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정기연주회의 계절 (2)
“후우…….”
수업과 개인 연습 시간을 제외하면.
전부 오케스트라 리허설에 투자하고 있다.
당연히, 피곤이 누적될 수밖에.
단원들은 하나같이 피곤한 표정으로.
악기를 짊어진 채 좀비처럼 비척비척 움직였지만.
“수석들. 잠시만 가지 말고 모여 봐.”
“응? 왜?”
“콘마가 할 얘기가 있대. 잠시만 모여 봐.”
유준혁의 얘기에, 악기를 짊어지고 나가려던 수석 단원들이 한숨을 쉬며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수석 단원들이 모인 연습실에는 이미 임지호와 전수정, 서강준이 있었다.
“다들 모였어?”
“강병문은?”
“여기요.”
“아, 그러면 다 모였네.”
“좋아. 그러면…….”
임지호는 바로 수석들에게 물었다.
“오늘 리허설, 다들 어땠어?”
기다렸다는 듯, 조하란이 답했다.
“완벽한 런쓰루(Run-through)*였어.”
(*지휘자가 리허설을 중간에서 끊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하는 것.)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클라리넷 수석 심기준도 동의했다.
“아니, 보통 지휘자가 런쓰루를 하면, 교향곡 악장마다 난코스 3~4군데를 골라서 기억했다가 그 부분만 주의하면서 다시 가잖아?”
“그렇지.”
“그런데 김리듬은 말이지, 연주를 하면서도 그 부분을 말끔하게 고친다니까? 무슨 흑마술 부리듯이?”
“야. 아무리 그래도 지휘자한테 흑마술이 뭐냐?”
“흑마술 맞지, 뭐.”
“그러게. 사실 김리듬, 좀 어둠의 기운이 있잖아.”
“아무튼 말이야.”
트럼펫 수석 서강준이 단원들의 말을 끊었다.
“솔직히, 김리듬이 쇼팽 콩쿠르에 도전하는 건 국가적인 손해 아닌가?”
“단어 선택이 좀 잘못된 것 같은데.”
“아니, 아무튼! 저렇게 완벽한, 신이 내린 것 같은 런쓰루를 보여 놓고서는 ‘나, 피아노 콩쿠르 도전한다.’ 하면서 내빼는 게 온당한 태도야? 응?”
“아직 안 내뺐잖아.”
“맞아. 올해 정해진 일정은 다 소화한다면서?”
“그게 그거지!”
갑자기 혼자 급발진을 하던 서강준은, 돌연 임지호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콘마?”
모두의 시선이 지호의 입으로 향했다.
온음표에 페르마타를 걸어 버린 것처럼 길게 이어지던 지호의 침묵이, 마침내 깨졌다.
“김리듬이 지휘를 포기하는 건 분명히 손해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음악성이 미친 듯이 성장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지? 역시 그렇다니까?”
“하지만.”
지호의 언어가 단호해졌다.
“김리듬은 피아니스트다. 그리고, 피아니스트라면 자신을 최고의 무대로 올려서 빛나고 싶은 욕망 정도는 당연히 가져야 하는 것이지.”
“김리듬의 소리를 옆에서 들어 본 입장에서, 나도 임지호 의견에 100% 찬성이야.”
손지원도 지호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리고 만약에 김리듬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 아니, 파이널까지만 가도, 나는 바로 분노의 김리듬 음반 예약구매 들어갈 거라고.”
“제 정신이 아니네, 손지원.”
“야, 양희수. 너 요즘 독설이 잦다?”
“아, 미안. 미친 듯이 좋아하던 과자 하나가 단종이 되어 버려서.”
희수의 표정에는 미안함이라고는 1나노그램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 너희들이 간과하는 문제가 하나 있어.”
“그게 뭔데?”
“김리듬이 빠지면 우리는 반드시 새 지휘자를 구해야 한다는 거지. 그것도, 런쓰루를 하면서 실시간으로 연주를 완벽하게 만들어 내는 천재를 대체할 만한 누군가를 말이지.”
희수가 툭 던진 그 말이.
단원들의 표정을 바로 심각해지게 만들었다.
오랜 침묵 후, 서강준이 입을 열었다.
“그냥 쇼팽 콩쿠르 못 나가게 하면 안 되나?”
“내 말이.”
첼로 수석 김가인이 그 말을 받았다.
* * *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시간은 프레스토 아지타토로 움직인다.
“벌써 정기연주회 당일이라니.”
리허설을 다섯 번이나 했지만.
그래도, 심하게 긴장된다.
“긴장되는 거야?”
“아니. 전혀.”
아니라고 하기는 했지만.
