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187
187화. 4인 4색 인터뷰
여름의 불길이 날이 갈수록 거세진다.
이러다가, 정말 길 위에서 녹아 버릴 것 같다.
그런, 불타는 어느 여름날 오후에.
“더 웃으세요. 더 활짝.”
나는 사진기 앞에서 웃는 고행을 30분째 실천하는 중이었다.
“……이렇게여, 선생니임?”
“아니. 그것보다 더요. 더.”
저기, 포토그래퍼 선생니임!
저는 지금 제 인생 최대치로 웃고 있는 거라고요!
하지만 그는 내 표정에 전혀 만족하지 못했다.
“아직 아닌데. 더 웃어야 하는데.”
30분 넘게 끌어 올린 얼굴 근육이 경련했지만, 나는 꾹 참고 선생님의 지시에 최대한 순응했고.
그렇게 30분을 더 포토그래퍼 선생님에게 붙잡혀 있었던 다음에야 그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간신히 사진 촬영을 마친 나는.
의자로 다가가 몸을 주저앉혔다.
“하아아…….”
[김리듬. 오늘 따라 많이 힘드네.]“쇼팽이 나를 놔주지 않는 중이라서요.”
당신도 피비린내 나는 연주 마치고 바로 와 봐.
거기서 순식간에 벗어나면 내가 최시현이다.
‘이것이 예술가인가?’
한 시간 전까지 끈적끈적하고 비릿한 냄새가 나는 쇼팽의 소나타에 묶여 있다가, 이제 카메라를 보고 활짝 웃어야 하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니.
해리성 정체감 장애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정수기에서 냉수를 따르면서, 나는 윤성에게 물었다.
“정 마에 선생님.”
[왜 그러니.]“저, 안 미쳤죠?”
[글쎄다아. 오늘은 좀.]“좀 뭐요?”
[살짝 미쳤다고 해야 하나?]“에이, 진짜.”
[그런데, 갑자기 왜 또 뜬금없는 질문인데?]“요즘 들어, 제가 좀 미쳤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 그건 팩트지.]이 잡귀가?
[내가 늘 말하지 않니. 미치지 않고는 음악을 못 해.]“네. 참으로 위안이 되는 말이네요.”
냉수 한 잔으로 끈적함을 씻어 낸 나는 바로 인터뷰장으로 돌아갔다.
어쨌거나, 내가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어야 했던 이유는 바로.
“가장 주목받는 예술고의 천재들이, 드디어 한자리에 모였군요.”
의 김미지 기자가, 이 네 명의 학생으로 예고 천재 특집 기사를 낸다나 뭐라나.
장현예고의 이강현.
상문예고의 우희경.
안덕예고의 한동우.
그리고, 나 김리듬까지.
“자, 벌써 3시네요. 시간이 되었으니 인터뷰를 시작해 보죠. 모두 마음의 준비는 되셨나요?”
“물론이죠, 기자님.”
오늘의 인터뷰어인 김미지 기자는.
≪한국문화일보≫의 상징적인 존재인 김석희 대기자에 버금가는 기자라고 한다.
연예부 기자로 시작해 잔뼈가 굵고.
사회부로 옮겨 지하철 화재 사고, 철거민 화재 사고 등 대형 사건 사고에서 전설적인 업적을 쌓은 후.
‘이제 좀 쉬어야겠다.’는 말만을 남기고, 문화부 기자로 전직한 인물이라고.
“준비됐어, 송 기자?”
“네, 준비됐습니다.”
“좋아. 그러면 시작하지.”
말투는 딱딱하지 않고, 표정은 차분하지만.
자신의 옆에 딱 붙은 채 이런저런 어시를 하는 수습 기자에게 지시를 내리는 모습만 봐도.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 짐작이 간다.
‘잘못 걸리면 진짜 피곤해질 인상이다.’
“다들 만나서 반가워요. 특히 한동우 학생, 저번에 봤을 때보다 훨씬 이목구비가 뚜렷해졌는데요?”
“하하. 감사합니다, 기자님.”
인상과 일치하는, 딱 부러지는 목소리.
철저하게 관리하고 다듬은 헤어스타일.
신중하게 톤을 고른 것이 분명한 화장.
빈틈없는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한.
그럼에도, 대화할수록 경계심이 풀릴 만한 언변까지.
