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무한경쟁 오디션 (1)
‘아, 역시 김리듬이야. 너는 나를 잊지 않고 있었어.’
예상치 못한 김리듬의 연락을 받고 학생회실로 향한 손지원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작년의 그녀는 정말 질풍노도 같은 한 해를 보냈다.
일단, 김리듬과 처음 조우한 1학기 향상연주회는.
‘결국 2학년의 평범한 피아니스트와 같이했지.’
하지만 향상연주회가 끝난 후에도 잊을 수 없었다.
바라고, 원했다.
빛과 어둠의 조우.
꿈과 현실의 경계 같은 그 녀석의 반주 위에.
자신의 완벽한 바이올린이 얹히는 완벽한 연주회를.
‘언젠가는 반드시 성사시키고 말 거야.’
그 후 그녀에게도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 제안이 왔고, 그녀는 고민 없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 지. 만.
‘나도 정말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어! 나 같이 재능 많은 학생을 찾는 사람이 이 바닥에는 너무 많았다고!’
쉽게 말해서.
그녀는 오케스트라를 너무 많이 빠졌다.
‘손지원. 너 없으면 안 돼!’
‘아니, 대체 왜! 왜!’
‘왜긴. 이번에 알바 빵꾸 난 거 네가 땜빵해 줘야 된다고! 저번에 내가 해 줬잖아!’
‘으아아아아……!’
이런 식으로, 지원을 찾는 무수한 손길들이.
그녀를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와 멀어지게 했다.
그렇게, 절호의 기회였던 여름 마클도 못 가고.
여름방학을 동해 앞바다의 표류물처럼 보낸 지원은.
2학기가 되기 직전, ‘선혈의 피아니스트’라는 칭호를 얻은 김리듬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전율했다.
‘미치지 않고서는 절대 저런 짓을 못 해.’
단순히 잘하는, 놀라운, 경이로운 수준으로는, ‘신의 악기’라 불리기에 충분한 저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제 ‘김리듬과 같이 음악을 하는 것’은.
‘어떻게든, 같이 엮이면서 화음이 되어야 해.’
지원에게 점점 절박한 과제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에게는 아무 기적 없이 2학기가 왔고.
‘야, 손지원. 저번에 파투 났던 소개팅 일정 잡혔어.’
‘뭐?’
1학년 이맘때는 그렇게 그물을 연신 던져도 잡히지 않던 소개팅 일정이 줄줄이 걸려 들어왔다.
이게 망하면 자기 인맥도 같이 망한다는 친구의 강권에 못 이겨, 결국 반강제로 소개팅을 나갔지만.
연습에 대한 강박감이 결국 그녀를 일어서게 했다.
‘미안해. 나, 이제 연습하러 가 봐야 해.’
‘뭐?’
그렇게 그날 만난 썸남을 거르고 연습에 미친 결과.
― 미안. 나, 도저히 너한테 맞추기 힘들 것 같다.
그녀는 그 썸남에게 걸러졌다.
그렇게 연애도 포기하고 연습에 매진 또 매진했지만.
‘손지원. 너 집중력이 예전만 못한 것 같다?’
‘선생님, 그게 대체 무슨!’
돌아온 것은 선생님의 냉엄한 경고였다.
‘음악만 보고 달려야지. 이제 너 내년에는 3학년이야. 대학은 가야 할 것 아냐. 정신 팔지 말고 연주해야지.’
도대체 왜?
정말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부터, 미친 듯이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한 결과.
‘후우. 간신히 살아남았다.’
희성예고 최고 인재들만 모이는 J반.
속칭 ‘줄리어드 반’에 턱걸이로 남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해! 이제 진짜 뭔가를 해내야 해!’
이제 그녀는 3학년.
구체적인 전공이 정해지고.
대학 입시에 미쳐야 할 시기다.
‘나를 끌어올릴 방법은, 이제 하나밖에 없어.’
바로, 김리듬에게 붙어서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 수석직을 맡아 그의 영감으로 퀀텀 점프를 하는 것.
그런데 그런 절박감 때문에 그녀의 마음속에서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할 즈음.
― 여보세요? 지원 선배 번호 맞나요?
‘맞는데요. 누구시죠?’
― 안녕하세요, 선배. 저 김리듬이에요. 혹시 저 기억하세요?
모르는 번호의 주인이 김리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그녀는 그 자리에서 무언의 비명을 질렀다.
이것은 마치, 더럽게 안 풀리던 방탈출을 해낸 느낌.
그러나.
‘침착해야 해. 이런 추한 모습, 보여 줄 수 없어.’
