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 Carry Support RAW novel - Chapter (68)
사건의 이면
파티장 획득으로 분배를 설정해 두었기 때문에 아이템은 자연스레 현의 인벤토리로 들어왔다.
‘음….’
몇 달 전부터 인성이 너그러워진 현은 아인에게 그 사실을 숨기지 않기로 했다.
「아이템 나왔네.」
「너 쓰게?」
「아니, 제한이 350레벨인데다 다루기도 어려워. 너무 눈에 띄기도 하고.」
그 무기를 사용한다는 뜻은 자신이 샤크론을 죽였음을 널리 공표하는 셈이었다.
성왕국의 기사들에게 쫓겨 다니고 싶지 않다면 사용을 자제하는 편이 좋았다.
「팔기는 아깝고, 분해해서 처리해야겠지.」
마력과 신성력으로 제련된 금속은 나중에 다른 아이템을 제작하는데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 사용처를 현보다 잘 아는 유저는 아마 없을 것이다.
「일단 나가자.」
강신의 효과가 끝나면 안개를 차단할 스킬이 없으니 현은 서둘러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다.
돌아오던 도중에 패닉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성기사들을 멀리서 몰래 지켜볼 수 있었다.
“단장님의 기척이 사라지셨다!”
“어둠… 설마 어둠에게 당하신 것인가…?”
지휘관을 잃은 기사단은 더 진격할 수 없다. 진열을 갖추고 마음을 다잡기 전까지는.
적어도 루이즈의 제사가 끝날 때까진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현은 확신했다.
쿠구구구-!
현과 아인이 제단의 변화를 깨달은 것은 큰 소리가 지축을 흔들었을 때였다.
루이즈가 있을 장소. 어둠의 심장의 방향을 바라본 아인이 기겁했다.
“저긴 왜 저래? 언제 저렇게 변했대?!”
샤크론을 잡으려는 계획을 세울 때까지만 해도 평지였던 제단이 있던 장소가 산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뭐야 이건….”
현도 말을 잇지 못했다.
좀 더 자세히 바라보니 산의 정상에 피라미드의 제단이 놓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제단 꼭대기에 부유하고 있는 마기의 구체. 루이즈는 아마 그 한가운데 둘러싸여 있을 것이다.
“뭔가 잘못된 거 아냐?!”
“아니….”
현은 주위의 마물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자신이 어둠을 흉내 냈음을 이제 알게 되었을 텐데도, 그들은 아랑곳 않고 그저 어둠의 제사가 진행되는 광경에 넋을 놓고 있었다.
그저 루이즈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환희하고, 기원을 바치고 있었다.
“원래 이렇게 되는 것 같아. 지형이 변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래? 엄청나네….”
지금도 산의 경사는 계속 가팔라지고 있었다.
콰직! 콰지직! 그에 따라 바위들이 갈라져 나갔다.
현은 재미있는 가정 하나를 떠올려 봤다.
땅이 통째로 대칭세계를 벗어날 수도 있나?
일루나에서 아스라로 돌아와야만 했던 때, 루이즈와 함께 대칭세계의 특정 장소에 도달하니 강제로 성왕국의 어딘가로 이동된 적이 있었다.
대칭세계는 지하라고도 불리니. 어둠의 땅 전체가 지상을 향해 이동하는 거 아닐까?
‘이크, 딴 생각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지!’
[어둠이 한 줌의 자아를 갖추기까지 : 82분 43초]재빨리 정신을 다잡은 현은 발 빠르게 다음의 계획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샤크론을 잡았다 한들 메인 퀘스트는 다 끝나지 않았다.
나머지 기사단들의 움직임을 주시해야 했고, 천공의 추가 병력에도 대응해야만 했다.
“아인, 넌 제단 근처로 가서 루이즈를 지켜 줘.”
“제단에 적이 올 일이 있어?”
“웬만하면 아무도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아인은 별말 없이 현의 지시에 수긍해 주었다.
“음. 알겠어. 현은?”
“남은 기사단 녀석들의 움직임을 지켜봐야지. 천공에서 지원군을 보내올 가능성도 있고.”
