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천슈메이의 연주 (3)
“자, 잠시만요.”
나는 바로 그녀에게 양해를 구한 후.
연습실을 나가 이명진 원장에게 따져 물었다.
“워, 원장님.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내가 방금 전에 약속해 달라고 하지 않았나, 김리듬 군.”
그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청강생을 보고도 놀라지 않고, 반드시 연주를 마치고 돌아가겠다고.”
제길. 가불기다.
나는 이미 이명진 원장의 주선으로 성사된 MBG와의 매니지먼트 계약으로 묶여 있고.
게다가 여기에 구두로 약속까지 한 상황이다.
“그런데, 도대체 천슈메이가 왜……?”
“그녀가 자네를 꼭 만나고 싶다고 하더군.”
“제가 여기서 거절한다면요?”
“그러면, 계약 파기지. 위약금도 물어야 하고.”
그는 능글맞은 눈웃음을 치면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솔직히 궁금하지 않나?”
“전혀요.”
“아닐 텐데.”
이명진 원장의 시선이 연습실 쪽을 향했다.
“나도 방금 전에는 무례하게 우리 학원에 들어온 저 처자를 내보내고 싶었네. 하지만 말이야, 그녀의 연주를 듣고 난 후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지.”
[아, 이명진 원장. 이건 좀 야비하잖아.]지금 윤성의 말을 전해 줄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
“선택하게. 그녀의 연주를 듣고 쇼팽을 연주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을 것인지, 아니면 위약금을 무는 것을 각오하고 돌아갈 것인지.”
나는 5분 후 다시 연습실로 돌아왔고.
기다리고 있던 천슈메이와 정식으로 인사했다.
“[볼일을 꽤 오래 보고 왔네요?]”
“[그럴 만한 일이 있어서요.]”
“[어쨌거나, 드디어 보게 되네요. 김리듬.]”
더 이상 시드니 콩쿠르 때처럼 빛나는 모습은 아니지만, 그녀의 눈빛만큼은 형형했다.
“[정말 보고 싶었는데.]”
“[저를 왜 보고 싶어 하신 거죠?]”
“[이유는 간단해요. 당신의 연주로 은혜를 입어서, 작게나마 보답하고 싶었거든요. 내 연주로 말이죠.]”
그녀는 나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피아노에 앉았다.
“[내 연주를 들어 주겠어요? 이명진 원장님께서는 정말 좋다고 하셨는데.]”
건반 위에 올려진 그녀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고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쇼팽의 왈츠 7번, Op.64-2.’
듣기 괴로울 정도로 망가진 소리…….
가, 아니었다.
비록 비인간적일 정도로.
사람들을 전율케 하던 테크닉은.
완전히 사라진 지 오래였고.
미스 터치는 심각할 정도였지만.
‘심연의 끝까지 손가락을 뻗는 연주.’
그 기괴한 끈적임이.
나를 빨아들이고, 옭아맨다.
무지막지한 질량으로.
주위의 중력을 왜곡시킨다.
정말로, 저게 망가진 피아니스트의 연주란 말인가?
‘이해할 수 없어.’
내가 지금까지 아는 천슈메이의 ‘연주’는.
잔혹할 정도로 정교하고.
미스 터치를 절대 허용하지 않는.
가혹한 완벽주의의 산물이었는데.
‘이 미친 연주는 대체 뭐야.’
극단적으로, 한계까지 음악을 몰아붙이는 연주.
지금까지 기계처럼 연주하던 그녀가 맞나 싶을 정도로, 기괴한 연주다.
‘대체, 어떤 과거를 짊어지고 있길래?’
이런 심연을 끄집어낼 수 있는 거지?
마침내 연주를 마친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내게 질문했다.
“[어때요?]”
수많은 질문들이 떠올랐지만.
내 입에서 나온 질문은 하나였다.
“[대체 왜 이런 연주를 하는 거죠?]”
“[나는 옷걸이가 아니니까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지만.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그녀가 내놓은 난해한 대답에는.
거짓도, 조롱도, 수수께끼도 없다는 것을.
나는 그녀를 내보내려고 했지만.
이어지는 말이 내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쇼팽 콩쿠르에 도전할 생각이죠?]”
긴 침묵 끝에.
내 입이, 천천히, 어렵게 열렸다.
“[그렇다면요?]”
“[내가 도와줄 수 있는데요.]”
“[아니. 거절하겠어요.]”
나는 딱 잘라 말했다.
“[정말로 나를 돕고 싶다면, 일단 작년에 있었던 일에 대해 내 친구에게 사과하는 게 우선 아닐까요?]”
그녀는 몇 초의 침묵 끝에 대답했다.
“[좋아요. 사과할게요.]”
