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 Carry Support RAW novel - Chapter (76)
변화하는 것
안개가 지상을 휩쓸었다.
10분가량, 영혼을 녹일 듯이 이곳저곳을 맴돌던 안개는 곧 절벽의 틈새에 스며들어 사라졌다.
하루에 두 번씩 반복되는 데모니아 협곡의 일상이다.
[아스리안에 접속합니다!]로그아웃을 사용해 몸을 피신했던 이들은 안개가 걷히고 다시 접속했다.
현과 아인, 그리고 고용된 인부들도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냈다.
협곡에서의 소란 이후 오늘이 3일째.
현이 이곳에 다시 찾아온 이유는 3일간 캐낸 신석을 수거하기 위해서였다.
‘사흘 만에 다시 왔는데, 그때랑은 완전히 달라졌네.’
며칠 만에 협곡은 새 단장을 마쳤다.
건축사들은 협곡을 둘러싸는 형태로 굳건한 요새를 세웠고, 요새의 성벽엔 마학자들이 그려낸 마법진이 빛을 뿜었다.
그 사이사이에 다크니스의 병력이 배치되자 빈틈없는 방어체계가 갖추어졌다.
수 킬로미터에 걸쳐 협곡을 둘러싼 벽은 그야말로 거대한 성과 같았다.
현도 ‘강신’이 없다면 뚫을 엄두조차 나지 않을 만큼.
‘아스라 온라인에선 유저가 직접 건물을 세우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말이야.’
유저들이 만들어낸 성이여서일까? 건축양식엔 아스리안 속의 판타지 양식과 현대적 디자인이 섞여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SF판타지를 연상케 하는 성벽 가운데엔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될 건물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점점 현실과 게임의 경계가 사라져가는 것 같아.’
영화계가 아스리안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마력 공학자라는 직업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도. 이색적인 아스리안의 아르바이트가 생겨난 것도, 전부 같은 맥락일 것이다.
아스라에서 볼 수 없던 아스리안만의 특색.
현은 절대로 그 차이를 무시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도 빨리 아스리안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운이 좋은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로버트, 지니 그리고 다크니스 덕분에 남들보다 먼저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으니까.
[신석을 획득하였습니다!] x28“28개, 정확하네요.”
현은 메이데이에게 건네받은 물건들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신석의 개수는 물론 각각이 보유한 신력 수치까지 검토했다.
신학자가 탐지했던 수치와 일일이 비교해서 다른 것이 있으면 판을 엎어버릴 생각이었지만… 다행히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이것도 받아요.”
오히려 메이데이에게 하나의 선물까지 더 받았다.
“이건…?”
「으응? 이게 뭐야!」
그것이 ‘반지’라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동화하고 있던 아인의 눈이 번쩍 빛났다.
“하, 이딴 거 필요 없…!”
「야, 좀!」
현이 통제권을 이용해 재빨리 아인의 입을 닫았지만, 이미 목소리는 흘러나간 뒤였다.
하지만 동화의 효과를 아는 메이데이는 목소리를 낸 것이 ‘현’이 아니라 ‘아인’임을 눈치 채고 옅게 웃은 뒤에 말을 덧붙였다.
“개인적인 선물이 아니라 길드 차원에서 드리는 거니까 그렇게 부담가질 필요 없어요.”
[정체모를 하수인의 반지]-누군가가 사용하던 오래된 반지입니다.
-은은한 마기가 느껴집니다.
「뭐야, 퀘스트 템이었어…?」
아인도 그 반지가 장비 아이템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고는 곧 잠잠해졌다.
“엄청 힘들게 구한 건데 아무도 사용법을 모르더군요. 당신이라면 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메이데이의 말이 아니더라도 현은 한눈에 반지의 ‘사용법’을 예상할 수 있었다.
루이즈의 목걸이와 비슷한 아이템.
지금도 낡은 목걸이는 현의 인벤토리에 담겨 있었다. 루이즈를 만난 직후 돌려주려 했지만 한사코 받으려 하지 않아 아직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선물이라면 감사히 받죠.”
반지를 건네받아 이리저리 살펴보던 현은 순간 이상한 점을 눈치 챘다.
상태 창의 설명이 아닌 겉모양에서.
반지에 새겨진 문양이 어째선지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두 가닥의 번개가 교차되어 있는 그 형태는… 굳이 인터루프를 뒤지지 않아도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천인…?”
현의 중얼거림에 메이데이의 눈이 반짝였다.
“역시, 뭔가 알고 있는 건가요?”
“아니요. 그냥 잠깐 뭔가 떠오르긴 했는데 확실한 건 아니라서….”
반지를 건네준 당사자로서 현의 말투는 충분히 의심스러울 텐데도 메이데이는 되묻지 않았다.
짧은 인사를 마친 뒤, 현은 하루에 8시간씩 3일 내내 노가다에만 매진한 인부들과 함께 협곡을 빠져나왔다.
