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186
186화. 거래를 제안받다 (3)
왕린과의 길고 길었던 독대를 마친 후.
나는 신 팀장님의 차를 빌려 타고 돌아왔다.
“어떻게 됐어?”
기다리고 있던 전수정의 물음에.
나는 멋쩍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굳이 나한테 또 직접 물어보는 거야? 이미 신 팀장님한테 다 들었으면서.”
“흐음. 사실, 그럴 줄 알았어.”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말에 답했다.
“미안해, 전수정. 아무래도 손은 못 잡겠어.”
“아니야. 어차피 기대는 안 했으니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함의 정중함을 담아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단장님. 저는 피아니스트입니다.]’
그는 내 말에 담긴 뜻을 바로 이해했다.
‘[아니오. 오히려 내가 미안하구려. 이렇게 옳고 곧은 소년에게, 내가 괜한 말을 했어. 내가 지금까지 한 말은 모두 잊어버리시오.]’
‘[아닙니다.]’
그의 의도와 언행은, 도저히 예술가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노골적으로 정치적이었다.
설령, 그가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낯짝이 두껍지 않아서, 이미 예술가인지 정치인인지 구분이 힘든 사람과는 손을 못 잡겠더라고. 그리고…….”
“그리고?”
“‘조슈아 창 제거’라는 그의 목적이 해결되면, 다음에 우리에게 어떤 요구를 해 올지 알 수 없잖아.”
전수정의 입술이 ‘오’ 하는 탄성을 만들었다.
“생각보다 날카로운데? 우리 리듬이.”
“응?”
“사실, 나도 그 점을 걱정하고 있었거든.”
그는 자신의 폰으로 들어온 메시지를 보고는, 그 메시지를 내게 보여 주었다.
“그래도, 왕린은 네가 마음에 든 모양이야.”
“응?”
“연주를 들은 값으로, 값진 선물을 지불하고 싶으시다네.”
나는, 왕린이 내게 남겨준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행동은 항상 깊은 물을 만난 듯, 얇은 얼음을 밟듯 신중해야 하오.’
그렇게, 마음을 접고 연습에 매진한 다음 날.
나는 조슈아 창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
* * *
“누구시죠?”
― [조슈아 창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이 남자가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다.
상상도 못 한 방식으로 연락을 해 온 것부터.
이 남자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 같다.
“[그 말을 어떻게 믿죠?]”
― [믿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대체 내 번호를 어떻게 알고……?]”
― [뜬구름 같은 얘기들은 재미있었습니까?]
위험하다.
본능이 내게 쉼 없이 경고를 보낸다.
― [왕린이 하는 얘기들은 달콤할 겁니다. 그러나 그의 최종적인 목표는, 결국 중화 음악계의 무궁한 영광과 발전이지요.]
“[그것은 당신도 다르지 않…….]”
― [적어도, 나는 왕린처럼 위선의 가면을 쓰고 이야기하지는 않지요.]
잠시 동안의 침묵 후.
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 [당신은 이기지 못합니다. 리칭윈도, 반서준도.]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 거죠?]”
― [설명해 드리죠. 제논의 역설로.]
유혹당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절대로…….
― [날아가는 화살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느 한 지점을 지나가게 되지요.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화살은 계속해서 어느 한 지점에 머무르게 됩니다. 화살은 계속해서 머물러 있으니 결국 움직이지 않은 셈이지요. 그것이 바로 당신의 현재 위치입니다. 반서준과 리칭윈, 그리고 천슈메이와는 다르게 말이지요.]
그는 제논의 역설로 내가 그 셋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 했다.
하지만.
“[당신의 말은 틀렸어요. 그 역설에는 오류가 있으니까.]”
제논의 역설은 이미 오류가 증명된 역설.
무한의 과정은, 유한한 시간 안에 끝낼 수 있으므로 역설이 품은 오류를 증명할 수 있다.
즉, 나는 리칭윈을 넘을 수 있다.
‘그답지 않은 실수인가.’
아니면, 숨겨진 의도가 있는가.
나는 그것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 [물론입니다. 제논의 역설에는 오류가 있지요. 그러나 그 오류를 해결하는 방법은, 바로 내게 있습니다.]
“…….”
― [당신에게 넥타르가 될 영상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듣고 답을 주십시오. 오래 기다리지는 않겠습니다.]
