라는 감정을 만들었다.
“흐억…!”
이곳이 게임 속이라는 사실도 잠시 잊어버릴 만큼 실제로 죽음을 앞둔 기분이 느껴졌다.
“뭐, 뭐야 이건….”
아르넨은 말을 더듬었다.
호흡을 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이들의 반응도 자신과 다르지 않았다.
헬더스트는 눈을 부릅뜬 채 심호흡을 하고 있었고, 어떤 여성 유저는 패닉에 빠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신도 겨우 버티고 서있을 뿐, 무의식적으로 무릎을 꿇고 싶다고 생각했다.
가상현실 기술이 이 정도까지 구현이 가능한 거야? -라는 생각을 떠올릴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아르넨은 곧 두려움에서 해방되었다.
레오파드가 친절하게도 오늘의 게임플레이를 끝내 주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한 놈 저세상으로 보내주마.”
레오파드의 지팡이가 번쩍이는 순간!
아르넨은 우뚝 정지하더니 그대로 빛이 되었다.
[최대체력의 33퍼센트 이상의 피해를 한 번에 받아 신체결손이 발생합니다!] [심장을 잃었습니다!] [중요 신체부위가 사라져 즉사했습니다!] [48시간 내에 다시 접속할 수 없습니다!]한꺼번에 쏟아지는 메시지의 홍수와 함께 아르넨의 의식은 현실 세계로 돌아갔다.
아르넨의 시체도 결정으로 화해 허공으로 흩어진다.
“아, 아르넨!”
‘전사인 아르넨이 한 방이라고?’
헬더스트가 경악했다.
30레벨 전사가 이렇게 쉽게 죽다니!
게다가 바로 옆에 있었음에도 아르넨이 무슨 마법에 당했는지 목격하지 못했다!
어렴풋이 느낀 것은 그저 무언가가 아르넨의 가슴을 관통했다는 사실 뿐.
저 멀리서 레오파드가 미소 지었다.
“훗훗, 이제 시작이거늘….”
슈욱-.
무언가가 또 허공을 날았다.
순식간이었다.
이번에도 아무도 보지 못했다. 이미 한번 당했음에도.
레오파드가 내뿜는 쾌속의 마법은 눈으로 쫓기가 불가능했다.
주위의 모두가 깨달았을 때는 이미 헬더스트의 목숨이 사라진 뒤였다.
심지어 헬더스트 본인도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최대체력의 33퍼센트 이상의 피해를 한 번에 받아 신체결손이 발생합니다!] [목이 절단되었습니다!] [중요 신체부위가 사라져 즉사했습니다!] [48시간 내에 다시 접속할 수 없습니다!]“모두 물러나세요! 네임드의 스킬이 뭔지 우선 알아야 합니다!”
대장인 가이가 주먹을 꽉 쥐며 외쳤다.
아르넨이 당하고, 헬더스트도 순식간에 사망했다.
둘은 일행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인데도!
그런데도 아직 적의 공격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위험해.’
가이는 첫 대면에서 네임드 보스와의 격차를 느꼈다.
공략을 할 때가 아니야.
자칫하면 전멸할 수도 있다!
“또 공격이 올 겁니다! 최대한 집중해서 보세요! 우리 선발대의 목적은 네임드의 정보를 최대한 얻는 거니까요!”
이제 그들의 목적은, 살아남아 돌아가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너희들이 내 공격을 피할 수 있을 성 싶으냐?”
레오파드는 한 손에 든 지팡이를 장난감처럼 휙휙 돌리다가 갑작스럽게 손을 뻗었다.
파악- 파공성이 날았다.
동시에,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던 한 명의 유저가 움찔거리며 경련했다.
[최대체력의 33퍼센트 이상의 피해를 한 번에 받아 신체결손이 발생합니다!] [양 다리를 잃어 이동할 수 없습니다!] [신전에서 치료하거나 사망할 때까지 복원되지 않습니다!]일행 중 누군가가 또 당했다.
이번에는 다리.
