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 Carry Support RAW novel - Chapter (95)
2차 전직을 위한 준비
“검정고시…!”
그 한마디로 알 수 있었다.
아인은 2학년을 마지막으로 고등학교에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스리안에 더 집중하고 싶었거든. 현도 지금이 우리한테 중요한 시기라며.”
“어… 어…?”
황당한 나머지 서현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인의 부모님에 관한 건 아무것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 학년을 통째로 날리겠다는 말을 그렇게 간단히 허락받을 수 있는 건가?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 부모님께 성적표를 숨기고 있는 자신으로선 너무 파격적인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이젠 아무 때나 날 불러도 된다는 거지! 아, 막차 왔나 보다!”
서현이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아인은 떠나갔다.
「2월 말쯤 이사할 것 같아.」
「근데 우연이네. 집에서 현 대학교까지 걸어서 15분도 안 걸려!」
「출석체크만 하기엔 여기 집이 더 괜찮은 거 아니야?」
「아니면 내가 공짜로 원룸 하나 잡아줄 수도 있는데…」
……
계속해서 아인의 문자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제자리에 선 서현은 한동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
헤어지고 나서 현은 많은 생각을 했다.
아인이 학교에 가지 않는다면?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말했으니 공부를 그만두는 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시간의 여유가 생긴 만큼 아스리안을 플레이할 시간도 늘어날 것은 확실했다.
‘잘 생각해야 돼.’
현은 이번 사건의 장점부터 따져보았다.
서포터 계열 직업의 효율을 살리려면 다른 플레이어와의 파티 플레이는 거의 필수.
아인은 그 중에서도 가장 시너지를 내는 직업을 보유한 데다, 플레이 성향까지 자신과 잘 맞았다.
얼핏 좋은 점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의 뒷면엔 치명적인 함정이 숨어 있다.
‘잘못하면 진짜 큰일 난다!’
함정이란 현실에 닥쳐올지도 모르는 위험이다.
현이란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이상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인은 아직 미성년자.
만약 자신이 그녀를 자퇴시켰다는 소문이라도 퍼지면?
그럴 생각은 없지만… 동거한다는 헛소문이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면?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것은 물론이고, 거기서 오해가 더 커지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일어나리라.
’어쩌면 지금도 좀 위험할지도.’
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어제 아인과 만난 뒤부터, 모든 아스리안 커뮤니티에는 자신의 아이디가 언급되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사실과 거짓이 뒤섞이다 보니 터무니없는 소문도 사실인 것 마냥 퍼지고 있었다.
‘아인도 쓸데없는 말을 금지시켜야겠지!’
이럴 때일수록 오해를 피해야한다.
최소한 1년 동안, 현은 행동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학교를 안 가도 아침엔 못 일어나는 건 여전하네.’
아인은 오프라인 중.
그녀에게 주의를 주는 것은 나중으로 미뤘다.
‘루이즈를 만나는 게 모레였던가?’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면 또 바빠질 테니. 현은 이 틈에 할 일을 마쳐두기로 했다.
레전더리 아이템을 만들고, 지니와 사업을 논의하고, 잠든 어둠의 부하들을 찾아보는 등의 잡다한 일이 쌓여 있었다.
또, 아인의 전직을 완료시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얼핏 일이 많아 보이지만, 남은 이틀이면 충분히 끝마칠 수 있는 양이었다.
그 모든 계획이 틀어진 것은 현이 프라이빗 룸에 돌아왔을 때였다.
“음?”
모든 길드원이 오프라인인 상태.
그런데 로비에 누군가의 인기척이 있었다.
그 정체는.
[2차 전직의 조건이 만족되었습니다!] [여태껏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중입니다….]“루이즈?”
“현… 왔는가.”
“무슨 일이야? 만나기로 약속한 건 이틀 뒤잖아.”
루이즈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젠 다 큰 성인인데도, 울상을 짓는 듯한 그 아련한 표정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구나….”
“뭔데, 똑바로 말해봐!”
루이즈는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파피가… 사라져 버렸다.”
“사라져? 어디로?”
“모르겠다…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는다. 무슨 이유인지도 알 수가 없다.”
순간, 현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
배신자.
파피는 루이즈가 악마임을 깨닫고 등을 돌렸나?!
하지만 이어지는 루이즈의 설명은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몇 시간 전 갑자기 파피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왔다. 그게 마지막 연락이었다.”
