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13
13화. 임지호의 바이올린 (4)
내 의문은, 향상연주회 전날에야 풀렸다.
고작 세 시간 연습만으로 3일은 밤샌 몰골이 되어있는 내게, 그가 처음으로 질문을 걸어온 것이다.
“어떻게 그 소리를 만든 거냐?”
“응.”
“지금 네가 내고 있는 소리. 그 소리를 어떻게 낼 수 있게 된 것인지를 묻고 있다.”
영상물을 봤다고 실토하기는 껄끄러워서, 나는 적당히 둘러대려고 했다.
“음. 네 반주자가 될 방법을 고심하다가, 정말 우연히 떠올랐다고 해야 하나? 하하.”
“…….”
“너에게 맞춰 가려면, 적어도 너만큼은 미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래서, 노력을 했어.”
“거짓말이 능숙하군. 그런 얄팍한 속임수로는 나의 심득을 속일 수 없다.”
아, 그냥 좀 적당히 넘어가 주지.
나는 ‘어쨌든 수고했고, 그 중2병 말투만 좀 고치면 안 되겠니?’라는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았고.
녀석의, 바이올린을 조심스레 케이스에 넣는 손길과.
저물녘의 햇살을 받는 옆얼굴에서.
커피 잔 밑바닥 같은 씁쓸함과 쓸쓸함을 느껴졌다.
“닮았다. 똑같지는 않지만.”
“응?”
“너의 피아노 소리. 그녀보다는 어설프지만.”
나는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았다.
그 영상물에서 보았던,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스스로 꺼낸 것이다.
“누구였는지 궁금하네. 나보다 뛰어났다니.”
“정말 좋은 반주자였어. 다시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왜?”
“교통사고를 당했다.”
지호는 그 어떤 뒷말도 덧붙이지 않았지만, 나는 뭔가 날카로운 것이 가슴을 쿡, 찌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 교통사고로 손가락이 부러진 것이다.
피아니스트에게는 사형 선고와도 같은 일이었다.
그는 한결 더 쓸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나와 같이 반주를 하는 사람은 망가진다.”
“뭐?”
“나를 떠나거나, 나를 저주하거나, 아니면……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의 옆얼굴이 천천히 나를 향하며, 슬픔에 젖은 얼굴이 나를 응시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독주만을 파고들었던 거다. 남과 엮이고 싶지 않아서.”
“…….”
“그런데, 정작 내 악기가 그걸 원하지 않더군.”
“과다니니가?”
“김리듬. 나는 내 악기가 하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
만일 정윤성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남들처럼 지호를 이상한 사람 취급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다.
존재하지 말아야 할 것이 존재하는 것을.
믿음이 실체로 변하는 과정을.
눈시울을 감기는 죽음 너머에서 돌아와 음악에 귀기를 더하는 기묘한 현상을.
내 두 눈과 두 귀로 똑똑히 보고 듣는 중이니까.
“너는 믿지 못하겠지. 들어 본 적이 없으니까.”
“있어.”
“뭐?”
나는 처음으로 강한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들어 본 적 있어. 아니, 지금도 듣고 있어. 너처럼 악기의 소리를 듣는 건 아니지만.”
“도대체 무슨 소리를 듣는다는 거냐?”
“으음…… 임지호. 이 학교의 괴담, 혹시 알아?”
“모른다. 나는 음악밖에 몰라.”
“이 학교에는 옛 거장의 망령이 있어서, 진심으로 원하는 이에게는 실체를 드러내고 소원을 빈 아이를 돕는대. 그리고 나는 말이야.”
나는, 내 옆에 있는 망령을 자랑스럽게 한 번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 망령을 만나서, 망령의 도움을 받고 있어.”
내 얼굴을 5초 정도 빤히 바라보던 임지호는, 천천히 입술을 떼며 딱딱한 말투로 대답했다.
“김리듬. 이 세상에 귀신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아하하하. 얘 진짜 사람 미치게 만드네.
* * *
임지호와의 마지막 연습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나는 그와 신들린 호흡을 맞춘 그 여학생 반주자의 연주를 다시 한번 들었다.
코끝이 시큰거렸다.
그녀의 앞에는 얼마나 많은 미래가 놓여 있었을까.
그 미래가 그녀의 눈앞에서 박살 나서 전부 거두어지는 그 순간, 그녀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옆에서 연주를 같이 듣던 윤성의 표정도 씁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재능을 미처 다 피우지 못하고 져 버리는 것만큼 가슴 아리는 일도 없지.]그의 말이 간절하게 들린 것은 참 오랜만이다.
그 또한, 자신의 재능을 미처 다 피워 보지도 못한 채 일찍 떨어져야만 했던 꽃이었으니까.
