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가을의 연주회 (5)
김우진 실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떻게든 저 앞에서 막아야겠습니다.”
“김 실장님! 앞지를 생각은 제발!”
“제가 이 차에 들인 튜닝을 믿으십시오!”
“끄아아아아악!”
비록 아직 면허를 따지는 않았지만.
이런 게 운전이라면, 나는 절대 하고 싶지 않다.
어쨌거나 김우진 실장은 검은 렉서스를 집요하게 따라붙어, 한번 잡은 꼬리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가 하네다 공항으로 진입하는 대로로 나왔을 때.
끼이이이익!
마침내, 절도범들의 차량이 멈춰 섰고.
교통기동대 소속 차량들도 우리 주위를 포위했다.
[야, 김리듬. 이거 잘못하면, 저것들 붙잡지도 못하고 우리가 먼저 붙잡히게 생겼는데.]다행히도, 차량에서 내린 경시청 경찰들은 우리보다 그들을 먼저 포위했다.
때마침 뒤따라온 전수정의 차량도 도착했다.
“전수정!”
“김리듬, 괜찮아?”
“나는 괜찮지만, 김 실장님이…….”
그녀는 나를 진정시키려 내 어깨를 두드린 후, 바로 경시청의 높으신 분에게 다가가 능숙한 일본어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표정이 점점 밝아지는 것으로 보아, 다행히 일이 잘 해결되는 듯 보였지만.
철컹.
“엥?”
김우진 실장님의 손에, 수갑이 채워졌다.
“김우진 실장님!”
“괜찮습니다, 리듬 군.”
그는 내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원래 현실이라는 게, 다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냥 자업자득이지. 뭔 현실 타령이야.]이 순간만큼은 윤성의 말에 동의하고 싶어진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곧 풀려날 겁니다. 더 중요한 건 연주회예요. 당장 산토리 홀로 돌아가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연주회를 우선하셔야 합니다.”
그는 순순히 호송차에 올라탔고.
곧 전수정이 비올라 케이스를 품에 안고 나타났다.
안에는 지호의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무사히 있었다.
“과속이라서 어쩔 수가 없어. 곧 풀려날 거야.”
“그래도…….”
“그것보다, 빨리 차에 타자. 스트라디바리우스도 돌려받았으니까, 당장 산토리 홀로 돌아가야 해.”
“…….”
“가면서 설명해 줄 테니까, 어서.”
나는 결국, 전수정의 강권대로 차에 올라탔고.
“한국인과 일본인으로 이루어진 악기 절도단이야. 스트라디바리우스, 과르넬리 델 제수, 아마티, 과다니니 등 고가의 명품 바이올린만 노려서 훔치는 절도범들이라서, 도쿄 경시청도 눈에 불을 켜고 체포하려고 혈안이 되었다고 하더라고.”
“그러면, 그 절도범들이 이번에 노린 대상이…….”
“그래. 바로 지호가 연주하는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노린 거야.”
그녀의 표정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했지만, 목소리 바닥에 깔린 감정까지 평온하지는 못했다.
“계획도 아주 철저하게 세웠더라고. 산토리 홀 직원과 청소부를 위장해서 연주자 대기실까지 들어가서는, 비올라 케이스에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담아 빼돌린다. 그리고 산토리 홀에서 가까운 하네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도주할 생각이었던 거지.”
“엄청나다 못해 숨이 막히네.”
“문제는 그거야. 그 절도범들이, 과연 누구와, 그리고 어디까지 연결이 되어 있느냐는 거지.”
나는 자연스럽게 이어진 생각을.
그대로 전수정에게 물었다.
“전수정, 이미 알고 있는 거지?”
나는 그녀의 입술이 열리기까지 기다렸다.
“왕린 쪽에서 뒤늦게 정보가 왔어. 저 절도범들이, 대체 누구와 접촉하고 있었는지를.”
역시.
그 능구렁이 같은 중국 음악계의 원로가.
전수정과 손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누구길래?”
“조슈아 창의 심복.”
집요할 정도로, 내 주위에서 반복되는 그 이름.
“이제, 정말로 치명상을 입혀야 할 것 같아.”
“그건 그렇고, 지금 몇 분 남았지?”
“이제 15분 남았네.”
“일단 내리자! 달려야 해!”
차가 주차장에 서는 것과 동시에, 우리는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리듯 달려 대기실로 돌진했다.
하지만.
“난…… 못 하겠어, 도저히…….”
대기실에 혼자 남은 지호는.
눈물까지 보이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는…… 이대로는 못 해, 정말로…….”
이제 연주회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5분.
찰싹.
나는 녀석의 뺨을 때리고는.
다른 의미로 충격받은 녀석의 어깨를 잡았다.
“정신 차려, 임지호.”
“기, 김리듬……?”
“너는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의 콘서트마스터야. 지금 연주회장에는, 너만 믿는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당장 일어서. 일어서서.”
나와 함께 가자.
“하, 하지만 나는…….”
