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쉼표의 시간 (1)
희한하게도 연주회 때까지 그렇게 고통스럽던 몸은, 그날 저녁이 되자마자 민망할 정도로 멀쩡해졌다.
전수정도, 늦게 오신 어머니도 하루 정도는 더 경과를 지켜본 다음에 퇴원하자고 하셨지만.
‘지금 당장 퇴원해도 되겠는데요?’
‘그렇죠,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의사 선생님의 지원 사격을 받아, 다음 날 아침에 바로 집으로 올 수 있었다.
한데, 이른 퇴원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있었으니.
‘갑자기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쉬지도 않고 일만 하다가 갑자기 휴가가 주어지면, 좀이 쑤셔 못 견딘다는 것을 나는 처음으로 느꼈다.
‘일단 뭐라도 하자.’
일단은 연주회 관련 기사 감상부터 해 볼까.
침대에 드러누워 폰으로 검색을 하니.
기사들이 주르륵 뜬다.
[‘카스타 디바’ 신혜경의 잠정 은퇴] [여신의 퇴장…… 황혼의 연주회] [마지막까지 그녀다웠던 마지막 리사이틀] [‘카스타 디바’ 신혜경의 백조의 노래]“이것 봐요, 정 마에. 기다렸다는 듯이 기사들이 쏟아지는데요?”
[그럴 만하지. 신혜경 선생님은 거장인 동시에 성악계 최고의 이슈메이커였으니까.]인정할 수밖에 없다.
유명한 성악가나 위대한 성악가는 어디에나 있지만.
월드컵 주제가를 부를 정도로 유명하고, 전 국민이 이름을 아는 거장 성악가는 그녀밖에 없으니까.
[거인이 퇴장했으니 이제 한국 성악계는 난장판이 될 거다. 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자리를 거머쥔 채 탐욕으로 눈이 벌게진 삼류들의 세상이 되는 거지.]기사들을 계속 훑어본 나는, 정윤성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성악가 박수인 인터뷰 ‘신혜경 선생님 존경하지만, 욕심이 너무 많아’]윤성은 제목을 보자마자 킥킥거렸다.
[내가 말했잖아. 거인이 퇴장한 자리는 이런 질 떨어지는 삼류들이 차지하게 된다고.]클릭하고 싶지도 않은 기사였지만.
나는, 어느새 기사 본문을 읽고 있었다.
정말 심란한 기사였다.
음악에 대한 얘기는 한 줄도 없고.
비대한 자의식 과잉만 넘쳐나고 있었으니까.
[인터뷰가 음악계 전반의 문제로 확대되자,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열변을 토했다.“내가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신혜경 선생님 정말 위대한 음악가라 그거야. 그런데, 그런 분들이 후배들 앞길 가로막으면 어쩌자는 거냐고. 어? 후배들을 위해서, 몸소 앞장서서, 협회장 같은 자리도 물러나고, 그래야 할 거 아니냐고.”] [말은 바로 해야지. 너 같은 적폐가 협회장 앉으면 죽어도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앉은 건데. 제자들 좋은 옷 입고 오면 옷 태그 보자마자 예쁘니까 사 오라고 상납시키고, 레슨비는 남들보다 세 배, 네 배 더 처먹은 새끼가 이딴 말을 주절거리면 안 되지.]
나는 기사를 더 보고 싶지 않아서 탭을 꺼 버렸지만, 혀에 독을 바른 것 같은 윤성의 독설은 이미 내 머릿속에 눌어붙은 지 오래였다.
“그런데 정 마에. 그 말 정말이에요?”
[내가 설마 귀신까지 되고도 너한테 거짓말하겠니? 박수인 저거 이 바닥에서는 모르는 놈이 없어. 예전에 김석희 대기자가 저 인간 작태 고발하려고 기사 썼다가 고발까지 당한 적이 있었어.]“어떻게 됐어요?”
[어떻게 되긴? 고소한다, 고발한다, 형사처벌 당하게 해 주겠다, 말만 요란했지 정작 김 대기자님은 멀쩡했어. 다 팩트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기사 하나로 박수인을 매장시키는 건 불가능했지. 이 바닥에 저 녀석 패거리가 너무 많았으니까.]“이 바닥에서 흔한 결말이네요.”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음악은 높고 찬란하지만.
그 음악을 만드는 인간들은.
참 더럽고 비천하다는 생각이.
[그런데, 기사라는 것들 참 웃기지 않냐?]“뭐가 웃겨요, 대체?”
[당연히 웃기지. 하나같이 이를 악물고 네 이름 언급 안 하려고 발악하는 거.]나는 껐던 기사 탭을 다시 펼쳤다.
