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리스트 프로젝트 (2)
내 열 개의 손가락이 움직이며.
헨델의 따뜻한 변주곡에 색을 입힌다.
‘첫 번째 변주는. 생동감 넘치는 16분음표가 오른손에서 주제와 손을 잡고 같이 즐거운 춤을 추지.’
오른손은 높은 음계를 넘나들면서.
화성을 받쳐 주는 왼손을 빠르게 리드해야 한다.
‘그렇게, 두 번째 변주로 넘어가면.’
이제 16분음표는 왼손으로 넘어가고.
오른손은 화성과 트릴(떨림음)이 섞이며.
달군 쇠를 식히기 위해, 바위틈에서 찰랑이며 달려오는 산골 물의 기쁨을 발산한다.
‘세 번째 변주. 16분음표는 다시 오른손으로.’
하지만 박자는, 셋잇단음을 묶어 좀 더 조밀하게.
템포는 더 빨라져서, 주체하지 못할 즐거움이 건반 아래로 하나둘 데구르르 굴러 떨어지기 시작한다.
‘네 번째 변주는 두 번째 변주와 흡사하지. 다만, 셋잇단음이 왼손에서 움직인다는 점이 다르고.’
나는 납덩이 같은 무거움은 모두 떨쳐 버리고.
마치 음악을 처음 연주하던 다섯 살 그때처럼.
열에 들뜬 얼굴로, 곡에 실린 감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전부 건반으로 흘려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변주!’
32분음표의 아르페지오로 건반을 휩쓸어야지.
오른손이 좌르르르 내려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왼손이 주르르륵 치고 올라오면서.
클라이맥스로 직행한다.
‘오른손의 아르페지오가 점점 높게 올라가다가.’
마침내, 가장 높은 시(B)음을 찍고는.
2옥타브를 주르르륵 떨어지면서.
마지막 방점 같은 화음을 찍으며 끝이 난다.
“브라보! 브라보!”
연주가 끝나자마자 터져 나온 목소리의 집합에.
나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다보았다.
언제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익숙한 얼굴들이.
내 ≪즐거운 대장간≫ 연주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이것이! 바로!”
“김리듬이지.”
“응원 왔어, 우리들.”
“바로 김리듬 응원단!”
나는 멍하니 녀석들을 올려다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어떻게 들어온 거야?”
“아, 그게…….”
“내가 말할게, 김리듬.”
다들 머뭇거리는 사이, 조하란이 끼어들었다.
“사실 말이야. 이민아하고 전수정이 네 걱정을 하도 해서, 연습실에 꼭 가 달라고 하더라고. 네 핸드폰이 꺼져 있다면서. 연습실 비밀번호까지 알려 주더라.”
“아…….”
나는 바로 핸드폰을 충전기와 연결해서, 민아의 부재중 전화 목록을 확인하고는 헉 소리를 냈다.
나는 바로 민아에게 톡을 보냈고.
― 미안해. 내가 정신이 나가 있었나 봐.
답장이 이렇게 왔다.
― 리사이틀 끝나면 도살할 테니까 그런 줄 알아.
섬뜩한 메시지였다.
반쯤 정신 나간 상태로 더 이상 오지 않는 톡을 보고 있으려니, 하란이 말을 건넸다.
“그런데, 연주를 들으니까 조금 안심이 되네.”
“그, 그랬어?”
“응. 헨델의 ≪즐거운 대장간≫. 정말 잘 치더라.”
“자, 그러면 온 김에 김리듬 연습실 청소부터 시작합시다! 뭐 하고 있어, 빨리 시작해!”
그렇게, 녀석들은 여기를 싹 청소한다는 명분으로 내 연습실을 한바탕 뒤집어 놓고.
“김리듬. 지금 뭐 먹고 싶어?”
“으음…… 중국집?”
“아, 역시! 척하면 척이지! 봤어? 다들 봤지? 보자마자 통한 거! 내가 김리듬이고, 김리듬이 나다!”
“시끄러워, 김가인. 손으로 힌트 주는 거 다 봤어.”
거참. 김가인 목소리 데시벨 한번 크네.
그렇게 내게 힘을 주기 위해 찾아온 ‘김리듬 응원단’ 녀석들은, 청소와 시끌벅적함이라는 위로의 선물을 각자 내게 건네주고는 가 버렸다.
“정 마에.”
윤성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지만.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나, 결심했어요.”
나는, 반드시 리사이틀을 성공시킬 것이다.
