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나폴리탄 6화음 (3)
연주를 마치고, 민아를 바래다준 후.
나는 윤성과 둘만 남아 대화할 시간을 가졌다.
“그러면, 정 마에 선생님.”
[칭호는 반려하고 싶지만, 그냥 얘기해라.]“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좀 종합해 보죠.”
워낙 충격적인 일이 있었던 터라.
지금 나에게는 정리가 필요하다.
“일단, 쇼팽 콩쿠르 DVD 예선용 연주를 만들기 위해 연습을 해서 마에스트로 최시현에게 연습 결과물을 들고 갔고, 거기서 처절한 혹평을 받았어요.”
[그래. 맞아.]“그래서 이를 악물고 연습을 하다가, 반서준이 쳐 놓은 덫에 걸려서 나폴리탄 괴담을 겪었죠.”
[그랬지.]“다행히 저는 괴담을 성공적으로 극복했고, 그 과정에서 공포라는 감정에 직결되어, 그 감정을 음악에 연결시키는 법을 배우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네 말의 결론은.]윤성은 적절하게 내 말을 끊고는, 자신이 마무리를 지으려 했다.
[반서준이 너를 무너뜨리려고 만든 괴담과 귀신이, 오히려 너를 성장시켰다는 얘기지.]“맞아요.”
[너를 죽이지 못하는 시련은, 너를 연단(鍊鍛)하는 법이야.]칭찬이었다.
[축하한다, 김리듬. 또 한 단계를 더 발전했구나.]“지금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그 괴담의 밤을 겪은 이후부터, 내 머릿속은 내가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선생님. 연주는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 과정이지만, 감정 없는 기계가 되어서도 안 되잖아요?”
[그렇지.]“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겪은 감정들은 전부 연주에 녹이려 애썼어요. 기쁨, 슬픔, 즐거움, 분노, 안타까움, 사랑, 환희, 열정, 좌절, 행복 같은 감정들을요.”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그 모든 감정들은.
다채로운 꽃이 꽂힌 화병처럼.
다채로운 캔버스처럼.
내가 연주하는 음악의 색이 되어.
음악 속에서 색 놀이를 한다.
“그런데 유독 이 공포라는 감정만큼은, 극복하고 가벼워지는 게 안 되고 있어요.”
가벼워져야 하는데.
공포에 짓눌리지 않고.
공포를 지배해야 하는데.
지금 내 연습은, 그 단계에서 막혀 있는 것이다.
* * *
나폴리탄 괴담에 시달린 지 일주일째 되는 날.
조하란이 내게 추가타를 꽂았다.
― 키키보보드드가가이이상상해해요요
“히이익!”
[진정해, 김리듬! 조하란이야!]그게 조하란이라는 게 더 무섭다고요!
나는 급히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물었다.
― 무슨 일이야 대체
― 몰몰라라갑갑자자기기맛맛이이감감
[뭐야, 이거. 설마 제2의 나폴리탄 괴담?]귀신 주제에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진짜 불길하단 말이야.
나는 침착하게 해결 방법을 찾았다.
― 제어판 들어가서 고정키 해제 눌러봐
― 잠잠시시만만
몇 분의 시간이 지났을까.
― 오! 됐다! 문제 해결!
― 다행이네
― 김리듬 그는 신인가! 김리듬 그는 신인가!
― 가서 연습이나 하세요
― 아, 맞다! 연습 시간!
쯧쯧. 저렇게 채신머리가 없어서야.
이거, 플루트 수석으로서 뭘 믿고 맡기겠어.
그렇게 조하란을 보내고 난 후.
‘아.’
내게 실마리가 잡혔다.
공포의 희화화를.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풀어 내는 방법을.
‘스케르초는 원래 가볍고, 풍자적이며, 산뜻한 악곡이었어.’
그러나, 쇼팽의 스케르초는 무겁고 음침하다.
무거움에서 가벼움을 어떻게 창조하는가.
음악이 제공하는 중력을 이겨 내고.
비상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방금 전에 겪었던 일처럼.’
나는 충혈된 눈으로 연습을 반복했다.
[수면제라도 먹는 게 어떠니?]요 며칠 동안, 윤성은 지속적으로 나를 걱정했다.
그 무참한 일을 겪고도, 신경 쇠약에 준할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을 몰아붙이면서.
연주로 혹사를 반복하는 내 모습이.
보기 안쓰러웠던 것이다.
“아니요.”
약에 의존하고 싶지 않다.
“수면제를 먹으면 몽롱한 상태로 하루를 보내야 하잖아요. 그러면 연주도, 다른 일도 못 해요.”
[그래도, 몸 상하면 안 되잖아.]“이제 거의 다 왔어요. 거의 다…….”
지금도, 머리로는 확실히 이해하고 있다.
머리로만 이해가 가는 음악을 어떻게 심장으로 끌어 내려야 하는가.
그 문제가, 다시 나 자신을 가로막는다.
‘빗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쏟아지는 음악에 초고속 카메라를 들이민다.
