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192
192화. 음악 탐험대 출연 (1)
마에스트로의 안색은 조금 피곤해 보였지만.
표정만큼은 한없는 만족감이 가득했다.
포디엄을 내려온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주 좋은 오케스트라예요.]”
“[감사합니다, 마에스트로.]”
나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리기 힘들었다.
다른 이도 아닌, 마에스트로 폰 노이만에게.
이런 극찬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
“[자, 그러면…….]”
그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마에스트로 빌헬름 폰 노이만이.
자신의 지휘봉을 내 쪽으로 내밀었으니까.
“[멋진 학생들과 근사한 시간을 함께했으니, 이제 리듬 군이 내게 화답할 차례입니다.]”
지휘자에게는 생명과 같은 지휘봉을 건넨다는 것은.
나, 김리듬이라는 존재를.
자신의 제자로 인정한다는 것과 같았다.
“[할 수 있겠지요?]”
나는 그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얼핏 부드러워 보이는 눈매 속에 숨은.
상대를 꿰뚫어 보는 강철 같은 눈동자.
어째서, 라는 의문은 가지지 않았다.
마에스트로가 지금까지의 나의 연주를 통해 자신의 제자인 정윤성의 그림자를 보았건.
아니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았건.
그는 나를 사실상 제자로 인정했고.
나는 그런 그에게 답례할 의무가 있다.
“[물론입니다.]”
“[아주 좋아요.]”
마에스트로에게서 지휘봉을 넘겨받은 나는, 아주 천천히 포디엄에 섰다.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긴장감이.
몸을 짓누르는 것 같다.
그 순간.
[김리듬.]‘네. 정 마에 선생님.’
[내가 예전에 너한테 그런 말을 했었지? 내가 원하면, 언제든 네 몸을 빌려 쓸 수 있게 해 달라고.]‘그랬죠.’
[드디어, 그때가 온 것 같다.]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그의 영혼을 받아들였고, 그는 바로 내 몸을 움직여 마에스트로에게 인사했다.
“[당신에게, 이 제자가 경의를 표합니다.]”
그는 어색한 독일어가 아닌, 정확하고 명료한 독일어로 마에스트로에게 경의를 표한 후.
나의 몸을 빌려 지휘를 시작했다.
[슈트라우스를 받았으니, 같은 슈트라우스로 답례를 해야지.]내 몸을 빌린 윤성이 택한 답례곡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못지않은 명곡인.
[≪남국의 장미≫.]폰 노이만의 유려한 초서체 지휘를 그대로 닮은 듯하지만, 사실 전혀 닮지 않은 역동적인 유려함이.
단원을 하나로 묶어, 노래하게 한다.
필 듯 필 듯 피지 않고 조심스럽던 음악이.
‘어느 순간, 피처럼 붉은 꽃잎을 틔우며 만개한다.’
다시 한번, 선남선녀들의 무도회장이다.
걱정 없이. 즐겁게. 즐겁게.
한 바퀴 빙글. 다시 한 바퀴 빙글.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바이올린의 애교 섞인 비브라토에 맞추어.
다시 한번 빙글.
‘템포를 점점 끌어올려야지.’
윤성의 주도하에 만들어지던 음악은.
어느새, 나도 같이 만드는.
두 사람의 음악이 되어 있었다.
‘조금 더, 조금 더!’
템포가 점점 빨라질수록.
남녀들의 움직임도 점점 빨라진다.
장식한 장미들이 하나둘씩 떨어지며.
바닥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유려한 움직임으로 마지막 음을 거둔 우리는.
단원들에게 감사를 표한 후.
마에스트로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 * *
마에스트로는 포디엄에서 내려온 나를 끌어안았다.
그 따스하고, 진심 어린 포옹에.
아직 윤성의 영혼과 완전히 분리되지 못한 나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한참을 그렇게 끌어안은 마에스트로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를 놓아주었다.
“[정말 멋진 슈트라우스였어요.]”
“[그러셨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마에스트로.]”
“[내년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초대하고 싶은 실력이었어. 정말 놀라웠소.]”
그의 눈동자도 젖어 있었다.
비록, 이성으로는 이해하지 못했어도.
그도 직관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오늘 리허설에서 들은 음악이.
