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카스타 디바, 정결한 여신이여 (2)
통화가 끊어진 후, 나는 미묘함과 기묘함 사이의 표정을 짓는 윤성을 올려다보았다.
[김리듬 너, 진짜 큰일 났다.]“……아주 잘 알고 있거든요?”
[이거 보통 큰일이 아니야. 세상에. 신혜경 선생님이 김리듬에게 반주 제안을? 나도 20대는 되어야 했던 일인데.]이 잡귀는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정신을 가진 것인지, 갑자기 그게 궁금해진다.
[그런데 신혜경 선생님의 반주자 제안이라니, 이거 정말 이상하네. 이렇게 즉흥적으로 자신의 파트너를 정하시는 분이 아닌데.]“저기, 정 마에.”
[응?]“지금이라도, 제가 거절하는 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너 시작도 하기 전에 커리어 삭제되고 싶니?]와, 이 말은 진심으로 무섭다.
커리어 삭제라니.
이 양반이 말로 오한 돋게 하는 건 참 오랜만이다.
[그리고,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네?”
[물론 마에스트라 신혜경의 반주는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지만, 오히려 너 같은 애한테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그리고.]“그리고?”
[‘세라핀즈’와의 협업이라는 갑작스러운 외도 때문에, 너에 대해 좋지 않은 시각을 가진 ‘예술가’들의 시선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될 거다.]지금 윤성의 이 말만큼 이 바닥의 현실을 잘 보여 주는 말이 또 있을까.
‘숭고하고 위대한’ 클래식 음악가들에게, 자신의 ‘수준’에 어울리지 않는 다른 장르와의 협업은 잘못하면 ‘사문난적’으로 찍힐 수도 있는 일이다.
나는 불과 며칠 전에 그런 일을 했고.
그 때문에, 전수정이 내게 이런 말까지 했다.
‘막상 저질러 놓고 보니 미안해지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세라핀즈와의 콘서트 말이야. 평론가들은 ‘고전음악의 신예와 대중음악의 멋진 콜라보’라면서 좋아하지만, 정작 이 바닥의 높으신 분들은 전혀 좋아하지 않고 있거든.’
아무리 그런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유무형의 압력으로 다가오는 것까지 신경 쓰지 않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이번에 제대로 증명하는 거다. 네가 이 정도로 완벽한 클래식 음악가라는 것을. 그것도 ‘카스타 디바(Casta Diva, 정결한 여신)’라는 극찬까지 받으며 세계 무대를 정복했던 희대의 프리마 돈나와 같이.]“증명하기 위해 하는 연주회는 내키지 않는데요.”
[김리듬. 너에게 음악은 이제 직업이야. 그 말은, 더 이상 네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지.]그의 말은 엄격했지만, 그게 내게는 역설적이게 기대감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최고의 직업윤리는, 직업에 있어서만큼은 냉정하게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그는 분명히 엄격한 스승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다.
[중압감을 받아들여. 예술가란, 각자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정상을 향해 오르는 것들이야. 이 노정은 오르면 오를수록 더 무겁고 힘들어지지. 심지어 무차별적으로 저격하면서 너를 거꾸러뜨리려는 잡것들까지 존재해.]“하지만 그럼에도, 그 짐을 짊어진 채 정상을 정복하라는 말이죠?”
[당연하지. 할 수 있잖아?]문득, 얼마 전 박현성의 기사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맹인 화가의 기사가 떠올랐다.
그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게 그림이라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 불가능을 해냈다.
어쩌면, 예술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좋아요. 신혜경 선생님을 직접 뵙고, 반주자를 하겠다고 말씀드릴 거예요.”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기사들을 이것저것 훑어보았고, 얼마 전 메트로폴리탄 공연 때 있었던 작은 소동을 다룬 외신 기사에 잠시 눈길이 갔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그 기사를 스크랩했다.
* * *
이명석 본부장과 전수정이 나와 가까운 사이여서 가장 좋은 점은, 이런 문제를 놓고 기가 막힐 정도로 조율을 잘한다는 점이었다.
그날 저녁에 바로 일정과 장소가 정해지고.
