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139
139화. ‘세라핀즈’의 ‘아르스 노바’ (1)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곯아떨어진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 멤버들을 슥 훑었다.
‘비행기에서 최대한 많이 자 둬야 하는데.’
귀국 후 일정도 쉴 틈 없이 빡빡하다.
‘세라핀즈’의 콘서트 준비는 물론이고.
본업인 피아노 연습에.
이후 오케스트라 일정도 생각해야 하니까.
‘병행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야.’
윤성도, 얼마 전에 내게 진심으로 충고했다.
[이제는 정말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지 않겠어?]굳이 윤성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는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안다.
다섯 살 때부터 시작해, 이제는 나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가까워져 버린 피아노와.
약속과 책임감 때문에 시작했지만, 어느새 진심으로 몰입하는 중인 지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시간이 곧 올 것이다.
눈을 감았다 뜨니, 인천공항이 눈에 들어왔다.
―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곧 착륙하겠습니다. 좌석벨트를 매 주십시오…….
“뭐야, 벌써 도착이야? 이렇게 빨리?”
“으으…… 내리기 실타…… 프라하 좋았는데…….”
“자, 다들 깨워! 비행기 착륙하면 바로 짐 챙겨서 나가야 하니까!”
“김리드음…… 여기 꿈이지? 현실 아니지이? 우리, 아직 프라하에 있는 거 아니었어?”
“비행기 타기 직전에 시내 구경 실컷 했잖아. 정신 차리고 다들 일어나. 뒷줄도 다 깨워!”
“그게 실컷이냐…….”
나는 잠에서 깨자마자 ‘프라하 후유증’에 시달리는 녀석들을 정신 차리게 했다.
이렇게 좁고 불편한 이코노미석에 11시간을 갇혀 있어도 풀로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아르스 노바’ 녀석들의 실태를 보아하니, 나중에 해외 공연 걱정은 1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외국어도 잘하지, 현지 적응 능력도 뛰어나지. 정말 어디 밀림에다 버려 놔도 악착같이 한국으로 돌아올 것 같아.’
짐을 챙기고,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절차를 거치고.
마침내 게이트를 통해 그리운 인천공항으로 나오자.
“김리듬! 여기야!”
……네가 여기서 왜 나와?
민아가 저기 있다.
스모크 블라우스에.
브라이스 원피스 차림의 네가.
저 멀리서부터, 천천히 내게 다가와서는.
갑작스러운 등장에 순간적으로 판단력을 상실한 내 머리에 가벼운 딱밤을 날렸다.
“뭘 그렇게 놀래? 아침부터 마중 나온 게 이상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역시, 좀 이상한가?”
나는 그녀의 얼굴이 붉어진 것을 처음 보았다.
“자, 그러면 아침 일찍부터 마중 나온 나한테 줄 뭔가가 있지 않아?”
“아, 여기.”
나는 비행기를 타기 한 시간 전 희수 선배, 조하란과 함께 전속력으로 찾아간 ‘프라하 초콜릿’에서 사들인 커피빈 초콜릿을 그녀에게 건넸다.
“프라하 특산 커피빈 초콜릿이네.”
“어? 어떻게 알았지?”
“유경험자의 경험을 너무 과소평가하는데? 어쨌거나,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선물 잘 받을게.”
“아, 거참 빨리 좀 나갑시다! 길막 쩌네!”
“쯧쯧. 어린 것들이 못 하는 짓이 없어!”
뒤에서 질투심에 악이 받친 ‘아르스 노바’ 녀석들의 고함 소리가 들리지만 애써 무시해 주었다.
“자, 그러면…….”
“어머, 안녕하세요.”
매니저와 같이 움직이던 유경 누나가.
민아와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어, 이분은…….”
“반가워요, 이민아 씨. ‘세라핀즈’의 리더, 안유경이라고 해요.”
“아, 네…….”
불과 몇 초 전까지, 아침 햇살까지 받으며 이중으로 빛나던 민아의 얼굴이.
갑자기, 명도가 뚝 떨어진 상태가 되어 버렸다.
“반갑습니다. 이민아라고 해요.”
“아, 네. 리듬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어떤 얘기를 많이 들으셨죠……?”
실시간으로 속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다.
여기서 말 한마디라도 잘못 나오는 순간.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진심으로 두렵다.