“혼자서 막게?”
“혼자는 아니야.”
현은 주위의 마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물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한다면 지휘관이 없는 기사단을 막아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
강신은 끝났으니, 이제부터 마물을 지휘하기 위해선 루이즈의 이름을 팔아야겠지만.
“위험하면 도와주러 올 게. 귓속말 해.”
“너도.”
아인은 산의 꼭대기에 위치한 제단으로 향했다.
잠시 후. 강신이 풀린 모습의 현의 곁엔 한 구의 리치가 다가와 있었다.
샤크론을 잡아낼 때 마물들을 지휘하던 그 리치였다.
“그대는… 어둠의 그림자였군… 기운이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어찌보면 현은 지휘관 리치를 속인 셈이었지만, 녀석은 자신들을 속인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은 듯 했다.
어둠의 가호. 루이즈의 기운을 닮게 되는 영향 덕분인지도 몰랐다.
“계속 도와줄 거야?”
“그렇다… 그대의 뜻이 어둠의 뜻과 어긋나지 않다면….”
현은 잠깐 동안 빤히 리치를 바라보았다.
이전부터 궁금했던 일 하나가 실제로 가능한 일인지 확인해 보고 싶어서였다.
“그럼 영혼을 빌려줄 수 있어?”
[플레이어 ‘현’이 당신의 영혼을 지배하고자 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N]현은 알지 못했지만, 신기하게도 리치의 눈앞에 떠오른 문구는 마물의 언어로 되어 있었다.
***
최초로 레전더리 아이템이 보상으로 걸린 검은 마을 퀘스트.
퀘스트에 참가한 모든 이가 죽어버린 탓에 천공 쪽도, 심연 쪽도 공적치의 순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레전더리의 주인이 누가 될 것인가?
대부분 유저들은 그것에만 관심이 가득했지만, 천공의 게시판 곳곳엔 다른 화제도 없지 않았다.
퀘스트에서 자신이 겪은 황당한 썰을 푸는 유저들이었다.
-님들도 천공인데 천공 유저한테 죽었나요?
-거기 퀘스트 참가하면 적이고 아군이고 의미 없음 ㅋㅋㅋ 퀘스트 보상이 순위 싸움이라며. 나중 가니까 같은 천공끼리도 막 죽이더라.
-아무리 그래도 나 같은 쩌리까지 죽일 진 몰랐지!
-ㄴ그래서 공헌도 얼마?
-ㄴ0이다 이 새끼야.
-ㄴㅋㅋㅋㅋ
-저도 공적치 0이에요.
많은 천공의 유저들은 퀘스트 중 같은 세력에게 PK를 당했다며 억울함을 성토했다.
퀘스트 내에서는 모두가 적! 보상은 공적치의 순위에 따라 주어지니 같은 편에게 죽임당하는 피해자가 많은 것은 얼핏 당연해 보였다.
-100레벨도 못 넘는 주제에 끼어든 내가 잘못이지.
-난 121레벨인데도 공적치 0임.
-ㄴ엥? 그 레벨로 어떻게 한 명도 못 죽였어요? 아니, 딜 대충만 넣어도 0은 벗어나던데.
-ㄴ몰라. 등 뒤에서 칼 맞은 듯.
그러나 조금 유심히 살펴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째서 심연 커뮤니티에선 팀킬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을까?
피해를 성토하는 글은 대부분 천공 커뮤니티에만 몰려 있었다.
팀킬에 관한 떡밥은 금세 묻힌 탓에 큰 화제로 이어지진 못했으니 검은 마을에서 있었던 은밀한 일을 아는 유저는 그 장소에 있던 자들밖에 모를 것이다.
“후후후.”
어둠의 땅에서 잠시 쉬는 도중, 캡슐 인터넷 기능으로 커뮤니티를 살펴본 강철바위가 웃었다.
팀킬의 피해를 토로하는 이들 중엔 자신의 손에 죽은 자도 제법 섞여 있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아스라부터 아스리안으로 이어져 내려온 고인물 길드.
