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첫 인터뷰
연주회가 끝난 지 벌써 이틀이 지났지만, 연주회의 여운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아니, 이건 ‘여운’ 같은 힘 없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농도가 절대 아니다.
[중독이지.]윤성의 말이 맞다.
연주회는 중독이다.
심장을 난도질하는 포르티시모의 광기에서.
영혼과 가슴을 은은히 적시는 아다지오를 거쳐.
마침내 폭탄처럼 터져 나오는 피날레의 환희까지.
학교에서도, 하교한 후에도.
연습 중에도, 잠들기 직전에도.
내 피를 타고 심장으로 들어가.
뇌의 뉴런부터 발끝까지 전해져서.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정 마에. 잠이 안 와요.”
[커피 끊어.]“벌써 끊은 지 일주일 됐어요. 연주회 직전부터 좀처럼 잠이 안 와서.”
[그러면 음악사 연표 외워. 내가 생전에 잠 안 올 때 하던 짓이야.]“이미 해 봤어요. 소용없어요.”
[그렇게 흥분되냐? 연주회 성공이.]“네.”
나는 어느새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정 마에. 아직도 안 잊혀요.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내가 만든 소리가, 폭탄처럼 터져서 내 손끝을 저릿저릿하게 만든 순간을요.”
나는 그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보다는 약하네.]정작, 정반대 반응에 적잖이 놀랐다.
“네?”
[나는 너보다 더했어. 첫 연주회를 성공시키고, 너무 심장이 떨려서 부정맥 온 줄 알았다고. 너 정도면 정말 침착한 거야.]“이제 본인의 경력까지 속이는 건가요?”
[아니야. 새끼야!]나는 흥분하는 그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긴장이 풀어진 탓일까.
갑자기 피로가 몰려온다.
“이상하게 잠이 오네요.”
[그래. 푹 자라. 2학년 1학기를 제대로 보내려면.]나는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다음 날 아침, 전수정을 만나 내 중독 증상을 깔끔하게 날려 버릴 말을 듣게 되었다.
“인터뷰 요청이 속속 들어오고 있어.”
“응?”
“아쉽게도, 마에스트로 최시현이 모든 인터뷰 요청에 불응하고 있거든.”
최시현! 네 이놈!
“……기자들이 몰려들기 좋은 먹잇감이기는 하네.”
“그렇지. 정윤성 사후 협주곡 연주를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최시현이, 왜 마스터클래스 인연밖에 없는 너와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라는 선택지를 골랐느냐는 의문은 현재 음악계 최대 화제거든.”
전수정은 자신의 톡 일부를 보여 주었다.
하나같이, 내 인터뷰를 따고 싶다는 기자들의 요청이었다.
“물론, 인터뷰 의뢰가 이렇게 쇄도하는 중이지만, 나는 단 한 명을 제외하면 전부 커트했어.”
“누군지 참으로 궁금하네.”
“한국문화일보의 김석희 대기자님 알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최시현과의 콘서트에도 참석해 앞자리에서 내 연주에 환호했다.
“문화부 기자를 자처하는 인간은 한국에도 많아. 하지만 그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네 명성에 기생해서 너를 빨아먹으려는 기레기에 불과해.”
“네, 네…….”
전수정, 독하다.
이렇게 눈에 불을 켜고 얘기하는 걸 보니.
‘기레기’에 적잖이 당한 것 같다.
어쨌거나, 나는 쉴 틈도 없이.
“그러니, 김석희 대기자님과의 인터뷰 준비에 매진해야지? 인터뷰 모범 답안을 준비해야 우리의 출발이 더 멋있어지지 않겠어?”
인터뷰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 * *
3일 후.
“잘하고 와, 김리듬.”
“응. 반드시, 승리, 아니, 성공하고 올게.”
나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결연한 표정으로, 인터뷰 장소로 향했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야지.’
15분 정도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될 거라고 생각해서, 그 시간까지 연습을 하다가 출발했다.
인터뷰 장소는, 이제 거의 우리의 준집결지가 되어 버린 ‘카페 모차르트’.
그런데.
“아이고, 여기서 바로 만날 줄은 몰랐네요.”
“……기자님?”
나는 공교롭게도 카페 정문에서 그와 마주쳤다.
“하하하. 15분 먼저 올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어떻게……?”
“사실은 아니에요. 나는 인터뷰 대상이 누구건 15분 정도는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는 버릇이 있거든요. 그게 인터뷰 대상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서요.”
……1분이라도 늦게 출발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나는 가장 볕이 잘 드는 테이블에 앉아, 그가 갈색 수첩을 꺼내 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펜에, 사인지?