사선으로 내리던 빗줄기가 방울로 멈추면.
수억 방울의 얼굴을 화면에 담아 낸다.
‘멈추었던 시간만큼 더 연습해야 해.’
낮밤의 차이마저 잊고, 며칠을 다시 연습한 끝에.
“……끝났다.”
마침내, 나의 쇼팽 스케르초 연습이 끝났다.
* * *
햇빛이 마천루를 녹여 버릴 듯 덥고.
공기가 끈적하고 무거운 초여름의 어느 날.
대관령 평창 콘서트를 준비하던 최시현은.
“어서 와, 김리듬.”
“오랜만입니다, 마에스트로 최시현.”
김리듬의 재방문을 받았다.
얼굴은 조금 수척해져 있고.
지독한 연습의 흔적인 충혈된 눈을 하고 있었지만.
안광만큼은, 아주 잘 벼려진 칼날 같았다.
“밖에 많이 덥지? 시원한 칵테일이라도 한잔할래?”
“술은 됐습니다. 저 미성년자예요.”
“자, 그러면 그 술을 대신할 연주는 가지고 오셨는가?”
그는 떨리는 손으로 USB를 내밀었고.
시현은 USB를 낚아서는.
바로 오디오 컴포넌트에 연결했다.
“…….”
오늘은 설희도 동석했다.
원래 그녀는, 콘서트를 앞두고 신경이 예민한 시현을 방해하지 않도록 김리듬의 방문을 반려하려 했지만.
‘굳이 왜 막아?’
‘연주회 앞두고는 신경 예민하잖아.’
‘괜찮아. 김리듬이잖아.’
오히려, 시현 쪽에서 방문을 반겼다.
“…….”
마침내, 연주가 흐르기 시작한다.
김리듬이 창조한, 미친 듯한 DVD 예선 연주를 듣는 최시현은 팔짱을 낀 채 한참을 고민했다.
‘마치 깨진 거울에 비친 얼굴 같은.’
다면적이고.
다층적이며.
다각적인 연주.
‘약간씩 어긋나고 비틀린 선율들이.’
귀를 현혹하고.
감정을 현란하며.
오감을 조현한다.
‘바로 내가 원하던, 스케르초의 이상향이다.’
양가감정이 최시현을 괴롭혔다.
이 연주를 끝까지 듣고 싶은 마음과.
끝까지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이.
‘연주가 어떻게 끝날지 궁금해 미칠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이 녀석의 연주가 자신을 넘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게 한다.
‘하, 정말 사람 미치게 만드네.’
협연을 하면서 간신히 가라앉힌 욕망이.
다시 끓어올라 임계점 직전까지 치닫는다.
그는 양가감정 속에서 감상을 마친 후.
고개를 들어 김리듬의 얼굴을 보았다.
“김리듬.”
“넵.”
“DVD 예선은 기교를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거 알지?”
“알고 있습니다. 마에스트로.”
“네 기교는 분명히 뛰어나. 이 곡을 이 템포로, 처지는 부분 없이 칠 수 있는 건 리칭윈이나 천슈메이 정도가 아니면 불가능할 거다. 하지만.”
“이런 튀는 연주를 DVD 예선부터 내놓는다는 것은, 심사위원들에게 좋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거죠.”
“그렇지.”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리듬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런데, 나는 마음에 든다.”
“네?”
“모두를 만족시키는 해석 같은 건 없어. 음악이라는 예술에, 왕도 따위는 없다고.”
유압기에 짓눌려 터질 듯한 압박감을 이겨 낸.
기묘한 가벼움이 있는 연주.
“이전의 그 지겨울 정도로 틀에 박힌 연주와는 달리, 이번에 너는 여기에 너를 오롯이 담았어.”
그러니.
“그것만으로도, 너는 예선을 통과할 자격이 있어.”
그 순간.
녀석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났다.
너무 알기 쉽고 투명하다.
그래. 정윤성 그 녀석처럼.
“무엇보다, 나는 무거움을 벗어던진 이 가벼움이 마음에 들어.”
그는 직관적으로 알아챈 것이다.
김리듬이 겪어야 했던 무거움과.
그가 결국 그 무거움을 벗어던지고.
은산 철벽을 넘어 날아오르는.
신의 가벼움을 터득했음을.
* * *
“그러면, 이걸 제출해도 된다는 거죠?”
“나야 모르지. 그 꼰대들이 너의 이 튀는 연주를 듣고 허락을 해 줄지. 그리고, 김리듬.”
“네, 마에스트로.”
자리에서 일어선 시현은, 성큼성큼 걸어와 나와의 거리를 단숨에 좁힌 후 내게 이렇게 물었다.
“도대체, 너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비밀입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 나한테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말씀드릴 수 없고요.”
내가 미쳤다고 당신한테 괴담에 시달린 얘기를 해?
차라리 정윤성하고 지옥의 연습을 돌리고 말지.
“대신 제 포부 정도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포부라? 그게 뭔데?”
“마에스트로 최시현. 아니, 최시현 선배님.”
