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 Carry Support RAW novel - Chapter (67)
성기사 사냥
현의 설명엔 400레벨에 가까운 네임드 NPC를 상대할 방법이 빠져 있었다.
게다가, 대장은 부하들에게 보호받고 있을 테니, 수십 명의 성기사들과도 함께 싸워야 할 것이다.
아인의 물음에 현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문제없어. 왜냐면… 기사단 대장이 바로 그 샤크론이었거든.”
***
[강신(降神)]예전에도 악랄한 성격으로 유명했고, 성격 때문에 죽음이라는 말로를 맞은 NPC였다.
그렇게 특징이 강한 NPC의 반응을 예상하는 것 쯤. 현에겐 쉬운 일이었다.
「저 녀석. 악마에 환장하거든. 예전에도 치명상을 입은 악마 하나에게 덤비다가 죽었지… 서번트 급에 힘을 소진했어도 악마는 악마였는데 말이야.」
예상대로 샤크론은 루이즈를 보자마자 눈이 뒤집혀 달려들었다. 문제는 내용물이 루이즈가 아니라 아인이라는 점이었지만.
현은 동화한 상태로 강신을 사용해 아인을 루이즈로 탈바꿈시켰던 것이었다.
게다가 잠력 폭발을 사용해 아인의 민첩까지 3중첩까지 끌어올려 둔 상태.
「아인, 계획대로! 기억하고 있지?」
촤라라라락!
사슬 검이 길게 펼쳐지며 날카로운 톱니를 드러냈다.
수백 미터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은 고작 찰나!
하지만 현은 샤크론이 달려오기 전부터 덫을 쳐두고 있었다. 압도적인 사냥감을 잡아낼 치밀하고 강력한 덫을.
「좋아, 따라온다, 도망치자!」
첫 번째 단계는 그를 기사단으로부터 멀리 떼어놓는 것이었다.
사냥을 시작하기도 전에 기사단의 부하들이 함께 몰려온다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버릴 것이다.
마침 샤크론은 기사단에 산개 명령을 내려둔 상태. 아이러니하게도 현의 계획에 장단을 맞춰 준 셈이 되었다.
‘뭐야, 왜 이렇게 간단하지…?’
대장을 기사단으로부터 분리시킨다.
의도치 않게 그 첫 단추를 바로 끼워낸 현이 멈칫거렸다. 너무 쉬워서, 역으로 함정이 아닐까 의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굉장해! 완전히 현의 계획대로 되잖아!」
「크흠. 뭐 이 정도는….」
아무리 봐도 함정은 아닌 것 같은데….
쉽게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잘한 생각을 그만두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로 했다.
이어서 현은 루이즈의 스킬인 ‘검은 바람’을 발동시켰다.
휘이이이-!
온몸에서 바람을 뿜어내는 아인은 비교적 안전하게 안개의 틈새를 달릴 수 있지만, 샤크론은 그렇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주위의 안개를 활용하는 것이 현의 계획 두 번째 단계였다.
“바람…?”
콰아아아- 강풍이 아인의 몸을 감싸자 샤크론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에게도 흩날리는 어둠의 안개에 닿는 것은 제법 치명적이었다.
자연스레 샤크론은 방어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그런 소극적인 움직임은 정확히 현이 의도한 바이기도 했다.
「좋아, 적어도 바로 잡히진 않겠어!」
상대는 400레벨에 근접한 네임드 엘리트. 그가 마음먹고 추격해 오면 현은 10초도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어둠의 땅. 루이즈에게 유리한 전장이다.
현은 의도적으로 안개가 짙은 장소를 스치듯이 달렸다. 샤크론이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도록.
그 모든 조건을 고려하더라도 샤크론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 얕은 수를 써봤자 힘의 차이를 메울 수는 없다!”
파아앙! 사슬 검이 꿈틀거리자 채찍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바위와 나무가 가루로 흩어졌고, 지면까지 통째로 뒤집혀 버렸다.
그 여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인은 위쪽으로 뛰어올라야만 했다.
