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오즈의 너 (5)
리허설 작업이 순탄하게 진행되려는지, 때맞추어 ‘크레모나 공방’에서도 연락이 왔다.
“제페토 할아버지한테서 연락이 왔어. 드디어 스트라디바리우스 수리가 끝났대.”
“드디어!”
“내가 말했잖아. 최고의 장인이라고.”
어쨌거나, 예정일에 맞추어 스트라디바리우스가 고쳐졌으니 지금 당장 가져와야 한다.
“좋아. 임지호, 출격하자.”
“기다리고 있었다, 김리듬.”
오랜만에 방문하는 ‘크레모나 공방’은, 예전과 단 한 가지가 달라져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죄송합니다. 차가 막혀서요.”
바로, 깐깐한 태도로 공방을 지키는 ‘제페토’ 서무구 할아버지의 강렬한 존재감이다.
“이런 게으른 것들한테 이 명기를 맡겨야 한다니……. 이 신성한 음악계가 어찌 되려고, 쯧쯧.”
“저기, 할아버님. 스트라디바리우스는…….”
“기다려. 곧 가지고 나올 테니.”
천천히 작업실 안으로 들어간 할아버지는, 곧 바이올린 케이스를 조심스럽게 품고 나왔다.
“직접 보고 확인해라.”
케이스를 여는 순간.
묵직한 송진 냄새와 함께.
신이 인간에게 선사한 선물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
임지호는 혹시나 망가질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조심스럽게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꺼냈지만.
할아버지는 그런 지호가 못내 불만인지 한마디 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연주쟁이들이 알려나 모르겠다. 내가 들인 공을.”
“연주해 봐도 될까요?”
“그러라고 고친 악기인데, 연주를 안 하면 섭섭하지.”
나는, 그날 ‘진짜’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소리가 어떤 것인가를 임지호의 연주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빛을 품은 듯한 보잉과 비브라토에.
환상적인 포르타멘토까지.
그의 연주는 은하수에 유성 꼬리가 얽혀 내 몸과 마음을 해먹처럼 껴안는, 그런 경이로움을 제공했다.
“역시 명기는 명기야. 혹한과 혹서를 많이 견뎌 낸 나무만이 좋은 바이올린이 되는 법이라는 진리를 다시 느낄 수 있구만. 그렇게 망가진 것을 내 보잘것없는 재주로 살려 놓았더니, 기어이 이런 소리를 내는 걸 보니.”
연주를 들은 할아버지는, 회한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의 공방을 슥 둘러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인생 팔십을 살아 보니 조금 알 것 같아. 악기를 만드는 법도, 세상을 살아가는 법도. 조금이나마.”
이것이, 악기 제작에만 60년을 바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의 시선이 바이올린을 떠나 내게 향했다.
“전수정이 네 얘기를 꽤 하더구나.”
“네?”
“수정이 그 애도 무른 구석이 있어. 생긴 건 꼭 기생오래비 같이 여리여리한 이런 놈이 대체 뭐가 좋다고 그렇게 수시로 칭찬을 해 대는지.”
믿기지 않는 사실이지만 나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그래도, 너 피아노 연주는 조금 하더구나.”
“감사합…….”
“그래도, 아직 한참 멀었어, 이놈아! 너는 더 높은 곳을 올려다봐야 해! 지금 네 놈의 눈동자에는, 지금에 만족하고 안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그득하다고!”
“하하하하…….”
이런 말씀만 아니었다면.
정말 더 좋았을 텐데.
* * *
드디어, 오케스트라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포르티시모!”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홀을 때렸지만.
나는 바로 연주를 멈추게 하고 소리쳤다.
“소리가 전혀 뻗지를 않아! 금관악기의 어택*이 더 강렬해야 해! 어정쩡한 소리를 내면 마이크에 잡히지 않는다고!” (*강렬한 소리를 위한 짧고 강렬한 주법.)
내 시선은 이제 현악기 쪽을 향했다.
“그리고 현악기 비브라토는 약간 거친 느낌이에요. 특히 바이올린, 음향을 더 밝게 해 주세요.”
“알았어, 지휘자님.”
콘마 바로 옆자리의 희재 선배가 밝게 대답했다.
“정말 오랜만이네. 우리 마에스트로 김리듬의 지휘를 받으면서 리허설을 하는 게.”
“반년도 안 지났잖아요, 선배.”
“느낌이 그렇다는 거지, 김리듬. 자, 다들 열심히 합시다. 알았죠?”
큰 흐름은 이 정도로 지적하고.
그다음은, 세부적인 밸런스 조정이 필요하다.