[김리듬. 내가 나서야겠다.]윤성은 내 어깨에 손을 얹고는.
그대로 앞으로 나아가.
지호의 곁에 머무르는 영령을 끌어내, 붙잡았다.
그와 동시에 녀석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이건…… 대체……?”
자신을 그렇게 오랫동안 지켜보고 지켜 준.
영령과의 첫 만남이었다.
[임지호. 나는 오래전부터 네 곁에 있었다.]“……전부터 있었다고?”
[이전에 너는 네가 연습한 주법이 맞는지 계속 고민했었지? 이제 답을 주마. 정답은 없다.]“그게 무슨 소리야?”
[예술에 정해진 정답 따위는 없다. 네가 고민하고, 네가 노력하고, 네가 완성한 그것이 바로 정답이다.]“…….”
[연주를 포기하지 마라. 너는, 절대 혼자가 아니니.]멍한 표정으로 영령을 바라보던 지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서는.
영령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광채와 함께, 영령이 완전히 부스러져서는.
그의 손가락을 타고, 몸에 흡수되었다.
* * *
공연 시간이 지났음에도 연주회가 시작되지 않자, 객석은 일본 특유의 차분함을 잊고 시끄러워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안 오는 거지?]”
“[도망이라도 쳤나 보지.]”
전수정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비웃음 섞인 말들이 들리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끼이익.
마침내 문이 열리고.
지휘자와 바이올리니스트가 들어왔을 때.
수정은, 두 사람의 표정을 보고 웃었다.
‘역시.’
두 사람의 표정은, 리허설 때 보았던, 음악으로 반짝이는 바로 그 표정이었으니까.
* * *
‘다들 기다려 줘서 고마워.’
눈짓으로 단원들에게 인사를 건넨 후.
‘그러면, 연주를 시작하자.’
소리가 없는 진공의 공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협주곡의 음악을 끌어낸다.
고작 한 마디 반의 반주에 이어.
♩♩♪♪♪~
전혀 흔들림 없는.
바이올린의 소리가 흘러나온다.
애수 띤 표정의 여신이 우리에게 미소 짓는다.
바이올린의 영혼을 구현한 듯.
조심스럽고, 가녀리며, 우아한 음향이.
이 넓은 연주회장을 빈틈없이 채운다.
‘유연하면서도 깔끔하다.’
멘탈을 잡은 지호의 연주는 무적이다.
정교하면서도 단아하다.
당연히 나는, 최고의 반주로.
그의 바이올린을 받칠 의무가 있다.
‘자, 이제 너만의 시간이다. 임지호.’
독특하게도, 발전부와 재현부 사이에 낀 카덴차.
이 길고 묵묵한 혼자만의 시간을.
현과 활과, 열 손가락의 음악이 움직인다.
저 유려한 음악을 만들어 내기 위해.
바이올리니스트는 얼마나 격렬하게 움직여야 하는가.
‘1악장이.’
‘끝났다.’
단원들의 눈동자에는 극한의 긴장감이 배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콘서트마스터의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도난당해 연주회가 취소될 위기였으니까.
나는, 그런 단원들에게 눈짓으로 지시를 내렸다.
‘연주 말고는 생각하지 마.’
자허 토르테처럼, 달콤하고 느긋한 2악장으로.
가을의 시간에, 다시 한번 지나간 봄을 불러낸 후.
‘자, 이제 3악장이다.’
톡톡 튀는 귀여움으로 충만한.
소리 내어 웃고 싶은 마지막 악장.
‘지호가 연주하는 귀여움이라.’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거품처럼 부글거리면서 끓어오르다가.
어느 순간, 사방에 잔향을 남기고.
아련하게 사라지는 사랑을.
‘미련을 남기지 않게, 남김없이 쏟아부어라.’
근육과 뼈는, 깃 없이는 바람을 타고 넘을 수 없다.
바람을 타고 허공으로 날아오를 수도 없다.
지호는, 우리를 날게 하는 깃이다.
“우와아아아아!”
그렇게, 간신히 되찾은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치른 공연은 엄청난 박수갈채와 함께 끝났다.
* * *
공연이 끝난 후에도 몇 번이고 이어진 커튼콜 때문에, 나는 대기실로 돌아가자마자 드러누웠다.
‘이대로 자면 내일 아침에 깰 것 같은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 보니 전수정이었다.
그녀는 내 모습을 보자마자 피식 웃고는, 바로 걸려 온 전화를 일본어로 받았다.
“하이. 하이. 덴와 키르요.”
“무슨 전화야?”
“아, 계약을 수정하자네.”
“응? 그게 무슨?”
분명히, 아무 실수 없이 잘 해냈는데?
“원래 공연을 하기로 한 오케스트라가 피치 못한 사정으로 공연 취소를 하게 되어서, 우리에게 대신 기회를 주겠다는 거야. 어떻게 생각해?”
“……잠시만, 전수정.”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우리, 당장 모레 귀국이잖아. 티켓은 어떻게 하고?”