「조심해, 계속 온다.」
「보고 있어…!」
슈욱! 날카로운 섬광은 독사처럼 의지를 가진 듯 끊임없이 방향을 바꾸었다.
수평에서 수직으로!
후속타를 피하기 위해서 아인은 허공에서 화신의 걸음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죽어라.”
샤크론의 손이 번쩍였다.
꿈틀. 그의 손으로부터 시작된 신성력의 파장은 출렁거리는 사슬을 따라 검의 끝자락에 도달했다.
촤라라라락! 그와 동시에, 광기어린 광휘의 춤을 추는 사슬 검.
하지만 그 성대한 기술은 전혀 엉뚱한 방향을 초토화시킬 뿐이었다.
씨익-. 뒤편에서 일어나는 신성력의 폭발을 지켜보며 현은 짙은 웃음을 지었다.
「저 녀석도 낚였네.」
샤크론이 본 것은 아인을 닮은 그림자. 현이 만들어낸 환영이었다.
쉐도우 링커의 능력으로 지금 불꽃과 그림자는 같은 칠흑이 된 상태. 샤크론은 그림자의 움직임에 속은 것이었다.
「페이크가 먹혔다고? 단장 급이면 거의 안 걸릴 텐데?!」
「그만큼 마음이 급하단 거지.」
실제로 샤크론은 어둠이 힘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부터 빨리 그녀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사슬 검을 휘저어도 어둠은 교묘하게 안개의 틈새로 빠져나갔다.
아인이 무빙을 담당하고, 현이 철저하게 스킬 재사용 시간을 계산하며 활용하는 덕분이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을 듯.
자신의 속도가 훨씬 앞서는데도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은 샤크론을 짜증나고 초조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대로 그곳으로 유인하자.」
그럴수록 현은 침착하게 샤크론을 더욱 깊숙한 안개 속으로 끌어들였다.
계획의 마지막 단계를 위해서.
「어디였지?!」
「저 언덕 뒤야.」
고오오오.
스멀거리던 안개는 어느새 짙은 물살이 되었다.
루티아의 설명을 빌리자면 어둠의 땅에 존재하는 대동맥. 혹은 그 근처가 아닐까 하는 장소까지 도착했다.
처음부터 현의 계획은 샤크론을 이곳까지 끌고 오는 것이었다.
‘가속!’
카르르르!
아인의 몸이 잔상을 남겼고, 은빛 쇠붙이가 뺨을 스쳤다.
이대로라면 또 놓칠지 모른다고 판단한 샤크론은 점점 자신의 위험을 감수한 채 가까이서 공격해 오고 있었다.
「현, 나 슬슬 위험한데?!」
「다 왔어. 바로 앞이야!」
어느 순간.
살짝 뛰어오른 아인이 바람장벽을 밟고서 ‘안개의 수면’위에 섰다.
바닥은 온통 칠흑. 모든 곳이 안개로 뒤덮인 탓에 어디에도 발을 디딜 수 없는 공간이었다.
아무리 강한 샤크론이라도 안개의 수면 앞에선 추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곳이 있다니….”
샤크론은 가만히 발치에 흐르는 안개의 강을 바라보았다.
어둠마저 안개에 빠지지 않도록 허공에 떠 있었다… 어둠도 안개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어둠은 여태껏 도망치며 안개를 통과한 적이 없었으니까. 힘을 잃은 나머지 과거 자신의 힘조차 마주하지 못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여긴 위험하군.’
샤크론은 순간, 자신이 너무 깊은 장소까지 들어왔음을 깨달았다.
만약 어둠이 안개에 피해를 받지 않는다면 이 장소는 그야말로 어둠을 위한 전장이었으니까.
스스스스. 안개의 강 위에서.
씨익 웃고 있는 어둠의 입가를 본 순간 샤크론의 뇌리에 경종이 울렸다.
‘칫, 어쩔 수 없다. 물러서야 해!’
더 추격한다면 자신의 목숨도 걸어야만 한다.
여기선 기사단과 함께 추격하거나, 그조차 불가능하다면 신탁대로 어둠의 유적지를 먼저 부수는 선택이 올바를 것이다.
캬아아아!