“최근에 주목받는 예술고등학교의 인재 중 가장 많이 성장했다는 평을 듣는 학생이죠. 그런 얘기 많이 들으시나요, 한동우 학생?”
“하하. 네, 그런 얘기 조금 들었습니다.”
녀석은 신나서 자기 얘기를 하기 시작했고.
그 말을 받아 적는 어시 기자의 노트북 두드리는 소리가 듣기 좋게 보조를 맞추었다.
‘안덕예고의 한동우.’
나와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자리를 놓고 오디션을 치렀던 4명의 경쟁자 중 하나.
비록 그때는 어설픈 실력으로 꼴찌를 기록했지만, 지금은 절치부심한 끝에 포텐이 터져 버렸다.
나조차 이 녀석의 최근 브람스 교향곡 1번 연주 영상을 찾아보고 깜짝 놀랐을 정도니까.
‘[우와. 한동우 얘가 이렇게 성장했어?]’
‘이거 정말 기적인데요?’
‘[얼마나 이를 갈고 연습했을지가 눈에 보인다. 다른 녀석들이 어깨에 뽕 차서 연습 안 하다가 무너지는 동안, 저 녀석은 정말 두문불출하고 연습만 한 거야.]’
윤성은 ‘이야. 사람 일 진짜 모른다더니.’ 어쩌고 하는 말을 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런데, 저 녀석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성장했지? 내가 작년에 봤던 저 녀석의 모습은 정말 끔찍했는데…….]’
나는 과거의 기억에서 힌트를 찾아냈다.
‘안덕예고의 한동우. 어려운 형편을 딛고 특출 난 재능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케이스지.’
‘예전 기억이 나네요. 작년의 이사장님이 얘를 높게 평가했었죠.’
‘[역시 송수현 이사장. 사람 보는 눈이 있기는 있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건, 이사장님 안목의 승리다.
“그리고, 드디어 소개를 하게 되네요.”
거기 있는 모두의 시선이, 바로 내게로 집중되었다.
“사실상 오늘의 주인공이시죠. ‘귀신들린 예고천재’ 김리듬.”
이제 정말로 익숙해질 만도 한데, 이상하게 이 칭호만큼은 몇 번을 들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얼마 전에는 교육청 표창에, 베토벤 교향곡 5번 음반 크라우드펀딩으로 화제가 되기까지 했었죠.”
아, 결국 이 주제가 나오네.
인터뷰하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김석희 대기자와는 달리, 김미지 기자의 인터뷰 스타일은…….
[공격적이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나도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김리듬 군. 그 크라우드펀딩 말이죠.”
“아, 네. 감사합…….”
“모금을 시작한 당일에, 5천만 원이라는 모금액을 모두 채워서 바로 음반 제작을 시작했으니까요.”
내 말을 자르면서 이어진 그녀의 말에.
나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은 셋으로 갈렸다.
장현예고의 이강현은 질시.
상문예고의 우희경은 경악.
그리고, 한동우는…….
[체념이네. 저건 체념이야.]“어떠셨나요, 김리듬 군? 크라우드펀딩이 끝나는 순간의 기분은?”
별로 안 좋았는데요.
전수정이 추가 모금을 받자고 해서.
라고 솔직하게 얘기했다가는 대형 사고가 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적당하게 둘러대기로 했다.
“정말 좋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저희의 음악을 응원해 주실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흐음. 좀 틀에 박힌 답변이기는 하네요.”
‘일부러 불편한 질문을 던져서 상대의 진심을 이끌어 내는 스타일’이라는 전수정의 언질을 받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쾌하다.
“좀 민감한 질문드려도 될까요, 김리듬 군?”
“일단 들어 보고 결정해도 될까요?”
“얼마 전에 내한한 중국의 예술인대표단장이죠. 왕린 단장님이 직접 리듬 군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소수의 관계자만 배석 가능한 만찬에 초대하고, 직접 독대까지 하셨는데,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나요?”
모두의 시선이, 졌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여기 있는 나머지 4명 중 다른 나라의 문화예술계를 총괄하는 인물과 독대한 학생은 나뿐일 테니까.
“하이든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물론, 나한테는 짜증 나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질문에도 짜증이 났다.
‘나를 편애하는 척하면서 질시를 유도하잖아.’
노골적으로 나를 센터에 앉히고.
가장 많은 공을 들여 많은 질문을 던진다.
경쟁심과 질투심 가득한 저 표정들을 보니.