“텔레파시 계열 마법이야. 뭐라고 했는데?”
“오늘 내에 하늘로 향하라고.”
“오늘…?”
“그렇다. 반드시 자정이 찾아오기 전에, 자신을 상관 말고 떠나라고… 말했다.”
현의 생각이 깊어져갔다.
파피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는 자신도 영문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배신은 아닐 것이다.
메인 퀘스트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띠링!
-5년간 어둠을 돌보던 누군가가 좋지 않은 상황에 처했군요.
-이제부턴 그대가 어둠을 보필하시길.
-반드시 시간이 지체되기 전에 움직여야 할 겁니다.
‘바뀌었다!’
파피의 목소리는 아마 루이즈에게 남기는 경고.
급박한 상황에 한 마디밖에 전할 수 없던 것이라고 봐야 한다.
‘자정이 찾아오기 전에 움직이라고 했지?’
상황을 이해하자 현은 초조해졌다.
메인 퀘스트가 이런 식으로 시작될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시간을 살펴보았다.
한국 시간으론 오전 8시지만 자정이란 현실의 시간을 뜻하는 것이 아닐 터.
마도국 랜턴의 시간으로 오후 2시.
자정이 되기까진 앞으로 10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하늘로 가는 방법은 알아?”
현은 루이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다.
지구에선 그저 높게 날아가는 것만으로 하늘에 도달할 수 있을 테지만, 아스라의 하늘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하늘에서 길을 잃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인세(人世)와 천인(天人)의 경계를 통과하려면 아주 특별한 경로를 따라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천인의 기감과 신성력이 없다면 결코 지나갈 수 없는 길.
이전에 루이즈는 파피의 안내를 받을 것이라 말했지만, 지금은 그 방법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 또한… 지금부터 생각해야겠지.”
예상대로, 루이즈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듯했다.
“그건 지금 생각한다고 될 게 아니잖아!”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나도 파피가 사라져버릴 줄은 몰랐단 말이다.”
현은 빠르게 머리를 굴려 가능한 방법을 전부 떠올려 봤다.
“뭐 기억나는 거 없어?”
“기억….”
“그래, 대칭세계의 길로 하늘에 간다거나.”
문득 누군가에게 들은 지식이 떠올랐다.
이 세상 모든 곳엔 대칭되는 장소가 존재한다고 한다.
하늘도 마찬가지라면, 대칭세계를 거쳐 그곳에 도달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내 기억은 모두 희미한 것들뿐이니.”
루이즈는 울상을 지으며 머리를 싸맸다.
한참 만에 희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현, 지금 내게 동화해 주겠는가?”
“….”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할 것 같구나.”
팟!
동화를 사용하자 그 즉시 감정이 섞여들었다.
현이 느낀 감정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죄책감.
루이즈는 5년 동안 파피를 속였던 자신을 원망스러워 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감정이 느껴질 리가 없겠지.
그리고 두 번째는 무력함.
현은 주저앉은 루이즈의 모습이 예전과 겹쳐 보였다.
‘정말 몸만 커졌잖아.’
300레벨. 어쩌면 이젠 자신보다 강할지도 모르는 어둠은 아직도 여린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현은 루이즈의 감정이 쓸려갈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한참 침묵이 이어진 뒤, 비로소 루이즈의 입이 열렸다.
“한 가지 희미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다. 도움이 될 진 모르겠지만.”
「뭐든 상관없으니, 생각나는 거 다 말해봐.」
“그대의 말대로, 대칭세계를 통해 하늘로 오르는 길이 어딘가 존재하는 것 같구나….”
「다시 떠오른 거야?!」
루이즈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말을 덧붙였다.
“내가 아는 것이 아니고, 길을 아는 자는 따로 있다.”
「누군데?」
“기만.”
「…!」
“어렴풋한 기억이다만, 기만은 하늘과 지하를 오가는 방법을 알고 있던 것 같다.”
***
현은 창 한쪽에 알람을 띄워 두었다.
혹시라도 때를 착각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10시간은 모든 계획을 마치기에 너무 짧았다.
현은 일의 우선순위를 다음과 같이 나누었다.
1순위로 반드시 해야 하는 일.
2순위로 빠르게 끝마칠 수 있는 일.
마지막으로, 3순위는 오래 걸리는 일… 이것은 과감하게 포기하거나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건 전직이야.’
