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세라핀즈의 안유경입니다 (3)
전수정에게 ‘세라핀즈와 협업을 하겠다’라고 확실하게 의사 표현을 한 후, 나는 오후 연습에 집중했다.
‘오후 연습 마친 다음에는 ‘아르스 노바’ 오케 애들 모아서 일정 공지 때린 다음에 본격적인 협업 준비 들어가야지.’
아마 이사장님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그녀의 소관이니까.
‘이거, 어쩌면 또 이사장님하고 전수정이 계획한 대로 따르게 되는 건 아닐지 모르겠네.’
물론, 이번만큼은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만큼은!
그런 열의에 불타, 오후 맹연습을 마친 나는.
‘왜 단체로 연락을 안 받지?’
갑작스러운 ‘아르스 노바’ 오케 녀석들의 단체 잠수에, 기분이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 왜 다들 연락이 없어? 응?
아무리 톡을 날려봐도, 응답이 없다.
마치, 단체로 안읽씹이라도 하기로 작정한 것처럼.
심지어.
‘왜 아무도 없어?’
연습실에도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윤성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한마디 툭 던졌다.
[김리듬. 드디어 임계점이 온 거야.]“아니, 무슨…… 무슨 임계점이요?”
[무슨 임계점이긴. 이제 저 범재들이, 천재인 너를 대놓고 질투하고 무시하기 시작한 것이다.]갑자기, 난데없이 맑은(미세먼지 짙음) 하늘에 천둥 벼락이 미쳐 날뛰는 기분이다.
“내가…… 질투의 대상?”
[당연하지! 지금까지 네가 벌인 퍼포먼스를 다 기억해라! 지금까지 질투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라고!]생각해 보니, 이 귀신 말이 맞다.
작년부터 쉬지 않고 달려온 지금의 나는, 학교의 거의 모든 빛을 독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이 돼. 이거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그 순간.
단톡방에, 다급한 톡이 올라왔다.
― 큰일 났어! 지금 유준혁하고 임지호가 연습실에서 대판 싸우고 있어!
말뿐이었다면 믿지 않았겠지만.
그 톡과 동시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이.
내 정신을 쏙 빼 놓고 말았다.
[이거, 좀 심각한데.]유준혁과 임지호가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는 사진.
게다가, 유준혁이 주먹질이라도 했는지 임지호의 입가는 터져서 피가 흐르는 상황이었다.
나는 바로 미친 듯이 톡을 했다.
― 거기 어디야?
― 여기 4층 구석 연습실
위치를 확인하자마자 나는 미친 듯이 달렸다.
‘설마, 그것 때문인가?’
사실, 며칠 전 임지호와 유준혁이 가벼운 언쟁이 붙은 적이 있었다.
‘콘마(콘서트마스터). 내 생각에는, 현 파트 애들 따로 연습 좀 더 시켜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작년하고 다르게 현이 잘 안 맞잖아. 앞으로 우리 오케스트라 입지를 생각하면, 지금 다잡지 않으면 힘들어질 것 같아서 말이지.’
그때, 송진으로 활을 다듬던 임지호는 활을 내려놓고 벌떡 일어서서 한마디만 던졌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문제야. 그러니까 신경 꺼.’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유준혁도 만만치 않은 성격의 소유자라는 게 문제였다.
‘그러시든가. 나는 더 이상 간섭 안 할 테니까.’
그대로 두었다면 싸움이 붙었겠지만.
‘둘 다 그만해. 싸우지 말고.’
‘아니, 지휘자님. 유준혁이 먼저…….’
‘진정 좀 하고. 유준혁, 말이 너무 거칠잖아.’
‘…….’
‘어쨌거나 둘 다 싸우지 마. 현 파트 연습이 더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지금 유준혁 네 말은 월권행위처럼 들릴 수 있어. 둘 다 화해해.’
내가 절묘한 타이밍에 끼어들어 더 큰 싸움이 붙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터지리라고 생각한 문제였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어, 지휘자님! 여기야, 여기!”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4층 연습실 근처에는, 이미 ‘아르스 노바’ 오케 애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다들 비켜. 내가 들어갈 테니까……!”
“――!”
“――!”