이렇게 기분 나쁘게 들리는 ‘사과하겠다’는 말은 태어나서 처음 듣는다.
“[이민아를 직접 만나게 해 줘요. 사과할 테니까.]”
차라리 ‘나는 사과 같은 거 안 해.’라고 하는 쪽이 더 낫게 들릴 정도로.
“[아니요. 됐습니다.]”
“[왜요. 사과한다니까?]”
“[당신…… 당신을 만나면……!]”
너무 흥분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를 않는다.
“[민아는 지금 민감한 상황이니까요. 당신을 만나면, 민아가 제대로 연습을 할 수 없다고요.]”
거북한 침묵이 몇 초 흐른 후.
“[아, 그것도 그렇겠네.]”
그녀는, 맥빠질 정도로 쉽게 내 말을 인정해 버렸다.
“[그러면, 대신 전해 주겠어요? 작년의 일은 정말로 미안했다고.]”
[와, 저거 진짜 개념 없네.]옆에서 진짜 빡친 듯한 윤성의 말이 터져 나왔다.
[야. 저딴 거 도움 필요 없으니까 당장 꺼지라고 해.]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나는 이성으로 분노를 억누르고 그녀를 타일렀다.
“[천슈메이 씨. 연주 잘 들었습니다. 이제 그만 돌아가 주세요.]”
내 말을 듣고 가만히 서 있던 그녀는.
무려 5초의 침묵 후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나 미움받는 건가요?]”
“후우…….”
진짜 최악의 인간형이다.
자기중심적이고,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어디서나 제멋대로 구는 인간.
* * *
의외로, 그녀는 더 이상 나를 방해하지 않고 순순히 내 말에 따랐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장님.]”
“[초대한 기억은 전혀 없지만, 여기까지 와서 놀라운 연주를 들려준 점만큼은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를 보내고, 학원을 빠져나온 후에도.
다른 것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단 하나, 그녀의 기괴한 쇼팽 왈츠 7번만은.
머릿속에서 나가지를 않는다.
너무 기괴해서 때로 우스꽝스럽지만.
동시에, 날카롭게 뇌리에 깊숙이 박히는.
그런 연주.
‘망가졌어도 콩쿠르 우승자는 우승자라 이건가. 무너진 테크닉 대신 저런 괴연을 들고 나올 줄이야.’
윤성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리듬. 만일, 천슈메이가 저런 해석에 예전 기량을 완전히 회복한다면…….]“알아요, 정 마에.”
정말로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이루어진다면, 쇼팽 콩쿠르의 왕좌는 천슈메이의 것이 될 수도 있다.
* * *
귀국해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온 천슈메이는,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에 놀랐다.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갑자기 여권만 가지고 출국하다니…….”
걱정?
세상에, 걱정이라니.
그가 소름 끼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미 잘 아는 천슈메이지만, 이렇게 소름 끼치는 말은 처음 듣는다.
자신이 눈앞에서 죽어 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이 냉혈한이 걱정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다니.
“정말 놀랍네요, 조슈아. 당신에게 ‘걱정’이라는 감정이 아직도 남아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요.”
“당연히 걱정되지요.”
조슈아가 그녀에게 한 발자국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당신은 내가 본 최고의 재능을 가졌으니까.”
천슈메이는 얼굴을 일그러뜨린 거짓 미소를 지은 후, 그를 밀치고 아파트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대체 한국엔 왜 다녀온 겁니까.”
“이유가 중요한가요, 조슈아 씨? 제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가도 좋다고 한 건 조슈아 당신인데요.”
얼마든지 귀찮게 느낄 수 있지만.
그는 귀찮음보다는 호기심을 느꼈다.
며칠 전까지 죽어 있던 그녀의 눈동자에.
갑작스럽게 생기가 돌아왔으니까.
“저, 내년 쇼팽 콩쿠르에 참가하겠어요.”
잠시 동안의 침묵 후.
“일단 DVD 오디션 신청부터 해야겠군요.”
사실상의 허락이 떨어졌다.
“제가 할 말은 다 했어요. 그러니 이제 꺼지세요.”
그녀는 그 말만을 툭 던진 후.
바로 냉장고로 가 술병을 전부 꺼냈다.
아무렇게나 방치했던 냉장고에서 악취가 진동했지만, 그녀는 미간을 잠시 찌푸릴 뿐 병을 계속 꺼냈다.
그녀는 그 병들의 뚜껑을 오프너로 전부 따 버린 후, 내용물을 전부 싱크대에 쏟았다.
천슈메이가 냉장고에 쌓인 술을 전부 버리는 동안, 조슈아는 문간에 기댄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생각만큼 쉽지는 않을 겁니다. 술을 끊는다는 게.”
그녀는 대꾸하지 않았다.