유경 누나는, 내 눈동자에 담긴 간절한 감정을 슥 훑고는, 다시 시선을 민아에게로 돌리면서 대답했다.
“선의의 라이벌이라고 들었어요.”
“아, 네. 그건 맞죠. 김리듬과 저는, 앞으로 쇼팽 콩쿠르를 놓고 다툴 선의의 라이벌이니까요.”
“아, 그래요?”
유경 누나는, 주위가 환해지는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말을 이었다.
“진심으로 응원할게요. 둘의 순수한 라이벌리를요.”
민아는 여전히 명도가 낮은 얼굴을 한 채, 고개를 천천히 내게로 돌렸다.
“저기, 김리듬.”
“응?”
“잠시만 따. 라. 와. 줄. 래? 할 얘기가 있어.”
“갑자기 왜……?”
“닥치고 따라와.”
나는 바로 그녀에게 손을 잡혀서는.
다짜고짜 으슥한 곳으로 가야 했다.
사람들이 없는 외진 곳에서 멈춰 선 그녀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응?”
“대체 무슨 소리야?”
“아니, 왜 저렇게 친해? 도대체, 응? 프라하에서, 응?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민아. 놓고 말해!
급발진하지 말고!
“정말 음악만 한 거 맞지? 그렇지? 그렇다고 말해! 어서!”
“이민아, 진정해! 나 고작 하루 있었어, 하루!”
“아, 맞다. 그랬지.”
갑자기, 그녀의 표정이 평온해졌다.
“그래. 내가 너무 나갔네. 순수하게, 음악적으로, 같이 작업만 한 관계인데, 그렇지?”
“그, 그렇지.”
“그런데 말이야, 김리듬.”
“응?”
“그동안, 내가 너무 방심한 것 같아.”
“잉?”
“그래서 말이지.”
그녀는, 내 손목을 잡고는.
내게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오면서.
이렇게 선언했다.
“지금부터는, 달려야 할 것 같아.”
그로부터 15분 후.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김리듬. 난 아무것도 안 봤어.]‘조용히 하세요.’
[크큭…… 아, 이거 재미있는데? 옆에서 실시간으로 김리듬 얼굴색 변하는 모습 보는 재미가 있어.]옆에서 쉬지 않고 크큭거리는 윤성을 무시하려 했지만, 이성이 반쯤 날아간 상황에서는 쉽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와서는.
내 입술에, 자신의 자스민 향을 남겼…….
‘이민아. 도대체 너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태연하게 다른 좌석에 앉아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대체.’
* * *
뮤직비디오 촬영도, ≪오즈의 너≫와 ≪Exciting≫ 녹음 작업도 모두 마친 후.
마침내 작업을 마친 음원들이 디지털 싱글로 묶여 음원 사이트에 올라가는 D-day가 우리를 찾아왔다.
나와 윤성은 연습실에 조용히 앉아 곧 사과뮤직에 올라올 음원 성적을 기다리는 중이다.
여기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걸려 있다.
‘계약 조건에 옵션이 붙어서, 새로 발표한 음원 성적이 좋으면 좋을수록 우리에게 떨어지는 인센티브도 많아질 예정이야.’
전수정의 설명대로, 이번 ‘세라핀즈’와의 협업이 대성공하면 우리는 엄청난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
“진짜 긴장되네요.”
이렇게 긴장한 적이 얼마 만인가.
라흐마니노프 콘서트 때?
‘아르스 노바’ 지휘자 오디션 파이널 때?
최시현과의 협연 직전 때?
최소한, 지금 내가 겪는 긴장감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던, 그 세 번의 경험과 맞먹을 정도로 높아져 있었다.
시간이 하릴없이 흐른다.
1분. 40초. 30초. 20초.
10. 9. 8. 7. 6. 5. 4. 3. 2. 1…….
“떴다.”
그리고 마침내.
음원 성적이 공개되는 순간.
“81위네요.”
‘세라핀즈’와 우리가 공을 들여 만든 ≪Exciting≫의 순위는, 81위를 기록했다.
이제 황혼기를 맞이한 걸그룹의 리메이크 음원 성적치고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수준.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들인 노력을 생각한다면.
너무나도 아쉬운…….
[야, 김리듬.]“왜요.”
[새로고침 계속 좀 눌러 봐.]“그런다고 뭐가 바뀔…….”
