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242
242화. 쇼팽 콩쿠르 파이널을 향해
우리는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크리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
“…….”
마침내, 우리를 향해 천천히 돌아선 크리스는.
씁쓸한 미소를 한 번 짓고는.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무언가를 털어 내려는 듯.
갑자기 한참을 웃고는.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말을 이었다.
“[하아. 결국, 이렇게 되었네.]”
“[크리스…….]”
“[괜찮아, 리듬 킴.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녀석은, 그렇게 애써 괜찮은 척을 하더니.
갑자기 내 어깨를 잡고는.
기를 불어넣는 동작을 하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지금?]”
“[뭐 하기는. 나의 기를, 너한테 몰아주고 있잖아.]”
“[탈락자의 기 같은 건 필요 없어.]”
“[너무해애!]”
나는 냉정하게 그를 무시했다.
그런데, 그다음에 벌어진 일이.
크리스의 탈락을, 바로 잊게 만들었다.
“[6번. 데지레 베르나르.]”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천슈메이가 떨어졌다고?]”
천슈메이도 파이널에 올라가지 못한 것이다.
내 옆의 윤성이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너무 아쉽군. 솔직히, 가장 파이널에 갔으면 싶은 피아니스트였는데.]사실, 이번 본선 3차 연주 중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다름 아닌 천슈메이의 것이었다.
그녀가 연주하는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은.
참으로, 긍정적인 의미에서 참혹한 연주였으니까.
‘특히, 마지막 악장이…….’
멜로디라고는 일절 존재하지 않는.
오직, 소리의 광기만으로.
듣는 이를 집어삼켜 버리는 악장.
거기서, 그녀는 자신의 강점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미친 듯한 소리의 광기를 가져가면서도, 동시에 기교까지 잡아낸 민아의 연주만큼은 아니지만.
‘온전히 미쳐 버린다’는 기준에 충실한 그녀의 연주는, 기교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계속 듣고 싶은 연주였다.
그러나…….
[콩쿠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교다. 참으로 불편한 진실이지.]시드니 콩쿠르에서의 그날 이후.
그동안 허무하게 허비해 버린 시간이.
나태하고 방종하게 써 버린 시간들이.
그녀의 완벽했던 기교를 좀먹다 못해.
그녀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결국 그녀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미스 터치가 너무 많아.’
찬란하게 빛나는 천재성으로도 참기 힘들 정도의 미스 터치가, 난곡 중의 난곡인 소나타 2번 연주 막바지에 기어이 터져 버린 것이다.
그녀의 가장 빛나는 순간인 소나타 2번 마지막 악장은, 동시에 그녀가 가장 많은 미스 터치를 토해 낸 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심사위원들은 그 미스 터치를 감지하지 못할 바보들이 절대 아니다.
‘참으로 아까운 재능이지만…….’
‘그녀의 과거 행적을 생각했을 때.’
‘이 기교상의 난점은 참고 넘어가기 힘듭니다.’
나중에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그녀는, 정말로 간발의 차이로 떨어졌다고 한다.
어떤 심사위원은 ‘그녀를 떨어뜨려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나는 몇 자리 건너의 천슈메이에게로 시선을 돌렸지만, 그녀는 끝까지 내게 시선을 건네지 않았다.
“…….”
지금 우리에게 비치는 그녀의 표정은.
후회라는 감정으로 가득한.
슬프고도 허무한 광시곡이었다.
나는, 옆에 민아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부르려고 했지만.
“천슈…….”
[붙잡지 마, 김리듬.]윤성이 바로 나를 제지했다.
[저 순간의 무게는, 오직 그녀 혼자 짊어져야만 해.]그 말이, 나를 정신 차리게 했다.
그 뒤로 이어지는 파이널 진출자의 명단은.
우리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아쉽지만, 파이널 진출자 명단은 여기까지입니다.]”
드디어, 나와 민아, 반서준, 리칭윈이 포함된 10명의 파이널 진출자 명단을 모두 발표한 관계자는.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쇼팽 콩쿠르의 마지막 과정인 파이널은, 17일에 시작될 것입니다.]”
마지막 인사 후, 조용히 퇴장했다.
* * *
파이널 진출자 명단이 발표된 후.
우리는 바르샤바의 한 식당을 빌려.
크리스 커틴슨의 위로연을 열어 주었다.
“[프하하핫! 그때 김리듬 표정 찍어 놨어야 했는데!]”