얼마 전 ‘회귀자’라는 정식 길드 명칭이 정해졌다.
놀랍게도 회귀자 길드원들은 어둠의 제사가 시작된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내지 않았다.
‘보상은 우리 길드가 싹쓸이하겠군.’
퀘스트에 참가한 열 명이 달성한 공적치는 최소 10만에서 선두는 100만 이상!
검은 마을 퀘스트 보상은 공적치의 순위대로 주어진다.
자신을 포함한 열 명이 1~10등을 전부 차지하고 있는 지금, 레전더리 아이템, 수많은 유니크, 희귀 재료, 스탯, 스킬 포인트까지 길드의 몫으로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이들은 모두가 사망한 가운데 아직까지도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이유는 간단했다.
‘그때 빠르게 로그아웃 했던 선택이 좋았어.’
약한 자를 경멸하며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벌이는 잔혹한 성기사.
「로그아웃 해!」
샤크론이 등장하자마자 그의 얼굴을 알아본 강철바위는 모두에게 경고했다.
다음으로 벌어진 참극은 정확히 그가 예상한 대로. 샤크론은 천공과 심연을 가리지 않고 모든 유저를 몰살해 버렸던 것이다.
그 때 이후로 유저는 더 이상 검은 마을로 넘어오지 않았다.
천공은 입장권의 기간이 다해서, 심연은 안개로 인해 열차의 길이 막혀서.
‘그 다음부턴 우리 세상이었지.’
기사단이 마을을 떠나고, 현 일행이 떠나고, 메이데이와 뱀파이어 제사장까지 길을 나서고도 수십 분 뒤, 회귀자 길드원들은 다함께 폐허가 된 마을 앞에 나타났다.
우연히 로그아웃한 소수의 천공의 유저들이 옹기종기 무너진 마을 아래에 모여 있었지만 큰 상관은 없었다.
그들은 수십 명이라도 강철바위 한 명조차 이길 수 없는 양민들이기 때문이었다.
마을의 인원들을 몰살시키고 나서, 모든 길드원은 자신들에게 아주 큰 기회가 찾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아직 로그아웃했던 유저들이 더 있을지도 몰라.”
중저음인 길드장의 목소리에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두 명만 여기 남아서 접속하는 유저들 통제하고, 나머지는 공적치를 벌면 되겠어.”
“그게 좋겠군. 두 명은 교대로 하는 거지?”
“맞아. 솔직히 통제 따위 없어도 순위를 뺏기진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딱 한 시간만 통제할 거다.”
천공의 유저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하던 이유는 이들이 마을 입구에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귀자 길드원은 이름 그대로 전부 회귀자들. 아스리안의 모든 꿀을 빨며 성장한 고인물들이다.
하나하나가 10위권 이상의 랭커 급의 스펙에, 랭커 이상의 실력을 지녔으니 일반 유저들과의 싸움은 일방적인 학살이나 다름없었다.
소수의 인원이 통제하는 동안 나머지 길드원들은 안개의 벽에 둘러싸인 외길을 따라 어둠의 협곡에 들어서게 되었다.
“와, 여기 대체 어디지? 사냥 10분 만에 마을에서 번 공적치의 절반을 얻었다니!”
마물들을 잡고 상태 창을 확인한 길드원들은 감탄을 터뜨렸다.
“경험치도 장난이 아닌데? 같은 종류 마물을 잡아도 체감상 경험치가 세 배는 오르는 것 같아!”
“정말 어마어마한 사냥터네요….”
“하하, 그럼 이제부턴 우리끼리 보상 순위 쟁탈전을 펼치게 되겠군.”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모두의 표정이 의미심장하게 변했고, 경쟁적으로 마물들을 사냥해 나가기 시작했다.
느긋한 것은 들러리에 가까운 강철바위 뿐이었다.
‘뭐, 난 용의 꼬리를 얻는 걸로 만족해야지.’
스펙으로도, 실력으로도 들러리에 가까운 강철바위의 공적치 순위는 길드원 중 꼴찌였다.