다음 주 화요일, 나와 전수정은 저번에 전성우 회장님과 같이 저녁 식사를 함께한.
압구정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메종 드 라 뮈지칼레’에서 신혜경 선생님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선생님.”
“그래. 수정이는 얼마 전에 본 적이 있고, 내 반주자가 될 녀석은…….”
그녀의 정결하면서도 서늘한 시선이, 내 전신을 천천히, 이리저리 훑는 것이 느껴졌다.
“눈빛이 달라졌구나.”
“아, 감사합니…….”
“순수함이 조금 가셨어. 대신 자신감이 붙었구나.”
칭찬…… 이겠지?
아무튼, 이 레스토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어린 양갈비에 송로버섯 소스를 뿌린 램 립이.
오늘 저녁의 메인 코스였다.
“이 어린 양갈비는 정말 특별해. 젊은 시절부터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녔지만, 이런 맛은 여기서밖에 맛볼 수 없다니까.”
“그래서 이곳으로 선생님을 모신 거죠.”
전수정은 능숙하게 신혜경 선생님을 상대했다.
역시, 이런 상황에서 최고의 믿을우먼이지.
신혜경 선생님에게 최적화된 전수정 덕에, 식사는 나름 느슨할 정도로 괜찮게 진행되었다.
“그러면, 이제 간단한 테스트를 해 보고 싶은데.”
식사를 마치고 후식을 기다릴 즈음, 신혜경 선생님이 느슨해진 분위기에 긴장감을 던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김리듬 군.”
“네, 선생님.”
“혹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아침≫이라는 가곡을 아나?”
나는 속으로 안도했다.
이 저녁 식사를 가지기 전에, 나와 윤성은 ‘신혜경 선생님 예상 문제’로 약 50곡 정도의 리트를 추렸는데.
그중에 이 곡이 있었던 것이다.
“조금은 압니다.”
“그러면, 3마디의 레가토가 붙는 오른손의 아르페지오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이미 윤성과 합을 맞춰 본 내 입에서, 머뭇거림 없는 즉답이 바로 나왔다.
“고음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작고 부드러우며, 밝고 아름답게 표현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Intim이지. 기초는 숙달했나 보구나.”
그때부터였다.
그녀가 작정한 듯, 내게 질문을 시작한 것은.
“첫 가사인 ‘Und morgen wird die Sonne wie-der scheinen’에서 ‘wie’의 ‘i’ 모음 해석은 어떻게 하지?”
“아주 밝아야 합니다.”
“어째서?”
“태양을 노래하는 구절이, 태양처럼 밝지 않다면 모순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대답 대신 엷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처음 보는 그녀의 미소이자.
내게는, 합격 신호와도 같은 것이었다.
* * *
‘다음 주부터 본격적인 리허설을 시작할 테니, 그때까지 준비를 마쳐야 할 거다.’
신혜경 선생님은, 나를 반주자로 낙점한 이후부터 최대한 말을 아낀 상태로 저녁 식사를 끝냈다.
이해한다.
가수에게 목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니까.
어쨌거나 일정은 정해졌다.
이제부터는, 반주라는 낯설지만 신비로운 세계로.
[김리듬.]“네?”
[오랜만에 조언 한마디 해야 할 것 같아서.]“항상 하던 게 조언 아니었어요?”
[잘 듣는 게 좋을 거다. 네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조언이 될 테니까.]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이 바닥은 좁아. 게다가 질투와 시기가 넘쳐나는 곳이지. 너는 그 바닥에서 가장 인정받는 기자의 단독 인터뷰를 받고, ‘대중음악을 예술적으로 성취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까지 받은 상태야. 그런 상황에서, 마에스트라 신혜경의 반주 제안까지 받았지.]“…….”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열등감과 음해가 아니면 살아가지 못하는 애들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일 거라고. 너를 어떻게든 무너뜨리려고.]그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안에는 담담하기 때문에 더 격해지는 섬뜩함이 있었다.
[선동의 힘을 무시하지 마라. ‘선동은 한 줄의 문장만으로도 충분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괴벨스의 말이죠?”
[아니. 그런 근거는 전혀 없어. 내가 독일에 있을 때 독일사도 공부하면서 확인한 건데, 괴벨스가 그런 말을 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어.]“네? 그런 줄 알았는데.”
