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140
140화. ‘세라핀즈’의 ‘아르스 노바’ (2)
이제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일거리는.
가장 중요한, 합동 콘서트뿐이다.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이 나고.
D-day가 왔다.
우리는 오전 내내 리허설을 마치고.
공연 시작 한 시간 전까지 ‘세라핀즈’ 및 관계자들과 공연 무대에 맞는 음향을 리허설로 완성한 후.
대기실에서 긴장된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어, 떨린다아.”
“우리, 무대에 오르면 살아서 나갈 수 있을까?”
“야. 누가 저 심기준 입 좀 막아.”
다들 대놓고 긴장하는 티를 내서.
나는, 오히려 긴장하는 티를 낼 수 없었다.
무대에서 꽤 멀리 떨어진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도.
무대를 꽉 채운 관객들이 만드는 울림이.
여기까지 그대로 전해진다.
‘방음판을 달아도 이 정도라니.’
무대 위에 올라가면.
5천 명이 쏟아 내는 음압을.
그대로 맞으며 버텨야 한다.
‘침착하자. 침착해.’
내가 흔들리면, 오케스트라가 전부 흔들린다.
그렇게 대기실에 앉아서 얼마를 기다렸을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 단원 여러분. 이제 무대로 가셔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다들 출발하자.”
무대까지 가는 길은 지나칠 정도로 길고 복잡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짧게 느껴졌다.
마침내, 나와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무대 위에 전부 착석하고.
“와아아아아아!”
5천 명이 내지르는 무지막지한 환호성과 함께.
네 명의 ‘세라핀즈’ 멤버들이.
여신처럼 나타난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서번트’ 여러분! 모두 반가워요!”
“우아아아아아앜!”
“여러분! 모두 준비됐어요?”
“네에에에에에엨!”
5천 명의 함성이.
스테이지를 날려 버릴 기세로 몰려들었다.
“그러면, 이제부터 시작해 볼까요?”
나는, 안유진이라는.
‘세라핀즈’의 리더가 가진 카리스마를.
그날 처음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이 무대 한가운데에서 버티고 선 채.
관객들의 에너지를 전부 빨아들여서 빛으로 바꾸는.
타고난 아이돌이었다.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애절한 음향이 오케스트라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우리는 흑백이에요.
그대를 잃고, 색을 잃고.
다채로움마저 잃은 채 지쳐가는.
일상 속에 묻힌 흑백.
레몬 방울에 소원을 담으면
그대가 있는 곳까지 닿을 수 있을까요.
그 순간, 우리가 일으키는 오케스트라의 회오리가 천천히 다른 음향을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회오리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요
다들 놀랄 것이다.
어쿠스틱 악기의 다이나믹이.
이렇게 크고 거칠다는 것에.
두뇌 없는 사람들만 살던 세계에서.
심장 없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계에서.
용기 없는 사람들로 채워진 세계에서.
세 명의 거대한 목소리 위에서.
안유경의 목소리가 3옥타브를 넘나들며 소리친다.
이제 벗어나는 거야!
음향이 정교하게 세팅한 신관을 따라 폭발하며, 열망하고, 요동치며, 강렬한 색채가 되어 환호한다.
눈을 감았다 뜨면
너는 이제 마법의 세계에
무지개의 스펙트럼으로
뛰어들어 소리치는 거야
마법의 구두를 신지 않아도
톱밥 주머니를 갖지 않아도
양철의 심장을 받지 않아도
용기의 물약을 먹지 않아도
너는, 너는 너는 너는
스스로 충분히 빛나는 존재니까!
폭염 같은 음향이 쏟아지면서.
무대는 어느새 신성한 제전이 되어 있다.
고대로부터 이어진, 음악의 제의적인 성격이.
이 신성함에 도취된 제사장들에 의해.
환호하는 난장판이 되어 버린다.
‘어지럽다.’
색청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까지 폭발한다.
휘몰아치는 음향들에서 쏟아지는 흑백은, 내 눈에 레드화이트에서 반타블랙까지 수백 가지로 쪼개진다.
어디 그뿐인가.
로즈우드에서 버밀리온까지 닿는 수백 가지 붉은색.
능소화와 한련화가 만발하는 듯한 수백 가지 주황색.
황금의 찬란함에서 실버블론드의 은은함까지 포섭하는 수백 가지의 노란색.
로우그린부터 카뎃블루까지 뻗는 수백 가지 초록색.
아쿠아마린에서 로열블루까지 끌어안는 수백 가지의 파란색.