길드 내 천공 유저 수는 약 서른 명인데도 강철바위가 참가 명단 10명 안에 포함될 수 있던 이유는 두 가지.
첫째로 그의 판단력이 제법 괜찮았기 때문에.
실제로, 강철바위 덕분에 모두가 샤크론이 등장한 순간 로그아웃 할 수 있었다. 그가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길드원들은 샤크론의 기사단에게 몰살당했으리라.
둘째는 강철바위가 길드 내의 동영상 촬영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회귀자 길드는 아직 음지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언젠가 양지로 나서야만 할 때가 올 것이다. 그 때를 위해 큼지막한 이벤트들을 영상으로 저장해 두어야 했다.
강철바위는 다른 길드원들보다 아스라의 세계관에 박식했으니 그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성왕국은 대체 무슨 의도로 퀘스트를 냈을까?’
어둠의 안개로 뒤덮인 산맥과 협곡을 천천히 촬영하며 강철바위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다.
붉은 하늘. 검정색의 태양.
아스라에는 없던 장소다. 이상한 점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성왕국의 5대 기사 샤크론이 등장할 정도라면 이 퀘스트에는 복잡한 사연이 꼬여 있으리라.
하지만 그것이 어떤 사건인지를 좀처럼 알 수가 없었다.
‘흐음, 샤크론이 나섰다는 건….’
강철바위는 아스라 시절 샤크론의 죽음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그는 무모하게 악마와 싸우다 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의 메인 스토리가 무엇이었더라?
‘설마… 어둠의 스토리가 벌써 진행되려는 건가?’
강철바위는 문득 솟아오른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어둠은 너무 이르지.’
이제 아스리안이 오픈한 지 1년도 되지 않았다.
기만이 벌이는 음모 에피소드 이후… 시간의 흐름이 동일하다면 어둠의 등장은 약 4년 뒤의 일이었다
「통제는 이제 필요 없어. 다들 안쪽으로 들어와.」
어느 순간, 모두에게 길드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위가 10위인 강철바위의 공적치도 10만을 넘어선 지금. 다른 유저가 순위를 뒤집기란 요원하다 판단되는 상황이었다.
“중요한 정보에요.”
모두가 모였을 때, 여성으로 보이는 궁술사가 말했다.
“메이데이가 있어요.”
“뭐? 메이데이가?”
명예의 전당을 수시로 살피는 이들이 그녀를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모든 유저들은 샤크론이 등장했을 때 죽은 것이 아니었던가?
궁술사는 산의 꼭대기에서 자신이 본 장면을 재생시켰다.
천리안.
매의 눈동자 앞엔 모든 사물이 가까이 다가온다.
짙은 안개에 곳곳이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아 궁술사는 천천히 모든 장소를 훑어보았다.
마침내 그 시선이 협곡의 아래를 향했을 때, 그곳엔 누구나 알고 있는 긴 머리 마법사의 얼굴이 있었다.
“허어, 정말 메이데이군.”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모두가 머리를 모으자 결론을 도출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샤크론이 등장하기 전 자신들처럼 로그아웃 했을 것이다.
기사단이 떠나는 것과 회귀자 길드가 나타난 사이엔 약간의 공백이 존재했으니, 메이데이는 그 때 다시 로그인해 먼저 길을 떠났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근데 별로 상관없는 거 아냐? 메이데이는 심연이잖아. 우리랑 공적치 경쟁을 벌일 일도 없어.”
“설령 싸운다 해도 상관없고.”
“맞아, 마법사니까 혼자서는 약하지. 아마 강철바위도 일대일로는 메이데이를 이길 수 있을 걸?”
“이기냐 마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궁술사가 핵심을 짚었다.
“메이데이 말고도, 빈 시간에 로그인해서 우리보다 먼저 안으로 들어간 유저가 더 있을지도 몰라요!”
공백의 시간에 움직인 유저가 또 존재할 가능성.
“우리가 놓친 게 한 명이라는 보장은 없잖아요?!”
“뭐, 그렇다 쳐도 상관없지 않아? 몇 명 놓쳤다 해서 퀘스트 보상 순위가 뒤바뀌는 것도 아니고.”