[이런 사실이야말로 선동이 얼마나 사회에 넓게 퍼져 나가고, 그 범위가 얼마나 광범위한지 잘 알려 주네. 너무나 많은 정보는 진실을 덮어 버리고 거짓을 양산하지. 문제는, 네가 그런 물살에 휩쓸릴 수 있다는 거야.]그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니, 반대로 정말로 괴벨스가 했던 말로 이 조언을 마쳐야겠다.]그의 입술은 부드럽게 움직였지만, 그 입술에서 나온 말은 그 어느 때보다도 거칠었다.
[‘거짓말도 100번을 하면 진실이 된다.’ 명심해라.]나는 적절한 답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
고민을 마친 내 입이, 천천히 움직였다.
“정 마에.”
[얘기해라.]“정 마에는 내가 ‘세라핀즈’와 협업하는 것을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어요. 그렇죠?”
[당연하지.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너를 콩쿠르만 하는 기계로 만들 수도 있었어.]그 말에 담긴 진실의 무게가.
순간적으로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지만.
나는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물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그렇죠?”
[그래.]“그렇다는 건, 내가 그 협업을 통해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다고 판단해서죠? 그렇죠?”
[그걸 이제야 깨달았니?]그는 처음으로 굳은 표정을 풀고는,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런 걸 생각하면서 움직이고, 판단하기는 싫어요.”
[또, 또 물렁해진다. 너는 이게 문제야.]“지금까지 지켜봐서 잘 알잖아요, 마에스트로.”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설령 그런 음해가 들어온다고 해도, 저는 더 이상 주눅 들지 않을 거예요.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 * *
“문규형. 너 또 연습하냐?”
“응. 연습해야지.”
장현예고의 피아노 전공 학생들 중, 지난 몇 달 동안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 준 학생을 꼽으라면 모두가 문규형을 꼽을 것이다.
탈락을 간신히 면한 실력으로 장현예고에 들어온 그는, 이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면서 콩쿠르 준비를 하자는 선생님의 허락까지 받았으니까.
“후우, 오늘도 성공했다.”
열등감을 벗어 버린 그 날부터.
그의 생활은 하나부터 열까지 달라졌다.
그런데.
“어?”
예고생들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퍼지기 시작하는 출처 불명의 글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김리듬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으로 가득한.
아니, 김리듬에 대한 모욕뿐인 날조 문서가.
규형의 동공에 격렬한 파문을 일으켰다.
* * *
“정말 대단하네.”
나는 전수정이 알려 준 후에야 그 출처 불명의 괴문서를 알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이런 날조 문서를 접했음에도.
나는 피가 차갑게 식고.
머리가 냉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문서에 의하면, 내가 전수정의 남자친구라서 지금까지 특혜를 얻었고, 이사장님한테까지 꼬리를 치는 쓰레기라고 적혀 있는 것 같은데.”
“김리듬.”
“누가 봐도 날조잖아, 이거.”
“그렇게 만만하게 볼 문제가 아니야, 김리듬.”
모인 사람들 중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는 것은 나 혼자뿐이었다.
전수정조차 얼굴에 긴장과 당황을 띄우고 있다.
“김리듬, 너와 신혜경 선생님이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이건 너무 큰 악재야. 누군지는 몰라도 반드시 색출해서, 뿌리를 뽑아야만 해.”
“…….”
“‘거짓말도 100번 하면 진실이 된다.’ 인류 최악의 선동가인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말이지. 지금 이 정체불명의 날조 문서를 만든 놈들의 정체가 궁금해서 미칠 것 같고, 내가 전력을 다해서 추적하는 중이지만, 이런 문서가 올라온다는 것 자체가 너의 이미지에, 지금까지 티 한 점 없던 너의 이미지에는 치명상이 될 수 있다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반박 영상을 올려야지.”
당연한 서순이다.
이런 날조에 물러설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리고?”
“색출해서, 추적해야지.”
나는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격렬하게 튀는 불꽃을.
“죗값을 치르게 만들 거야. 반드시.”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은, 전수정을 적으로 만들지 않은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