네이비블루에서 슬레이트블루까지 이어지는 수백 가지의 남색.
마지막으로, 인디고에서 마젠타까지 흩뿌려지는 수백 가지의 보라색까지.
그 셀 수 없는 색채들이, 무대 위에서 폭발해서는 관객들에게 입자로 흩뿌려져 별세계를 창조한다.
세계는 우리 안에 있어
무한에 가까운 색을 가지고
너의 흑백에 영혼의 색을 입힐 거야
그것이 마법이니까
동시에 삶이니까
놀라지 마
두려워하지도 마
그저 Somewhere Oh
Oh oh oh oh oh
Over the Rainbow라고
마법의 주문을 외우면
모든 고통과 아픔은
스르르 녹아내릴 테니까
이제 환희의 시간이다.
축제를 끝낼 마지막 음향을 마음껏 발산해라.
숨이 목젖까지 차오르도록.
―――!
마침내, 120데시벨에 달하는 오케스트라의 음향이 마지막 폭발을 마쳤을 때.
“우와아아아아아앜!”
우리는 무대를 진동시킬 정도로 거대한 환호성을 정면으로 받았다.
* * *
콘서트는 완벽했다.
모든 무대를 마친 ‘세라핀즈’ 멤버들은.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탈진한 상태여서.
매니저와 스태프들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무대를 내려와야 했지만.
“김리듬, 이쪽으로!”
그 상황에서도,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바로 나를 찾는 그녀들의 모습이 나를 웃게 만들었다.
“정말 최고였어.”
가장 먼저, 유경 누나가 나를 포옹했고.
차례로 임유진과 희나가 나를 끌어안은 후.
“정말 고마워, 리듬 군.”
마지막으로, 최선아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끌어안았다.
“정말…… 놀라운 무대였어…….”
그녀는 울고 있었다.
‘세라핀즈’ 중 가장 감정 표현이 없고, 나를 삭막하고 무뚝뚝하게만 바라보던 그녀는, 사실 내 능력에 가장 감동받고 감탄한 멤버였다고 한다.
“정말…… 고마워…….”
“아, 뭐야! 최선아 또 운다! 또! 제발 울지 좀 마!”
다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렀을 뿐이다.
“나도…… 울 것 같잖아…… 후에엥…….”
“하아…… 이제 정말 안 울 줄 알았는데…… 흐으윽…….”
어느새, 희나와 임유진도 울고 있었다.
유경 누나는 끝까지 눈물을 참으며 다른 멤버들을 달랬지만, 그녀의 속눈썹 끝에도 이미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다들 왜 울고 그래. 이렇게 잘 끝내 놓고서…….”
“하지만 언니이…… 이제는…….”
“이번이 마지막이잖아…… 흐아앙…….”
눈물이 이렇게 전염성이 강한 줄은 처음 알았다.
‘세라핀즈’ 멤버들은 서로를 꼭 껴안은 채, 너 나 할 것 없이 울면서 얼굴의 화장과 마스카라를 마구 번지게 만들었다.
“다들 뚝. 오늘은,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되는 거야.”
* * *
콘서트 일정이 모두 끝난 다음 날.
나는 유경 누나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와 줘서 고마워, 김리듬.”
“도대체 왜 또 저를…….”
“아. 직접 만나서 꼭 건네줘야만 하는 선물이 생겨 버려서 말이지. 이런 기회, 솔직히 놓치고 싶지 않았거든.”
그녀는, 내게 두 장의 봉투를 건넸다.
“드디어, 우리 박현성 선배의 ≪회색지대≫가 개봉한다는 기쁜 소식을 알려 주려고.”
“오. 진짜 티켓이에요?”
“응. 열어 봐.”
봉투를 열자, 정말로 그 안에는 ≪회색지대≫ 티켓이 들어 있었다.
“아, 현성 선배 얼굴을 찍었어야 했는데. 자기가 직접 전해 주고 싶은데, 지금 선배 일정상 불가능해서 나한테 대리 전달을 부탁하더라고.”
“크큭. 직접 못 와서 죽으려고 하겠네요.”
“자기 말로는 ‘김리듬 금단 증상’이라고 하던데? 그만한 예술적 영감을 주는 애가 없다면서.”
“좀 많이 무섭네요.”
솔직히, 이 정도면 광기라고 해도 된다.
나 하나 없다고 저럴 거면 말이다.
“그런데, 같이 해 보니 알 것 같아.”
“네?”
“금단 증상이 생길 만해. 김리듬 너는.”
처음 느낀다.
그녀의 눈동자에, 소유욕이 비치는 것은.