“그럴 줄 알고, 미리 티켓을 하루 늦은 걸로 끊어 놨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이미 알고 있었던 건 아니고?]이렇게 되었다면.
더 생각하고 자시도 할 것도 없다.
“당연히 해야지.”
이게 바로 승리의 쾌감인가.
이제 몸을 일으켜, 돌아갈 준비를 하려던 찰나.
띠링.
내 폰에 문자 한 통이 왔다.
발신인을 확인한 나는 피식 웃었다.
* * *
두 번의 콘서트를 열광적으로 치른 우리에게는, 보상으로 돌아가기 전날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김리듬! 도쿄 맛집 탐방 가자!”
“미안. 갈 데가 있어서!”
“이런 배신자!”
“돌아오지 마라, 이 배신자!”
나는 녀석들을 무시하고 걸어갔다.
오늘의 목적지는 바로.
시부야 역의 메인 출구인 하치코 출구.
“여기야, 김리듬 군.”
모자를 푹 눌러썼지만.
누가 보아도 유려함을 알 수 있는.
‘세라핀즈’의 리더, 안유경이 내게 밝게 인사했다.
“잘 왔어, 리듬 군. 혹시, 미행 같은 거 안 당했지?”
“잘 모르겠어요. 일본어를 몰라서.”
연주회 첫날 저녁, 그녀는 내게 문자를 보내주었다.
― 일정이 맞으면 HMV 음반점 ㄱㄱ
그리고 공교롭게도.
나와 그녀의 일정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정말 이래도 되는 거예요?”
“뭐가?”
“혹시 알아보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큰일 나잖아요! 파파라치한테 찍히기라도 하면…….”
“그런 일 전혀 없던데?”
이미 경험이 있었던 거냐!
“그건 그렇고, 리드 잘 해 주셔야 해요.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전혀 몰라서.”
“괜찮아.”
오, 역시.
세 번이나 일본 콘서트를 치른 선배답게.
풍부한 일본 경험으로 나를 리드해 줄…….
“굿글 지도로 검색하면 다 나오거든. 굿글 신님께서는 모르는 게 없으신…….”
나, 무사히 호텔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어쨌거나, 그녀를 따라 도착한 곳은 바로.
“은밀한 데이트라고 해서 뭔가 했더니. 여기였어요?”
“꼭 오고 싶었거든.”
“꼭 오고 싶었다는 곳이 음반점?”
바로 시부야 역 근처에 있는.
타워 레코드와 도쿄 HMV 음반점.
이 두 곳이, 클래식 음악 매니아들뿐만 아니라 대중음악 매니아들의 성지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녀가 이곳에 꼭 오고 싶어 했을 줄이야.
“정말 오고 싶었거든. 음반으로 꽉 찬 곳에서, 느긋하게 사고 싶은 음반을 고르는 거. 꼭 하고 싶었어.”
“저는 별로…….”
하지만, 10분 후.
“오! 이반 모라베츠의 쇼팽 녹턴! 이런 레어템이~”
[우와! 호르스트 슈타인의 ≪알프스 교향곡≫ 아냐?]나와 윤성은 미친 듯한 음반 구매 삼매경에 빠져들어, 옆에 누가 있는지도 까맣게 잊고 말았다.
“이야. 이 귀한 음반이 여기에~”
나는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구하기 힘든.
귀한 유니크 아이템을 미친 듯 쓸어 담았다.
그렇게, 점원의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많은 양의 음반을 가져와 계산한 후에야.
옆에 있는 유경 누나의 얼굴이 들어왔다.
“미안해요, 누나. 워낙 귀한 아이템들이라.”
“괜찮아. 나도 몇 장 샀거든.”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내 얼굴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
아이돌보다 음반 구매에 더 정신 팔린 인간이라니.
누가 봐도 미친 사람 취급하지 않을까.
“그것보다, 지난밤에는 굉장했었다던데?”
“아, 연주회요?”
“연주회도 그렇고, 저녁 시간대의 롯폰기에서 무시무시한 질주가 있었다던데. 마치, 이니셜 ㄷ처럼…….”
“묵비권 행사할게요.”
그렇게, 우리는 데이트를 가장한 음반 쇼핑을 마치고 시부야 역으로 돌아왔다.
“하, 부도칸 콘서트를 마치니 속이 다 시원하네.”
“아, 맞다. 어제 부도칸 콘서트!”
‘세라핀즈’의 부도칸 콘서트는.
엄청난 열광과 환호 속에서 끝났다고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우리 리듬이가, 이번 콘서트에서 피아니스트를 해 주었더라면.”
“아.”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하지.”
“당연하죠.”
“하지만 언젠가는 가능하겠지?”
“언젠가는.”
“그래. 언젠가는.”
어느새, 우리는 서로의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서 있었다.
“그러면, 다음 기회에.”
“네. 다음 기회에.”
나와 그녀는 주먹을 한 번 맞대고는.
각자의 길로 갈라지며,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