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205
205화. 임지호와 김가인
어쨌거나, 멋진 송별 연주회를 듣고.
김가인의 광기를 진정시킨 후.
“자, 그러면 이제 다들 퇴근하시죠.”
나는 이들을 냉혹하게 내쫓으려 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바로 엄청난 반발이 잇달았다.
“아니, 김리듬 인성 실화냐? 응?”
“맞아! 개고생해서 송별 연주회까지 준비했는데!”
“와, 이거 단톡방에 올려! 아니, 인터넷에 뿌려! 오랜만에 ‘김리듬/논란’ 항목 갱신 좀 해 보자!”
그런 게 있었어?
하여튼, 여론이 심상치 않았지만 나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등 뒤에서 벨이 울리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누구세요?”
“네. 돔인오 피자입니다.”
“뭐야? 피자는 우리였는데? 희성예고 피자스쿨.”
나는 바로 문을 열어 주고, 배달원은 내게 피자 세 판과 콜라 세 병을 건네고는 사라졌다.
“으아닛? 진짜 피자잖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김리듬?”
“미리 주문을 넣어 뒀죠. 연주회가 끝나자마자 바로 따끈따끈한 피자를 먹을 수 있게.”
“야, 김리듬! 진작 말 좀 해 주지! 하핫!”
“어이어이, 믿고 있었다고! 젠장!”
와, 희수 선배하고 지원 선배.
표정 바로 돌변하는 것 좀 봐.
[그래도, 솔직하고 멍청해서 참 보기 좋네.]나는 최선을 다해 윤성의 독설을 무시했고.
바로, 송별 연주회를 치러 준 4인조를 위해 준비한 피자와 콜라 세팅을 시작했다.
“취향 별로 다 주문했으니까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모자랄 걱정은 안 하셔도…….”
“아니, 이 민트 피자는 대체 뭐야!”
“크흠. 흐흠. 크흐흠.”
지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민트 피자를 가져갔고, 나는 콜라가 채워지기 무섭게 잔을 들었다.
“다들 잔 다 채웠죠?”
“물론이지!”
“자, 그러면 이제 건배합시다. 우리 희성예술고등학교와,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김리듬, 그런 부장님 같은 말은 좀 접어 둬.”
젠장, 희수 선배.
오늘 좀 워딩이 맵네요?
“안 되겠어. 김리듬은 틀렸어. 대신, 이런 축사와 건배사 전문인 나 김가인이…… 으겍!”
김가인을 빠르게 주저앉힌 희수 선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로 건배사를 터뜨렸다.
“자, 우리 희성예고의 역대급 괴물 신인 김리듬의, 쇼팽 콩쿠르 우승을 기원하며! 건배!”
“아니, 그건 내가 하고 싶었는데!”
“어쨌든 건배!”
“건배!”
다섯 개의 콜라 잔이 허공에서 부딪치면서.
나의 송별회가, 한층 더 은은하게 무르익었다.
특히 김가인은, 분위기에 취한 척하며 우리의 송별회에 한층 더 강한 병맛을 부여했다.
“주방장님! 여기 피아노 오마카세 얼마예요?”
“30만 원입니다.”
“아니, 왜 이렇게 비싸요! 네에?”
“내 맘입니다. 비싸면 시키지 말고 그냥 가세요.”
애초에 나를 보고 피아노 오마카세를 상상하는 네가 진짜 레전드다, 김가인.
물론, 김가인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야. 이거 갑질 의혹이야! 신고해!”
“연습실에 무단 침입해서 이러는 건 말이 되고?”
“아이고. 김가인 또 정신줄 놨네. 그리고 오마카세라니. 일본어 사용은 되도록 줄여.”
그렇지.
역시 김가인 잡는 건 희수 선배다.
하지만 이번에는 김가인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양 선배. 일본어 사용이 잘못이에요? 우리는 이제 세계로 뻗어 나가는 세계 시민이라고욧! 자랑스러운 코스모폴리탄! 코스모폴리탄 몰라욧?”
“야. 빨리 단톡방에 올려. 지금 여기서 김가인 논란 항목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중이라고.”
“가짜뉴스 올리지 마앗!”
가짜뉴스 같은 소리 하네.
김가인 너는 숨 쉬는 것 빼고 모든 게 다 논란이야.
* * *
“그러면, 우리는 이만.”
“연주 고마웠어요.”
“아, 그리고 파리 생활…….”
“????”