뒤편에서 괴성이 들려온 것은 샤크론이 그런 판단을 내리던 때였다.
“뭐라…?”
갑작스런 소리에 뒤를 돌아본 샤크론은 숨을 삼켰다.
최하위 마물인 해골 무리를 시작으로, 하늘에는 거대한 박쥐들. 땅에는 황소를 닮은 마물들, 유령들, 개들, 늑대들….
뒤편에서 목격한 것은 수많은 마물의 무리가 괴성을 질러대며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광경이었다.
“고작 마물들이… 하압!”
기합을 내지른 샤크론이 전방의 공간을 터뜨렸다. 약 20미터까지 늘어난 사슬 검이 공기를 휘저었다.
신성의 빛이 번쩍이자 수십 마리가 잿더미로 돌아갔지만, 그보다 많은 수의 마물이 곧 채워졌다.
“이렇게 많은 수가 어떻게?!”
지하로 온 이후 샤크론은 마물 또한 안개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둠을 쫓아갈 때도 마물은 고려하지 않았다. 안개 근처엔 마물이 없으니까. 설령 몇 마리를 마주친다 한들 단숨에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많은 수는… 대체 어디서 나타났단 말인가!
후후, 현은 멀리서 그렇게 당황하는 샤크론을 지켜보고 있었다.
…….
공략의 마지막 단계는 마물을 움직이는 것.
제사가 시작되고 나서 현은 당장 고위 마물부터 찾아다녔다.
강신으로 루이즈의 외모와 기운을 갖게 되었으니, 루이즈의 권위를 빌리기 위해서였다.
우연히 발견한 꼬마 유령에게 부탁해 짙은 마기를 뿜어내는 리치를 만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네가 여기 지휘관이지? 다른 애들한테 명령을 내릴 수 있어?”
“물론입니다… 제 지시가 아니라도 어둠의 뜻에 반발하는… 존재는 없을 것입니다….”
루이즈가 잠깐 공감을 각성했던 덕분에 마물들은 어둠이 지닌 기운을 기억하고 있었다.
“헌데 어둠이시여… 공감을 잃어버린 이유는 대체….”
“왜, 혹시 내가 진짜 어둠처럼 안 보이는 거냐?”
“그런 뜻은… 결코 아닙니다… 무례를 용서하시길….”
잠깐 일이 잘못될 뻔도 했지만, 결국 지휘관인 리치는 현의 뜻대로 움직이게 되었다.
그 결과가 지금 상황.
“어둠의 뜻대로….”
쿠구구궁!
리치들의 마법이 일제히 지면을 강타하자 샤크론의 근처엔 거대한 구덩이가 파였다.
그 충격파로 인해 샤크론은 안개의 수면을 향해 튕겨나가게 되었다.
“큭…!”
그래도 성왕국의 5대 기사라는 것인가. 샤크론은 녹록히 안개로 빠져들지 않았다.
퍼엉! 허공을 박차고 자세를 잡으려 했지만.
「못 나가지!」
현이 그런 샤크론을 가만 놔둘 리가 없었다.
샤크론은 안개의 강에 빠지지 않기 위해 허공에 뛰어오른 상태.
하지만 공중에 뜬 상태로는 바닥에 버틸 수 없으니 힘 스탯의 의미가 사라진다.
콰직! 이프리트의 발톱이 칠흑의 반월을 그리자 샤크론은 다시 한 번 튕겨나갔다.
“이런, 안 돼!”
그리고 샤크론은 곧 발밑의 안개들이 어디론가 흘러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의 끝단과 이어지는 곳은 폭포!
어둠의 협곡 아래 대동맥의 근처엔 이처럼 안개의 순환이 일어나는 구간들이 제법 존재했다.
콰아아아-!
안개가 격렬하게 하강하는 흐름은 마치 폭포처럼 보였고, 그 아래로는 끝을 모르는 어둠뿐이었다.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그 시점이었다.
“전군에 명한다! 모든 행동을 멈추고 이곳에 집결하라! 지금 당장…!”
신성의 파장을 타고 퍼져나간 목소리는 모든 기사단에 전해졌다.