‘신석도 전부 얻었고, 여기는 한동안 볼일이 없겠군.’
헤트리아 숲을 가로지르는 도중 필연적으로 마수들의 무리를 마주치게 되었지만, 어둠의 가호를 지닌 자에게 마수들은 숲을 뛰노는 동물들과 다르지 않다.
일행이 마차를 타고 마을까지 도달하는 데는 30분이면 충분했다.
마지막 정산 날.
누군가는 하루 종일 땅만 파는 것이 힘들었다고 엄살을 부렸지만, 나머지 유저들은 그 날의 광경을 잊지 못할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특히, 아인을 좋아하던 신학자는 헤어져야만 하는 것에 굉장히 안타까워했다.
어차피 스쳐갈 인연, 미련을 두지 않았다. 현은 마지막 인사를 마친 뒤 그들이 따라올 수 없는 북부의 고레벨 사냥터로 텔레포트했다.
새로 도착한 마을에서 갑자기 아인이 입을 열었다.
「현, 냉정하네.」
「응?」
「날 닮은 여자였으니까, 혹시 부탁을 못 거절하면 어쩌나 했는데 말이야.」
「닮지도 않았던데… 얼굴은 미묘하게 다르고, 체격은 너보다 더 컸으니까.」
「그럼 내 변장은 다 알아본다는 뜻이야?」
「웬만하면 그렇지.」
천인의 칭호를 지니지 못한 유저들은 추워서 감히 접근하지 못하는 북부의 사냥터.
현과 아인은 평소처럼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며 몬스터들을 사냥했다.
「바람 계열을 추가해도 재밌을 것 같아.」
「왜? 강신을 써보니 마음에 들었어?」
「조금?」
새벽 3시.
아인이 잠자리에 들 시간에 맞춰서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화악!
아인의 몸에서 레벨 업 이펙트가 터져 나왔다.
‘레벨 차이가 5까지 좁혀졌군.’
메인 퀘스트 직후 한 번에 여러 개의 레벨이 오른 뒤, 요즘엔 아인과의 레벨 격차를 줄여가는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꾸준히 퀘스트 및 사냥을 함께하려면 서로의 레벨을 맞추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최근 아인에게 경험치를 몰아주고 있었으니 앞으로 2~3일이면 같은 레벨로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상태 창.’
현 (Lv. 182)
체력 : 16016/16016
마나 : 1295/1440
마기 : 300300/300300
직업 : 쉐도우 링커 (히든)
성향 : -83 (심연)
[힘 58] [민첩 145] [생명력 88] [마력 144] [공감력 462]경험치 던전, 메인 퀘스트, 역사 퀘스트 등의 일들을 겪어오며 현의 스펙은 수많은 변천사를 겪었다.
스탯 포인트는 민첩, 마력, 공감력을 1대 1대 6의 비율로 투자했기 때문에 계산이 간단했지만, 스킬은 조금 복잡했다.
현은 스킬 초기화 물약까지 한 번 사용했고, 그러는 동안 스킬의 슬롯 순서가 바뀌기도 했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최적의 조합은 이러했다.
[그림자 방패 Lv.9] [반탄 Lv.0] [바람장벽 Lv.4] [기도 Lv.9][천사의 기초 검술 Lv.6] [어둠의 가호 Lv.Max](※해당 슬롯의 미사용 스킬 포인트가 ‘2’개 존재합니다!)
[증폭의 파장 Lv.5] [무력화의 파장 Lv.5] [투명화 Lv.4] [생체리듬 가속 Lv.2](※해당 슬롯의 미사용 스킬 포인트가 ‘13’개 존재합니다!)
현이 새로운 스킬을 익히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아인에게 동화하는 경우, 증폭의 파장, 잠력 폭발(마력), 잠력 폭발(민첩)의 3개 버프는 기본적으로 지속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이따금 투명화, 생체리듬 가속이 더해지면 아인은 최대치인 5개 버프에 도달하게 된다.
즉, 새로운 버프를 추가할 수 없었으니 현의 선택은 두 가지였다.
무력화의 파장과 유사한 디버프 계열의 스킬을 익히는 것. 혹은 기존의 스킬들을 강화하는 것.
현은 후자를 택했고, 그에 따른 스킬 변화는 다음과 같다.
무력화의 파장 Lv.2→5
증폭의 파장 Lv.3→5
바람장벽 Lv.0→4
투명화 Lv.2→4
그림자 방패 Lv.8→9
우선 파장 계열의 버프를 성장시킨 것은 스킬 범위를 늘리기 위해서였다.
범위가 2미터에서 4미터로 늘어난 결과 평소 어둠의 검에 해당하는 길이까지 커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바람장벽은 너무 쉽게 부서졌기 때문에.
투명화는 생체리듬 가속과 동일한 3초의 지속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스킬 포인트를 투자했다.
마지막 스킬로 그림자 방패.
8레벨에서 9레벨에 도달하는 데는 무려 100개의 포인트가 필요했다.