대부분의 기사는 신혜경 선생님의 마지막 리사이틀에 대해서는 만장일치의 찬사를 보내고 있었지만.
정작 나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거나, 일부러 이름만 언급하고 넘어가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티를 냈다.
[자의식 과잉에 절여진 건 음악가들만이 아니지. 이런 기레기들도 매한가지야.]“최고의 피날레를 장식했으니, 그거면 됐어요. 그리고…….”
대부분의 기사들은 나를 의도적으로 무시했지만, 단 하나의 기사만은 그러지 않았다.
[두 천재의 완벽한 피날레]바로 한국문화일보의 김석희 대기자가 쓴, 마지막 리사이틀 관전 기사였다.
신혜경 선생님에 대한 찬사야 차고 넘치니까 그냥 넘어가고, 내 부분만 잠깐 살펴보면.
[……반주를 맡은 김리듬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노련함으로, 슈베르트에는 온화함과 다정다감함을, 푸치니와 벨리니의 오페라 아리아에는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을 불어넣었다. 왜 그녀가 최후의 무대를 장식할 반주자로 그를 택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그래, 이거면 됐어.
다른 게 더 필요해?
[그러고 보니 김리듬, 너는 신혜경 선생님 전성기 때 ‘밤의 여왕’ 실황으로 못 들어 봤겠네?]“저는 그때 젖병 물고 있었거든요?”
[나는 들었지, 크큭.]이 귀신 또, 또 시작이네.
잊을 만하면 나오는 이 못된 버릇.
[황혼기의 선생님 절창도 일품이지만, 전성기 때를 직접 들었어야 했는데.]“아, 네. 정. 말. 아. 쉽. 네. 요.”
어쩌면 이렇게 성격이 글러 먹었는지.
생전에 뒷얘기가 안 나온 게 신기할 정도다.
[얼굴 보아하니, 듣고 싶은 것 같은데.]“아닌데.”
[맞는데.]“됐거든요? 이제 좀 누울래요. 피곤…….”
[기억을 공유시켜 줄까?]그 말이 내 귀를 확 트이게 했다.
“네?”
[지금은 될 거 같은데. 요즘 들어 빙의도 잘 안 하고, 그냥 옆에서 지켜보는 게 전부라서 에너지가 남거든. 아주 잠깐만, 맛만 보는 게 어때?]“관심 없거든요?”
[정말 욕심 없어?]가불기에 걸려 버렸다.
그 유령의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책이나 그림, 영화를 접하는 것 같은.
그런 간접적인 경험이 아니다.
‘정말로, 내가 거기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아니, 정말로 ‘거기 있게 한다’.
“딜 하려는 거 아니죠?”
[야. 너는 내가 순수한 의도로 이런다는 생각은 못 하니?]그런 생각을 어떻게 해.
지금 날 보는 눈이 순수하지 못한데.
[뭐, 동의했다고 치고 공유를 시작해 볼까?]“잠시만, 나는 아직 동의 안 했……!”
그가 손가락의 나의 이마를 톡 건드리자.
나는 ≪마술 피리≫가 펼쳐지는 무대를, 넋 놓은 채 바라보는 음악의 포로가 되어 버렸다.
[Der Hölle Rache kocht in meinem Herzen,(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에 불타오르고)
Tod und Verzweiflung flammet um mich her!
(죽음과 절망이 내 주위를 불태운다!)]
밤의 장막이 쳐진 무대 위에.
태양처럼 빛나는 여신이 있다.
그 여신이, 밤의 무대를 낯처럼 환하게 밝힌다.
강철같이 완벽한 발성과.
선명한 악의의 드라마틱함을 겸비한.
여신의 음악은 한계를 모르는 듯, 계속 상승하다가 마침내 4옥타브 파(F)라는 미친 구간에 도달하고.
나도, 그 부분에서 그만 같이 미치고 말았다.
[Wenn nicht durch dich Sarastro wird erblassen,(네가 만약 자라스트로를 죽이지 않는다면)
Hört, Hört, Rachegötter der Mutter Schwer!
(분노의 신이여, 이 어미의 저주를 들어주소서!)]
여신이여, 분노를 노래하소서!
바다를 포도주처럼 붉게 만들고.
관객들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오직, 당신만이 절대로 남는 그 분노로.
세상을 당신의 포로로 만드소서.
“브라바아아아아앜!”
엄청난 박수 소리와 함께.
나는 그 기억에서 풀려났다.
[최고의 경험이지?]가슴이 난도질당한 듯 아프면서도.
마음은 환희로 가득하다.
[이제 푹 쉬어. 이건, 여신의 마지막 무대를 가장 멋지게 장식한 너에게 주는 내 나름의 상이니까.]엄청난 경험을 받아들인 반동인지.