“메이. 차라리 의사의 도움을 받는 게…….”
“제가 분명히 꺼지라고 하지 않았나요, 조슈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천슈메이를 계속 응시하면서.
흥미롭다는 듯 그녀의 눈동자를 관찰하려 했다.
그녀는, 타인을 상품처럼 바라보는 그의 관찰이 지독히도 싫었다.
“내 눈 응시하지 마요. 내 눈에서 뭔가를 보려고 하지 말라고요!”
그러나 상관없었다.
“천슈메이 씨.”
“…….”
“안타깝지만, 이제 당신의 인생에서 저를 들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할 겁니다. 지금 당신의 발바닥에 박힌 그 티눈처럼 말이지요.”
천슈메이는 진심으로 소름이 끼쳤다.
이 사내가 자신의 냉정한 논리와 이성, 판단력으로 그것을 알아차렸다는 사실이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조슈아 창이라는 사내가, 아주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자신을 이토록 잘 알 수 있으면서도.
그동안 냉혹할 정도로 자신을 외면했다가.
큰 흠집이 생겼지만 아직 충분한 가치가 있는 상품을 아쉽다는 듯 다시 살피는 듯한 그 시선이.
진심으로 무서웠다.
그러나.
“그래요? 그러면, 이제 진심으로 꺼져 주세요. 제발.”
지금의 그녀는.
그 공포조차 무시할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조슈아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명함을 테이블에 놓았다.
“알콜 중독 치료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면, 여기 명함이 있습니다.”
조슈아는 ‘곧 새 가정부가 올 테니, 그녀에게 고약을 발라 달라고 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는 자리를 떴고.
천슈메이는, 그가 남겨 놓고 간 명함을 갈기갈기 찢어서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 * *
보름 후, 조슈아 창은 천슈메이의 아파트에 취직시킨 가정부와 독대하며 보고를 받았다.
“연습은 잘하고 있습니까?”
“네.”
조슈아 앞에 선 가정부는, 조심스럽게 뒷말을 덧붙였다.
“지나칠 정도로요. 그게…….”
“음악이 아니면 죽을 것처럼 필사적이겠지요.”
“네, 네! 그렇습니다…….”
“조절이 필요하겠군요.”
그는 가정부와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눈은 서류철에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운동은 어느 정도로 하고 있나요?”
“하루에 한 시간은 반드시 산책을 하십니다.”
“좋습니다. 계속 그런 환경을 구축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 쓰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조슈아가 단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이거나.
협박하는 말투로 그녀를 대한 적이 없음에도.
가정부는, 그를 어려워하는 것을 넘어서.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혹시, 그녀가 술을 입에 댄 적이 있습니까?”
“아, 아니요.”
남의 눈치를 살피는 데 능숙한 사람일수록.
미묘한 표정 변화에 민감한 법이다.
조슈아에게 천슈메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는 가정부는, 그의 얼굴에 떠오른 첫 파문에 놀랐다.
“정말로 한 번도 없단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녀는 지금 음악에 중독되었다.
알콜에 대한 중독까지 잊을 정도로.
음악에 중독된 것이다.
“좋습니다. 이만 돌아가도 좋아요. 아 참. 요즘 맛있는 월병이 들어와서, 드셔 보시라고 준비했습니다. 가지고 가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연신 고개를 숙이고는.
월병 봉투를 집어 들고 방을 나갔다.
밑바닥에 두둑한 위안이 깔린 월병 정도라면, 저 가정부의 충성심을 연장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그건 그렇고, 정말 흥미로워.’
조슈아도 그녀가 한국에서 김리듬을 만났다는 사실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김리듬의 무엇이 그녀를 저렇게 바꾼 것인지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고?’
정말 흥미롭다.
동시에, 오래도록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인.
희열이 솟구친다.
‘비자나무로 만든 바둑판.’
바둑판은 비자나무로 만든 것을 최상급으로 치는데, 그중 흠집이 났다가 회복된 바둑판은 극상품이다.
베여서 조각난 후에도 상처를 회복할 정도로 생명력이 질긴 비자나무의, 소생을 위한 처절한 발버둥이.
최고의 상품으로 포장되고 가공되어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리는 것이다.
‘그래, 예술이란 어차피 가학의 극한이니까.’
만일, 저 천슈메이라는 이름의 비자나무 바둑판이 이전의 흠집을 회복하고 다시 무대에 오른다면.
그녀는 지금까지 돈과 시간만을 낭비하던 천덕꾸러기에서 자신이 창조한 최고의 상품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천슈메이를 완전히 소생시키면.’
점점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려 하며, 새로운 골칫거리가 되어 가는 그 녀석을 들어낼 수 있다.
‘그때 반서준을 폐기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