“만약 현이나 아인도, 놓쳤다면요?”
“음?”
둘의 이름이 나오자 길드원들은 잠시 정적에 휩싸였다.
누군가가 말도 안 된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일은 없어. 아인은 천공이었잖아. 아인이 우리보다 먼저 들어갔으면 공적치 순위가 이 상태일 리가 없겠지.”
퀘스트의 참가자들은 모두 자신의 순위를 확인할 수 있다.
열 명의 회귀자 길드원들은 1위부터 10위까지 모든 자리에 이름을 올려둔 상태였다.
“현도 뭐, 아인과 같은 세력이겠지. 근데 봐봐, 둘의 순위가 10위보다 아래라는 뜻이야? 그거라면 그거대로 걱정할 필요 없지.”
그 말은 제법 논리적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세 명 정도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 세 명엔 강철바위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말 그럴까?’
강철바위는 상념에 빠졌다.
아스라 온라인에서의 현을 떠올려 보면… 그는 언제나 남몰래 퀘스트를 받고 혼자서 스토리를 진행시켜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가끔은 아인과 함께 둘이서.
‘스케일이 너무 커.’
아스라 시절에 없던 퀘스트이기 때문에 길드원들은 이것이 큰 스토리와 관계가 없다고 여기는 듯했다
하지만 강철바위는 보면 볼수록 이 배경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되었다.
한때 아스라의 정교한 역사에 매료된 그였다.
성왕국이 유저들에게 이유 없는 친절을 베풀거나 이유 없이 기사단이 출동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검은 마을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 다른 장소에서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는 건가…?’
만약, 현이나 아인이 거대한 퀘스트를 진행 중인 것이라면? 검은 마을 퀘스트가 조그맣게 보일 만큼의 스토리라면 참가하지 않은 것도 당연했다.
쿠구구궁…!
흔들림이 느껴진 것은 강철바위가 그런 생각을 이어가던 때였다.
“뭐야 이건!”
“지진이야…?”
어둠의 제사가 시작되면 심장은 서서히 지상으로 떠오른다.
길드의 일행은 먼 지평선의 끝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세령, 천리안으로 보여 봐!”
“잠시만 기다려요…!”
모두는 곧 마법진이 가득 새겨진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검은색의 구체가 떠올라 있는 홀로그램을 볼 수 있었다.
뭐야, 저건, 마기인가?
여러 의문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길드장은 턱을 괸 채 생각에 빠졌다.
“최소, 둘 중 한 명은 있을 가능성이 높아….”
한참 만에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있을 것 같네.”
“현이나 아인 말이야?”
길드장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우리도 저쪽으로 가야겠군.”
“그 둘과 싸우려는 건가요?”
“죽여야지.”
길드장의 말에 모두가 숨을 삼켰다.
길드원 중에 그들에게 당해보지 않은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아스라 시절의 굴욕을 갚기 위해서 회귀자 길드가 탄생한 것이기도 했으니.
길드장은 모두의 트라우마를 극복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다들 아인의 모습은 일루나에서 전부 봤잖아.”
라티스와의 결투. 곧바로 이어지는 마물과의 전투에서 아인은 사망에 이르렀다.
그 때를 기준으로 잡고 성장속도를 고려하면 그녀의 스펙을 역산해 낼 수 있었다.
최대로 잡아도 200레벨 초반일 것이다.
“우리 중 둘만 있어도 비등비등해. 셋 이상이면 유리하지. 아… 강철바위는 제외하고.”
길드장은 잠깐 옆을 보며 덧붙였다.
“어쨌든 더 이상 웅크리고 있을 필요는 없어. 만나면 무조건 잡는다!”
이토록 거대한 스토리가 진행되는 것이라면 둘 중 한 명은 반드시 연루되어 있으리라.
그들이 어떤 퀘스트를 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만약 그 퀘스트가 성공한다면, 격차는 더욱 벌어질지도 모른다.
아스라의 악몽을 떨쳐내기 위해서도, 그들의 성장을 저지시키기 위해서도. 반드시 잡아내야만 했다.