하지만 샤크론의 그 지시는 현과 아인에게도 들렸다.
「시간제한이 있을 거야. 할 수 있겠어?」
「일대 일이라면… 충분해!」
대부분의 마물들 또한 폭포 아래로는 도달하지 못하니, 마무리는 현과 아인 둘의 몫이었다.
우우웅.
바람장벽을 밟고 샤크론을 따라 폭포 아래로 낙하하는 도중, 아인의 몸 위에 여러 색깔의 빛이 번쩍였다.
[신성 피해의 30%를 차단합니다!] [초당 500의 마기를 자동으로 회복합니다!] [모든 방어력이 200% 상승합니다!」“초라한 마법이지만… 부디 받아 주시길….”
캬아! 캬아아아!
비행능력으로 안개의 폭포 아래까지 따라온 리치와 박쥐들이 현을 지원했다.
마물들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샤크론이 위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방해할 것이다.
갖가지 버프. 지원군까지 든든하게 받쳐주는 상황.
「아인, 침착하게 해. 절대 서두르려고 하지 말고.」
샤크론 네이제르. 성왕국의 5대 성기사.
현은 5대 기사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모든 조건이 갖춰진 지금도 유리하다 말할 수 없다. 이제야 양쪽 전력의 균형이 맞춰진 것일 터!
샤크론 네이제르란 이름엔 그만한 힘이 담겨 있으니.
「말 안 해도 안다고!」
휘이이이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안개의 입자들이 루이즈의 검은 바람에 흩날렸다.
그 광경과 잠력 폭발의 이펙트가 겹쳐지자 두 겹의 마기가 아인의 주위를 선회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둠이 한 줌의 자아를 갖추기까지 : 97분 35초]애초에 두 시간은 너무 길었다. 기사단이 유적지에 들이닥쳤을 때 시간을 끄는 방법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한 해법은 미리 마중 나가 기사단을 와해시키는 것.
그렇다, 이 결투에서 패배한다면 메인 퀘스트는 실패로 봐도 무방했다.
「좋아, 가자.」
파앙!
바람이 터지는 동시, 아인의 발치에 흐르던 안개가 물결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퀘스트의 가장 큰 고비라 할 수 있는 결투가 지금 막 시작되었다.
같은 시간.
샤크론의 휘하에 있던 모든 이들은 신성의 파장으로부터 전해지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신성력의 주인은….”
“단장님?”
물론 그 중엔 샤크론의 부관도 존재했다.
‘어떻게 된 거지…?’
몇 분 전 단장은 어둠을 찾기 위해 병력을 분산시켰고, 갑자기 안개 속으로 빠르게 달려 사라져 버렸다.
떠나기 직전, “역시, 다시 나타났군!”이라 말하던 단장의 모습. 부관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설마 어둠을 발견하고 혼자 나선 걸가? 그렇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어둠과 싸우는 도중 위기에 처해 도움을 요청했다는 뜻이었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의 목소리는 구조 요청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큭, 아무리 자신이 있어도… 그 어둠과 맞붙을 생각을 하다니!’
부관은 어둠의 힘이 이전과 같지 않다는 사실까진 알지 못했다. 그저 단장의 탐욕이 화를 불렀다고만 여길 뿐이었다.
두두두두.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말을 타고 질주하는 기사들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에 부관은 정신을 차렸다.
“아차,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
곧장 지팡이를 그어 바닥에 마법진을 그렸다.
유저처럼 귓속말을 사용하지 못하는 NPC에겐 지상과 지하를 잇는 통신이란 고난이도의 작업이었다.
위이잉-. 잠시 후 마법진이 깜빡였고 부관은 초조한 마음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자신이 방금 보낸 신호는 ‘지원 요청’.
단장은 지원이 필요 없을 거라고 말했지만 부관의 판단으론 그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었다.
“천공의 운명은 어찌 되려는 것인지….”
쿠르르르.
갑자기 대지가 진동해 부관의 몸이 기우뚱거렸다.
“뭐, 뭐야, 지진?”
