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어린 시절의 꿈에 접속하는 방법 (2)
얘기를 잠시 마친 어머니는, 얼굴이 약간 붉어진 채 얘기를 듣는 아들의 얼굴을 보면서 씩 웃었다.
부끄럽겠지.
아장아장 걸을 적의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래도, 항상 사랑스러우니까.’
그녀는 짐짓 모르는 척.
쾌활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때 얼마나 기뻤는지 아니. 그래도 영상을 제대로 찍었어야 했는데. 그건 정말 너무 아쉽구나.”
“그, 그랬나요? 하하.”
“그래서 돌잔치 때는 멜로디언을 올렸었지. 리듬이 너는 그 멜로디언을 잡았고.”
그래도, 이런 순간이 행복하다.
사실 작년만 해도.
이렇게 리듬이와 같이 앉아서.
즐거운 얘기를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는데.
“그리고, 두 살이 되기 전에는 동화책을 쌓아 놓고 피아노 위에 올라가서 연주하는 것을 즐겼지.”
“네에?”
리듬이의 표정을 보니.
마치 ‘어릴 적의 나야,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니!’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궁금해하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어린 시절 얘기를 계속했다.
* * *
리듬이가 어느새 18개월이 되었어요.
일상의 온갖 소리들이 음정 되어 울리고.
열린 창문으로 소리들이 들어왔다가 나가네요.
바람이 자아내는 풍경 우는 소리와.
봄 아침 새소리가 교차하며 화음 되어 울려요.
“소올?”
하지만 리듬이한테는 뭔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네요.
아, 뭔지 알 것 같네요.
풍경 우는 소리는 솔.
그리고 새소리는 도.
도와 솔.
이 사이에 꼭 있어야 할 미가 빠져 있어요.
“미이.”
리듬이는 지금, 이 일상의 화음에 빠진 음 하나를 끼워 넣고 싶어 하네요!
둘을 셋으로 만들어.
완벽한 화음을 이루고 싶어 해요.
6개월 동안 가지고 놀던 멜로디언이 아닌.
완전히 다른 것으로 말이죠.
“퍄노. 퍄노.”
리듬이가 거실 한편에 웅장하게 서 있는 어머니의 피아노를 향해, 웅장하게 출격하네요.
일단은 아장아장 걸어간 다음.
1단계. 피아노 의자 등반하기를 실행해야죠?
이것보다 낮은 탁자 등반은 많이 성공했지만.
이번 난제는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그래도 한다, 김리듬!
이미 뒤집기와 볼륨 올리기의 경험으로 깨달은 18개월 리듬이의 새로운 신조죠.
“우웃, 차.”
책 몇 권 깔고 디딤대 삼아 올라가면.
피아노 의자 정도야 식은 죽 먹기죠.
착. 착. 착. 착.
바닥에 펼쳐진 동화책들을 차곡차곡 쌓고는.
그것들을 디디고 올라서요!
“읏―챠아.”
그렇지. 좋았어!
1단계, 피아노 의자 등반 성공!
그러면 다음 2단계는.
피아노 덮개 걷어 내기.
이 단계만 넘으면, 도전 과제 성공이에요!
“도오. 미이. 소올.”
리듬이가, 음을 채워 넣고 싶어 해요!
새들은 언젠가 떠나고.
풍경은 언젠가 멎겠죠.
그 소리들이 사라지기 전에.
빈 음을 채우고 싶을 거예요.
완벽한 화음이 만들어지는 소리를 듣고 싶으니까.
“우으응……!”
젖 먹던, 아니, 젖 먹는 힘을 다해 피아노 뚜껑을 밀어젖힌 리듬이!
“우으으……!”
너무 길어서 힘겨워하네요!
하지만, 중단은 없다!
팔다리 제군, 너희들의 힘 120%를 발휘해 줘!
스르르륵.
좋아요!
우리 리듬이가 또 해냈습니다, 여러분!
2단계도 척척 해낸 리듬이는.
피아노 의자에 주저앉아서는.
자기 앞에 펼쳐진, 88개의 건반으로 이루어진 세계에 꺄르륵 웃어요.
흰 건반 52개.
그리고 검은 건반 36개.
각기 다른 위치에서.
각기 다른 소리로.
우리는 나뉘어 있되 하나라고 속삭이는 세계들.
리듬이가, 그 건반 중 하나에 손을 뻗어 지그시 누르네요.
미―
높지도, 낮지도 않게.
가녀리지도, 우악스럽지도 않게.
조심스럽지도, 뜬금없지도 않게.
그저 자연스럽게.
새소리와 풍경 소리 사이에 원래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음을 두드려요.
미― 미― 미―
이번에는, 화음을 온전히 쳐 보네요.