[하지만 말이야, 김리듬. 과거는 중요하지 않아.]그러나, 그는 수심에 잠겨 있기에는 멘탈이 너무 튼튼한 귀신이었다.
[중요한 건 현재다. 그리고 미래야! 그런 생각들로 간신히 세운 네 자신감을 무너뜨리는 일이 없도록 해. 지금은,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일에만 집중하라고.]“고마워요, 마에스트로. 내일 향상연주회 때, 잘 부탁드려요.”
[당연히 그래야지.]* * *
마침내 다가온 향상연주회 당일은 정말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했다.
그리고, 우리 둘은 향상연주회 직전까지 마지막 점검과 연습 때문에 연주회장인 대강당에 늦게 가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젠장. 늦었어! 더 빨리 달려!”
“이것도 계산에 있었다. 우리는, 후우, 늦지, 않아.”
“아, 그러시겠죠.”
나하고 같이 뛰는 주제에 그런 말은 좀 자제하시죠, 임지호 씨.
끼이이이익.
향상연주회가 치러질 대강당에는 이미 70여 명의 아이들이 먼저 들어와 있었다.
우리는 심호흡을 고른 후, 대기실로 가서 마지막 준비를 했다.
나와 임지호의 운명을 결정할 향상연주회의 곡목은,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였다.
화려하게 발화해서는 격렬하게 타오르는 곡.
난이도 또한 적절하게 어려워서 임지호 또래의 아이들이 많이 고르는 곡이다.
세상을 자신의 불꽃으로 태울 아이들이 준비하기에 가장 안성맞춤인 곡이기도 하다.
‘우리가 마지막 순번이었지.’
불리할 수도, 유리할 수도 있는 순번이다.
지호가 바이올린을 잡고 마지막 튜닝과 손 풀기를 하는 동안, 나는 대강당 피아노를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다행히도 피아노는 많은 학생들의 손을 거쳐 갔음에도 상태가 아주 좋았다.
연주 직전, 지호는 나와 마지막으로 눈을 마주쳤다.
‘걱정하지 마, 임지호. 넌 내가 아는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야. 이제 모두의 위에 설 시간이야.’
이 바닥에서 잘 통하는 격언 중 하나가 있다.
머리가 하얘져도 손이 알아서 움직이도록 연습해라.
지호와 나는, 그런 말을 해도 될 정도로 연습했다.
‘자, 이제 있는 그대로의 너를 펼칠 시간이야.’
수군거리는 소리가 그치자, 대강당이 고요해졌다.
소름 끼칠 정도로 고요했다.
이 고요함이 주는 악몽 같은 압박감은, 이 자리에 서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절대 모르리라.
마침내, 눈을 감고 집중한 그가 압박감을 이겨 내며 활을 긋기 시작했다.
표면은 창백하지만, 부싯깃을 그으면 확 하고 타오를 백린 같은 소리.
그의 연주가 연주회장의 차가운 공기를 점점 따뜻하게 덥히기 시작한다.
같은 위치에서 직접 비교해 보니 확실해진다.
‘정말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빨려 들어가 주지는 않겠다.
온 힘을 다해 저항하며, 부딪힐 것이다.
그것이 바로, 너를 가장 빛낼 수 있는 방법이니까.
‘그래. 두려워하지 말고 나아가.’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호의 연주는 점점 거침없이 빨라졌다.
자신의 차원을 점점 높여 나가는 연주를 듣고 있으니, 연주자로서의 당연한 욕망이 끓어오른다.
‘도저히 욕심이 안 생길 수가 없어.’
클라이맥스로 갈수록 연주의 작열도는 높아졌다.
이대로라면, 이번에야말로 지호의 우승은 확실하다.
티잉!
팽팽하게 이어져 있던 그의 E현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의 현이 끊어지는 것을 본 순간, 객석에서 바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했다.
아무리 임지호가 그 자리에서 있는 모두와 맞먹을 연주를 지금까지 해냈다고 한들, 이대로는 그냥 실패한 연주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너는 할 수 있다.]지호의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그의 연주가 끊어지지 않도록 인도했다.
[셀 수 없는 순간을 연습했다. 수천 번도 넘게 해 온 일이다. 너는 해낼 수 있다.]그는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멈추지 않고 연주를 계속 이어 나갔다.
끊어지지 않은 나머지 3개의 현으로 말이다.
[그래. 그렇게 계속 이어 나가는 거다.]바이올린에는 4개의 현이 있다.
4개의 현은 각기 다른 음에서 출발해 가장 높은 음을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4개의 현의 음역이 겹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각기 다른 소리를 내려고 4개의 현을 쓰는 것이다.
즉, 나머지 3개의 현으로 끊어진 E현을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기다!
3개의 현 위에서, 다섯 손가락이 한 번도 짚지 않았던 음들을 미친 속도로 짚어 나간다.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거다.]이론상으로는 이런 연주가 가능하다.