심장이나 목과 같은 치명적인 급소는 아니기에 즉사는 면했지만 다행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양 다리가 사라진 유저는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비명을 질렀다.
“크하하! 오뚜기가 되셨구만!”
레오파드의 웃음소리는 그에게 들리지 않는다.
공격당한 유저는 고통에 미친 듯 괴성을 마구 내지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는, 가상현실의 통증은 그리 심하지 않다.
게임에서 실제의 통증이 느껴진다면 겁나서 누가 게임을 할 수 있겠는가.
팔다리가 잘려도 문고리에 세게 들이박은 정도의 통증이 최대였다.
하지만 플라시보 효과라는 것은 생각보다 무시무시했다.
실제 같은 세상에서 뇌파를 통해 감정의 파라미터까지 조정당한다.
목숨이 위협받는 듯한 공포 속에서 느끼는 통증의 세기를 논리적으로 따질 여유는 없는 것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팔다리가 잘린 경험도 당연히 없을 테니까 착각의 크기도 그만큼 커진다.
“으아아…! 로그아웃! 로그아웃!”
[전투중 게임을 종료하면 48시간동안 접속할 수 없습니다!] [정말로 접속을 종료하시겠습니까?]결국 그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현실세계로 도피를 하고 말았다.
캡슐의 뇌파 안정장치가 그의 감정을 평소 상태로 되돌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남겨진 일행은 아직도 네임드 보스 레오파드와 싸워야만 했다.
‘어떡하지…?’
가이는 다급해졌다.
세 명이나 죽었는데 적의 공격이 뭔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이대로는 전멸이었다. 게다가 네임드 특유의 위압 효과 때문인지 호흡도 거칠어지고 판단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였다.
“큭큭… 네놈이 여기 대장이구나.”
그 순간 레오파드가 갑작스레 가이에게로 표적을 옮겼다.
그가 일행을 통솔한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먼저 처리하려는 것이었다.
우우웅-.
레오파드의 지팡이 앞에 마법진이 빛난다.
아르넨과 헬더스트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간 악마 같은 기술이 이번에는 가이를 노리며 쇄도한다!
파앙-!
파공음이 들리는 순간 가이는 눈을 부릅떴다.
젖 먹던 힘까지 내서 어깨를 비틀었다.
약간의 통증과 함께 자신의 팔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최대체력의 33퍼센트 이상의 피해를 한 번에 받아 신체결손이 발생합니다!] [왼쪽 팔을 잃었습니다!] [신전에서 치료하거나 사망할 때까지 복원되지 않습니다!]등지고 있던 바위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가이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제야 보이지 않는 마법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얼음…?”
뾰족한 얼음 덩어리 하나가 바위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얼음은 매끄럽고 투명해서 마치 거대한 다이아몬드 같았다.
바위에 절삭기로 뚫어낸 듯한 흔적이 남은 것은 회전으로 마법의 관통력을 극대화시켰기 때문이었다.
“이 몸의 아이스 탑이 빗겨가다니 운이 좋구나. 원래라면 심장이 꿰뚫렸어야 하거늘… 하지만 행운은 두 번 일어나지 않는 법이라네.”
마법사 레오파드는 거만한 몸짓과 함께 앞으로 지팡이를 겨누었다.
지팡이의 끝에서 마법진이 회전했다.
그는 여태껏 단 한 종류의 마법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아이스 탑.(Ice Top).
그것이 바로 눈에 보이지도 않도록 빠른 마법의 정체다.
얼음이 쇄도할 때마다 어김없이 비명이 들려왔다.
아르넨이 죽고, 헬더스트가 죽고 또 한명의 길드원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대장 가이는 죽지는 않았지만 팔 한쪽을 잃어 전투불능인 것은 매한가지였다.
가이는 답답함이 목을 타고 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법 한 방에 아군 한 명씩! 원샷 원킬로 아군이 와해되고 있다.