현은 이 스킬을 찍기 위해서 스킬 슬롯 하나를 모두 비워야만 했다.
또한, 9레벨에서 10레벨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150개의 스킬 포인트가 필요했기에 올릴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마기와 관련된 스킬이라 그런가? 포인트 소모량이 말도 안 되네.’
하지만 효과를 보면 포인트를 쓸 가치가 충분한 스킬이었다.
피해 흡수량이 [공감력]X150 → X200으로 오른 데다, 마기 보유량도 [공감력]X500 → X650으로 증가한 덕분에 마기의 최대치는 이제 30만을 넘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효과.
‘어둠의 검’의 자매 스킬로 ‘어둠의 갑주’가 생겨났다.
[어둠의 갑주]-보유한 마기를 전부 소모하여 동일 수치의 보호막을 생성합니다.
-보호막은 [공감력/100]초 동안 지속됩니다. (최대 5초)
-최대치의 마기로 만들어낸 갑주는 지속시간이 끝나고 남은 보호막 수치를 ‘마기’로 환원합니다.
어둠의 검이 모든 마기를 불태우는 일격 필살의 스킬이라면, 어둠의 갑주는 모든 마기를 끌어올려 일격 필살을 버텨내는 스킬이었다.
마기만 충분히 많다면 순간이지만 수십만의 내구력을 지닌 보호막을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 어떤 의미로는 가장 서포터스러운 스킬을 얻은 셈이었다.
‘아깝군. 5초라는 제약이 없었다면 그야말로 개사기 스킬이 될지도 몰랐는데.’
하지만 어둠의 검보다 못한 점도 있었으니, 바로 지속시간의 한계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1초에 비하면 양반이지.’
그리고 마지막 변화는 바로 ‘칭호’였다.
[어둠의 그림자]-어둠 계열의 저항력이 20% 상승합니다.
-이제 마기를 보유한 중에도 스킬의 색채를 잃지 않습니다. (On/Off 가능)
천인에 이어서 얻은 두 번째 칭호였다.
우선 속성 저항력은 있어서 나쁠 것이 없다.
두 번째 기능은 얼핏 별거 없어 보이지만, 의외로 굉장히 유용했다.
쉐도우 링커로 전직한 이후 생겨난 귀찮은 현상.
마기가 많아질수록 전신이 칠흑에 물드는 현상을 방지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제야 마음 놓고 마을을 돌아다닐 수 있겠군.’
그동안 NPC들의 경계를 피하기 위해 현은 한 번씩 어둠의 검을 사용해 마기를 소진시켜야 했다.
하지만 이제 칭호 덕분에 그러한 번거로운 작업이 줄어든 것이다.
‘아인 것도 한번 볼까?‘
동화하고 있는 김에 현은 아인의 상태 창도 살펴보았다.
아인은 여태까지도, 앞으로도 쭉 자신의 파트너일 테니까.
아인 (Lv. 177)
체력 : 17352/18408
마나 : 4836/6310
마기 : 0(+300300)/0(+300300)
직업 : 엘리멘탈 버서커 (히든)
성향 : -3 (심연)
[힘 25(+12)] [민첩 215(+29)] [생명력 86(+18)] [마력 356(+275)]가장 특이한 변경점은 아인의 세력이 달라졌다는 것.
심연으로 쭉 갈지, 천공으로 다시 변경할 지는 나중에 생각해 볼 문제였다.
그 외엔, 스탯도 눈에 띄게 바뀌었다.
아인은 민첩과 마력을 1대1로 올렸을 뿐이지만 거기에 동화가 덧씌워지니 마력은 600이 넘어가게 되었다.
동화가 합산된 스탯 총합은 1015라는 말도 안 되는 수치!
‘동화가 확실히 엄청난 궁극기이긴 한 것 같아.’
얼핏 400레벨 이상의 스펙이라 느껴질 수 있지만… 대단하긴 해도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아스리안의 성장 시스템.
200, 300, 400… 레벨이 오를수록 유저들의 성장이 느려지는 대신 성장수치가 증가한다.
예를 들어, 200레벨부터는 레벨 당 3개의 스탯 포인트를 얻게 된다.
300레벨을 넘기면 스킬 포인트의 성장수치마저도 변화한다.
그리고 400레벨을 넘기는 순간부터… 그때는 레벨을 올리는 것 자체가 극악이었고, 레벨마다 강력해지는 정도도 이전과는 차원이 달라졌다.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1015라는 스탯 총합은 업적 보너스를 하나도 받지 못한 350레벨의 유저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물론, 그것도 어마어마하긴 마찬가지지만.
‘이건… 그대로네.’
[※미사용 스킬 포인트가 ‘133’개 존재합니다!]거기다 놀랍게도, 아인은 100레벨 이후 스킬을 단 하나도 올리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이 동화하고 있기 때문에 스킬을 성장시킬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리라.
“다른 속성도 써보고 싶어.”
스킬에 관해 물었을 때 아인은 그렇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