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231
231화. 현재와 이어지는 과거 (1)
영화 감상을 시작하자, 윤성은 바로 평론가로 빙의해서 이런저런 지적을 시작했다.
[저 마지막 연주회 장면은, 이안 라이트가 직접 연주하기 위해 무려 6개월을 연습했다고 하더라.]“집념이네요.”
[그래. 집념이지. 네게도 그런 집념이 필요해.]물론, 이미 프로라고 할 수 있는 내 수준에서 그의 연주 실력은 아마추어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음악이 아닌, ‘음악 연기’라는 관점에서.
그의 연기혼은 나를 순식간에 빨아들였다.
‘마치, 진짜 쇼팽이 연주하는 듯한 환각을…….’
내게 주었으니까.
우리는 저녁 내내 영화 감상 시간을 가지면서, 마치 1830년대의 파리에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어째서 박현성이 누차 이 영화를 내게 추천하고 이안 라이트의 연기에 열등감을 보였는지 알 것 같다.
[저 싱크를 맞추네. 역시, 최고의 배우는 달라도 뭔가 달라. 박현성이 저 정도 연기를 보여 주었다면…….]“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당연하지. 당연한 거 아냐?]“인성…….”
[어허, 김리듬. 인성이라니. 나는 당연한 팩트를 지적하는 것뿐인데.]그렇게, 쇼팽 콩쿠르 본선을 51일 남긴 어느 날.
나는 를 보고 잠자리에 들었고.
잠에서 깨어난 후에야.
뭔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 * *
눈을 떴을 때, 나를 처음 반긴 것은.
다름 아닌, 낯선 천장이었다.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는 순간.
“김리듬!”
옆방에서 익숙한 외침이 들리고.
바로 문이 벌컥 열렸다.
“그러니까! 내가! 영화 틀어 놓고 잠들지 말랬잖아!”
나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눈을 똥그랗게 떴다.
“저, 정 마에 선생님?”
“그래! 나다!”
“세상에…….”
비틀거리면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천천히 윤성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그의 어깨를 만졌다.
“몸이…….”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육체가 생겼어.”
클래식 음악 영화 속에 들어와 좋은 점 하나.
윤성이 나와 같은 인간이 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영화 속에 들어와 버렸잖아!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응?”
“……나갈 방법을 찾아야죠.”
“어떻게? 응?”
순간, 우리의 뱃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강렬한 꼬르륵 소리에.
나는 씩 웃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일단 밥부터 먹고 생각하죠.”
“제기랄. 그래.”
* * *
우리는 낡은 하숙집에 있는 식사를 찾아내 간단한 아침을 시작했다.
비록 딱딱한 빵과 짭짤한 햄, 그리고 물 한 잔으로 이루어진 식사지만.
그 식사는 우리를 진정시키기에 충분했다.
“후우. 잘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 나와 윤성은 거울을 통해 우리 모습을 다시 확인했다.
우리의 얼굴은 현실의 모습과 비슷하지만.
인종이 달라져 있었다.
그런데, 윤성의 표정이 좀 이상하다.
“표정이 왜 그래요, 정 마에 선생님.”
“아니, 그게…….”
그는 소파에 몸을 묻은 감촉에서 황홀함을 느끼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런 식으로라도 육체를 되찾으니,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그건 안 되거든요?”
“야. 너도 죽었다가 이런 식으로라도 부활해 봐!”
“정 마에 선생님,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건 살아 있다고 말하기 힘들지 않나요?”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 * *
나와 윤성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오래 갇혀 있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결론에 동의했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일단은, 이 영화 속 공간에서 우리의 위치와 직업부터 알아야 활동이 가능했으니까.
다행히 그 힌트는 바로 주어졌다.
이곳에서의 내 직업은 무명의 살롱 피아니스트였고,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연주를 해야만 했다.
왜냐고?
“왜기는. 지금 날아온 고지서가, 오늘 연주회를 통해 돈을 받아서 이자라도 내지 않으면, 당장 너의 유일한 피아노를 압류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니까.”
“묘하게 현실적이라 너무 슬프네요, 정 마에 선생님.”
기껏 영화 속 세계에 들어와서 이런 채무 관계에 시달려야 한다니, 정말이지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래도 어쩌겠어. 연주는 해야지.’