나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윤성이 시킨 대로 계속 새로고침을 눌렀고.
어느새 화면에서 사라진 ≪Exciting≫의 순위에,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래로 내려봐.]나는 급히 마우스 스크롤을 돌며 100위까지의 순위를 확인했지만, ≪Exciting≫은 어디에도 없었다.
[좌절하지 말고, 이번에는 위로 좀 올려 봐.]나는 급히 위로 화면을 올렸고.
≪Exciting≫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헉.”
57위.
그 짧은 순간에.
≪Exciting≫의 순위가.
81위에서 57위까지 오른 것이다.
윤성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입가에 흘리면서 한마디 했다.
[이거, 여기서 안 멈추고 더 올라갈 것 같은데.]나는 이제, 긴장과 불안이 아닌 희열과 기쁨에 가득 차 미친 듯 새로고침 버튼을 연타했다.
57위에서 더 올라가던 ≪Exciting≫은.
51위.
45위.
43위를 거쳐.
마침내, 37위까지 올라갔고.
≪오즈의 너≫도 88위에 안착하는 것을 보았다.
[보이지, 김리듬?]“……네.”
[이건 정말 기적이야.]“저도 알아요.”
[아니야! 넌 지금 더 놀라야 해! ‘짜잔! 불가능이라는 건 없더군요!’가 현실이 되어 버린 순간이라고.]“압니다. 안다구요.”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나는.
무려 21위까지 올라간 ≪Exciting≫과.
75위로 버티는 중인 ≪오즈의 너≫를 보았고.
― 아니 얘네 왜 역주행함?
― 아니(2) 역주행은 둘째치고 곡 왜 이리 좋냐;;
― 솔직히 별로임 이제 100번 들었는데 한 9900번 더 들으면 질릴 듯
― 윗댓 고도의 어그로 보소ㅋㅋㅋㅋ
― 원년부터 ‘서번트’였는데 솔직히 너무 슬퍼여ㅠㅠ 이렇게 찬란하게 빛날 수 있는 그룹이었는데 그동안 너무 못 뜬게 아쉽고 지금이라도 다 씹어먹자!
리메이크한 ≪오즈의 너≫가, 업로드 당일 너튜브 조회수 200만을 거쳐 300만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역주행도 이런 역주행이 없어.”
말 그대로, 세상이 뒤집어지는 중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퇴물 취급 받던 걸그룹이.
갑자기, 모든 차트에서 역주행을 기록하는 중이니까.
[다들 반응이 비슷하네. ‘아이돌이 어떻게 이런 음악을?’로 도배되는 중이니까.]“아니, 제 생각은 달라요.”
[응?]이것만큼은, 제대로 반박할 수 있다.
“≪오즈의 너≫는, 아이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음악이에요.”
‘세라핀즈’와 같이 작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몰랐지만, 아니, 편견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모르는 척했지만.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다.
오히려 아이돌이기 때문에.
자신들을 지탱하는 팬덤의 힘을 믿고.
얼마든지, 이런 독특하고 창조적인 음악에.
자신들의 전력을 쏟을 수 있는 것이다.
[김리듬. 이번에야말로 솔직히 말해. 너, 진짜로 나 모르게 ‘서번트’ 가입했지?]“아니라니깐!”
내가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그건 그렇고, 이거 아방가르드 음악이 살아남기 좋은 방법이 갑자기 떠오르는데?]“그게 뭔데요?”
[현대 아방가르드 음악가들의 아이돌화. 어때?]“예?”
[생각해 봐! 이런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돌이 아방가르드 음악을 해도 팬들은 그 음반을 사 준다고! 이거 정말 놀라운 발상의 전환 아니냐? 응?]“그 전에 그룹이 해체되겠죠. 판매량 부진으로.”
정신 차려, 이 잡귀야.
물론, 내가 일침을 가하건 말건 윤성은 낄낄거리면서 굳건하게 버티는 순위에만 시선을 집중했다.
[그건 그렇고 예당의 배유진 부장, 지금쯤 아마 배가 아파 죽으려고 할 것 같은데? 그렇게 망해라, 망해라 고사를 지내던 우리와 ‘세라핀즈’의 협업이 대성공을 거두었으니까.]“아, 그건 그렇죠.”
진심으로 궁금하다.
지금쯤, 개같이 망가졌을 배 부장의 얼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