현은 아직 꿈나라를 헤매고 있을 아인에게 알람을 울려주는 한편, 자신의 메시지 기록 창을 살펴보았다.
루이즈와 만나는 것으로 자신의 전직 퀘스트는 완료되어 있었다.
[당신이 지나온 길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 [쉐도우 슈터(Shadow Shooter)로 전직했습니다!] [레벨 당 스탯 보너스가 3으로 증가합니다!]직업이 변하며 잡다한 메시지도 함께 쏟아졌다.
[각성 스킬 포인트 +1] [변경 가능한 각성 스킬이 없습니다! 자동으로 동화에 포인트가 투자되었습니다!] [동화의 레벨이 1상승합니다!]슈터(Shooter). 총사(銃士).
시스템은 자신의 과거, 혹은 생각을 읽어낸 것이 분명했다.
지니의 총을 다뤄본 경험과 어제 박물관에 들렸던 기억 중 어떤 것이 계기가 된지는 모른다.
아니, 양쪽 모두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총이라니.’
새로운 스킬목록을 살짝만 살펴보니 기존과 다른 방식의 스킬들이 많았다.
대부분은 총이 없으면 발동하지 않는 것들이다.
기존의 아스리안에 존재하지 않던 형태의 무기였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스킬 포인트도 몇 개 없어.’
잘못 건드렸다간 딱 하나밖에 남지 않은 ‘잠재력의 역행서’만 날리게 될지도 모르니. 현은 지금은 스킬트리를 봉인해 두기로 했다.
유일하게 바뀐 점은 각성 스킬.
[동화 Lv.2](※새로운 효과!)
-동화 대상과 영혼을 반전시킬 수 있습니다.
영혼을 반전한다는 뜻이 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것 역시 여유가 생길 때 실험해 보기로 했다.
‘아인도 빨리 전직을 시켜야 돼.’
아인은 아직도 꿈나라를 헤매는 모양이었다.
그녀를 깨우기 위해 쉴 새 없이 알람을 울리는 한편 인터루프의 정보를 뒤져 보았다.
루이즈가 말했던, 대칭세계를 통해 하늘로 향하는 길의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기에.
엘리멘탈 버서커의 2차 전직을 마치기 위해선 성소를 찾아가야만 한다.
가장 유명한 성소는 성왕국의 대신전이다.
하지만 그곳을 방문하는 것은 부담이 심하기 때문에 현은 조금 먼 곳을 찾아왔다.
북부의 산맥 위에 세워진 탑.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탓에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천인의 칭호 덕분에 춥지는 않았다.
「우음… 아직도 졸린데.」
「졸리면 자고 있어. 움직이는 건 내가 해 줄게.」
이동하는 틈에 현은 동화의 새로운 효과를 시험해 보았다.
간단하게 발동하기 다음과 같은 시동어를 설정해 두었다.
‘반전!’
번쩍! 빛이 터져 나온 순간, 아인의 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아인이 서있던 자리에 있는 것은 현, 자신의 몸뚱이.
‘영혼을 반전시킨다는 게 이런 의미였군.’
「뭐, 뭐한 거야?!」
갑작스런 변화에 아인의 놀란 외침이 들려왔다. 완전히 잠에서 깨어난 목소리였다.
이리저리 팔을 올려보고 몸을 만지작거렸다.
「지금 내가 현에게 동화하고 있는 건가?!」
“그런 것 같긴 한데… 너무 만지진 마.”
키와 외모 뿐 아니라 목소리도 아인에서 자신의 것으로 변해 있었다.
신체가 한순간에 바뀌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추가로 스펙이 오르는 효과가 있었다면 좋을 텐데, 겉모습만 변한다는 점이 좀 아쉬웠다.
‘아니, 겉모습을 바꾼다는 장점이 생각보다 클지도 몰라.’
현은 다시 생각해 보았다.
변장을 넘어 성별까지 바꾸어버린다는 것.
루이즈가 쫓기는 지금, 이 스킬은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었다.
「이게 현의 몸….」
「그만 좀 해.」
아인이 자꾸 귀찮게 움직이고 있는 탓에, 현은 다시 영혼을 반전시켰다.
「앗! 뭐야, 왜… 다시 바꿔 줘!」
「안 돼.」
현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 도착했거든.」
아인의 전직에 영향을 끼칠 만한 짓은 웬만하면 삼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