우리는 더럽고 지저분한 파리의 거리를 직접 걸어, 오늘 연주회가 있는 살롱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이어진 윤성의 불평은 덤이었다.
“아, 둥둥 떠서 갈 수가 없어서 불편해.”
“육체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휴먼.”
“마차라도 탈 수 있었다면, 이런 지저분한 바닥의 오물에 발을 더럽히는 꼴을 피할 수 있었을 텐데.”
동서고금 만고불변의 법칙이 1830년대의 파리에도 적용되는 모습은 나를 참으로 씁쓸하게 했고.
마침내 도착해서 확인한, 오늘 내 피아노의 상태는 나를 한층 더 씁쓸하게 했다.
‘하아. 정말 최악이다.’
왜 최악이냐고?
피아노의 모든 음계가, 반음 올라가 있었으니까.
‘아니. 대체 이런 고물 피아노를 여기에 왜 놓는 건데? 응?’
나는 연주회를 취소하고 싶었지만.
살롱의 직원이 내게 건넨 말은.
그 마음을 접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봐. 오늘 여기 누가 오는지 알아?]”
“[누가 오는데요?]”
“[놀라지 말라고. 무려, 그 유명한 젊은 천재 쇼팽이 오늘 이 살롱에 나타난다고.]”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오늘, 나는 무조건 여기서 연주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 피아노로 어떻게?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
이미 해 본 방법이기도 하다.
바로, 모든 음을 반음 낮춰서 연주하는 것.
물론 그런 곡예를 쇼팽 앞에서 해내면서 제대로 된 연주를 하기에는 내 멘탈이 아직 덜 여물었기에.
윤성은, 내게 특단의 대책을 제시했다.
“어쩔 수 없어.”
“죽어도 싫어요.”
“아니, 일단 마시자니까.”
“됐다니까요?”
“[샤를. 여기 한 잔 줘!]”
결국, 나는 윤성의 강권을 이기지 못하고 그 독주를 받아들여야 했다.
치기로 마시기는 했지만, 한 모금 넘기자마자 치밀어 오르는 화끈한 기운과 알코올 향이 구토감을 자극했다.
“후우. 우욱.”
간신히 술잔을 전부 비운 나는.
그 순간, 살롱으로 들어오는 쇼팽을 보았다.
‘잠시만.’
그의 용모는, ‘마치 쇼팽의 현현 같았다’는 평을 받은 이안 라이트의 모습과 무척이나 닮았지만.
그것 이상의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마치, 진짜 쇼팽의 모습 같은…….’
그러나 내게 더 이상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이제 나는, 치밀어 오르는 독한 술기운의 힘을 빌려 즉흥연주를 시작해야만 했으니까.
‘하, 옛날 마스터클래스 때 생각나네.’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이 있다면.
이제는, 모든 음을 반음 낮게 연주하면서도.
‘완벽한 내 연주를 완성할 수 있다는 거지.’
예전에 1830년대 피아노로 연주했던 경험이.
이 한 번의 연주에, 모두 녹아 들어간다.
그렇게 연주를 마치고, 음악을 내려놓았을 때.
“브라보! 브라보……!”
나는, 감탄하는 손님들 사이에서.
구석에서 내 연주를 조용히 바라보던 쇼팽이.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
내 옆에 서 있던 윤성이 내 귀에 속삭였다.
“이쪽으로 오는 건 좋은데, 이유를 모르겠네.”
“저도 그걸 묻고 싶은데요.”
나는 태연함을 가장하면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마에스트로 쇼팽. 좋은 저녁이죠.]”
그런데.
베일을 쓴 것처럼 차가운 그의 용모에.
갑자기, 엷은 웃음이 피기 시작했다.
“[연주를 들으니…….]”
나는 거장의 평을 기다리는 학생이 되어 그의 다음 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사례를 하고 싶어져서.]”
“[아, 감사합니다. 마에스트로.]”
그는 주머니에서 은화를 꺼내 그것을 은컵에 가득 담아 주는 것으로 내게 사례했다.
“[그런데, 혹시 우리 만난 적이 있나?]”
“[아, 아니요. 전혀.]”
나는 터질 듯한 심장 박동을 진정시키려 하면서, 최대한 차분하게 대답하려 했다.
“[굉장히…… 다시 듣고 싶은 연주였어. 그러니, 내 집으로 와 주지 않겠어? 초대장을 보내도록 할게.]”