‘동기 부여 하나는 확실히 되겠네.’
다들 눈동자에서 불이 튄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더 이상 참지 않았다.
“리듬 군이 지금까지 보여 준 퍼포먼스를 죽 확인해 봤는데 말이죠. 신기하더라고요.”
“어떤 점에서요?”
“실패가 없어요.”
잘못 본 것일까?
그녀의 얼굴에, 진심 어린 놀라움이 보인 것 같은데.
“참 신기하단 말이죠. 작년 여름방학 마스터클래스부터,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의 첫 정기연주회. 드라마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촬영.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 오디션. 피아니스트 최시현과의 콘서트. 걸그룹 ‘세라핀즈’와의 협업. 신혜경 선생님과의 콘서트. 그리고 이번 크라우드펀딩으로 화제가 된 베토벤 교향곡 5번 음반 제작까지.”
타인의 입을 통해서 듣는 내 업적은 내가 들어도 기가 막힐 정도로 엄청났다.
“이 과정에서 단 한 번의 실수나 실패도 없었다는 얘기죠. 마치, 실패하지 않을 선택지만 골라 움직이는 것처럼.”
그녀의 예리한 눈빛은 나를 꿰뚫으려는 듯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니 대답을 허락해 주시겠어요? 도대체 어떤 음악과 이상을 품고 있길래, 그렇게 큰 그림을 그리면서 그 많은 일들을 성공시킬 수 있었는지를.”
“큰 그림이라…….”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 장난을 쳐 볼까, 하고.
“아주 간단해요. 사실 저는, 아주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거장들의 유령을 통해 음악 속에 숨겨진 비밀과 내밀한 이야기들을 주고받거든요.”
[야, 김리듬!]쉬지 않고 타닥거리던 소리가 갑자기 멈추었다.
시선을 돌려 보니, 어시 기자가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김미지 기자의 눈치를 보는 게 보였다.
정작 김미지 기자는, 어시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오직 내게만 시선을 고정했다.
“흐음. 어떤 분들일까요?”
“뭐, 요한 제바스타인 바흐,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루트비히 판 베토벤, 프레데릭 프란시스크 쇼팽…….”
“하하하. 그건 다른 예고생들도 똑같은 거잖아요.”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윤성.”
묘한 침묵이 흘렀다.
침묵이 딱딱하고, 어색해질 정도로.
“이 자리를 빌려 인정하겠습니다. 제 영감의 원천은, 바로 마에스트로 정윤성입니다.”
“정윤성이라면…… 그,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네. 저는 그의 목소리를 지금도 매일 듣는, 몇 안 되는 피아니스트죠.”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윤성조차 팔짱을 낀 채 지켜보기만 했다.
내 목소리에, 내 분위기에.
홀려 버린 듯한 내 표정 때문에.
그 자리의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니, 이 굳어 버린 분위기를 깰 수 있는 것도 오직 나뿐이다.
“농담이에요, 김 기자님.”
“……?”
“농담이었습니다. 농담이었다고요.”
어시 기자는 질 나쁜 농담을 들은 사람의 얼굴이 되었지만, 김미지 기자는…….
“푸훗……!”
웃었다.
“아, 이거. 너무 진심으로 장난을 쳐서 제가 깜빡 속을 뻔했네요. 깜짝 놀랐어요.”
“그러셨나요?”
“하지만, 그게 진실이라면 굉장히 흥미로운 소재예요. 매일 매 시간마다 귀신에게 음악을 배우고, 귀신과 음악을 논하면서 천재로 등극한 예고생이라. 단독 타이틀 걸고 취재하고 싶을 정도로 흥미롭네요.”
“오늘 인터뷰, 생각보다 꽤 재미있었어요. 그러면, 이제 마지막 질문 드리겠습니다.”
드디어, 이 길고 지겨운 인터뷰가 끝이 난다.
“네 분 모두 지금 가장 주목받는 고전음악계의 신동이 되셨는데, 혹시 자신의 이런 모습을 과거에 상상한 적이 있었나요?”
그 질문이 터지는 순간.
오늘의 인터뷰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 나왔다.
“그럴 리가요.”
“전혀 없는데요?”
“1초도 없어요.”
“네버.”
이렇게 한마음이었던 순간이 있었을까.
어시 기자가 그 마지막 반응까지 적는 순간.
“좋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오늘의 인터뷰를 마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