“인터뷰 전에, 사인 한 장 부탁해도 될까요, 김리듬 학생.”
이 말 한마디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꾹꾹 눌러두었던 긴장감이 폭발하고 말았다.
“사, 사인이요?”
“네. 사인.”
“저, 김석희 대기자님…….”
“아, 그냥 김 기자님이라고 하셔도 됩니다. 제가 무슨 대기자라고. 허허허.”
“왜 사인을 요구하시는 거죠?”
그는, 무슨 그런 질문이 있느냐는 표정으로 내게 반문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팬이니까요.”
그렇게.
나는 얼떨결에, 그에게 사인을 해 주고 말았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수천 명의 아티스트를 만나고.
수백 가지의 예술적 경험을 맛본 대가가.
내 팬을 자처할 리가 없지 않은가.
“저기, 김 대기자…….”
“김 기자님이라고 해 주세요.”
“김 기자님. 인터뷰 전에 제 팬을 자처하고 시작하시는 건, 기자로서의 공정성에 문제가 되지 않을……?”
“아직 인터뷰는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아, 네.”
“그러면, 이제 시작해 볼까요?”
다행히, 질문은 그리 어렵지 않은 것들이었고.
나는 곧 편하게 말을 할 수 있었다.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
작년에 보여 준 놀라운 퍼포먼스.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와의 인연.
오케스트라에게 품고 있는 애정의 농도.
가장 좋아하는 음악과 음악가.
연습이 끝난 후에 스트레스를 푸는 법.
“아, 요즘 드립커피에 빠져 있어요.”
민아가 내게 준 취미가 바로 이것이다.
“친구가 보내 준 인도네시아 만델링의 맛을 본 다음부터 커피에 빠졌거든요. 샷을 내리는 즐거움이 이렇게 큰 줄 몰랐어요.”
“흠, 그렇군요.”
수첩에 내 말을 적어 나가던 김석희 대기자는, 돌연 표정을 고치고 물었다.
“그러면,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겠군요.”
아, 드디어 왔구나.
“사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합니다. 왜 최시현이 김리듬 학생과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를 선택했는지.”
이 질문에 대한 윤성과 수정이의 주문은 하나였다.
‘김석희 대기자 앞에 어설프게 꾸며 내는 말은 소용이 없을 거다. 솔직하게 털어놓아라.’
그리고.
내 생각도, 둘의 주문과 일치한다.
“일전에, 마에스트로 최시현이 제게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제게는 마에스트로 정윤성의 그림자가 보인다고요.”
“신기하네요.”
“네?”
‘그렇군요’가 아니라, ‘신기하네요’다.
“저도 같은 생각을 했거든요. 아, 계속하세요.”
“아, 네…… 물론 제가 마에스트로 정윤성을 존경, 윽, 머리가…….”
“김리듬 학생?”
“하하, 아무것도 아닙니다. 물론 그를 존경하지만, 그의 그림자가 느껴진다는 말은, 저를 단정 짓고 틀에 가두는 말이 될 수도 있거든요.”
“그렇지요.”
“그래서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정윤성을 존경하고 그의 영향을 받았지만, 저는 김리듬이라는 것을요.”
“그렇군요…….”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그가 타고난 사냥꾼임을.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시겠습니까?”
물론, 전수정은 이것까지 준비시켰다.
나는 조심스럽게 내 연습 일지를 꺼냈다.
어머니와 정윤성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보지 못한 것이다.
“이게 답이 될 것 같습니다.”
윤성은 내게 이런 말을 해 준 적이 있다.
[기사는 90%의 사실에 10%의 감성을 섞은 진실된 거짓이야. 그러니, 사실로 감성을 자극하게 만들자.]사실로 감성을 자극하라.
내게는 그럴 수 있는 무기가 있다.
내 꼬질꼬질한 연습일지를 보던 그는,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런 사례는 거의 처음 봅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 연습했군요.”
“네.”
“왜죠?”
다른 질문이었다면, 나는 더듬거렸을 테지만.
이 질문만큼은, 더듬지 않고 대답할 수 있다.
“하고 싶어서요.”
“…….”
“아픈 날도 많았어요. 우울한 날도 많고, 연습하기 정말 싫은 날도 많았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날에도 항상 의자 앞에 앉아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어요.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고, 또…….”
“계속 편하게 말하세요.”
“피아노 앞에 앉아서 건반을 누르다 보면, 그런 감정들이 어느새 스르르 녹아서 다 사라졌거든요.”