지원 선배는 내게 무슨 말을 하려다가, 갑자기 멈추고 멋쩍은 웃음만 지었다.
“아니다. 어차피 나 말고도 조언할 사람은 많으니까.”
“에이. 뭐예요, 갑자기.”
“아니라니깐. 아, 그러고 보니, 혹시 소우현 걔한테서 무슨 연락 같은 거 안 왔어?”
“당연히 왔죠. 그런데 왜요?”
녀석은, 오늘 아침 ‘잘 다녀와요’라고 짤막하게 톡만을 남겼다.
“역시, 너한테는 그랬구만. 걔, 너 파리 간다니까 나 붙잡고 하소연만 30분을 하더라. 너만 보고 들어왔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면서.”
“걔도 참 김리듬 바라기라니까.”
“사실, 여기서 김리듬 바라기 아닌 애가 어디 있어?”
“그건 또 그렇네.”
“그러면, 김리듬. 잘 다녀와.”
“꼭 그럴게요.”
그렇게, 희수 선배와 지원 선배는 집에 갔고.
“그건 그렇고, 너희 둘도 이제 집에 가야지.”
“응. 애초에 여기서 자고 가려고 왔는데?”
“그건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짜잔! 이걸 보시라!”
녀석들은, 어디에 숨겨 왔는지 모를 침낭까지 꺼내 들면서 본격적으로 잘 준비를 마쳤다.
“아니, 진짜로 집에 안 갈 거야?”
“당연하지! 우리가 오늘 여기 왜 왔겠어! 김리듬과의 마지막 밤을 같이 보내기 위해서! 굳이 여기까지 온 건데!”
“야. 당장 나가.”
“나가라니? 지금 우리의 순수한 마음을 거절하는 거야? 김리듬, 예전에 넌 안 이랬잖아!”
“원래 이랬거든?”
그리고, 김가인.
너 말이 좀 많이 이상해.
누가 들어도 불순하게 들리잖아.
“자, 우리는 이제 여기 눕습니다! 빨리 거기 불 좀 꺼 주세요! 우왘!”
“아, 미안. 잘못해서 밟을 뻔했군.”
결국 나는 파리로 떠나기 전 마지막 순간을 이 두 녀석과 함께 보내게 되었다.
어머니에게는 죄송하다는 문자를 보냈지만, 오히려 ‘좋은 친구들이네’라는 답장이 오셨다.
― 그러면 내일 공항에서 봬요
― 그래 우리 아들
답장을 마친 나는, 세안에 양치까지 싹 마친 후 녀석들 사이에 침낭을 펴고 누웠다.
“자리 좀 비켜 봐. 내가 들어갈 틈이 없잖아.”
“아, 어차피 마지막인데 구석에서 주무세요.”
“내가 여기 주인이니까 당연히 센터지!”
“잔말 말고 비켜!”
“왘! 김리듬이 사람 뭉갠다! 앜!”
그렇게, 치열한 자리 쟁탈전 끝에.
나는 김가인과 임지호 사이에 파고들었다.
‘아, 막상 자리에 누우니까 잠이 안 오네.’
분명히, 방금 전까지는 미친 듯 피곤했는데.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가.
그런 나를, 갑자기 지호가 불렀다.
“김리듬.”
“응?”
“너, 혹시 올해 1학기 정기연주회 기억하냐?”
“당연히 기억하지.”
다른 쪽은 몰라도.
음악과 관련된 것만큼은 전부 기억하니까.
“그때, 넌 리허설에서 런 스루를 해냈지.”
“아…… 그랬었지.”
솔직히 의외다.
이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을 줄이야.
“정말 놀라웠다. 지휘 경력 1년도 안 되는 예고생이, 숙련된 마에스트로들만 해내던 완벽한 런 스루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으니까.”
희미한 불빛 사이로.
녀석이 나를 응시하는 모습이 보인다.
“사실, 그걸 보면서 너를 보내는 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아, 또 임지호 분위기 축축 늘어지는 소리 하네.”
“김가이인……!”
임지호 이 뿌득 가는 소리 오랜만에 듣네.
그런 이 가는 소리를 무시한 채, 김가인은 갑자기 일장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임지호. 오늘 다들 여기 모여서 김리듬의 송별을 축하해 준 이유가 뭐야? 앞으로 콩쿠르 우승하러 떠날 김리듬 축하하러 모인 거 아냐? 축하하러 모였으면, 기분 좋을 얘기만 해 줘야지. 뭐하러 애 미련 생기게 그런 얘기를 해?”