“[크리스. 우리, 조금만 조용히 먹자. 응?]”
“[아, 알았어, 알았어. 리듬 킴이 원한다면 그래야지.]”
정작 위로연에서 가장 신난 것은 크리스 본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조심스러웠다.
그의 입과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표정만큼은, 전혀 그렇지 못했으니까.
“[크리스. 괜찮아?]”
“[걱정하지 말라니까.]”
“[그래도…….]”
“[괜찮다니까!]”
우리도 적잖이 놀랐지만.
가장 놀란 것은, 크리스 본인 같았다.
한참 동안의 침묵 후.
크리스는 짜내듯 말을 이었다.
“[……조용히 먹고 나가자.]”
“[……그래.]”
그렇게, 침묵으로 일관한 식사가 끝난 후.
숙소로 돌아간 우리는.
녀석이 혼자 있을 시간을 주었다.
“[하아.]”
크리스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결국, 반서준 그 자식이 벌인 일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일까.
“[그것만큼은 아니야…….]”
사실, 크리스도 잘 안다.
결국 파이널에 가지 못한 것은.
자기 자신의 문제임을.
“[흐윽, 흐으윽…….]”
크리스는 팔로 눈가를 가린 채 울었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오직 하나만을 바라보았다.
단 하나의 자리를 위해.
일어나자마자 재활 훈련을 받고.
철저하게 타임 워치를 맞춰 가며 연주에 매진했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는 순간.
그는 다시 깨달았다.
모두가 우승을 원하지만.
누구나 우승자가 될 수는 없다는.
그 단순하면서도 가혹한 진리를.
다시,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 * *
천슈메이는 조용히 자신의 원룸으로 돌아왔다.
“…….”
3차 본선에서 떨어졌음을 알게 된 후.
그녀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바르샤바의 거리를 미친 듯이 헤매다가.
이제야 자신의 원룸으로 돌아왔다.
더 기가 막힌 사실은.
그 오랜 간격의 시간 동안.
어느 누구도 그녀를 찾지 않고.
위로의 전화나 문자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
이제야 뼈저리게 깨닫는다.
자기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좌절당한 날.
그녀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
마침내 원룸으로 돌아온 그녀를 맞이한 것은.
냉동고 속에 처박힌 채 녹아 버린 아이스크림이었다.
열에 들뜬 상태로 연주에 미쳐 있다 보니.
냉동고 문을 제대로 닫지도 않고 나가 버린 탓이다.
‘파이널에 올라가면 먹겠다고 했는데.’
메마른 삶을 살아온 자신에게.
유일하게 긍정적인 기억이었던.
그 달콤한 날의 추억.
유일하게, 어머니의 미소가 아름답게 보였던.
자신의 ‘꿈’을 상징하는 아이스크림.
‘아무 걱정 하지 말고 먹으렴. 오늘은, 그래도 되는 날이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아름다운 기억과 유일하게 결부된 아이스크림이.
지금, 녹아 버린 채 그녀를 다시 반겼다.
마치 파이널에 올라가지 못하고 떨어진 자신처럼.
그녀는 반쯤 녹은 아이스크림을 냉동실에서 꺼내서는, 테이블에 놓은 채 천천히 퍼먹기 시작했다.
“[……맛은 있네.]”
그녀는 녹아 버린 꿈을, 희망을, 추억을 먹는다.
“[맛은…… 흐윽…….]”
자신의 꿈은 녹아 버렸다.
달콤한 추억이, 이제는 다 녹아서 질척거린다.
추억은 달콤하고, 부드럽고, 녹기 쉬우니.
‘추억에 얽매이지 말고, 추억을 믿지 말라.’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저 말만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하고 작은 추억조차 없었다면.
자신은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흐흑…… 흐으윽…….”
자신은, 추억을 바란 죄밖에 없는데.
* * *
천슈메이의 탈락 소식을 듣고도 조슈아 창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는 반서준에 대한 지원을 더 강화했다.
그의 파이널 연습을 지켜보던 조슈아 창은.
연습이 끝난 후, 그에게 통보하듯 말했다.
“[천슈메이는 실패했습니다.]”
반서준은 바로 눈치챘다.
냉정하게 그 사실을 읊조리는 조슈아가.
사실, 지금 누구보다 감정적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결국 여기까지였던 것이지요.]”
어쩌면, 애정이라고 할 수도 있고.
애증이라고 할 수도 있는.
그 둘의 관계는, 이제 끝났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상호 신뢰라고는 단 한 점도 없는.