이대로 전투가 지속된다면 전멸까진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 네임드, 결코 30레벨 정도가 아니야…! 최소 60? 어쩌면 70 이상일지도 몰라!’
가이는 눈앞의 네임드에 대해 추측하던 정보를 재조정했다.
저 레벨 지역에 있는 네임드지만 낮은 레벨은 아니다.
이명이 쾌속이라고 했던가…? 확실히 그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의 마법은 결코 눈으로 보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콰직, 콰직!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비명이 연이어 들려온다.
이번엔 길드원이 둘이나 죽었다.
일자로 쇄도하는 얼음의 궤도 위에 마침 두 명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우웅-.
네임드 보스인 레오파드의 마나는 끝이 없는 것일까.
순식간에 여럿을 로그아웃시키고 나서도 끊임없이 마법진을 돌리며 지팡이를 휘두른다.
이대로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모두 공격하세요! 죽더라도 다 같이 공격해!”
가이가 재빨리 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레오파드에게 쏟아지는 집중포화.
마법사들의 불꽃이 한꺼번에 쏘아지고, 마법을 안 배운 자들은 대신 활을 쏘아 공격했다.
쏟아지는 불꽃과 화살!
몇몇 전사 직업들은 검을 곧추세우고 용맹하게 돌진했다.
레오파드는 전방에서 자신을 덮쳐오는 공격을 바라보며 무심한 듯 웃기만 했다.
“하찮은 것들.”
눈보라 방패.
쿵-! 지팡이가 얼음바닥에 찍히며 레오파드의 두 번째 마법이 발동되었다.
그와 동시에 수천 개에 달하는 얼음 알갱이들이 그를 중심으로 빠르게 회전한다.
그야말로 눈보라로 보호막을 두른 듯한 광경.
파사사삭-.
날아오던 화살들이 얼음 알갱이에 분쇄되어 허공에서 가루로 흩어졌다.
검을 휘두르며 돌격하던 전사 직업들이 꽁꽁 얼어붙었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빛으로 산화하며 사망했다.
“무, 무슨 마법이….”
레오파드의 새로운 스킬에 가이는 숨이 멎을 정도로 놀랐다.
길드가 짜낸 혼신의 화력이 일시에 무위로 돌아가며 네 명의 전사 직업이 사이좋게 빛으로 산화해 버렸다.
항거할 수 없는 힘의 격차 앞에서 일행은 입만 벌리고 있을 뿐이다.
“너희는 살아남을 수 없다.”
우우우웅-.
앞으로 지팡이를 겨눈 레오파드의 지팡이에서 마법진이 회전한다.
파앙! 공기가 찢기는 소리!
쾌속의 탄환, 아이스 탑의 신호탄이 울리는 동시에.
“커억-!”
가이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 비명은 하늘마저 가려버린 얼음벽에 부딪혀 공간을 울렸다.
곧바로 쏟아지는 메시지를 마주하고 나서야 가이는 자신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최대체력의 33퍼센트 이상의 피해를 한 번에 받아 신체결손이 발생합니다!] [머리가 관통되어 즉사했습니다!] [48시간 내에 다시 접속할 수 없습니다!]가이마저 빛으로 산화하며 접속이 끊어졌다.
“대장도 당했어…!”
“공략은 실패야… 애초에 너무 강하잖아…! 이런 걸 어떻게 상대하라는 거야!”
“100레벨 정도 되지 않고선 시도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일행 중 누군가의 추측은 얼추 비슷한 것이었다.
레오파드의 레벨은 무려 95였으니까!
히든 네임드 보스가 유별나게 강하단 것까지 고려하면 100레벨의 유저 20명도 공략에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레오파드는 처음부터 20, 30레벨의 햇병아리들이 비벼볼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가이라는 구심점이 사라지자 나머지 일행들의 목숨이 사라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레오파드는 눈썹이 시릴 정도의 한기를 내뿜으며 남은 유저들을 유린했다.
아이스 탑.
보이지 않는 쾌속한 얼음의 탄환.