익숙한 기시감에 내 머릿속 필름이 빙그르르 돌면서.
그녀와 같이 드라마를 촬영하던 작년의 기억들을 토해 내듯 재생시킨다.
“저번에 프라하에서 우리 ‘세라핀즈’가 곧 해체할 거라고 했지?”
“그랬죠.”
“어쩌면, 그게 조금 미뤄질지도 몰라.”
그 말을 하는 그녀의 표정은, 내가 보았던 그녀의 얼굴 중 가장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5년이면 짧지 않은 기간이고,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다 했고, 유진이도, 희나도, 선아도 모두 각자의 길을 이미 마련했지만, 사실 다들 아쉬웠던 거야.”
“정말 잘됐어요.”
“응. 아직은 조금 더 함께하고 싶어. 아직은, 미련 없이 새로운 모험을 떠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연기…… 말씀이시죠?”
“응.”
≪오즈의 너≫로 증명한 그녀의 작곡 능력은 비상함이라는 단어로도 설명되지 않는 수준이지만.
그녀의 연기는, 이미 작곡 능력 이상이었다.
“솔직히, 이렇게 된 김에 사장님과 딜을 해서 한 번 더 ‘아르스 노바’와 대규모 콘서트를 주최하고 싶…….”
“사양하겠습니다.”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지만.
그런 경험에 중독되는 것은 위험하다.
경험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
“히이잉. 싫다. 우리 리듬이가 만드는 음악에는, 영혼으로 파고드는 힘이 있는데.”
“그런 오그라드는 말은 제발 하지 마세요.”
“어쨌거나, 영화 티켓까지 생겼는데, 여자 친구를 이걸로 달래 줘야지?”
“?”
“걱정하지 마. 나는 둘의 사랑을 방해하고 싶은 생각은 1도 없으니까. 아니, 나는 전력을 다해 둘의 사랑을 응원하는 쪽이야.”
“아니, 저기요오…….”
“그러니까, 둘이 영화를 꼭 보러 갔으면 해. 아주 멋지고, 환상적인 데다, 재미까지 있을 테니까.”
“저는 이만 바빠서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급히 미팅 장소인 사무실을 벗어나려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빛나는 사람들의 우상이 아닌.
슬픔이 모두 씻겨 내려간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스물다섯 살의 풋풋한 예술가가 거기 있었다.
“그러면, 언젠가 다시 봐요. 유경 누나.”
“응.”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려, 사무실을 나섰다.
* * *
그날 저녁.
나는 오랜만에 민아와 같이 저녁을 먹었다.
시끌벅적한 콘서트는 모두 끝나고.
조용하고 평온한 일상이 돌아왔지만.
이제 민아는, 민아대로 새 콘서트를 준비해야 한다.
‘즉, 영화를 볼 기회는 이번 주말뿐이다!’
그릇이 전부 비워지고.
설거지까지 마친 타이밍을 노려.
나는 민아에게 본론을 들이밀었다.
“민아야. 내일 혹시 시간 비어?”
“비울 수는 있는데, 왜?”
“오. 그러면 내일이 드디어 ≪회색지대≫ 개봉인데, 같이 보러 안 갈래?”
그녀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칼을 들이밀듯 물었다.
“같이 보고는 싶은데, 이거 대체 누가 보낸 티켓이야?”
“어, 박현성 씨야, 박현성 씨. 나한테 영화 꼭 보러 오라고 해서 말이야.”
“흐으음.”
그녀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의심의 눈초리를 좀처럼 거두지 않았지만.
나는 예전에 윤성이 했던 ‘예술가의 미덕’을 본받아, 최대한 뻔뻔해지기로 했다.
“그래. 알았어.”
‘휴우.’
“그런데 말이지, 김리듬.”
“응?”
“나,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그때 알았어야 했다.
민아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과도할 정도의 결연함을.
그녀는 순식간에 퇴로를 차단하고는.
나를 벽으로 밀쳤다.
“김리듬.”
“으, 응?”
그다음 순간.
그녀는, 내 키에 맞추기 위해 까치발을 들고.
자신의 입술을, 내 입술 위에 포갰다.
“으흡!”
“…….”
“……!”
“…….”
“…….”
이성을 날려 버리기 직전까지 나를 옭아매는.
달콤한 화음 같은 자스민 향.
자스민 향 위에 덧입혀지는 자스민 향.
그로부터 15분 후.
“그러면, 내일 CJV에서 봐.”
“응. 일찍 자는 거 잊지 말고.”
나는 간신히 식힌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민아의 연습실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