“듣고 있다면, 아니, 듣고 있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환상적인 연주를.
환상적으로 미친 연주를, 반드시 해낼 테니까.
더 이상은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갇혀.
나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다.
“나를 지켜봐 줘요.”
나는 다시 건반에 앉아 일주일 후 리사이틀에서 연주할 리스트를 찬찬히 누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앉기 싫고, 쳐다보기 싫던.
피아노가, 건반이, 음악이.
나를, 다시 중독자로 만들기 시작한다.
‘낭비한 시간만큼을 더 벌충해야 한다.’
악보를 넘기는 손이 점점 빨라지고.
생각에 생각이 붙어 완벽한 서사가 되어 간다.
마치, 내 곁에 거장들이 다가와 보우하시는 것처럼.
‘연주는 영감이나 빙의로 완성되는 게 아니야. 철저한 분석과 부단한 노력으로 완성되는 법이야.’
그렇게 나는 쉬지 않고 14시간을 연습한 후.
연습실 침대에 쓰러져 꿈도 없이 잠들었다.
* * *
프랑스에 도착한 전수정은, 택시를 타고 호텔에서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국제전화 한 통을 받았다.
발신자의 정체는, 바로 이민아.
“그래서, 김리듬을 못 만났다고?”
― 응. 폐관 수련에 들어가서, 아예 연습실 문을 잠가 버리고 아무도 못 만난다고 공고까지 붙였더라고.
“그래서, 실망한 거야?”
― 아니. 전혀.
민아는 음절을 하나하나 또박또박 읊으며 대답했다.
― 만약 리듬이가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한가하게 누군가를 만나며 연습했다면, 내가 가장 실망했을 거야.
“그건 맞는 말이지.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니까.”
대답하는 수정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1만 킬로미터 떨어진 상대방의 입가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예술의 신께서 현존하신다면.”
―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김리듬을 보니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 예술의 신께서는, 아마 되느냐 안 되느냐를 재고 따지는 놈보다는, 김리듬같이 평범하다가 가끔 미친 짓을 하는 아이의 손을 들어 주지 않을까 싶어서.”
― 아하하핫……!
그 말이 민아를 웃게 했다.
― 아하하, 맞아. 김리듬은, 그렇게 가끔 미친다니까.
“잘되고 있다니 다행이네. 그러면, 리사이틀 당일까지는 반드시 돌아갈 테니까, 그때 봐.”
― 일정은 다음 날까지라며?
“물론 그렇지. 그렇지만.”
전수정은 돌연, 형형한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나는, 리사이틀 당일까지, 반드시, 돌아갈 거야.”
* * *
리사이틀 당일 날.
나는 아침 여덟 시에 잠에서 깨었다.
“…….”
여전히 윤성은 보이지 않고.
나는 혼자서 연습을 마쳤지만.
이제야 알 것 같다.
희끄무레한 햇살이 달라붙은 창문으로 다가간 나는, 거기에 내 따뜻한 입김을 여러 번 불었다.
“하아, 하아…….”
그러자, 글자들이 또렷하게 나타났다.
‘연주 잘해. 떨지 말고.’
내 실수 때문에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는, 아직도 내 곁에 머무르면서.
연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보이지 않는 그에게 다짐했다.
“걱정하지 마요, 정 마에. 최고의 연주를 해낼 테니까.”
좋아. 이제 나갈 준비를 하자.
“푸하. 푸후!”
온수 잘 나오는 화장실 세면대에서 세수를 마치고, 잘 다림질한 옷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섰다.
“으어어! 얼어 죽겠네……!”
공기가 차갑다 못해 살을 엔다.
오늘 아침 기온은 무려 영하 13도.
모스크바보다 춥단다.
리사이틀 날짜 한번 정말 오지게 잘 잡았다.
‘손가락 보호가 중요하니까 장갑을 잘 끼고.’
택시를 잡아타고.
새문안 동아아트홀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아트홀 정문 앞에 서 있던 누군가가, 기다렸다는 듯 내게 다가와 물었다.
“김리듬 학생 맞나요?”
“네. 맞는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아아트홀 공연사업부 2팀장 오동운입니다. 바로 최종 리허설 준비 시작하시죠. 일단 피아노 상태 점검부터 하시겠습니까?”
“네, 네. 그러죠.”
나는 자기 할 말을 정신없이 쏟아 낸 오 팀장을 따라 무대 위에 미리 설치된 피아노 앞에 앉았다.