적어도, 남들보다는 조금 더 정직하게 살았다고 자부하는 나지만.
이 말만큼은, 단 한 점의 거짓도 없다.
“그러면, 이제 김리듬 학생에게 마지막 질문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네요.”
그는, 부드러움 속에 강철 심을 품은 눈동자를 내게 고정한 채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김리듬 학생이 가장 좋아하는 곡을 듣고 싶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리스트의 ≪위안≫입니다.”
“많은 곡 중에 그 곡을 고른 이유는?”
“제게 처음으로 음악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있었어요. 그 선생님이, 저한테 이런 말을 했었거든요.”
아직도 기억난다.
봄의 햇살이 눈부셔 흐릿하지만.
미소만은 환하게 빛나던 선생님의 얼굴이.
‘리듬아. 만약 앞으로 네게 힘들거나, 지치거나, 우울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이 곡이 너에게 한 걸음, 한 걸음씩 더 걸어올 거야. 마치, 이 곡의 제목처럼 말이지.’
그 이후.
내게 계속된 엄혹한 시간마다.
나는 이 곡을 계속해서 연주했다.
그 오랜 시간.
조롱과 폄하의 시간을 묵묵히 버텨 내고.
마침내 지금과 같은 기적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힘든 시간을 버텨 낼 수 있게 한.
이런 마법 같은 추억 덕분이었다.
“……힘들 때마다 연주를 하면서, 점점 인상 깊게 다가오는 대목이 있었어요. 막바지에, 오른손의 선율을 위로하듯 반주하던 왼손이 반주를 멈추고, 오른손의 아름다운 선율을 조용히 듣는 부분이 있거든요.”
“거기서 느낀 것이 무엇인가요?”
“아, 제가 중학교 때 직접 쓴 글이 있어요. 읽어 드릴게요.”
나는 지금 봐도 악필인 내 글씨를 보고 피식 웃으면서 떠듬떠듬 글을 읽기 시작했다.
“‘진정한 위안은, 다른 이가 슬픔을 노래할 때 끼어들지 않고, 묵묵히 그 슬픔을 들어 주는 것이다.’”
글을 내려놓은 나의 시선이, 바로 기자님의 얼굴로 향했다.
그의 표정은.
지금까지 내가 봤던 그 표정이 아니다.
마치 아까 전까지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내게 겹쳐 보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정말로 나라는 사람을.
‘김리듬’을 직시하는 듯한, 그런 느낌…….
“역시, 제가 기대했던 것 이상이네요.”
“네?”
“지금까지 보여 준 퍼포먼스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님을 증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그의 표정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설마.
기자 경력만 25년이라는 이 베테랑이.
내 말에 정말로 감동을 받은 것일까?
“알 것 같네요.”
“네?”
“왜 리듬 군의 연주를, 아니, 김리듬이라는 사람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지를.”
나는 그제야 긴장을 풀고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자님.”
* * *
인터뷰는 그렇게 끝났고.
며칠 후, 마침내 내 기사가 나왔다.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 자신들을 증명하다.’”
전수정은 신문 기사를 보여 주며 웃었다.
“같이 읽을래, 김리듬?”
“와. 정. 말. 보. 고. 싶. 어.”
사실 어제 자기 전까지 50번도 넘게 읽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또 보고 싶다.
몇십 번을 다시 읽어도, 짜릿한 탄산음료가 동맥을 통해 발끝까지 쫙, 퍼지는 느낌이었으니까.
예전이었다면,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같이 틀에 박힌 맞장구만 쳤겠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런데, 김리듬.”
“응?”
“인터뷰에 나온 이 선생님 말이야. 혹시 직접 찾아가거나, 소재라도 알고 싶다는 생각 안 들어?”
물론, 그러고 싶었다.
오히려 지금보다 과거에 더 심했지.
그때는 정말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고.
간절하게 구원을 바랐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아.”
“정말로?”
“만약 선생님을 찾는다면, 몇 년 후가 되겠네.”
그래.
선생님을 찾아서, 선생님의 품에 안기는 것은.
내가 최고의 음악가가 되어.
정상에 선 다음.
그때 해야 할 일이다.
* * *
인터뷰의 감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이제 본격적으로 2학년 학업에 열중하면서, 앞으로의 공연 계획도 짜야 했으니까.
‘어떤 곡이 가장 좋을까.’
를 생각하던 중.
공연 계획 낙서장이 되어 버린 노트에 그늘이 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정선율이다.
“김리듬.”
“어. 무슨 일이야?”
“내 연주 좀 봐 줄래?”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진지한 친구의 표정은 처음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