그녀는 목을 가다듬고, 평소의 차갑고 도도한 이미지를 유지하려 노력하면서 대답했다.
“물론, 기억하지.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야?”
― 아, 다행이다. 직접 보고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브라비시모(Bravissimo)! 됐어! 됐다고! 드디어!’
마음으로는 이미 옆에 놓인 쿠션에 어퍼컷을 조 단위로 날리고 급발진 댄스에 백텀블링까지 완수한 지원이지만.
겉으로는 냉정함과 평정을 끝까지 유지하려 했다.
“아, 그래. 그런데 어쩌지? 내가 좀 많이 바빠서 말이야. 너도 알다시피, 나는 이제 곧 3학년이잖아.”
―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꼭 직접 뵙고 부탁드리려고요. 내일 오후 시간대는 어떠세요?
“흐음…….”
어차피 연습 빼면 일정이 없지만, 그녀는 일부러 일정을 살피는 척 시간을 끌었다.
“좋아. 그때는 시간이 되네.”
― 다행입니다. 그러면 내일 오후 3시에 뵙겠습니다.
통화가 끝나는 동시에 그녀의 눈동자에 불이 튀었다.
“됐어. 됐다고.”
불시에 들어온 김리듬의 오디션 제안.
그녀에게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절호의 기회다.
“후우, 후우. 심호흡 좀 하고.”
그렇게, 장대한 서사 끝에 마침내 고난과 역경의 끝에 도달한 주인공 같은 얼굴을 한 채.
손지원은 심호흡을 한 후 연습실로 들어갔고.
앉아 있는 김리듬의 얼굴을 보는 순간 흠칫했다.
보지 못한지 고작 몇 달이 지났을 뿐인데.
그의 모습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달라져 있었다.
“……오랜만이야, 김리듬.”
“어서 오세요, 지원 선배.”
신입생의 티도 연주에 마음 졸이던 모습도 사라지고.
남은 것은, 거장을 연상케 하는 기품과 여유.
최대한 편하게 마음을 먹고 들어갔지만.
지원은 기세에서 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질 수 없어.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고!’
그녀는 결심했다.
기세에서 밀리지 않게, 존재감을 최대한 어필하기로.
* * *
[손지원 쟤, 표정이 왜 저래? 혹시 배탈 났나?]지원 선배의 표정은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분명히, 작년에는 저렇지 않았는데.
“여기 앉으면 되는 거지?”
“네. 거기 앉으시면…….”
그녀는 학생회실에 들어온 지 불과 30초 만에, 자신의 존재감을 노골적으로 과시하는 데 성공했다.
[아니. 손지원 왜 저러냐고. 굳이, 누가 봐도 저렇게 노골적으로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앉을 필요가 있어?]나도 윤성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지만.
굳이 지적하는 수고를 들이지는 않았다.
부탁을 해야 하는 쪽은 일손이 부족한 우리니까.
“드디어, 이 나를 다시 찾게 된 거야, 김리듬?”
“죄송합니다, 선배. 제가 그동안 조금 바빠서…….”
“괜찮아, 괜찮아. 나도 적잖이 바빴거든.”
아, 네. 그러시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어쨌거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이제부터는 설득의 시간이다.
“지원 선배. 지금 저희 오케스트라에는 사람이 부족합니다. 세대교체가 한 번 있을 예정이거든요.”
“응, 응. 그래.”
“그래서, 곧 있을 오디션 때 지원 선배 같은 인재들을 최대한 초빙하는 쪽으로 기획을…….”
“응, 응.”
기분이 좀 이상하다.
벽을 보면서 떠드는 듯한 이 느낌은, 대체…….
[야, 야. 김리듬. 지금, 손지원 저거. 네가 한 말 전부 다른 귀로 줄줄 흘리는 느낌 아니냐?]누가 봐도 정신을 다른 데 파는 모습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지적에 들어갔다.
“…… 듣고 계세요, 지원 선배?”
“응? 아, 물론이지. 석준 선배가 빠졌다는 얘기였지.”
“네. 그래서 선배에게 한 가지를 제안하려 합니다.”
“얘기해.”
“2바이올린 수석 오디션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짝. 짝. 짝. 짝. 짝.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기립 박수를 쳐서, 나는 입을 벌리고 그 꼴을 멍하니 보는 추태를 연출했다.
“역시, 너는 내 실력을 잊지 않고 있었구나! 김리듬!”
“아, 네? 그, 그렇죠?”
“걱정 붙들어 매! 이 희성예고의 손지원이! 지금까지 보지 못한 완벽한 오디션을 성공시킬 테니까! 아하핫!”