연습실 안의 상황은, 밖에서 듣기만 해도 이미 난장판인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이 상황에 순간적으로 울화가 치밀어서, 문을 붙잡고 벌컥 열고 들어갔고.
빵! 빠방!
순간적으로 터진 폭죽 소리에.
문자 그대로 경악하고 말았다.
“드디어 왔다! 우리 지휘자님!”
“깜짝 놀랐지? 생일 기념 서프라이즈!”
“몰래카메라였습니다!”
“아하하하! 우리 지휘자님 표정 봐 봐!”
나는,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 버린 채, 쏟아지는 폭죽 속에서…….
“자, 빨리 생일 케이크 가져와! 빨리!”
“초에 불 다 붙였다! 빨리 대령해!”
분명히, 방금 전까지 대판 싸우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임지호와 유준혁이, 서강준과 함께 커다란 생크림 케이크를 들고 와서는.
“성악 전공 애들 뭐 해! 생일 축가 불러야지!”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김리듬의……!”
나를 둘러싸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 그러고 보니…….
‘맞다. 오늘이 내 생일이었지.’
오늘은, 3월 29일.
민아가 아침에 내 생일을 챙겨 준 후, 워낙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는 중이라 깜빡 잊고 있었는데.
“생일 축하합니다!”
“자! 빨리 케이크에 지휘자님 얼굴 박아!”
“야! 케이크에 심 있다고! 박지 마! 큰일 나!”
내가 얼이 빠져 있는 사이에.
심기준이 다가와서는, 내 목에 ‘합격’ 대신 ‘성공’이라고 적힌 목걸이를 반강제로 걸었다.
“짜잔! 몰래카메라였습니다아!”
“…….”
“몰래카메라! 대성공! 모두 김리듬의 생일 몰래카메…… 크헉! 으허억! 어허억!”
심기준은 그날 내게 처절하게 응징당했다.
이날 내 앞에서 가장 심하게 깐족거린 죄로.
“으허억! 김리듬이 폭주한다!”
“다들 말려! 집기 부서진다!”
그날,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의 모든 멤버들은 똑똑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착한 사람에게 선을 넘는 장난을 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 * *
나는 연습실에 도열한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 멤버들을 세워 놓고, 자초지종을 캐기 시작했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빌드업을 짜 두고 계셨다?”
“네에.”
“이것들을 진짜……!”
“죄,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녀석은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지만.
나는 이대로 넘어갈 생각이 절대 없었다.
최소한, 이 몰래카메라를 주도한 임지호와 유준혁, 그리고 심기준만큼은.
반드시 똑같은 형태로 보복당하도록 만들겠…….
“어머. 벌써 끝난 거야?”
시선을 연습실 바깥으로 돌리니.
전수정과 같이 들어온 민아가.
내게 태연한 표정으로 선물을 내밀었다.
“이민아?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어휴. 기다리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다구.”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남자친구의 몰래카메라를 기획하는 여자친구라니.
세상이, 대체 어찌 돌아가려고…….
“그런데, 김리듬 네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움직여서 타이밍을 놓쳤지 뭐야. 어쨌거나, 정식으로 생일 축하해. 여기 선물.”
“우오오오……!”
눈치 없이 환호성을 터뜨리려던 서강준은, 내가 눈을 한 번 부라리자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침묵했다.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웃음을 한 번 짓고는.
그녀의 선물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 리듬이. 화가 많이 난 것 같은데?”
“당연하지. 화가 아주 많이 났는걸?”
“이런. 정말 큰일이네. 그러면, 내가 우리 리듬이 화를 풀어 줘야 할 것 같은데?”
그녀의 말이, 순간 나를 솔깃하게 했다.
“오늘은 정말로 특별한 날이니까, 우리 리듬이가 바라는 소원은 딱 한 가지만, 뭐든지 들어줄게.”
순간,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상황에서 그녀에게 얘기해야만 하는 소원은, 오직 하나뿐이다.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지금 상황에서 그건 좀 위험해, 김리듬.]윤성이 대놓고 내게 경고했다.
[만일 네가 ‘서번트’가 된다는 걸 민아가 알게 된다면, 넌 저 생일 케이크의 희생양이 될 수 있…….]‘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말아요. 난 ‘서번트’ 가입 같은 거 안 해요.’
