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무한경쟁 오디션 (2)
“그러면 앞으로의 ‘아르스 노바’ 오케 구성은 희성예고 출신 수석에, 재능은 있지만 음악을 계속하기 힘든 아이들의 결합이 되는 거야?”
“바로 그거야, 김리듬.”
“비율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는데?”
“이번 오디션에서 나는 후자의 비율을 최대 60%까지 끌어올릴 거야. 어차피 3학년 선배들이 다 빠져서, 세대교체를 한번 하기는 해야 하거든.”
전수정의 말이 맞다.
수석만 해도, 콘서트마스터 희재 선배부터 시작해서.
베이스 수석인 주운영 선배.
바순 수석인 민소하 선배.
트롬본 수석인 손태규 선배에.
유일한 튜바 주자인 황석호 선배까지.
무려 다섯 명이 교체되니까.
“그런데 오디션도 좋고 다 좋은데, 얼마나 모일까?”
전수정은 기다렸다는 듯 내게 답을 주었다.
“오디션이 시작되면 알게 될 거야. 아마 깜짝 놀랄걸? 네가 뿌린 씨앗의 결실을, 그때 보게 될 테니까.”
물론 내가 작년에 보여 준 퍼포먼스가, 평범한 예고생이라면 절대 해낼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잘 알기에.
대충 짐작은 가지만 그게 확신을 주지는 못했다.
그렇게 단원 오디션의 목적 논의가 끝난 후.
남은 것은 세부 사항에 관한 얘기들이었다.
“그러면, 일단 모집 공고부터 해야겠네.”
“모집 공고 영상은 이미 다 만들었어.”
“잉? 대체 언제?”
“우리 민 감독님을 적잖이 굴렸지.”
전수정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고.
나는 속으로 민 감독에게 조의를 표했다.
“퀄리티가 아주 멋져. 보면 혹할 수밖에 없을 거야.”
“기, 기대하고 있을게.”
“그러면, 오디션에 참고가 될 영상들을 보내 줄게. 그게 다 도움이 될 테니까.”
회의는 거기서 끝이 났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나는 피아노 대신 노트북을 켰다.
일단은, 민한기 감독님의 결과물인 오디션 모집 공고 영상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리고 유튜브에 막 올라온 그 따끈따끈한 영상은.
[그래. 바로 이게 민한기 감독이지.]모범적이면서도 비범한 오케스트라 소개 영상이었다.
우리 오케스트라의 각 파트 수석이 뽑아낸 최고의 연주를 그 파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색으로 편집해서.
그리고.
그 모든 메시지를 완결하는.
나의 마지막 한마디까지.
거부할 수 없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영상이 끝난다.
최소한, 정원 미달만큼은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영상미와 구성, 연출, 편집, 색감이 모두.
‘이래도 안 오고 배겨?’라고 노골적으로 꼬드기니까.
[잘 뽑았다, 아주. 민 감독을 잘 갈아 넣었어.]“기대가 됩니다. 몹시.”
[저번 지휘자 오디션 기억나냐? 1라운드는 다양한 곡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는지 보려고 다양한 곡을 제비뽑기시켰지? 반대로 파이널은 지휘자라면 이미 지겹게 해 봤을 모차르트의 교향곡을 시켰고.]“그랬죠.”
[하지만 그건 변칙이지. 단원 오디션은 정석대로 갈 테니, 1차는 무조건 지정곡 오디션이야.]“일단 전수정이 보내 준 영상부터 봐야겠네요.”
정말 그랬다.
그녀는, 자신의 이메일 [email protected]로.
내게 참고가 될 만한 동영상들을 보내 주었다.
[뭐야, 이 아이디는.]“왜요, 또.”
[왜긴, Der Kristall이 독일어로 ‘수정’이니까 그렇지.]그렇게, 신기할 정도의 즉물적인 ID의 소유자 전수정의 신기할 정도로 도움이 되는 영상들을 확인한 후.
마침내, 오디션 신청 원서 접수가 시작되었다.
* * *
사실, 신청 원서 접수 과정이 조금 정신없다는 얘기는 김가인 등에게 많이 들었지만 별로 긴장하지 않았다.
어차피 청소년 오케스트라 오디션이니까.