도미솔― 도미솔― 도미솔―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알베르티 베이스도 쳐 보는 리듬이에요.
도솔미솔― 도솔미솔― 도솔미솔―
그리고.
“어머!”
‘응?’
어머니가 또 리듬이의 일탈 행동을 보셨어요.
감동. 기쁨. 놀람. 뭉클함. 대견함.
그 모든 감정들로 채색된 얼굴을 하시고.
“어쩌면 좋아, 우리 리듬이.”
어머니는 피아노 의자를 등반하기 위해 리듬이가 쌓은 동화책을 보고 피식 웃고는, 옆에 앉아요.
“우리 리듬이. 피아노 치니까 재밌어요?”
“웅!”
“그래도 높은 데 함부로 오르면 안 돼요. 알았어요?”
“웅!”
“우리 리듬이. 앞으로는 음악 하고 싶을 때마다 엄마하고 같이 해야 해요. 알았지요?”
“우웅.”
“그러면 약속. 엄마하고 약속.”
리듬이는 어머니의 손가락에 깍지를 끼고는.
어머니에게 얼굴을 파묻어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리듬이에게 몇 번을 올라도 위험하지 않은 유아용 피아노를 사 주셨어요.
피아노 음을 치고 싶다는 리듬이의 노력이, 유아용 피아노라는 선물이 되었어요.
* * *
또 한차례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리듬이의 얼굴은 한층 더 붉어져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어른스럽던지.”
사실 어머니는 잘 몰랐지만.
그 순간, 리듬이는 옆에 있는 투명한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게 곁눈질을 하고는.
다시 표정을 고치고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다, 다음 사진으로 넘어가죠.”
“그럴까? 볼 사진이 너무 많아서 말이지.”
사진을 볼 때마다.
사진첩을 넘길 때마다.
추억들이 쉬지도 않고 재생된다.
마침내.
그녀와 리듬이의 시선이, 한 장의 사진에 멎었다.
“오. 이 사진이 아직 여기 있었구나.”
키는 껑충하지만, 얼굴이 많이 앳된 청년이 리듬이를 안은 채 웃고 있는 사진이 여기 있었다.
“리듬아, 이 선생님 기억나니?”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낯익은 얼굴이.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네 첫 음악 선생님이잖니.”
그 순간, 어머니는 보았다.
얼어붙은 리듬이의 얼굴을.
마치, 그 익숙한 얼굴이.
유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충격에 질린 모습으로 사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리듬아……?”
“네?”
“너, 괜찮니?”
“아, 괜찮아요. 하하.”
리듬이의 환하게 웃는 모습에.
어머니는 갑자기 생겨난 근심을 가라앉혔다.
그래. 잘못 본 거겠지.
“아 참,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그러면 사진 구경은 여기까지 하고 저녁 차려야겠다.”
“아, 저도 도울게요.”
“학업에 바쁜 학생은 방에 얌전히 들어가세요. 알았지?”
“……네.”
* * *
조용히 방에 들어온 나, 김리듬은.
바로 윤성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죠……?”
[잠시만. 아닐 수도 있잖아.]하지만.
[너, 어릴 때 혹시 분당에……?]“구미동이요.”
[이런 젠장.]“정 마에. 정말 열아홉 살 때 과외 한 거 맞죠?”
[그래. 내가 그것까지 잊어버릴 정도는 아니야.]질문을 던질수록, 더 분명해진다.
여태 기억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그의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그는.
[제기랄. 어떻게 그 기억이 날아갈 수가 있지?]그는, 사고로 인해 죽은 망령.
죽음이라는, 영혼을 부수기 직전까지 갔던 거대한 사건이 그의 기억 일부를 손상시킨 것이다.
[일단, 서로 기억을 좀 더 맞춰 보자.]더 많은 과거의 기억들이, 내가 그와 공유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들이 내게로 빨려 들어온다.
내가 그와 처음 만났다고 생각했던, 1학년 그날 이전의 기억들이 내게로 쏟아진다.
* * *
리듬이가 다섯 살이 될 무렵.
리듬이의 부모님은,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하는 리듬이를 달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일부가 되었다.
채색한 노을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저녁.
삑삑삑삑. 삐리릭.
리듬이는 아버지가 퇴근하는 소리를 듣자마자 쪼르르 달려갔다.
“오셔쪄여!”
“어이구. 그래, 우리 이쁜 강아지. 아빠 볼에 뽀뽀.”
리듬이는 늘 그렇듯.
배꼽 인사를 드리고.
아버지 볼에 뽀뽀하기를 마친 후.
“아―빠.”
“웅웅. 구래. 우리 이쁜 리듬이.”
“퍄노 하구 시퍼여. 퍄노. 퍄노.”