그가 보내 준 영상은, 다름 아닌 천슈메이를 가르치는 리칭윈의 모습이었다.
영상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직감했다.
‘위험하다.’
그 둘의 만남은.
위험한 화학적 결합을 보는 것 같다.
마치, 물에 던져진 나트륨이나.
충격을 받은 니트로글리세린 같은…….
[엄청난 폭발이다.]서로가 서로에게 자극받고.
서로가 서로를 닮아 더 흉폭해지면서.
더 탐욕스럽게 성장하고 진화하는.
이해하기조차 힘든 괴물들을 보는 기분.
영상 시작 부분의 리칭윈은 심드렁한 표정이 눈에 보일 정도로 대충 연주에 임하고 있었지만.
‘어느새 진심이 되어 있다.’
아니, 연주에 미쳐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유혹당하지 않기 위해 연주를 꺼 버렸지만, 이미 영혼을 물들인 음악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마치, 내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만 같다.
‘보이십니까? 들리십니까? 지금 이 두 사람이 만들고 있는 ‘진정한’ 연주가?’
나는 유혹당했다.
‘그러니 저의 제안을 숙고해 보십시오.’
그는, 내가 상상도 못 한 제안을 준 셈이다.
* * *
연습을 반복하지만,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음악에 마약처럼 빠져들어야 하는데.
중독자가 금단증상에 시달리는 것처럼.
그렇게 음악에 미쳐야 하는데.
‘미친놈들이 자꾸 내 일상을 건드리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연주가 나오겠냐고.
지금의 나는.
누가 보아도, 억지로 음악을 하고 있다.
[마음이 행복하지 않으니, 음악도 행복하지 않지.]“……그렇게 만들어야만 해요.”
[남을 의식하는 연주가 행복할 수 있어? 네가 만드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연주가 행복할 수 있다고?]“…….”
[김리듬. 잠깐만 쉬자. 거울 좀 보면서.]그는 나를 연습실의 거울로 데려갔다.
[거울에 뭐가 보이니?]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묻잖아, 김리듬. 뭐가 보이냐고.]“……리칭윈이요.”
그를 넘고 싶다.
그처럼 되어서라도.
그를 넘고 싶다는 의식이.
거울을 온통 리칭윈으로 채운다.
[그 이전에는 무엇을 보았니?]“……네?”
[너는 계속 타인을 의식하면서 연주를 해 왔잖아. 그 이전에 네가 본 게 누구냐고?]누구였지?
나는, 누구를 의식하면서 연주를 했었지?
마침내 그 이름과 얼굴이 떠오른다.
“민아요. 이민아.”
나의 빛이자, 나의 감옥.
인간으로서도, 예술에서도.
나의 빛이자 감옥이었던.
민아의 얼굴이 거울에 비친다.
[왜 사로잡혀 있는 건데? 지금까지 네가 걸어왔던 길은, 정말 아무 의미 없는 길이었던 거야?]“아니에요.”
[아니, 너는 지금 그 말이 ‘맞다’고 하고 있어.]그는 내 마음의 언어를 읽었다.
[타인의 연주에 얽매이지 마. 너는…….]마침내, 거울 속의 다른 얼굴들이 모두 지워지고.
[홀로 있어도, 스스로 빛나는 존재니까.]거울에는, 오직 나의 얼굴만이 남았다.
[너는 너야, 김리듬.]마침내.
그토록 오랫동안 갈피가 잡히지 않던 길이 잡힌다.
이제야 다시 피아노 앞에 앉을 용기가 난다.
‘유혹에 구속되었다가, 완전히 풀려나는 과정을.’
처음에는 더듬거리고 머뭇거렸지만.
점점 빠져들어, 마침내 중독된다.
빛으로 가득해 보이는 음악에서도.
저녁의 한 점 서늘한 푸르름을 잊지 않고.
검게 물든 극야 속에서도.
반드시 한 점의 빛을 남기면서 연주하는.
그런 오렌지블루의 ‘김리듬 사운드’를.
‘쇼팽의 ≪뱃노래≫에 담아, 연주한다.’
쇼팽의 뱃노래, 작품번호 60.
황혼의 시간으로 빛나는 쇼팽의 가장 찬란한 음악.
‘증류도를 높여라.’