[김리듬. 최도진을 좀 다잡아야 할 것 같아.]‘네?’
[최도진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억센 성격이야. 지금 녀석에게는 채찍질이 필요해.]그의 말을 한번 믿어 보기로 했다.
눈썰미 하나만큼은 검증된 귀신이니까.
“그리고, 바순.”
도진의 시선이 바로 나를 향했다.
“타이밍을 약간 더 앞당겨서 불어야 해. 내 지휘봉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바로. 알겠지?”
녀석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베이스는…….”
소우현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사실 그럴 만도 하다.
나는 리허설 때마다 항상 녀석을 지적했으니까.
하지만, 오늘 녀석이 들려준 소리는.
지금까지 들려준 소리 중, 가장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들어.”
“네?”
“그 말 하려고. 자, 그러면 시작할까?”
녀석이 씩 웃는 게 보인다.
“바순은 조금 더 크게.”
도진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지시에 따랐다.
물론, 이 정도는 채찍질 수준도 안 된다.
“조금 더 크게! 어택을 좀 더 강렬하게!”
도진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분명히, 호흡 조절 때문만은 아니리라.
단원들도 내가 갑작스럽게 도진이를 다그치는 모습에 조금 놀란 분위기지만, 나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작년부터 여기 있었던 베테랑들은.
도저히 깔 게 없었다.
내가 어떤 지시를 내리건.
가령, 음악적으로 과도하게 난해한 요구나.
과장된 퍼포먼스, 얼굴 연기를 요구해도.
임지호, 김가인, 특히 유준혁은.
[무슨 무림의 절정고수들 보는 기분이네.]왜 절대고수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말 잘들 하고 있어.’
키우는 보람이 있다.
이 오케스트라는.
* * *
“수고하셨습니다.”
“후우. 어째 마에스트로 최시현 때보다 더 힘드네.”
단원들은 파트별로 삼삼오오 모여 흩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존의 단원들과 오디션으로 새로 뽑힌 단원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지만, 이제 그런 선은 많이 사라졌다.
“저기, 정수 선배.”
“응? 얘기해.”
“여름에 악기 관리가 쉽지 않은데, 어떻게 하세요?”
“요즘은 바이올린 케이스 안에 온도계 달려 있잖아. 난 그거 보고 하는데?”
“그래요? 저는 그런 게 없어서…….”
“안 되면 실리카겔 넣어도 돼. 제습 효과 하나는 탁월하다고.”
“우와! 선배 천재예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졸지에 천재가 되어 버린 김정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탄식을 삼켜야 했다.
그 순간, 누군가 내 어깨를 툭 하고 쳤다.
소우현이었다.
“지휘자님. 연습실 좀 쓰게 도와줘요.”
“왜?”
“연습 더 하고 가려고요.”
“야. 그러다 너 뼈 삭는다.”
“아니요. 칭찬받은 만큼 더 해야겠어요.”
윤성의 말이 맞다.
이 녀석은, 겉모습과는 다르게.
칭찬에 아주 약하다.
* * *
드디어,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날이 왔다.
‘뮤직비디오 촬영은 우리 희성예고와 오케스트라 홀, 그리고 콘셉트에 맞는 야외 촬영지로 정해질 거야.’
‘예술의 전당이 딱 좋은데.’
‘쉽지는 않겠지만, 노력은 해 봐야지.’
마침내, 첫 촬영이 시작되는 날 아침.
나는 새벽같이 학교에 도착했지만.
놀랍게도, 연주회장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민 감독님? 김 사장님까지?”
“아, 일찍 오셨네요?”
민한기 감독님은, 친구 김두희 사장님과 함께.
연주회장 바닥에 무언가를 붙이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뭐 하세요?”
“네. 마스킹 테이프로 단원들이 앉을 위치와, 맨 앞에서 활약할 ‘세라핀즈’ 멤버들의 이동 경로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과거였다면 나는 어리둥절했겠지만.
이제는 듣자마자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간다.
“단원들이 가장 돋보일 위치를 고르고 계셨군요.”
두 사람은 연주회장의 위치를 철저하게 살핀 후, 색색의 마스킹 테이프로 꼼꼼하게 하나하나 붙이는 작업을 새벽부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왜 두 분이서 직접 하시는 거예요?”
“직원들한테 맡기기에는 너무 세밀한 작업이니까요.”
김두희 사장님의 답은.
내게 색다른 프로 정신을 알려 주었다.
“그래도 지휘자님이 직접 보시면서 조정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카메라에 찍히는 위치는 제가 가장 잘 알지만, 음향 효과까지는 잘 모르니까요.”
나도 바로 팔을 걷어붙이고 두 사람을 도왔다.