천공의 인간들은 심연의 악마들이 지상을 괴롭힐 때 지진이 일어난다고 알고 있었다.
이곳은 지하임에도 지진이 일어나는 건가?
부관은 곧 방금 진동이 지진 따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저게 무슨, 땅이 떠오르고 있다니…!”
지평선 근처의 광경에 입을 떡 벌렸다.
어둠의 제사가 치러지는 장소.
어둠의 심장은 서서히 위로 떠오르며 주위의 땅을 함께 잡아 올렸고, 그에 따라 평지는 서서히 언덕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진동이 발생했던 이유는 지면이 어긋나며 단차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하와 지상이… 이어진다!”
땅이 떠오르는 것은 그저 단순한 현상이 아니다.
부관은 어둠이 등장했다던 성서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둠이 태동하자 지상과 지하를 잇는 길이 생겨났다는 기록.
부관은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신탁을 따라서만 움직였어야 했어! 지금이라도 당장 유적지를 부숴야 해!”
동시에 단장이 원망스러워졌다.
어둠은 지금도 땅의 꼭대기에서 힘을 되찾아 가고 있을 텐데, 단장이란 자는 공을 세우는 데만 급급한 모습이라니!
부관의 마음이 타들어갔지만 통신마법 외의 능력이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이 보낸 신호가 제대로 전해졌기를 믿는 수밖에.
***
파아앙!
안개의 물결이 사방으로 동심원을 튀기자 일순간 모든 공간이 칠흑에 휩싸였다.
검은 바람이 아인의 발치를 힘껏 강타한 순간이었다.
[정제되지 않은 어둠의 기운에 노출되었습니다!] [518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317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672의 피해를 입었습니다!]하늘에선 폭포가 내리고 발밑은 안개의 잔향으로 가득한 채워진 어두운 구덩이.
이곳에선 그저 격하게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체력이 소모될 것을 각오해야만 했다.
그래도 현이 ‘검은 바람’을 컨트롤해서 안개를 치워주는 덕분에 아인은 그나마 피해가 적은 편이었다.
지금, 비슷한 스킬을 보유하지 못한 샤크론은 치명적인 검은 기운들을 직접 받아내고만 있었으니까.
“크아악! 네 년은 반드시 죽인다!”
샤크론의 온몸이 끊임없이 번쩍거렸다.
성기사는 자신이 받은 피해를 곧바로 복구하는 능력을 지녔다.
전신에 번쩍이는 광휘는 그의 살점이 끊임없이 뜯겨나가고 다시 재생되고 있다는 증거.
「체력 관리해! 절반 남았어!」
「그, 그렇지!」
현의 경고에 아인은 발톱으로 근처의 흡혈박쥐를 찢어발겼다.
정기흡수의 효과로, 단숨에 최대치에 도달하는 아인의 체력!
마물들은 기꺼이 어둠의 생명을 위해 포션이 되어 주고 있었다.
화아아악!
박쥐들의 시체엔 리치들의 부활 마법이 쏟아졌고, 목숨을 잃은 녀석들은 언데드가 되어 다시 한 번 날아올랐다.
이 또한 미리 준비해둔 현의 지시.
‘그림자 방패!’
촤르르르륵! 은빛의 톱니와 이프리트의 발톱이 거칠게 마찰을 일으켰다.
불꽃과 신성력의 충돌이었지만, 불꽃이 새까만 탓에 얼핏 보면 마기와 신성력이 맞물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인은 최대한 빗겨내 봤지만 사슬 검에 담긴 모든 충격을 완화시킬 수는 없던 모양이었다.
[5초간 이프리트의 발톱(오른쪽)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파삭-! 한쪽 불꽃이 사그라졌다.
「깨졌어?」
「5초 정도면 문제없어!」
이프리트의 발톱이 잠기는 시간은 부서질 때의 충격에 비례한다.
현은 서로의 무기가 마찰할 때 그림자 방패를 발동시켰고, 그 덕분에 발톱이 깨져있는 시간은 5초에서 그쳤다.
‘어둠의 검!’
곧바로, 불꽃이 꺼진 아인의 손에 대검이 생겨났다.