‘라고 생각했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분명히, 인터넷으로도 신청원서 접수를 받는다고 민한기 감독님이 영혼을 갈아 넣은 영상에 공지했는데.
[야. 아무리 적게 잡아도 백 명은 넘어 보이는데?]이 구름처럼 몰려든 학생들은 대체 무엇이며.
“우와! 김리듬이다!”
“손 흔들어 주세요! 리듬 선배 보려고 왔어요!”
“꺄아악! 사진 찍어, 빨리!”
“라흐마니노프 때부터 팬이었어요!”
“난 드라마! 드라마!”
“전 지휘 오디션 보고 입덕했어요! 질주하는 슬픔!”
내게 광분하는 저 애들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심지어 몇 명은 나도 아는 얼굴들이다.
유튜브와 전수정발 영상에서 본, ‘쟤가 음악을 계속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애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이들 왔죠? 분명히 오디션 신청서는 인터넷으로도 받는다고 했…….”
[신청서 때문에 온 게 아니야, 쟤네들.]윤성은 나를 내려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네 얼굴을 직접 보려고 온 거지.]“네?”
[전수정이 자신만만하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군. 이거, 전국에서 음악 하는 애들 중에 실력은 있는데 돈 없는 애들은 전부 다 이번 오디션에 참석할 모양인데?]윤성은 나를 대견하게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네가 이 많은 애들을 모은 거야. 네가 지금까지 해낸 연주와 부단한 노력들이, 이 많은 애들을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로 끌어모은 거라고.]나는 순간, 눈물이 핑 돌 뻔했다.
윤성이 내게 넌지시 던진 이 말은, 마치.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헛되지 않았다는.
지금까지 정말 잘해 왔다는, 증명처럼 들렸으니까.
[이제 굳이 다른 학교에 손을 벌릴 필요가 없겠군. 이 학생들만으로도 국내 최정상급 학생 오케스트라를 조직할 수 있을 테니까.]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이미 내 주위에 모여든 오디션 지원 학생들에게 사인을 해 주고 있었다.
그렇게 한 무리의 학생들에게 사인을 해 준 후.
“저기…….”
“어, 사인받으려고?”
곱슬머리가 인상적인 학생이 내 앞으로 걸어왔다.
등에 멘 가방을 보니, 바순 같은데.
녀석은 몸을 돌려 가방을 내 쪽으로 들이밀었다.
“여기, 가방 정중앙에 해 주세요!”
“오케이. 알았어.”
“가, 감사합니다!”
가방에 사인을 받은 녀석은 바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 * *
아침부터 장사진을 이룬 학생들의 신청서 제출은, 기한을 넘긴 저녁 6시 반에야 끝났다.
“무려 1천 184명! 1,184명이야!”
제출받은 서류 정리를 돕던 심기준은,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인 서류 더미의 양에 경악했다.
“와, 김리듬 인기 실화냐? 어떻게 일개 청소년 오케스트라 오디션에 애들이 1천 명이 넘게 몰리지?”
“우리가 일개 청소년 오케스트라는 아니지, 심기준.”
“이야, 이렇게 지원자가 몰리면 나도 긴장을 안 할 수가 없겠는데? 오디션 연습 열심히 해야겠네.”
“그래 주면 나야 더 고맙지.”
기준이는, 고맙게도 2학년 때도 계속 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수석으로 남기로 했다.
임지호, 김가인, 양희수, 조하란, 서강준, 전수정을 비롯한 수석들도 마찬가지로 유임을 허락했다.
다만, ‘무한경쟁 오디션’이라는 이번 오디션 콘셉트는 이들 수석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연습에 매진해서.
남들처럼 경쟁한 후.
남들처럼 생존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다.
‘좋아. 이제부터, 제대로 된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 2기를 시작해 보자.’
아무튼, 그렇게 정신없는 서류 제출과 거의 동시에.
“레퍼토리 다 선정했어, 지휘자님!”
오디션 레퍼토리도 확정되었다.
각 파트의 수석들이 심사위원들과 같이 선정한 오디션 레퍼토리를 눈으로 스캔하던 나와 윤성은.
“흐음.”
[흐으음.]플루트 파트에서 약속이나 한 듯 멈춰 섰다.
“정 마에도 그렇게 생각하죠?”
[응,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미친 짓을 못 하지.]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1번 라장조 ≪고전≫ 4악장.