[쟤, 진짜 못 본 새에 정신이 좀 어떻게 된 거 아냐?]동의하지 말자. 동의하지 말자.
혹하는 말이지만 동의하지 말자.
나는 마음속으로 이런 주문을 외우면서.
원만한 대화 종료에 정신을 집중하려 애썼다.
* * *
그렇게 지원 선배를 끌어들인 다음 날.
전수정은 내게 전화로 간결한 메시지를 남겼다.
― 로 와.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 오디션 문제 때문에 직접 보고할 얘기가 있거든.
드디어 때가 왔다.
올해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의 방향을 결정한 가장 중요한 이벤트인, 단원 오디션 논의가.
“여기야, 김리듬. 차 많이 안 밀렸어?”
“다행스럽게도 안 밀리더라고.”
“그러면 됐네. 카페라떼였지?”
“응. 그런데 전수정, 왜 1월에 오디션을 하는 거야?”
탄생부터 이례적인 오케스트라지만.
이번 오디션은, 일정부터 정말 이례적이다.
‘보통 학생 오케스트라는 1월에 오디션을 안 하니까.’
그 시기에 예고생들은 보통 대학 진학 공부에 매진해서, 오케스트라 오디션 같은 일을 하기 힘든데도.
전수정은 1월 말 오디션을 강행했다.
“우리 오케스트라 구조가 통상적인 학생 오케스트라와 아주 많이 다르다는 건 알고 있지, 김리듬?”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학생들이 참여하는 오케스트라는 둘 중 하나야. 특정 예술고등학교 학생들로만 이루어진 예술고 오케스트라거나, 아니면…….”
“지자체 산하의 청소년 오케스트라지.”
“맞아. 하지만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는 어느 쪽도 아니야. ‘재능은 있지만 기회가 없는 학생들을 위한’ 느슨한 연합체 오케스트라라고.”
전수정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나는 이제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을 정도로 머리가 컸다.
“물론 실상은, 그냥 예고 연합 오케스트라잖아.”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이번 달 26일부터 시작할 오케스트라 오디션은 이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의 구성원을 조정하는 대대적인 작업이 될 거야.”
“구성원을 조정한다니?”
“저번 지휘자 오디션 사태 때 느꼈겠지만, 예술고등학교들의 연합체라는 건 사실 더 많은 지분을 가지기 위한 암투가 될 수밖에 없어.”
오디션에 참가한 당사자로서, 나도 그 오디션 과정 배후에서 돌던 암투는 잘 알고 있다.
“우리 학교의 오케스트라 단원 비중은 70%에 육박하지만 지휘자 오디션에서 그 어떤 혜택도 받지 않았어. 반대로 다른 학교들은 단원 몇 명을 밀어 넣는 것으로 최대한 많은 이득을 가져갔지.”
팩트였다.
사실 말이 ‘다양한 예술고의 참여’지, 실상은 우리 희성예고 학생들이 굴리는 오케스트라니까.
“솔직히 다른 학교 학생들은 툭하면 다른 일정 때문에 빠지니까, 결국 우리 학교끼리 할 수밖에 없어.”
“맞아. 게다가 겨울방학엔 더더욱 빠질 수밖에 없지. 예술고등학교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들어가는 곳이고, 그러니 겨울방학에 미친 듯이 공부를 해야 하니까.”
그렇다.
전수정의 말처럼, 이제 다른 학교 출신 단원들은 사실상 리허설에 참가할 수 없다.
나도 더는 이런저런 핑계로 단원들이 리허설 일정을 빠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번 오디션을 기회로, ‘아르스 노바’를 진짜 한국의 ‘엘 시스테마’ 오케스트라로 바꿀 거야.”
엘 시스테마.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다.
“김리듬. 왜 내가 아빠를 설득해서 동아그룹이 출자하는 예술지원재단을 만들게 했겠어?”
1년 동안 이런 애와 같이 구른 덕인지.
이제 나도 던지면 바로 답이 나오는 수준이 되었다.
“재능은 있지만 돈이 없는 애들을 끌어들이려고?”
“맞아. 예술고에 못 온 애들 중에도 재능 있는 애들은 얼마든지 있어. 하지만 그런 애들은 예술을 계속 못 할 상황이 되고, 결국…….”
“두 번 다시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없지.”
“그렇지. 우리는, 그런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오케스트라가 될 거야.”
희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까지 묘하게 들리는 단어인 줄은 처음 알았다.
전수정은 그 묘한 어감을 강조하려고 뒷말을 붙였다.
“아주, 거대한 희망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