다행히도, 연주회장의 피아노 상태는 나무랄 필요가 없을 만큼 관리가 잘되어 있었다.
“더 확인할 사항은 없으신가요?”
“네. 피아노가 너무 좋은데요.”
“회장님 지시니까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건반을 누를 때마다 조율사의 노고가 느껴진다.
감사의 선물이라도 드리고 싶을 정도로.
[피아니스트 못지않게 수고하는 사람들이 조율사지만, 생각보다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그걸 잊지.]윤성이 내게 해 줬던 말이 기억난다.
이제부터 나는, 이 넓은 연주회장에서.
단 한 명을 위한 연주회를 치러야 한다.
시간은 글 그랬듯 프레스토 아지타토로 달아나고.
“김리듬 학생. 연주회 시간 15분 전입니다.”
“네. 나갈게요.”
나는 천천히 저녁의 무대로 이동했다.
객석에는 이미 회장님이 앉아 계셨다.
그가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마치, 투명한 강철의 벽 같다.
나는 이제부터 내가 자아낼 벽으로.
저 투명한 강철의 벽을 뚫을 수 있을까?
그런데.
끼이이익.
정말, 무슨 무협지처럼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아버지. 저 왔어요.”
해외 출장 때문에 프랑스로 떠났던 전수정이.
객석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전 회장님은 놀라는 기색도 없이, 객석에 앉은 채로 자신의 장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여기는 어쩐 일이니? 일정은 내일까지일 텐데.”
“시키신 일은 모두 끝냈습니다. 그리고, 마침 남는 비행기 표가 생겨서 오늘 새벽에 타고 돌아왔고요.”
그녀는 거침없는 태도로 자신의 아버지를 향해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니, 저도 아버지 옆에서 우리 리듬이의 리사이틀을 같이 봐도 되는 거죠?”
그녀는 다리까지 꼬면서 아버지 옆에 턱 앉았고.
전 회장은 그런 딸의 모습을, 대견함과 즐거움 사이의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우선은 보고서부터.”
“네. 여기 있습니다.”
전수정이 가방에서 꺼낸 보고서를 펼친 전 회장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고는 그것을 바로 신 비서에게 넘겨주면서 물었다.
“대체 어떻게 설득한 거니? 죽어도 한국에는 다시 안 오겠다던 사람인데.”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늘 말씀하시던 대로요.”
“알았다. 수고했다.”
“리사이틀, 같이 봐도 되는 거죠?”
“그러려무나.”
대단해, 전수정.
어떻게 저 상황에서 떨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 걸까.
‘아니. 떨지 않는 것은 겉모습뿐인가.’
미세하게 떨리는 그녀의 눈동자가 보인다.
‘걱정하지 마, 전수정. 이제부터 네가 회장님과 같이 들을 리사이틀은, 생애 최고의 것이 될 테니까.’
나는, 이 리사이틀의 유이한 관객에게 인사한 후.
피아노에 앉아 건반을 조용히 응시했다.
‘정 마에. 들어 줘요.’
내 손가락이, 마침내 건반 위로 올라갔다.
* * *
전성우 회장은, 지금 저 자그마한 소년이 자신을 조금이나마 놀라게 했다는 점에 적잖이 놀랐다.
일단, 첫 번째로 놀란 것은 레퍼토리.
프란츠 폰 리스트(Franz von Liszt)
⊙ ≪사랑의 꿈(Liebestraum)≫ 3번, S. 541-3
⊙ 연주회용 연습곡 ≪탄식(Un sospiro)≫, S. 144-3
⊙ ≪고독 속의 신의 축복(Bénédiction de Dieu dans la solitude)≫, S. 173-6
⊙ ≪위안(Consolation)≫ S. 172의 3번
⊙ ≪두 개의 전설(Deux Légendes)≫, S. 175
‘모든 곡이 리스트로 이루어져 있군.’
그날의 레퍼토리는, 오직 단 한 명의 작곡가.
프란츠 폰 리스트로만 이루어져 있었다는 것이고.
그리고 두 번째는.
‘재미있네. 레퍼토리 선정 기준도, 배열도.’
무작위로 섞은 것 같은 곡들이지만.
사실, 여기에는 숨겨진 비밀이 한 가지 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꿈≫에 빠져 ≪탄식≫하던 수도사가 ≪고독 속의 신의 축복≫으로 ≪위안≫을 얻고 ≪두 개의 기적≫을 행한다.’