빙글- 그 상태로 한 바퀴 돌자 안개의 물결이 일어났다.
전 방향으로 솟구쳐 오르는 어둠의 물결.
“크으윽…!”
안개가 지닌 데미지가 얼마나 되는 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다만, 아인의 불꽃으로 아무리 때려도 멀쩡한 샤크론조차 안개에 닿을 때마다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퍼버버벙!
리치들의 마법이 재차 주위에 작렬했고 샤크론은 다시 한 번 포효를 내질렀다.
“크아아아아, 하찮은 것들이!”
「온다!」
팟! 사슬 검의 끝이 아인의 뺨을 스쳤다.
정말이지 놀라운 반응속도. 아니,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그 반응은 절대로 예측으로 이루어지는 동작이 아니었으니까.
촤라라락!
하지만 아인도 후속타는 예상치 못한 모양이었다.
아인의 뺨을 스친 사슬 검은 다시 되돌아와, 이번엔 아인의 어깨를 뜯어냈다.
콰드드득!
[18058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왼쪽 팔을 잃었습니다!]“흐앗…!”
따끔한 고통에 아인은 짧은 비명을 질렀다.
한 번에 죽지 않은 것은 ‘레카르트의 마물 갑옷’의 빗겨 맞을 때 피해를 대폭 감소시키는 옵션 덕분이었다.
「미안 현, 나… 실수로!」
「아냐, 잘했어.」
우우우웅.
리치의 마법, 순간재생이 발동하자 뜯겨나갔던 부위가 순식간에 재생되었다.
아! 되돌아온 팔을 내려다본 아인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나였으면 못 피했어.」
현의 말은 그저 빈말이 아니었다.
바람장벽을 비롯한 스킬에 신경 쓰느라 샤크론이 공격하려는 낌새를 알아채지도 못했으니까.
다시 흡혈박쥐를 잡아 체력을 채우는 도중 아인이 조심스레 물었다.
「진짜야…?」
「어. 진짜로.」
퍼엉! 갑자기 공기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리치들의 캐스팅이 완성되어 마법 세례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마법 자체보단, 마법의 여파로 튀어오르는 안개가 고통스러웠던 샤크론은 고막이 나갈 듯 울부짖었다.
공간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포효하곤 곧장 사슬 검으로 창공을 휩쓸었다.
콰드드득-!
톱날에 꿰어진 마물들은 차례로 빛이 되어 폭발을 일으켰다.
안개의 폭포 위에서 캐스팅을 이어가는 리치의 수도 한꺼번에 줄어들었다.
「투명화 쿨 돌았어! 지금 바로 가!」
샤크론이 마물을 계속 죽이게 놔둘 순 없다. 아인의 체력 회복 수단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
결투는 샤크론의 신성력이 전부 소진되느냐, 혹은 마물이 먼저 전멸하느냐의 싸움이었다.
「좋아, 나도 잠력 폭발 최대 중첩이라고!」
팟-! 바람장벽을 힘껏 박찬 아인의 신형이 공기 속에 녹아들었다.
투명화, 가속, 검은 바람까지 함께 사용되자 샤크론의 주위엔 어둠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크흐으윽…! 크아아아악!”
성기사가 아무리 회복력이 강하다 한들 무적은 아니다. 피해를 복구하다 보면 언젠가 신성력이 고갈되는 때가 올 테니까.
그리고 샤크론은 그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째서?’
분명 어둠의 힘은 약해빠졌다. 느려터진 공격은 닿지도 않았고, 닿는다 해도 간지럼밖에 되지 않는다.
설령 어둠이 이전에 사용했던 그 ‘흡수하는 대검’을 다시 꺼낸다 해도 샤크론은 모조리 피해낼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 ‘검은 바람’을 익숙하게 활용하지 못하는 아인의 속도는 샤크론의 아래였으니 그 자신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이 안개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피하기란 불가능 한 법.
현과 아인은 스펙이 아닌 전략을 통해 샤크론을 철저히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이 내가 죽는다는 것이냐?’
고작 어둠이 과거에 남겨둔 흔적. 이것 때문에 패배해야 한다는 말인가!