***
고풍스러운 로브를 입은 푸른 뼈다귀.
현은 뼈마디로 이루어진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신기하네.’
동화를 얻은 직후 인형사의 골렘에 동화한 적이 있다.
인간과 완전히 다른 외형의 신체는 그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어둠의 뜻을 거스르려 할 때… 그대와의 계약을 해지할 것이다….」
리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조용해졌다. 간간히 질문에만 대답했다.
상태 창에 따르면 이 녀석은 325레벨 정예 마물.
허나, 마법사 계열인 만큼 대인전에 쓸 만한 스킬은 없었다.
무력화의 파장으로 방어력만 낮춘다면 아인에게도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하긴, 개채의 강함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모든 언데드들의 왕.
휘하의 언데드들을 뜻대로 지휘하는 능력을 가진 마물이 바로 리치다.
동화한 현은 수많은 영혼의 이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셀 수도 없는 언데드들… 기가 질릴 만큼 거대한 군대가 이 한 마리의 리치를 따르고 있었다.
「부하가 몇이나 되는 거야?」
「약 2천 5백이다… 이 땅의 언데드 3할은 나의 휘하에 있다….」
「너 같은 지휘관 급 리치가 둘 정도 더 있다는 거였지?」
「그렇… 다.」
천이 넘어가는 단위의 언데드를 지휘할 수는 없을 테니 현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다. 지휘관 리치 아래 열 마리 가량의 일반 리치들을 지휘하기로.
한마디로, 백인장들을 통솔하는 천인장이 되는 것이다.
‘보인다!’
리치는 부하가 보는 시야를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곧 요령을 터득한 현은 인간이 동시에 바라볼 수 없는 공간을 한눈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콰드드드드!
마침 딛고 있던 땅이 또 솟아올랐다. 바닥 곳곳에 고여 있던 안개가 콸콸 흘러내렸다.
한층 높아진 시선. 현은 멀리서 진격해 오는 성왕국의 병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원 병력인가?’
샤크론이 이끌던 것처럼 정예 기사단이 아니라, 일개 기사와 병사들.
천 명쯤 되어 보이는 병력이 빠르게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기사단 하나만 달랑 보냈길래 NPC가 대칭세계에 넘어오려면 제약이 있는 줄로 알았는데….’
현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신성력이 강한 자는 쉽게 지하로 오지 못한다.
새로운 병력들의 평균 레벨이 200조차 안 되는 이유는 대부분이 신성력을 지니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니.
‘아, 잠깐, 쟤는.’
이리저리 시점을 변경하던 도중 익숙한 유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살아있지?’
낙오된 메이데이가 혼자서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마을에서 죽었던 게 아닌가…? 염력술사에게 무적스킬은 없으니 로그아웃하지 못했다면 샤크론에게 죽을 수밖에 없었을 텐데.
‘아, 나 덕분이구나!’
현은 자신이 충고했던 것을 기억해 냈다.
그저 조심하라는 말로 살아난 메이데이도 대단하기는 했다.
그래, 염력 술사라면 확실히 전쟁에서 쓸 만하겠지.
퀘스트 공적치를 쌓는 데도 유리하니 그녀의 순위가 1등일까?
‘잠깐….’
문득, 현은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상기했다.
‘퀘스트 공유 받을 수 있는 거 아닌가?’
메이데이도 자신과 같은 심연의 세력.
현은 심연에도 무슨 퀘스트 하나가 있었다는 살론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잠깐만….”
“무슨 일이지…? 곧 전쟁이… 시작될 것인데.”
“잠깐 다녀올 데가 있어.”
어느새 동화를 해제한 현은 메이데이가 있던 방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퀘스트의 공적 수치는 실제로 공헌한 성과에 비례한다.
그런데 자신은 루이즈를 지켰고, 샤크론도 잡았고, 제사도 지냈고. 할 수 있는 웬만한 건 다 했다고 봐야 할 테다.
‘공적치로 따지면 내 순위는 어떻게 되는 거지…?’
현은 한참 동안 고민했다.