그토록 사무치게 그리운.
자신의 애제자의 음악임을.
* * *
마에스트로의 방문 이후.
나는 윤성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좋았죠?”
짧은 침묵 후.
윤성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래.]“그거면 됐어요.”
곧 전수정이 우리에게 마에스트로가 한국을 깜짝 방문한 이유를 정리해 알려 주었다.
“마에스트로 빌헬름 폰 노이만의 이번 한국 방문은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 방문만이 목적은 아니야.”
“그러면? 다른 이유가 있다는 얘기야?”
“응.”
그녀의 입을 통해 듣게 된 ‘다른 이유’는, 우리의 표정을 굳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마에스트로 빌헬름 폰 노이만은 이미 몇 번이나 수술을 받은 상태야. 작년에 받은 스텐트 수술이 아니었다면, 마에스트로는 벌써 돌아가셨을 거야.”
그가 한국을 방문한 이유 중에는, 심장질환에 있어 세계적인 석학인 이진창 교수의 진료를 받으려는 목적도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몇 년 전부터였다고 하네. 그래도 4년 전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가장 아끼던 애제자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로 급격하게 악화되었다고 하니까.”
나는 윤성의 표정을 살폈고.
안 그래도 창백한 그의 모습이.
문자 그대로 하얗게 질리는 것을 보았다.
* * *
마에스트로 빌헬름 폰 노이만을 천천히 진찰하던 이진창 교수는,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지만.
내용은 전혀 차분하지 못했다.
“[마에스트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참 고통스럽지만, 지금 이 몸 상태로는 지금 하시는 연주 활동도 당장 중지하셔야 합니다.]”
“[그 말은, 내가 무대 위에서 쓰러져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오?]”
“[…….]”
이진창 교수는 침묵으로 긍정의 뜻을 표했고, 그 뜻을 알아들은 마에스트로는 웃었다.
“[오히려 좋소.]”
“[마에스트로.]”
“[무대 위에서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지휘자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영광일 테니.]”
“[그런 말씀은, 당신의 음악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제게 참 듣기 힘든 말입니다.]”
“[아, 물론 그런 일은 슬프겠지요. 하지만.]”
마에스트로는, 좀처럼 입가에 띤 웃음을 거둘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 음악은 계속 이어질 거요. 나는, 그 희망을 한국에 와서 알게 되었소.]”
* * *
마에스트로 폰 노이만이 돌아간 후.
이쪽 상황이 조금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건의 원인은, 출국 직전에 있었던 인터뷰였다.
―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재능 있는 학생들도 많이 보았고요.
그의 인터뷰는 이런 식으로 끝났지만.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와.
특히, 나를 만났다는 소식이 강조되어.
‘마에스트로의 새로운 제자, 김리듬’이라는 식으로 바뀌면서, 창조적인 오해를 일으키는 중이다.
‘이거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미 이것 때문에 아침에도 수백 개의 톡을 받았고, 특히 어머니에게는 절대 신경 쓰지 말라고 말씀을 드린 상태다.
“그건 오해죠, 김 기자님. 애초에 마에스트로는 ‘김리듬이 나의 제자다’라고 하신 적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 면은 잘 체크해서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게 해 주셔야죠. 알겠습니다. 제가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옆에 서 있는 김우진 실장님은 아침부터 전화기를 붙든 채로 활활 타는 상황을 어떻게든 틀어막으려 애를 썼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전화를 끊은 김 실장님이 머리를 득득 긁으며 말했다.
“후우. 일단 한국문화일보 쪽은 어떻게든 잘 틀어막았는데, 다른 곳들이 걱정되네요.”
“김우진 실장님.”
“네.”
“실장님이 보시기에, 지금 가장 위험해 보이는 언론은 어디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는 팔짱을 낀 채로 생각을 정리한 후, 바로 답을 말해 주었다.
“제 생각에는, 기성 언론보다는 팟캐스트나 너튜버들이 더 위험할 것 같습니다. 정보를 제대로 확인해 보지도 않고, 자극적인 소재로 조회수만 올리기 위해 무작위로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인간들이니까요.”