레오파드가 누군가를 가리킬 때마다 여지없이 누군가의 몸에 바람구멍이 뚫렸다.
가끔은 눈보라를 몸에 휘감은 레오파드가 직접 일행들 사이로 뛰어들기도 했다.
거기에 스치기라도 하는 순간, 회전하는 수천의 얼음 조각에 난자당한다.
날카로운 눈보라의 폭풍 속에서 끊임없이 사망이펙트인 빛줄기가 솟아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레오파드의 거처였던 푸른 사원은 정적 속으로 되돌아갔다.
선발대들의 시체는 얼음의 대지에 묻히지 않고 잠시 시간이 지나자 저절로 사라졌다.
격렬한 전투의 흔적만 없었다면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어떡하지?’
선발대가 전멸한 것은 아니었다.
길드의 막내인 타르타르는 바위 뒤에 몸을 숨긴 채 숨죽이고 있었다.
숨소리가 새어나갈까 입을 꽉 틀어막았다.
‘다 죽은 건가…?’
타르타르의 경험에 이처럼 생생한 게임은 처음이었다.
네임드 보스가 갑자기 살기를 내뿜기 시작하자 기겁할 정도로 놀랐고, 자신도 모르는 새에 혼자서 도망치고 있었다.
절대 일부러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제3자가 본다면 얌체 짓이라 생각되리라.
길드원들이 다 죽은 가운데 혼자만 살아남았으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자 타르타르는 걱정이 되었다.
내가 도망친 걸 본 사람이 있진 않았을까?
혼자만 살아서 돌아오면 이기적인 놈이라고 손가락질할지도 몰라.
어쩌지, 블랙리스트에 들어가면 다른 길드에서도 안 받아준다는데… 차라리 같이 죽는 편이 나았을지도.
타르타르는 결심했다.
보스는 아직도 자리에 그대로 있으니 죽는 건 어렵지 않다.
자신도 이 자리에서 죽으면 마지막까지 싸우다 죽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래,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인 타르타르는 네임드 보스에게 죽기로 결심했다.
바로 그 순간.
‘응, 누구지…?’
타르타르가 두 명의 사람을 발견한 것은 막 자살을 결심하고 일어서려던 때였다.
타르타르는 재빨리 어깨를 좁히며 다시 몸을 숨겼다.
검은 로브를 걸친 두 인영이 레오파드의 거처인 ‘푸른 사원’을 향해 들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 인가?’
로브에 달린 모자를 머리까지 덮고 있었기에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체격만 얼추 알 수 있었다.
한 명은 자신과 비슷할 정도로 몸집이 작고, 또 한명은 자신보다는 조금 크다.
‘길을 잃어서 여기까지 온 걸까? 아니… 이곳까지 오려면 제법 실력이 있어야 가능할 텐데… 근처 몬스터들도 제법 강하니까.’
하지만 타르타르가 관찰한 바로는 그들 모두 무기조차 지니고 있지 않았다. 입고 있는 장비도 검은색 로브 하나뿐이다.
분위기만 보면 어디 나들이라도 가는 듯하다.
또한 어둠의 숲에서 푸른 사원으로 들어올 때는 굉장한 한기와 함께 이질감이 느껴지기에 누구나 당황한다.
그런데 둘 다 당황하긴 커녕 너무 침착해 보였다. 마치 푸른 사원에 관한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온 마냥.
‘설마… 그건 아니겠지.’
타르타르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잠깐 했지만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시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어둠의 숲 근처에서 사냥을 하다가 운 좋게 히든 네임드 구역까지 들어왔을 것이다.
아니, 곧 죽을 것이 틀림없으니 운이 나쁘다고 해야겠지.
이곳은 히든 네임드 레오파드의 거처니까.
레오파드의 위용을 직접 목격한 타르타르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 보스 앞에선 현존하는 어떤 유저도 죽음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저 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살은 잠깐 뒤로 미뤄야겠네.’
타르타르는 좀 더 그대로 숨어있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시간은 얼마 안 걸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