나는 처음으로 그에게 ‘선배’ 칭호를 붙였다.
“당신을 넘는 연주를, 제가, 내년 쇼팽 콩쿠르에서 해내겠습니다.”
나의 대답에, 그의 표정이 조금 더 재미있어졌다.
“크크큭…….”
“마에스트로?”
“푸하핫! 푸하하하핫!”
진짜 대놓고 기분 나쁘게 웃네, 거참.
“아, 정말 웃기는 말이야. 내가 살면서 이렇게 웃기는 말은, 크큭, 들어 본 적이, 프힛, 없는데 말이지.”
아오, 진짜 악보로 한 대 치고 싶네.
“그건 그렇고, 정윤성 말이야.”
다시 이 주제를 꺼내 들었다.
그는 마치 정윤성이 옆에 있기라도 한 듯.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듣고 있냐, 정윤성?”
[미친놈 아냐, 이거?]“너를 똑같이 따라 하는, 아니, 너를 흡수해서 한층 더 발전하는 천재가 여기 있어.”
[당연하지. 내가 직접 가르쳤으니까.]“너는 이 세상에 없어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너의 음악은 계속 이어지고 있어.”
[그건 그렇지. 지금 네가 보는 내 수제자가, 나의 음악을 아주 잘 이어 나가고 있으니까.]이제 그의 시선은.
간신히 허공에 얽매인 유령이 아닌.
살아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 가라.”
가장 가벼운 것이 되어라.
그 누구보다도 높이 날아올라.
가장 먼 곳에서 빛날 수 있도록.
* * *
최시현의 극찬을 옆에서 듣는 내내 가만히 있던 윤성은, 나오자마자 심기가 불편한 듯 한마디 했다.
[아, 솔직히 좀 불만인데.]뭐가 불만이야, 대체.
잘하고 있잖아.
[지금 막 무르익는 중인 김리듬한테 차이콥스키, 브루크너, 말러, 라벨, 스트라빈스키. 이런 것들 연습시켜 보고 결과물을 들어야 하는데 말이지.]“아니. 쇼팽 콩쿠르 허락할 때는 언제고…….”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기분이 참 묘하다.
5년이라는 시간 중에.
이제 1년을 쓰고 4년이 남은 그가.
시간이 있다는 얘기를 한다는 것이.
[김리듬. 너 쇼팽 콩쿠르 우승하면 1년 52주 풀로 연주회 가능하지? 믿는다? 응?]“내가 무슨 산업혁명시대 노동자예요?”
차라리 압착기에 넣고 즙을 짜라, 즙을.
[아니, 제자가 잘나가는 모습을 스승으로서 최대한 많이 봐 둬야 할 거 아니야!]“그건 걱정 마시죠. 최대한 많이 할 테니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해야 해.]“도대체 얼마나 짜 먹으려는 거예요?”
[기회비용을 많이 들였으면 그만큼 들인 값을 해야지? 안 그래?]“악마 같은…….”
나폴리탄 괴담보다 더하네, 더해.
저, 저 실실 웃는 꼬라지 보소.
“그런데, 정 마에 선생님.”
[왜.]제가 만일, 단 하나의 곡만을 지휘할 수 있다면, 어떤 곡을 듣고 싶으세요?”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우와.
단 0.5초의 고민도 없는 즉답이었어.
“왜 하필이면 그 곡이죠? 라벨은 다른 명곡도 많잖아요.”
“그러니까 이유를 대라고요.”
[신화의 이야기에서 건져 올린 근사한 스토리라인. 풋풋하고 여리며 투명해서 빵 굽는 냄새처럼 달콤하고, 빵을 굽는 아침처럼 찬란한, 그런 남프랑스의 화음으로 가득한 음악이니까.]바로 나오는 거 보니 꽤 오래 준비하셨군요.
“단 한 곡을 한다면, 차라리 ≪볼레로≫를 하고 싶은데.”
[≪볼레로≫도 좋지.]작은북의 타격에 실려 움직이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700번의 리듬.
악기들이 더해지며, 끝없이 높아지는 음량.
게다가 마지막에 짜릿한 반전까지 있는 이 완벽한 곡을 꼭 내 손으로 완성해서.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데.
“그런데, 정 마에 선생님.”
[왜?]“저와 처음 만났을 때, 선생님이 그랬죠. 5년 안에 모든 것을 이루어야 한다고.”
[그랬지.]“그거, 아직도 유효한가요?”
그는 팔짱을 낀 채 진지하게 고민했다.
진짜, 너무, 눈치 보일 정도로 진지하게 고민해서.
차마 재촉할 수가 없었다.
[사실 말이지……. 작년에는 무척 조급했는데, 지금은 딱히 그렇지도 않아.]“제가 선생님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그 목표를 이룰 것 같아서 그런 거죠?”
[아니. 전혀.]그렇다고 하면 어디 덧나나.
그러나 이어지는 윤성의 대답은.
내 마음을 사로잡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그냥…… 지금 그대로의 네 음악을, 두고 지켜보는 쪽이 훨씬 마음에 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