졸음이 밀려온다.
나는 그대로, 꿈도 없이 잠들었다.
* * *
이제 몸은 완전히 나았지만, 휴식은 예정보다 조금 더 길어졌다.
― 어차피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냥 푹 쉬어.
“하지만 전공실기…… 오케스트라…….”
― 영원히 쉬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을게.
“아, 알았다고요!”
전수정은 내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만 쉴 것을 요구했다.
물론 일정상 절대 그럴 수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지만.
전수정과 이민아의 철저한 원격 감시로 인해.
연습실도 못 간 채 그냥 쉬어야 했다.
“물론 그럴 수는 없지!”
나는 바로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마에스트로 정윤성과의 음악사 및 화성학 문답!
[자, 트리스탄 코드에 대해 읊어 봐라.]“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시작하는 화음이자, 조성음악의 붕괴를 상징하는 화음이죠.”
[어째서 그렇지?]“트리스탄 코드는 A단조의 라♭-시-레-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화성만 보면 증6도가 포함되어 있으니 증6화음이며 다른 증6화음처럼 V로 해결하죠. 그런데, 이 화음의 용법이 너무 이상합니다.”
아니, 단순히 이상하다는 표현만으로는.
이 기괴함을 다 설명하기 힘들다.
[듣고 있어. 계속해.]“이상한 이유는, 맨 위의 G#음을 완벽하게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첫 번째는 이 음을 전타음으로 보는 해석인데, 이렇게 하면 화음 자체는 프랑스 6화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난다면 이 하나의 화음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G#을 전타음으로 본다면 다음 음인 A는 화성음이고, 화성법에 따라 A는 다시 G#으로 하행해야 합니다. 불협화음으로 쌓인 긴장감을 화성적 해결법으로 풀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지.]“맞아요. 그렇기 때문에 G#은 화성음으로 볼 수도 있어요. A를 하행진행으로 해결하지 않은 채 A#으로 올라가기만 하니까요. 불협화로 쌓인 긴장감이 해소되지 않고 계속 쌓이는 것입니다.”
조성음악의 기반을 이루는 화성법은, 반음계적 경과를 거친 화음을 마침내 해결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야구에 비유한다면 홈에서 진루한 타자가 1루, 2루, 3루를 거쳐 홈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과 같지만.]그래야 불협화음으로 쌓인 긴장감을 해결할 수 있으니까.
[트리스탄 코드는 그렇지 않아. 쌓인 반음계적 불협화음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계속 쌓이기만 해. 진루한 타자가 홈으로 돌아오지 않고 무한히 이어지는 루를 계속 밟아 나가는 거야.]해결하지 않는 반음계적 경과의 연속.
그 반음계의 누적으로 이루어진 음악은.
결국 조성음악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면 굳이 조성음악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나?’
조성이 없는 무조음악이 여기서부터 탄생한다.
[질문의 시간이다. 네가 방금 전에 설명한 G#음은, 전타음이냐 화성음이냐?]“둘 다 맞고 둘 다 틀립니다.”
내 질문에 윤성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왜지?]“전통적인 화성법 해결책으로는 G#을 전타음으로 두고 싶겠지요. 하지만 그 해결책을 택하는 순간 이어지는 반음계적 상행을 절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왜 이런 기괴한 화음을 부정하지 못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까?]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절묘하니까요.”
혈투 끝에 간신히 구출된, 죽어가는 트리스탄.
그의 치료를 맡은 이졸데는.
자신이 치료하는 사내가, 자신의 약혼자를 참살한 사내와 같은 인물임을 알게 된다.
증오와 번민 사이에서 끝없이 고뇌하던 이졸데는.
마침내 그를 죽이기 위해 단검을 치켜들지만.
[그 순간 트리스탄이 눈을 뜨고, 눈동자에 실린 감정을 본 이졸데는 단검을 떨어뜨리고 말지.]사경을 헤매는, 불안정한 동공 속에 맺힌.
미친 듯이 광란하는 강렬한 감정.
트리스탄의 그 감정을 본 이졸데는.
그 감정의 포로가 되어, 단검을 떨어뜨린다.
[그 마주침의 순간, 망막을 통한 감정의 연결을 표현하는 데 이 기괴한 화음만큼 적절한 도구도 없지. 그것이 바로, 무수한 사람들이 이 화음을 부정할 수도 무시할 수도 없었던 이유다.]“자신의 약혼자를 참살한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감정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도구라는 거죠?”
[정답이다, 김리듬.]윤성은 미소로 화성학 시간의 종료를 알렸다.
[그러면,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딩―동.
갑작스러운 누군가의 방문이.
윤성의 말을 잘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