신성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어둠은 여전히 건재했다. 마물도 아직 절반이나 남아있었으니 샤크론에겐 더욱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큭…!”
이 장소를 빠져나가지 못하는 한 꼼짝없이 죽는다!
하지만 수많은 마물과 어둠의 방해 때문에 폭포 위쪽으로 올라가기란 불가능했다.
다시 한 번 안개의 세례를 뒤집어썼을 때 샤크론은 자신의 운명을 예견했다.
‘이렇게 되면 차라리…!’
절망 속에서, 과거와 미래의 모습을 떠올려 본 샤크론.
잠시 후. 그는 자신의 목숨과 맞바꿔서라도 어둠만은 반드시 처치하리라고 목표를 변경했다.
어둠을 처치한 자로서 후세에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욕망은 이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꺼지지 않았다.
마지막 힘을 쏟아 붓는다면 힘을 잃은 어둠을 길동무로 데려갈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니까.
‘차라리 네 년과 함께 죽겠다!’
샤크론은 끊임없이 기회를 엿보며 고통을 인내했다.
버티고, 버티고… 오랜 기다림 끝에 기회는 결국 찾아오게 되었다.
팟-! 어둠이 허공을 박차는 순간 샤크론은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타이밍을 맞춰서, 푸욱! 자신의 심장에 사슬 검을 박아 넣었다.
신성과 신성의 충돌.
콰아아아- 샤크론이 지닌 최후의 의지는 강렬한 빛이 되어 폭발했다.
벽과 바닥이 무너졌고, 안개의 일부까지 소멸되었다.
수백의 정예를 이끌던 기사단장의 마지막 불꽃은 강렬했다.
어둠과 함께 장렬히 전사한 것으로 자신의 이름은 역사에 남으리라.
그것이 샤크론의 마지막 생각이었지만….
「쟤 뭐해…?」
「또 낚였나 본데?」
현과 아인은 화려하게 빛나는 신성의 폭발을 멀리서 지켜만 보았다.
환영을 먼저 보내고 시간차를 두어 돌진하려던 순간, 상대가 자폭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화아악-!
자신들의 몸에서 레벨 업의 이펙트가 솟아올랐으니, 샤크론의 죽음을 확신해도 될 것 같았다.
캬아아-! 캬아-! 하늘을 맴도는 박쥐들도 환희의 울음을 내지르던 때, 현과 아인의 눈앞에는 긴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성왕국의 5대 기사. ‘샤크론 네이제르’를 영원한 안식에 빠뜨렸습니다!] [2인 파티로 성공하였습니다!] [마물의 도움을 제외한 공헌도를 계산중입니다!] [[…스킬 포인트가 6(아인)/8(현) 만큼 상승합니다!]]바람장벽에 걸터앉은 채, 현과 아인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쏴아아아-.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안개의 폭포는 샤크론이 만들어낸 빛을 휩쓸며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인은 뭔가 아쉬운 듯, 안개가 쏟아지는 구덩이를 바라보았다.
「이름에 비해선 허망한 최후네….」
「오픈 일 년도 안 지났잖아. 아직 NPC들이 성장하기 전이니까.」
현은 갑자기 떠오른 아스라의 기억에 쓴웃음을 지었다.
과거 샤크론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지금 잡은 게 그나마 다행이지.」
빛과 어둠이 본격적으로 스토리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NPC들은 지금에 비할 수 없이 강력해진다.
시간이 지나 레벨이 오르는 것도 있지만, 그보단 초월자들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이유가 더 컸다.
진실이나 기만 외에도 수많은 천사들과 악마들이 ‘공감’을 사용하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보통 NPC들은 2배쯤, 네임드로 불리는 녀석들은 3~4배 이상의 신력(神力)을 다루게 되는 것이다.
지금이 아니라 훗날이었다면 샤크론을 잡아내기가 더욱 힘들었으리라.
[아이템, ‘심판자의 톱니 사슬 검’을 획득하였습니다!]잠시 후 하나 더.
350레벨 착용 제한을 지닌 유니크 무기가 드랍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