[저 말이 맞아. 우리는 지금, 전통적인 미디어의 영향력보다,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이 더 큰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결국, 너튜브나 SNS가 문제가 될 거라는 얘기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번 왕린 단장과의 만남은 큰 화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중국의 예술인대표단장을 알고,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한국인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렇죠.”
“하지만 이번 건은 완전히 다릅니다.”
김우진 실장은 딱 잘라 말했다.
“대중을 폄하하려는 얘기가 아니라, 애초에 사람들은 빌헬름 폰 노이만이라는 인물에 대해 잘 모릅니다. 별 관심도 없고요. 하지만 그가 ‘세계적인 마에스트로’이며, 그런 세계적인 마에스트로가 한국의 음악 신동을 ‘자신의 제자’라고 거론까지 하면서 주목하면 사태가 달라지죠. 그 말의 진위여부와는 상관없이 말이죠.”
“……국뽕이라는 건가요?”
“정확합니다.”
좀 많이 거슬리는 단어지만, 이 단어보다 정확하게 지금 사태를 표현할 자신이 없다.
그런데, 잠시만.
“저기, 김우진 실장님.”
“네. 김리듬 군.”
“지금 벌어지는 사태를, 우리가 역으로 이용해보는 건 어떨까요?”
“설마, 거기 출연하시려고요?”
“네.”
역시.
김우진 실장님은 정말 눈치가 빠르다.
“이제 올 가을에 해외 연주회도 있을 텐데, 홍보는 제대로 하고 나가야 하지 않겠어요?”
나는 윤성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수동적으로, 끌려다니지 마라.
능동적으로, 모든 것을 이용해라.
* * *
“지금까지는 다 커트했었는데.”
“도대체 몇 군데를 커트했길래…….”
“모르기는 몰라도, 아마 두 자리 수는 될 거야.”
예상대로, 전수정은 지금까지 무지막지하게 들어오던 나의 너튜브 출연 제안을 전부 커트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러면, 김우진 실장님. 프레젠테이션 시작하시죠.”
“넵.”
김 실장님은 전수정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마치 무릎 반사처럼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일단,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너튜브 클래식 음악 채널은 가 있기는 하죠. 여기가 가장 유명하고, 분명히 그건 부정할 수 없는데…….”
“무슨 일이 있나요?”
“뒷소문이 좋지 않습니다.”
김우진 실장의 표정은 딱딱했다.
“석 달 전 일입니다. 이 채널에 새로 입사하기로 한 6년 경력의 PD가, 연봉 4천만 원을 받기로 회사 측과 구두계약을 마치고 출근을 했습니다. 하지만 정식 출근 바로 전날에, 회사 CEO가 기존의 합의된 연봉 4천만 원에서 500만 원이 깎인 3,500만 원으로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더군요.”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이직하면 사원으로 시작해야 하니 사원 연봉을 받자.’ ‘아직 정식계약도 안 했고, 수습기간에는 회사 마음대로 직원을 해고할 권리가 있다.’는 말까지 했다더군요.”
김우진 실장이 들려준 의 실태는, 인터넷에서 흔하게 보던 갑질 행태와 완벽하게 부응했다.
“저기, 김우진 실장님.”
“네.”
“그런데 왜, 그런 소문이 아직 터지지 않는 거죠?”
그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곧 터질 예정이니까요.”
나는 물론이고.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던 윤성마저.
순식간에 표정이 ‘!!!’로 변했다.
“한국문화일보에서 지금 집중 취재 하는 중입니다. 아마 빠르면 모레, 늦어도 주말에는 기사가 날 겁니다.”
시한폭탄이라는 얘기다.
이쯤 되면, 좀 무섭다.
도대체 전수정이 모르는 정보가 뭘까?
“그러면, 어디가 좋을까요?”
“저는 이곳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
김우진 실장은, 내게 썸네일부터 심히 비범한 너튜버를 추천해 주었다.
“…… 왜 플루트 전공자가 대금을 불어요?”
“원래 이 너튜버 컨셉이 그렇습니다.”
“게다가, 굉장히 잘 불잖아요!”
“그러니까 한국음대 플루트 전공이지요.”
무엇보다.
“뭐야, 이 바이올린은!”
“아, 이제 보셨나요?”
“이거 희재 선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