오직 이해득실뿐인, 반서준과의 관계뿐.
그는 냉엄한 눈동자로 반서준에게 경고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은 절대 천슈메이처럼 실패하지 마십시오.]”
“[그런 걱정 따위를 왜 하는 거죠, 조슈아?]”
“[자만하지 마십시오. 마지막까지 신중하십시오.]”
반서준은 속이 뒤틀렸다.
내가 실패한다고?
내가, 천슈메이처럼 실패하면 안 된다고?
어떻게, 감히 그따위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이, 곧 쇼팽 콩쿠르 우승자가 되고도 남을.
나, 반서준에게?
‘나는, 드디어 완벽한 기회를 잡은 거야.’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 온.
나만을 위한, 완벽하고도 완벽한 무대를 말이지.
그런데, 지금 네가.
나한테, 감히 이런 말을 해?
비틀린 반서준의 입가에서.
곧 이죽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보다 조슈아. 제가 요즘에 꽤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는데 말이죠.]”
“[저는 농담을 즐기는 성격이 아닙니다만.]”
“[아니요. 조슈아도 이 농담을 들으면, 웃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할 거라서요.]”
노골적으로 이죽거리는 반서준의 표정을 보며, 조슈아는 순간 살의를 느꼈다.
그리고 놀랐다.
‘내가, 살의를 느낀다고?’
그것이 그를 아주 조금이나마 흥미롭게 했다.
“[견고해 보였던 중국의 중앙 권력이, 최근 교체되고 수정될 조짐을 보인다면서요?]”
“[그건 당신에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반서준은 순간 움찔 물러났다.
지금까지 감추고, 또 감추었던 살의를 드러낸 조슈아는, 반서준이 ‘감히’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조슈아 창은.
아주 느리게, 그러나 똑바로.
반서준을 향해 걸어가서는 경고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반서준. 지금 당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당신이 누리는 모든 것은, 바로 내가 허락했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을.]”
조슈아가 자리를 뜨자마자.
반서준은 악보를 그가 있던 자리에 집어 던졌다.
“그래, 그렇겠지! 조슈아 창 당신이, 나를 이 자리까지 직접 데려왔으니까! 그랬으니까!”
그는 분을 삭이지 못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하지만, 똑똑히 알아 둬. 조슈아 창, 당신이 나를 계속 이런 식으로 대한다면, 나도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그는 바로 폰을 들고 전화번호를 눌렀다.
순간의 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파멸을 재촉하게 될.
왕린이라는, 절대 손을 잡지 말아야 할.
위험한 인물의 전화번호를.
“[안녕하십니까, 왕린 단장님. 반서준이라고 합니다.]”
반서준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건 채 말을 이었다.
“[아, 제가 전화한 이유요? 단장님께,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좀 알려 드리고 싶어서요.]”
* * *
전수정이 나를 다시 찾아왔다.
임지호, 김가인과 함께.
“헤헤헤.”
“갑자기 무슨 일이야?”
“김리듬. 3차 본선 진출 축하해.”
“그래. 고마워.”
“김리듬. 김리듬.”
“아, 왜?”
“헤헤. 그냥 두 번 불러 봤어.”
역시, 김가인은 김가인이다.
쇼팽 콩쿠르 파이널을 앞두고도.
여전히 제정신이 아니다.
“김리듬. 김리듬. 김리듬.”
“아니. 도대체 왜?”
“그냥 세 번 불러 봤어. 3차 본선까지 통과했으니까.”
그건 대체 무슨 개소리인가요.
그런 김가인의 개소리를.
전수정이 적당히 커트했다.
“축하해, 김리듬. 오늘은 즐거운 소식을 알려 주려고 왔어.”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말을 이었다.
“아, 참. 지금 한국은 저녁이지?”
“그렇겠지. 여기하고 7시간 차이가 나니까.”
“그러면 딱 맞네. 자, 여기 앉아 봐.”
“갑자기 왜?”
“말했잖아. 오늘은 즐거운 소식이 있다고. 정확히는, 너를 위해 준비한 간단한 이벤트지.”
그녀가 나를 위해 준비한 이벤트는, 바로.
― 하하하, 김리듬! 우리의 얼굴이 보이느냐!
― 고된 해외 생활로 얼굴이 많이 삭았구나! 우리는 날이 갈수록 더 탱탱해지는데!
바르샤바까지 못 온 단원들과의 화상 채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