불순물을 걸러내라.
[그러나 단순한 주정(酒精)이 되어서는 안 되지.]시간과, 향과, 인간이 배게 해라.
그것이 단순한 주정과 혼합물의 발효를.
신의 음료, 넥타르로 만드는 원천이다.
연주를 하지 않을 때는 입으로 외고.
일과를 마치고 잠든 후에는 꿈에서도 연주를 반복하면서, 며칠 동안 중독자의 삶을 계속한 끝에.
“드디어, 넘었다.”
나의 넥타르가 완성되었다.
나는 드디어 악마의 유혹을 넘어선.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다.
조슈아 창이 내게 보낸 영상 속 천슈메이와 리칭윈의 영향력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완벽한 넥타르를.
드디어, 나의 손에서도.
쇼팽이 찬란한 빛을 발한다.
[오늘 연습은 여기까지.]“더 하고 싶…….”
[아니. 이제는 쉬어야 해.]정윤성 귀신이 옆에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콩쿠르 연습을 어디까지 해야 할지.
연습 시간을 얼마나 쪼개서 해야 할지를.
기가 막히게 잘 아는 귀신이니까.
* * *
연주를 완성한 다음 날.
조슈아 창은 내게 다시 연락을 해 왔다.
― [이제, 제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나셨습니까?]
웃음을 참지 못해, 결국 웃고 말았다.
웃음을 진정시킨 후, 하려던 말을 맺었다.
“[아니요. 당신의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오랜만에, 탄산수를 들이마신 듯 짜릿한 기분이 전신으로 시원하게 퍼져 나간다.
이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여야 했는가.
― [생각이 짧으시군요.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아니요. 전혀 아닌데요? 저는 이미, 저만의 넥타르를 완성했으니까요.]”
― ……?
“[답변은 연주로 대신하겠습니다. 제 연주를 듣게 되는 순간, 바로 아시게 될 겁니다.]”
―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대체.]
“[됐고요. 쇼팽 콩쿠르 본선에서 연주로 뵙겠습니다. 그러면, 다시는 전화하지 말아 주시길.]”
전화를 끊은 후, 심호흡을 마친 나는.
그의 번호를 차단해 버린 후.
윤성을 올려다보면서 물었다.
“나 잘했죠, 정 마에 선생님? 깔끔했죠? 조슈아 창한테 한 방 제대로 먹였죠?”
[아주 좋아 죽네, 좋아 죽어. 어제까지만 해도 24시간 내내 죽상을 하고 있던 놈이.]“아아니, 칭찬 한마디 해 주면 어디 덧나요? 응?”
[당연하지.]사람이, 아니, 귀신이 정이 없어, 정이!
그 순간.
그의 손이 내 머리 바로 위까지 내려와서는.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잘했다. 깔끔하게 잘 끊어 냈어.]행복과 자랑스러움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 촉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내게 아주 옅은 마음속 얼룩을 남겼다.
[그리고 말이야. 이건 진짜 얘기 안 하려던 건데.]응?
[너 지금 열여덟 살 아니야? 열여덟 살이 마, 패기가 없나, 패기가! 조슈아 창이 제안을 하건 말건, 바로 욕 한마디 시원하게 박아 주고 거절했어야지!]“……정작 당신, 아니, 선생님도 제 입장이었으면 그렇게 안 했을 거잖아요.”
[……그건 그렇긴 한데.]이 양반이 진짜.
물론, 그다음에 이어진 말은 더 가관이었다.
[난 일단 들어 본 다음에 욕을 하니까.]“개뿔이!”
* * *
전화를 끊은 조슈아 창은, 자신의 손가락을 구부리면서 김리듬의 대답을 되뇌었다.
그는 자신의 번호를 차단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자신의 연주 영상을 보내 주었고.
그 영상 속의 김리듬은, 자신이 보내 준 유혹을 전부 떨쳐 낸 경이로 빛나고 있었다.
‘그래. 인정해 주지.’
김리듬은, 이제 어느 누구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제 스스로 빛나는 존재니까.
하지만.
‘그럴수록, 더 망가뜨리고 싶어지지.’
그는 손에 넣는 방법만으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사내가 아니다.
‘손에 넣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면.’
남은 것은 하나밖에 없다.
‘전력을 다해 망가뜨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