그가 떠나고 난 후, 귀부인들은 부채로 입을 가린 채 우리를 가리키며 쑥덕거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좌표를 잘못 잡아 불시착한 시간 여행자처럼 그 자리에 붙박인 채 멍하니 한참 동안 서 있었다.
마침내 내 입이 천천히 열렸다.
“정 마에 선생님.”
“왜?”
“장난이겠죠?”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내 모습을 보던 윤성은, 피식 웃고는 나를 잡아끌었다.
“그건 지켜봐야 알지. 그리고, 오늘은 일단 일찍 돌아가자. 우리를 바라보는 관객들한테 우리 정체를 들키면 안 되니까.”
* * *
그가 우리에게 건네고 간 은화는, 우리에게 밀린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충분한 돈이었다.
게다가.
“[당신에게 건네는 초대장입니다.]”
정말로 하인이 전해 주고 가는 초대장을 받는 순간, 나는 순간 정신이 나가는 줄 알았다.
나이프로 봉인을 뜯으니.
음악만큼이나 유려한 글씨체로 써 내려간, 그의 정성 어린 초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 저녁이에요. 마차를 보내겠다는데요?”
“지금 당장 준비해야겠다.”
우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면서.
초대장을 품에 안은 채 마차에 올라타.
푸아소니에 거리 27번지에 있는.
쇼팽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어서 와, 친구. 이쪽으로.]”
그는, 놀랍게도.
나를 친우로 대해 주었다.
“[이거 재미있네. 우리 프릭이 낯선 친구를 자기 집에 데려온 적은 이번이 처음인데.]”
푸아소니에 거리에 있는 쇼팽의 집에는, 평생의 연인인 조르주 상드도 같이 있었다.
착 달라붙는 남성의 정장을 입고.
독한 페르시아식 담뱃대를 입에 문.
퇴폐조차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여인이었다.
“[도대체 누굴까. 당신들은?]”
“[살롱 피아니스트입니다.]”
“[아, 그래?]”
그녀는 상대를 꿰뚫어 보는 듯한 강렬한 시선을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애써 태연한 척했다.
“[잠시만. 둘 다 이쪽으로 와 주겠어?]”
쇼팽이 나를 초대한 이유는 곧 밝혀졌다.
그는, 악보로 나를 인도하면서 말을 이었다.
“[아직 완성하지 못한 연습곡이 있어.]”
쇼팽의 연습곡은.
오랜 시간을 들인, 숙고와 영감의 산물이다.
그는 완성한 악보를 다시 개작하고 개작하면서.
실 한 올 흐트러지지 않은.
천의무봉의 걸작을 만든 것이다.
“[너의 연주를 들으면서, 이 곡을 완성해야겠어.]”
그가 내게 내민 자필 악보를 보자마자.
나는 전율을 참을 수 없었다.
“[……‘겨울바람.’]”
“[하하. 난 내 음악에 그런 거창한 별명을 붙일 생각 같은 건 없어.]”
그 순간, 나는 기억해 냈다.
그가 자신의 음악에 표제를 붙이려는 시도를 얼마나 혐오했는지를.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릴게요.]”
“[아니야. 그래도 나쁘지 않은 시도였어.]”
“[좋아요. 그러면…….]”
나는 현대의 그랜드 피아노에 비해 건반의 폭이 좁은 쇼팽의 피아노에 앉으면서 말을 이었다.
“[연주를 시작할까요?]”
“[물론이지.]”
나는 바로 나의 모든 것을 피아노에 집중시켰다.
주위의 모든 것을 난자하는.
칼날이 된 바람의 묘사를.
듣는 이의 살을 에는 냉혹한 환상을.
무자비한 왼손의 도약을.
거침없이 파멸로 질주하는 하강을.
단두대 칼날 같은 주선율의 화음형을.
그리고, 마지막.
‘허공을 허무하게 할퀴는 상승 스케일까지.’
아, 3년의 시간을 보상받는 기분이다.
비록,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세계가.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당신이, 나의 연주를 듣고 있으니까.’
내게서 한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던 그는.
자신의 악보를 즉석에서 수정하고는.
“[정말 고마워. 하지만, 이만 돌아가 주겠어? 오늘은 이 악보를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우리에게 축객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