수신기처럼 내 감정을 잘 파악하는 전수정 앞에서는 절대 감정을 숨길 수 없다.
“긴장 풀어.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몸도, 마음도 그만큼 가벼워야 하니까.”
그래.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이 대기실에 긴장을 버리고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무대 위에서 봐.”
전수정이 나간 문을 말없이 쏘아보던 나는, 마침내 옆에 놓은 지휘봉을 움켜쥐고 결연히 일어섰다.
* * *
이제는 정기연주회의 단골 관객이 되어 버린 송수현 이사장과 이명진 원장은 나란히 앉아서 오늘의 주인공들을 기다렸다.
“생상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군요.”
“원장님은 이 곡 좋아하시나요?”
“저야 좋아하죠. 생상스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요?”
“안 어울리는데.”
“피아노는 지휘자가 연주하는군요.”
피아노에 앉은 김리듬은.
호흡을 가다듬고, 손가락을 푼 후.
천천히 속으로 숫자를 세면서 예열을 했다.
‘생상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 G단조, 작품번호 22번.’
작곡도 하고, 피아노도 치고.
오르간도 연주하고, 과학도 연구하고.
심지어 오컬트까지 건드렸던.
다재다능한 천재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
그가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비극적인 1악장.
톡톡 튀는 2악장.
질주하는 타란텔라 리듬이 인상적인 3악장이 있는.
숨겨진 걸작이다.
‘시작해 볼까?’
임지호와 아이컨택을 한 후, 격한 곡선을 그리는 G단조의 아르페지오로 연주회장을 뒤흔든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정말 잘 치는군.’
기교, 음색, 음악성, 리듬 감각까지.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연주다.
그의 손이 발레리노처럼 건반을 휘젓는 동안, 지호는 단원들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주었다.
피아노는 슬퍼서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슬픈 멜로디로 관객들을 서서히 휘어잡다가.
천천히 템포를 올리며 건반을 난타했다.
‘벌써 1악장이 끝났어.’
연주가 언제 끝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몰입했다.
‘대체 김리듬이 음악에서 못하는 게 뭘까?’
김가인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고양이처럼 손을 오므리고 있던 리듬의 손가락이 다시 활발하게 움직였다.
그의 손끝에서, 장난감 병정들의 행진이 튀어나온다.
‘우와, 귀엽다.’
피아노가 먼저 행진을 이끌면.
오케스트라 악기들은 작은 목마 부대를 거느린 장난감 군악대가 되어.
자기들끼리 행진하면서 보조를 맞추다가.
현악기의 흥겨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지휘자는 신나게 건반 위를 달리다가도.
귀신 같은 타이밍에 단원들과 눈을 맞추며.
교감하고, 무언의 지시를 내렸다.
‘이제 3악장만 남았다.’
피아노의 거친 난타가 포문을 열면.
관현악은 화려한 타란텔라 검기를 날리며 덤벼드는 피아노에 지지 않으려 격렬한 포르티시모로 맞선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피아노와 관현악의 대결.’
이것이 바로 협주곡의 묘미다.
피아노가 트릴을 연주하면서.
공간을 비우고 선만을 남겨 놓으면.
목관이 비장한 화음으로 공간을 색채로 꽉 채운다.
‘칼같은 열 손가락의 군무다.’
그리고, 그 피아노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오케스트라의 군무까지.
‘그래. 전진해라.’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하행 아르페지오의 끝에는, 다시 타란텔라의 치열함이 있다.
모두가 손에 땀을 쥐며 연주를 지켜보는 동안, 곡은 순식간에 종결부로 치닫는다.
연주회장을 흔드는 환호성과 박수가 터졌다.
“우와! 진짜 지휘자 대박!”
“자, 다들 진정하고! 조용히 하고! 모여!”
쇠는 뜨거울 때 두드려야 한다.
이제는, 이 흥분을 하나도 흘리지 말고 다시 무대로 가져가 교향곡을 연주할 시간이다.
“음악의 창공을 향하여!”
“창공을 향하여!”
* * *
“연주는 어떠셨나요?”
“김리듬의 연주야 늘 나쁘지 않죠.”
“우리 학교의 보석이니까요.”
“저의 가장 좋은 친구이기도 하지요.”
송수현 이사장과 이명진 원장의 묘한 신경전은, 단원들이 다시 연주회장에 들어오면서 잦아들었다.
“멘델스존의 곡은 시작부터 난관이 있는데, 그 난관을 잘 헤쳐 나갈지 모르겠군요.”
단원들이 다시 자리를 채우고.
콘서트마스터 임지호가 음을 조율하고.
마침내, 지휘자가 이제는 포디엄에 섰다.