“미련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라, 김가인.”
“아니, 그런 말 자체가 미련이야.”
나도 꽤 놀랐지만.
나보다 윤성이 더 놀랐다.
[……김가인이 이렇게 논리적인 일침을 하는 게 가능하다고?]그러게나 말입니다, 정 마에 선생님.
“더 이상 미련 남길 말은 하지 말자고. 어쨌거나 김리듬은 더 높은 곳을 향해 항진하는 거고, 우리는 이 녀석이 가는 길에 축복을 빌어 주면 그만이잖아?”
“오, 김가인 멋진 말 고마워.”
“얘는. 내가 언제는 멋진 말 안 했니?”
그런 기억이 거의 없는데요.
“그리고, 임지호. 나는…….”
“어쨌거나, 축하하고, 고맙다. 김리듬.”
“응?”
“저번 일본 연주회 때…… 네가 나를 믿고 잡아 주지 않았다면, 그때 나는 무너졌을 거다.”
아, 그때 일.
여러 가지 감정이 샘솟지만, 나는 그 감정들을 바로 갈무리해 짤막하게 답변했다.
“임지호.”
“왜 그러냐.”
“1년 후에, 포디엄에서 다시 만나.”
녀석이 웃는 게 보인다.
“그래. 알았다.”
* * *
아침이 왔다.
제일 먼저 일어난 나는, 휴대용 매트리스 위에 널브러진 채 캘리포니아 롤이 된 김가인을 두드려 깨웠다.
“어이, 캘리포니아 롤. 일어나.”
“으으으…… 캘리포니아 롤 드림…….”
“개소리 그만하고 일어나앜!”
나는 더 이상 참지 않고, 김가인이 두르고 있던 침낭을 홱 잡아챘다.
“으헉!”
김가인은 매트리스에서 반 바퀴 구르며 눈을 번쩍 떴다.
“무, 무슨 일이야? 전쟁이라도 난 거야? 응?”
“응. 전쟁 났지. 출국 전쟁.”
“젠장! 김리듬! 난 아침에 약하단 말이야아…….”
“퍽이나.”
옆에서는 임지호가 주섬주섬 일어나고 있었다.
녀석은 벌써 깔끔하게 주위 정돈까지 마치고, 씻으러 가기 위해 세면도구를 챙긴 상태였다.
뒤늦게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 김가인은 눈을 비비며 덜 풀린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하아암. 공항까지는 어떻게 가려고?”
“곧 운영 선배가 와서 태워 줄 예정이야.”
“오. 잘 부려 먹네?”
“어허. 부려 먹는다뇨.”
선배가 나를 선의로 돕는 거지!
가인이는 실실 웃으며 지호에게 물었다.
“하아, 임지호. 왜 나는 운영 선배 같은 베스트 드라이버가 안 나타나는 걸까? 응?”
“네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를 되돌아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 큭!”
“하하하. 왜 하필 임지호 발이 거기 있었을까? 잘못해서 밟아 버렸네?”
“김가이인……!”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씻으러 갔다.
임지호와 김가인.
저 둘은 죽을 때까지 저렇게 지낼 것 같다.
나아질 가능성? 그런 거 없어.
* * *
운영 선배는 40분 후에 차를 몰고 왔다.
“실을 짐은 이게 전부야?”
“네. 악보는 따로 부쳤거든요.”
“분실하지 않게 조심해. 나도 예전에 그것 때문에 고생 좀 했거든.”
“조언 감사합니다, 선배.”
차에 올라타기 직전, 나는 팔짱을 낀 채 지켜보는 지호와 가인이를 돌아보았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두 녀석과 참 많이도 재미있었다.
“임지호. 그리고 김가인.”
“레이디 퍼스트 해 주세요, 김리듬 씨.”
“알았어. 김까인, 그리고 임지호.”
“발음이 좀 이상합니다만?”
“어쨌든!”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내 말꼬리를 잡으려는 김가인의 시도를 단호하게 끊어 낸 후.
“그러면, 이제 정말로 갈게.”
“그래. 잘 다녀와.”
두 녀석은, 마지막으로 나를 안아 주었다.
“올 때 선물 사 오고. 알지?”
“솔직히 말하자면, 안 사 오고 싶다.”
“어허. 안 놔준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러면, 간다.”
운영 선배의 조수석에 탄 나는, 녀석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