바이올린은 배음 구조로 짜여진 어쿠스틱 악기이며.
그렇기 때문에 낮은 음역대의 선이 끊어지면 연주할 수 없지만.
높은 음역대의 선이 끊어져도 낮은 음역대의 선으로 음을 커버하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그게 이론상으로 가능하다고 했지, 그런 미친 짓을 실제 연주회장에서 하는 인간은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다.
팔 하나가 잘린 채로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끊어라. 너를 구속하던 사슬을.]그리고 지금, 임지호는.
그 미증유의 경지를 홀로 걷고 있다.
열망이 불이 되어 연주회장을 삼킨다.
[그리고, 스스로 세상을 비추는 별이 되거라.]피와 땀과 눈물을 연료 삼은 불꽃이 타오른다.
오직 열망이, 연소를 목표로 하는 열망이 그를 맹렬하게 타오르게 한다.
거미줄같이 나를 옭아매는 장애물들을 넘어서.
그리고, 이전의 나 자신을 넘어서.
마지막 음 하나까지.
잡념을 모두 태워 가며 음악을 완전히 연소시킨다.
마침내 마지막 음이 끝나고.
연주회장에 관객이 있었다는 것을 지호가 다시 깨달았을 때는.
“브라보! 브라보!”
“임지호, 최고다!”
“와, 진짜 개쩐다! 브라보!”
그는 압도적인 갈채와 환호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의 속눈썹 끄트머리에 매달려 있던 눈물 한 방울이 기쁨의 미소를 띠는 얼굴을 따라 흘러내렸다.
그 눈물이 떨어지기 직전에, 지호는 악기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이제야 나를 인정해 주는 거냐. 과다니니.”
* * *
“야, 진짜 말도 안 된다. 이건 사기야.”
연주회가 끝난 다음 날도, 정선율은 어제 있었던 임지호의 퍼포먼스를 여전히 떠들고 있었다.
“임지호, 걔 사람 맞냐? 아니, 어떻게 현이 하나 끊어졌는데도 완벽하게 연주를 끝낼 수가 있지?”
“그러게. 나도 놀랐어.”
“와, 보면서도 괴물 같더라. 김리듬, 너는 어떻게 그런 애를 반주할 생각을 다 했냐?”
“그냥 열심히 했어. 그게 가능할 정도로.”
녀석의 반주를 맡았던 나는 태연한 척 대답했지만, 사실 그때로 돌아가면 다시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것 같았다.
현이 끊어지는 순간, 나는 모든 것이 끝장났다는 생각에 연주를 흩뜨릴 뻔했지만.
[김리듬! 얼빠진 짓 하지 마!]정윤성의 일갈이 내가 연주를 망치지 않게 도왔다.
“이거 뭐, 다른 애들 연주는 그냥 다 묻혀 버리던데. 우리 학교만 시끄러운 게 아니라, 벌써 동네방네 소문 다 났나 봐. 유튜브에 영상까지 올라왔어.”
“정말?”
“야. 댓글 봐 봐. ‘와, 저건 대체 무슨 종류의 괴물인가요?’ 이게 베댓이네.”
“정말이네.”
“그리고, 여기.”
정선율이 가리킨 곳에는, 내 반주 칭찬도 있었다.
― 우와 임지호 들으려고 켰는데 반주를 듣고 가네
“그런데 말이야, 김리듬.”
“응?”
“대체 임지호 걔는 정체가 뭐냐? 무슨 괴물이야?”
“괴물 아니야.”
“응?”
“괴물, 아니라고.”
괴물이라.
그 말만큼 임지호에게 모욕적인 말도 없을 것이다.
그는 단지 상처받기 쉬운 어린아이일 뿐이니까.
그리고.
드르륵.
우리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온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그 시끌벅적하던 반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지금 우리 모두의 화제인 임지호가.
문을 열고.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리듬.”
“으, 응?”
내 앞자리로 다가온 그는, 대뜸 내게 민트초코 쿠키를 내밀었다.
“연주회를 무사히 끝마칠 수 있게 도와준 보상이다.”
“이거, 설마 나 주는 거야?”
“민트초코는 건강에 좋다.”
녀석은, 약간 상기된 얼굴로 말꼬리를 약간 흐렸다.
“정말?”
“아무튼…… 좋다. 그렇게만 알아 둬라.”
“알았어. 잘 먹을게.”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같이 별의 순간을 만들도록 하자.”
그렇게, 임지호는 나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굳어 버린 우리 반 아이들을 뒤로 한 채 그대로 가 버렸다.
그리고, 이 사태에 대한 정윤성의 반응은.
[임지호 저 자식, 진짜 민트초코파였다니. 이거 안 되겠어.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하하하하. 더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