“플루트가 텅잉*을 잘 해야 할 텐데요.” (*관악기를 불 때 혀끝을 놀려 스타카토를 넣는 주법.)
“결과를 보시면 납득하게 될 겁니다.”
마침내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
이명진 원장의 비웃음 섞인 걱정은.
거품이 되어 멀리 날아가 버렸다.
‘따가울 정도로 밝은 햇살.’
그리고 눈이 시릴 정도로 청명한 하늘.
이 자리에 모인 모든 관객들에게.
김리듬과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는.
자신들이 보고 듣고 상상한 이탈리아를, 귀로 듣는 수채화로 그려 내기 시작했다.
‘플루트가 정말 많이 성장했군.’
조하란을 비롯한 플루트는.
그동안의 고된 훈련이 헛되지 않았다는 듯.
고난도의 텅잉을 완벽하게 해냈다.
‘정말 마법 같아.’
이명진 원장의 생각처럼.
김리듬은 음의 마법을 부리는 것 같았다.
그의 지휘봉 끝에서 나오는 음악은, 회색으로 찌든 세계에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입혔다.
음악은 부드러워졌다가.
열광했다가.
차분해졌다가.
짜릿해졌다가.
격렬해지면서.
관객들을 차례로 홀렸다.
‘예전 베네치아에서 보았던 카니발 생각이 나는군.’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1악장의 정점은.
이명진 원장에게 옛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그날, 그 불타던 날.
같이 카니발의 현장에 있었던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1악장이 끝났을 때, 관객들은 홀림에서 덜 깬 사람들처럼 여운에 젖어 있었다.
* * *
[좋아. 이 흥분을 깨지 말자고.]순례자의 엄숙한 행렬을 연상시키는 2악장.
미뉴에트와 스케르초의 하이브리드인 3악장.
나는 1타 강사가 되어 단원들이 들어올 정확한 지점을 짚어 주면서, 기민하게 몰아붙여야 했다.
‘플루트 따라오고, 클라리넷, 베이스 지속음…… 그리고 호른.’
내 지휘봉 끝이.
항상 냉정하고 침착한 네게로 향한다.
나는 전수정을 향한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3악장을 끝마쳤다.
‘이제 마지막 악장만 남았군.’
네 안의 야수를 끌어내라.
그래. 윤성의 말이 맞다.
돌변한 듯 거칠게 지휘봉을 휘두르자.
다섯 번의 격렬한 투티가 터진다.
‘긴장 풀지 말고.’
지호를 필두로 한 현악기가.
기계처럼 정확한 움직임을 보이고.
플루트가 다시 한번 고난도의 텅잉을 선보이며 마지막 악장의 막을 올린다.
피처럼 붉은 정열.
피 같은 열광으로 가득한, 살타렐로.
‘멘델스존의 우아하고 조용한 음악성까지 흔들어 놓는, 이탈리아의 열기가 빚어낸 걸작.’
조하란은 내 기대 이상으로 잘해 주고 있다.
어렵게 달성한 이 음악을 놓칠 수 없지.
나는 음악을 움켜쥐듯 왼손을 꽉 쥔 채.
곡을 더 격렬한 경지로 몰아붙였다.
‘더 미쳐야 해. 아직 부족하다고.’
열광으로, 광기로, 숨 막힐 정도의 열기로.
이 공간을 난도질해라.
“브라보오오오오오!”
연주가 끝나기 무섭게, 관객들은 기립하여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에게 경의를 표했다.
“김리듬, 그는 신인가?”
“김리듬, 그는 신이야!”
또 이런다, 또.
“다들 진정 좀 하고. 잘 알아. 내가 잘난 거.”
“우우우! 악덕 지휘자, 물러가라!”
“뭐? 너 내가 콩쿠르 포기하고 365일 24시간 내내 오케스트라 리허설만 하는 거 보고 싶어?”
“아, 아니에요. 살려 주세요오!”
조하란은 급히 빌었지만, 이미 늦었다.
“조하란을 제물로 바치자!”
“그래! 조하란 하나면 싼 거래 아냐?”
“이 배신자들!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
“네가 그런 소리 하기에는 양심이 많이 찔리지 않냐, 조하란?”
이제 말을 끊어야 할 타이밍이다.
“다들 수고했어. 오늘은 푹 쉬고, 앞으로 두 배, 세 배, 아니, 열 배 더 잘해 보자고.”
“지휘자님! 사인해 주세요!”
“너는 남아서 연습해, 심기준.”
“히잉. 살려 주세…… 컥!”
“어디서 귀여운 척이야! 징그럽게!”
어쨌거나.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의 새 정기연주회.
다시 한번, 완벽하게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