리사이틀에 집어넣은 리스트의 곡 제목들이.
놀랍게도 하나의 문장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리스트에 미친 나조차도 익숙하지 않은 곡들로 식상함을 없앤 멋진 레퍼토리 선정까지.’
그러나, 여기까지 보면 이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과연 이런 연주회가 가능할까?’
같은 작곡가로만 연주하면 자칫 지루해지기 쉽고.
무엇보다.
‘하나같이 열여덟 살 꼬마가 소화하기 힘든 곡들.’
물론, 이런 연주회를 주문한 것은 전 회장이지만.
그래도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과연, 어떤 내용으로 이 리사이틀을 채울까.
라는 의문이 사라지기도 전에.
첫 곡인 ≪사랑의 꿈≫ 연주가 시작되었다.
‘이 묵직하고 두터운 우단의 느낌은……!’
귀를 의심하면서도 귀 기울여 들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연주라고 생각했는데.
‘거장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스타일이다.’
저 터치, 저 루바토, 저 페달링.
의심의 여지 없는 루빈스타인의 것이다.
‘침착하자.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으니까.’
물론, 김리듬의 연주는 우연도 행운도 아니었다.
그것은 두 번째 곡인 ≪탄식≫에서 분명해졌다.
‘저 깊고 그윽한 색채감과 단단한 포르테는, 그래.’
이제는 부정하기가 더더욱 힘들다.
‘쿠바 출신의 거장 호르헤 볼레의 스타일이군.’
하나의 곡을 연주할 때마다.
그 곡의 정점을 석권한 거장의 연주가 펼쳐진다.
이어진 세 번째 곡, ≪고독 속의 신의 축복≫은.
고고한 정신성과 투명한 음색을 건반으로 표출하는.
‘칠레의 위대한 피아니스트, 클라우디오 아라우!’
한 곡을 연주하면.
한 명의 거장이 그의 손가락에 잠시 머물다 가고.
다른 곡을 다시 연주하면.
다른 거장이 나타나 그와 호흡한다.
이제 막 열여덟 살을 앞둔 소년의 리사이틀치고는.
지나치게 노련하고, 노회하며, 노숙하다.
마치, 뭐랄까.
‘그래. 음악의 신이 옆에서 가르치는 느낌이야.’
마침내, 네 번째 곡인 ≪위안≫에 도달하자.
‘손가락을 곧게 폈다.’
지금, 저 녀석의 연주법은.
피아니스트의 기본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성질 급한 선생이라면, 바로 언성을 높이면서 ‘손가락을 오므려야지! 계란 쥐듯이!’라고 하겠지만.
전성우 회장은 약간 흥미가 동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무대 위의 학생이 저지를 다음 행동을 지켜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저런 짓을 할 학생은 아닌데……?’
그 순간.
전 회장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피아니스트의 신의 실루엣.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건반과 평행하게 연주하는 독특한 주법과.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경쾌하고 가벼운 움직임.
절묘하게 터치와 어우러지는 페달링과.
무엇보다, 저 듣는 이의 영혼을 용해시키는 음색.
‘그래. 확실해.’
젊은 날의 자신이 들었던, 바로 그 거장의 연주다.
연주가 끝나자, 이 리사이틀의 유이한 관객들은 홀린 듯한 박수로 지금까지의 여정을 환호했다.
‘그래. 예상했던 것 이상이야. 아직까지는.’
이미, 지금까지 보여 준 퍼포먼스만으로도 경이롭다.
거장의 스타일대로 연주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패러디나 모방이 되지 않고.
그 고고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살려 내는.
완벽한 리사이틀을 해내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지금 저 학생의 리사이틀에는.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이 없다.
‘마지막 곡에서 자기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까?’
마침내, ≪두 개의 전설≫이 시작되는 순간.
전성우 회장은 연주회장을 물들이는 색을 보았다.
지금 리스트를 연주하는 저 소년의 음색은.
미친 듯한 빨간색도.
냉엄하고 창백한 푸른색도.
생명의 감미를 담은 연녹색도.
회한이 가득한 보라색도 아니었다.
‘차분한 일몰의 블루오렌지.’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시간의 연주.
지금까지 보여 준, 거장들의 영혼과 함께 호흡하는 듯한 이전의 연주들과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색채감으로 나아가는 마지막 연주가.
물 위를 걷는 성인의 기적과.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인의 기적을.
프레스코화의 빛과 따스함으로 발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