메이데이에게 자신은 그저 모르는 유저 1에 지나지 않으리라.
처음 보는 사람에게 퀘스트를 공유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어떻게든 받아야 돼. 일단 돈으로 회유하고… 그래도 안 되면 협박이라도 해야 되나?’
온갖 고민과 함께 최대한 우연한 만남을 가장하며 메이데이를 향해 다가간 현은,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어라? 현, 이에요…?”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메이데이의 말에 현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지? 그보다, 내 얼굴을 알고 있다고?!
“아, 맞구나! 역시, 아까도 아인과 함께였군요!”
“…?”
“경고해 준 거 고마워요. 아니었으면 전 지금쯤 마을과 함께 잿더미가 되었겠죠?”
현은 누군가 아스리안 페스티벌에서 자신의 정체를 눈치 챘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게임에서의 외모가 현실과 동일했기 때문에 메이데이는 뱀파이어 상태인 현의 얼굴마저 한눈에 알아보았던 것이었다.
“저를… 아세요?”
“아, 맞아, 그러고 보니 우리 처음 만나는 거지요?”
메이데이의 입에서 여러 단어가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길드의 방침이 정해진 이후, 메이데이는 현을 마주치게 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지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
아인에 관한 것, 동화를 알아챈 계기, 페스티벌에서 우연히 엿보았던 것까지.
메이데이의 이야기는 제법 길었기에 현은 충분한 사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아, 페스티벌에서. 그런 거였군요.”
“걱정 말아요. 정체를 숨기고 싶다면 말 안 할게요. 사실, 다섯 명쯤은 이미 알고 있지만… 그들도 제 발언을 무시할 수 없을 테니 모두 입을 다물 거고요.”
메이데이는 현이 신경 쓰고 있을 거라 추측되는 화제를 미리 꺼냈다.
최우선 과제는 친분을 마련하는 것이니, 훗날 척을 질 만한 요소는 제거해 두는 편이 좋았다.
“상관없어요. 머지않아 알려질 것 같으니까요.”
“알려져요? 머지않아 대외적인 활동을 한다는 뜻인가요?”
“하하, 대외적이라니 그런 거창한 건 아니고.”
현은 얼마 전의 촬영을 떠올렸다.
3-4개월이 지나면 어차피 모두가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될 것이지만. 그 이유보다도.
“이젠 정체를 숨길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유는 전 아스라 유저들과의 첫 번째 싸움을 위해서였다. 처음 보는 스킬들로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것도 스킬을 파악당하기 전의 이야기일 것이다.
한 번 싸우고 난 뒤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의미가 없어지니까, 이제부터는 몸을 숨기지 않고, 게임을 정복해나갈 계획이었다.
현의 말뜻을 나름대로 알아들은 메이데이는 숨을 죽였다.
“…근 시일 내에 큰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네요.”
대충 인사가 끝난 뒤, 현은 슬슬 본격적인 의도를 꺼내기로 했다.
바로 메이데이를 찾아온 목적 말이다.
“공적치 때문에 여기 오신 거죠?”
“맞아요.”
“공적치, 경험치까지 빠르게 얻는 방법이 있는데….”
“네…?”
현은 한 곳을 가리키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저쪽 언덕으로 오르는 길목을 지키는 방법이죠. 제가 아까 봐둔 자리인데… 안개와 마물로 막혀 있기 때문에 병목 현상이 일어나는 명당이거든요. 염력술사가 저기에 자리를 잡으면 어마어마한 공적치와 경험치를 벌 수 있을 겁니다.”
“그, 그런 가요…! 하지만 어째서 그런 정보를 저에게….”
“하하, 나중은 몰라도 지금은 같은 편이니까. 서로 돕는 거죠.”
거기까지 말하고 현은 슬쩍 메이데이의 표정을 힐끗 살폈다. 자신의 호의가 잘 전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분위기가 괜찮다고 생각되는 순간, 현은 은근슬쩍 준비해 둔 말을 꺼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자 그럼, 저한테도 퀘스트 공유 좀 부탁드려요.”
다음 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