결국, 나는 결정을 내렸다.
“협업? ‘세라핀즈’하고?”
“응…… 커헉!”
“어머, 이런. 조준을 잘. 못. 했. 나. 봐.”
장난기 넘치던 태도로 내 입에 케이크를 계속해서 욱여넣던 민아는, 실수 같지 않은 실수를 저질렀다.
어느새 나는, 도끼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는 민아를 설득해야만 하는 힘든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에잇,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다!
어차피 얼굴이 크림 범벅이 되어 버린 이상!
정윤성의 말처럼, 예술가의 두 번째 덕목 ‘뻔뻔함’을 140% 발휘할 때다!
“어, 어쩔 수 없어, 이민아! 오케스트라의 미래 수익 창출을 위해서라도! ‘세라핀즈’와의 협업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니까!”
“…….”
“……민아야?”
긴장하지 말자. 예상했던 일이잖아.
“……혹시 김리듬. 저번에 내가 맡았던 그 페미닌 향, ‘세라핀즈’ 멤버가 쓰는 향이었어?”
“……살려 주세요.”
진심으로 무섭다.
이거, 진짜로 내가 트리거 버튼을 누른 것 같은데.
“…….”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화가 났다기보다는, 좀 많이 심란해 보이는…….
“잘됐네. 그런 건설적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도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하하하.”
그녀는 태연한 척 다시 케이크를 집어서는.
내 입에 쏙 넣어 주면서 말을 이었다.
“음악만 하는 거 맞지?”
“으, 으음.”
“정말로, 음악만 해 주는 거다?”
나는 케이크를 간신히 넘긴 후 대답을 할 수 있었다.
“그래. 걱정하지 마.”
“진짜 진짜 음악만 해 주는 거다?”
“알았다니깐.”
“딴 데 한눈파는 순간 어디 한 군데 잘려 나가는 거야. 알았어?”
“거, 걱정하지 마십쇼.”
그녀는 못내 불만인 눈치였지만.
결국 막지 않았다.
아마, 뒤에서 전수정이 열심히 설득을 했으리라.
* * *
다음 날 오후.
우리는 YJP 쪽과 공식적인 미팅을 가졌다.
“정말 고마워요, 리듬 군.”
나는 다시 만난 안유경 씨의 눈빛이 이전보다 한결 더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그 눈빛은, 다시 만나서 반갑다는 수준이 아니라.
마치 터널 끝에서 구원받은 듯한…….
“저번에는 정말로, 내가 차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으니까요.”
“제, 제발 그런 말씀은 하지 말아 주세요…….”
민아가 따라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신께 감사한다.
만일 그녀가 나를 따라왔다면, 감당 안 되는 결과가 도출되었으리라.
‘게다가 ‘서번트’에도 못 할 짓이야.’
나는 ‘세라핀즈’의 최대 팬카페 ‘서번트’의 규모를 찾아보다가 경악했다.
‘9만 명?’
그것도, 얼마 전 아슬아슬하게 10만 명 선이 무너졌다는 사실이 나를 경악하게 했다.
[9만 명이면 국내 걸그룹 중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야. 김리듬. 너 조심해야겠다. 철저하게 비즈니스 관계로만 움직인다는 걸 보여 줘야 한다고.]‘안 그래도 그럴 겁니다.’
그리고, 지금 미팅도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편곡 작업은 비나가 전담하게 될 겁니다. 저희 쪽에서는 고마운 일이죠. 그런 세계적인 작곡가가 저희 같은 ‘세라핀즈’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 주면서 작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이득이거든요.”
박호산 팀장은 칙칙하기 짝이 없었던 저번 미팅과는 180도 다른,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일관했다.
이래서 사람은 한 번 만나 본 것만으로는 알 수 없다는 어르신들의 말이 이해가 되는 느낌이다.
“그러니, 편곡의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정해야…….”
“원곡의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어쿠스틱 악기의 색채감을 최대한 살려야죠…….”
그렇게, 순조롭게 미팅이 진행되던 와중.
“그런데 말이죠, 팀장님. 그리고 김리듬 군.”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던 안유경 씨가.
“저는, 개인적으로 김리듬 군도 편곡을 한 곡 정도는 맡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갑자기, 사무실에 폭탄을 투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