[조하란 이거, 아주 잔악한 레퍼토리를 넣었네.]“어렵다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거죠?”
[쉽게 말해서 플루티스트 도살하는 곡이지. 이 곡에 전해지는 전설을 듣고 싶나?]“저는 전설 따위는 믿지 않…….”
[옛날에 모 오케스트라가 플루티스트를 뽑는다고 이 곡을 오디션 레퍼토리로 걸었어. 몇 명 왔는지 알아?]“한 명?”
[땡. 정답은 0명이야.]“거짓말!”
[정말이라니깐? 한 명도 안 왔어. 그렇게 가고 싶은 시립 관현악단 정단원 자리인데도,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다고. 이 곡은 그 정도로 극악한 곡이야.]그럼에도 조하란은 이 곡을 추천했고.
우리는 이 곡을 오디션 곡으로 최종 채택했다.
“과연, 이번에는 다를까요?”
[그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그게 뭔데요?”
[조하란이 제 꾀에 제가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 * *
마침내, 그날, 1월 26일이 왔다.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 2기 멤버들을 뽑을.
무한경쟁 오디션이 시작된 것이다.
[와. 1차 걸러 내는 것도 진짜 일이었다. 거의 900명을 단번에 걸러 내려니까 죽겠드라.]“뭐, 각오한 일이기는 했죠.”
산처럼 쌓인 신청 원서는 양만큼 사연도 많았지만.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은 냉정하게 쳐 내야 했다.
같이 보낸 연주 영상을 보면서 한 명 한 명 연주자를 거르는 과정은, 시간도 시간이지만 가슴이 아팠다.
[어쩔 수 없다. 저 녀석도 쳐 내.]‘그다음 주자도 걸러야 해요.’
나는 최대한 냉정하게 지원자들의 실력을 판단했고.
영상을 다 본 후 물막이 번지는 눈을 비볐다.
마침내, 오케스트라에 새로 충원할 58명의 5배수에 해당하는 290명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민한기 감독님은 구름처럼 모여든 아이들의 다채로운 표정을 찍으면서 오랜만에 신이 났다.
“찍을 게 너무 많아서 어디부터 찍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기대하세요. 최고의 결과물을 보여 드릴 테니.”
잘되었다.
희성예고와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라는 좁은 무대에만 갇혀서 슬슬 매너리즘을 느끼던 민 감독님에게.
새로운 일거리가 제때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감독님. 사연들이 구구절절하더라고요.”
“저도 다 읽었습니다. 그보다, 방금 전에 인터뷰한 학생들은 같이 돈을 모아 찜질방에서 자면서 오디션을 기다렸대요. 그만큼 절박하고, 간절한 거죠.”
“꼭 합격했으면 좋겠는데.”
“어? 지금 사심을 드러내신 건가요?”
“절대 아니죠. 심사는 냉정하게 할 거예요.”
“그래야죠. 아무튼, 감동적으로 뽑힐 사연이 꽤 많습니다. 기대하세요, 지휘자님. 이제부터 제가 이 오케스트라에 어울리는 스토리텔링을 완성할 테니까요.”
“네. 감독님만 믿어요.”
마침내, 대강당 앞의 가림막이 치워지고.
전국에서 모인 오디션 참가자들이 진입했다.
“순서대로 번호표 받고 기다리세요! 10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할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기다리세요!”
심사위원장을 맡으신 강일준 선생님을 비롯해.
희성예고 올스타 선생님들이 심사위원으로 배석했고.
심사위원 말석이자 예비 반주 대기자를 맡은 나는.
자리에 앉은 채 바이올린 첫 순번을 기다렸다.
“우선 바이올린부터. 1번 들어오세요.”
마침내, 1번 타자가 오디션장에 모습을 드러냈고.
“저, 저저 당최 무슨……!”
우리는 그 1번 타자 손지원 선배의 모습에 경악했다.
머리에 질끈 동여맨 머리띠.
거기에 적힌 ‘노력’이라는 두 글자.
[야, 김리듬. 내가 진짜 한마디만 하자. 앞으로 너 골치 덜 썩으려면, 손지원 저거 진지하게 정신감정 한번 시켜 봐야 해.]윤성의 말에 격하게 동의하고 싶을 정도로.
지원 선배의 의상 퍼포먼스는, 심각한 과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