기다렸다는 듯 피아노 학원 사진을 폰에 띄웠다.
사진을 보는 순간, 아버지 표정이 난감해지셨다.
“흠흠. 우리 리듬이, 피아노 하고 싶어요?”
“응응!”
“그런데, 이 사진은 어디서 찾았어?”
“리드미가 검색해쪄여!”
놀랍게도, 우리 리듬이는.
국내 최정상급 음대 진학률 60%의 명진학원을.
스스로 검색하는 재능을, 일찍부터 보였다.
“리드미, 아빠하구 가치 퍄노 하구 시퍼!”
리듬이는 감성에 호소했다.
장화 신은 고양이의 눈빛을 최대한 벤치마킹해서!
고양이 옷까지 입고 있으니, 완벽한 작전이었다.
48개월 동안 익힌 리듬이의 삶의 지혜라고나 할까?
“아빠. 하구 시퍼여…….”
아버지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시지만.
리듬이는 정말 절박해 보였다.
“아들, 그러면 아빠랑 부비부비……”
뭐, 그쯤이야.
아버지는 까끌까끌한 수염이 난 뺨에 보들보들한 리듬이의 뺨을 몇 번 부비는 것을 가장 좋아하신다.
이 조건을 내걸 정도면, 99%는 넘어온 것이다.
그 순간.
“하지 마요. 리듬이 얼굴에 상처 나면 어쩌려고!”
“하하. 미안, 여보.”
“당신 진짜 너무 눈치 없어. 애들 피부가 얼마나 연약하고 쉽게 까지는 줄 알아?”
“미안하다니깐.”
어머니, 안은희 여사가 개입하셨다.
“그리고, 피아노? 당신 피아노 하려고요?”
“아니. 그게, 우리 리듬이가 명진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네…….”
리듬이는 재빨리 어머니를 올려다보았다.
평소 같지 않게 굳어진 어머니의 표정은.
심상치 않은 기류를 예고했다.
“당신, 지금 뭐라는 거야?”
‘이런, 틀렸나?’
“리듬이가 결정한 일이면 빨리 진행해야지!”
‘네?’
“당신은 어쩜 그렇게 리듬이를 몰라? 리듬이가 직접 검색까지 해 가면서 찾았잖아. 그러면 일단 데리고 가서 물어라도 봐야 하는 거 아냐?”
리듬이는 재빨리 어머니 품에 안겼다.
마치, 지금 이 상황에서는.
어머니 코인으로 갈아타야 하는 게 정답이라는 듯.
“엄마아.”
“웅웅. 구래. 우리 아들.”
그 순간.
리듬이는 어머니 품에 안기느라.
두 분 사이에 오고 간 눈빛의 의미를 보지 못했다.
‘명진학원은 절대 안 돼. 거기 완전 스파르타식인 거 알지? 리듬이가 너무 힘들 거라고.’
‘나도 잘 알지. 왜 모르겠어.’
‘적당한 피아노 선생 찾아서, 애 힘들지 않게 가르치는 걸로 해. 알았지?’
‘그래. 알았어. 걱정하지 마.’
그렇게 그날 저녁.
리듬이는 명진학원 영재클래스 오디션 신청을 허락받았다.
일단은 말이다.
* * *
나머지 기억은, 윤성의 도움으로 복원할 수 있었다.
‘젠장. 돈만 아니었어도.’
시드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우승한 천재.
희성예고가 배출한 최고의 피아니스트.
하지만 지나치게 뛰어난 천재성이.
오히려 독이 되고 있는 녀석.
‘내 기준에 맞는 녀석이 없어.’
특히, 지금 가르치는 녀석은 최악이다.
딱. 딱. 딱. 딱.
일정한 박자로 치던 스틱이 갑자기 딱 멈추었다.
“박자 틀렸잖아. 다시 해.”
윤성은 교습 대상인 아이를 냉엄하게 내려다보았다.
아이의 상태는 누가 봐도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수시로 흔들리는 눈빛과 미세하게 떨리는 손가락.
피아노를 치기는커녕, 건반을 누르지도 못한다.
“내가 가르쳐 준 자세가 그 자세야?”
아이는 윤성의 말에 바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시작해.”
틀린 음이 마구 쏟아져나온다.
윤성은 한 소절도 듣지 않고 연주를 멈추게 했다.
“멈춰. 그만하라고.”
아이의 흔들리는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 한 방울이 똑 떨어질 것 같았다.
씨근거리는 입술은 당장 선생을 향해 폭언을 터뜨릴 것 같았다.
윤성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를 달래려는 것이 아니었다.
윤성의 표정에서는 일말의 동정심도 없었다.
“솔직하게 말해 줄까? 너 그따위로 연주하면 절대 못 커. 앞으로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