“이 위치는 뒷줄의 금관 소리를 막을 수 있어요. 조금 더 앞으로 당기는 게 좋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클라리넷. 이 클라리넷 뒷줄에는 보통 트롬본이 앉거든요? 트롬본 특징 아시죠?”
“슬라이드를 밀면서 연주를 하죠.”
“네. 이렇게 위치 간격이 좁아지면 트롬본이 연주를 제대로 못 해요. 최악의 상황에는 트롬본이 슬라이드를 쭉 밀 때 앞좌석을 칠 수도 있으니까요. 조정이 필요해요.”
“알겠습니다. 클라리넷은 조금 더 앞으로…….”
그렇게 정신없이 위치를 조정하고 있으려니.
단원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어, 지휘자님!”
“거기서 뭐 하고 있어요?”
“아, 왔구나.”
단원들이 오면 무엇을 시켜야 한다?
“자, 여기 마스킹 테이프들.”
“예?”
“지금부터, 이 마스킹 테이프 표기된 곳마다 전부 다 붙여. 하나도 비뚤어지지 않게. 정확하게.”
“저, 저기요오……!”
부려 먹어야지.
마침내, 마스킹 테이프 작업이 끝나고.
단원들이 모두 착석하자.
“안녕하세요,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 여러분!”
“우와! ‘세라핀즈’다!”
‘세라핀즈’ 멤버들이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의상 조심해! 한 벌당 100만 원이라고!”
‘이게 한 벌당 100만 원이라고?’
아이돌이 입고 촬영하는 의상이.
그녀들만큼 중요하게 다루어진다는 사실을.
이날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정말 아이돌의 세계는 뭔가 다르구나.’
‘세라핀즈’의 세 멤버는 가장 앞줄에 앉아.
각각의 콘셉트에 가장 잘 맞는 악기인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가 새겨진 복장을 입은 채.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다룬다.
나머지 한 명, 메인 보컬 최선아는.
‘프리마 돈나 콘셉트로 무대 중앙에 선다.’
최선아.
그녀는, 등 뒤에 나비 날개가 입혀진.
‘나비 부인’ 스타일의 의상을 입고.
이번 뮤직비디오 촬영에 임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내게도 쪽지로 메시지를 전했다.
― 조명을 조금 덜 밝게 해 주세요.
다른 사람이라면 ‘나를 무시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을 테지만, 예고생인 나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 옆자리의 유경이 바로 사과했다.
“미안해, 김리듬. 선아가 좀…….”
“목소리가 생명인 메인 보컬이니, 민감한 녹음 시기에는 목을 아끼기 위해 최대한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거죠?”
“……아! 역시 예고생! 알고 있었구나?”
당연하죠.
성악 전공 학생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잘 알 수밖에 없는 입장인데.
음악 전공 예고생들이 몸조심(특히 손가락)에 유별난 것은 다들 잘 알지만, 성악 전공 학생들만큼 유별난 인간들은 나도 아직 보지 못했다.
특히 우리 학교의 프리마 돈나(남자)라고 불리는 박지수는, 중요한 시험이나 콩쿠르 몇 주 전부터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쪽지나 톡으로만 대화를 주고받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니, 최선아의 유별난 행동들을 이해할 수밖에.
‘자. 이제 즐거운 콘서트 시작이다.’
10시간 후.
“컷! 수고하셨습니다!”
‘후우. 탈진하겠네.’
아침부터 시작된 촬영은, 밤늦게까지 이어졌지만.
우리와는 달리 ‘세라핀즈’ 멤버들은 쌩쌩했다.
특히 멤버들은 임지호를 붙잡고 질문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우와, 바이올린 멋있다.”
“이게 스트로베리우스인가 그거냐?”
대체 어디 특산품인지 묻고 싶어지는 이름이다.
“그런데 지호 군. 이거 얼마예요?”
“야, 임유진!”
“아, 언니 왜 그래? 물어볼 수도 있는 거 아냐!”
침묵하던 임지호는, 붉어진 얼굴로 조용하게 잡고 있던 스트라디바리우스의 가격을 불러 주었고.
“시, 십억?”
가격을 들은 유진은 경악했으며.
유경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럴 만도 하지.
여기 있는 인간들 중에 1/4을 팔아야 살 수 있는 악기니까.
심지어, 지호가 지금까지 쓰던 과다니니보다 2억은 더 비싸다.
‘나 같으면 살 떨려서라도 못 들고 다녀.’
생각해 보면, 그렇게 비싼 악기를 태연하게 들고 다녔다는 사실이 바로 임지호가 강심장이라는 증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