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245
245화. 콩쿠르가 끝난 후
쇼팽 콩쿠르 우승의 희열도 진정되고.
이제, 주위를 차분하게 바라볼 무렵.
나는 나를 인터뷰하기 위해 바르샤바까지 직접 찾아온 김석희 대기자와 두 번째 인터뷰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 시작할까요?”
“네. 물론입니다.”
그는 이제 경의가 담긴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드디어 해내셨군요, 축하드립니다.”
“하하. ‘축하한다’는 말만 100번을 넘게 들었는데, 아직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떨리네요.”
“마에스트로 김리듬은 충분히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지요.”
쇼팽 콩쿠르 우승이 가져다준 가장 큰 변화는, 이제 내 앞에 ‘마에스트로’라는 경칭이 붙는다는 것이다.
그 경칭을 들을 때마다.
나는 더 큰 책임감과 중압감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심사위원들이 그런 말을 하더군요. ‘김리듬의 연주에서는 침착함이 두드러졌다. 마치, 수십 년 동안 음악을 연주한 거장에게 배운 것처럼.’ 그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내 곁의 거장에게 미소 지으면서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그러니까, 거장에게 직접 수학했다는 말이지요?”
“네.”
“어떤 거장에게 수학했는지를 듣고 싶은데요.”
나는, 이제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다.
“일단, 세 분의 스승님에게 음악을 배워 완성했다는 말부터 하고 싶습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첫 손에 꼽을 분은?”
그는 내심 내 입에서 ‘마에스트로 필리프 로제입니다’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필리프 로제 교수님, 정말 죄송하지만.
제게 최고의 스승님은, 오직 한 분뿐입니다.
“마에스트로 정윤성입니다.”
김석희 대기자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아니? 그게 정말인가요?”
“네. 오래전, 그러니까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저를 가르쳐 준 음악 선생님이 바로 마에스트로 정윤성이었습니다.”
이제 김석희 대기자의 눈동자에는.
호기심과 즐거움이 가득했다.
“그거 정말 놀랍군요.”
“여기, 같이 찍은 사진이 있어요.”
나는 그에게 사진을 내밀었고.
김석희 대기자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맞아요. 정말 마에스트로 정윤성이군요. 이제야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네요. 마에스트로 김리듬을 이 자리까지 이끌어 준 사람이, 바로 마에스트로 정윤성이라는 것이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그러면, 두 번째로 큰 영향을 끼친 스승은 바로…….”
“네. 마에스트로 필리프 로제입니다.”
윤성이 나의 80%를 완성했다면.
필리프 로제 교수의 가르침은.
나머지 20%가 완성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의 상식을 초월하는 교습 스타일이 아니었다면.
나는, 쇼팽 콩쿠르 우승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 그리고 제게 여기까지 오는 데 큰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은 한 분이 더 계십니다.”
“마지막 스승이군요.”
“네. 바로, 희성예고의 최선희 선생님입니다.”
때로는 엄격하게.
때로는 다정하게.
나의 뒤에서, 조심스럽게.
내게 보이지 않는 가르침을 주신.
또 한 분의 스승님.
최선희 선생님은, 내가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기 전까지 내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만큼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다음 날.
내게 전화하는 선생님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잔뜩 어려 있었다.
― 정말…… 고맙다, 리듬아…….
‘고맙긴요, 선생님. 제가 더 고맙죠.’
― 그래, 정말…… 수고 많았다…….
“이제 콩쿠르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할 시간이군요. 유독 침착한 모습으로 1차 본선부터 파이널까지 일관하셨는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나요?”
‘기자님도 저 같은 인생 3년 동안 사시면 멘탈이 티타늄이 안 될 수가 없습니다’라고 할 수는 없어서, 나는 적당히 둘러대기로 했다.
“결국 많은 연습이 저를 그렇게 만들어 준 셈이죠. 같은 곡을 연주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내가 그동안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새롭고, 또 새롭게 연습했으니까요.”
“그 말은 믿지 않습니다만, 그 손가락만은 믿지 않을 수가 없군요.”
그는 테이프를 칭칭 감은 내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파이널이 끝난 후에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연주를 마치고 내려온 나의 손가락은.
실금 같은 상처들로 가득했다.
“심사위원들은 또 이런 말도 하더군요. ‘다른 곡을 연주할 때마다, 다른 영혼이 들어가서 치는 것 같다.’ 그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쳐야만 하니까요. 쇼팽은 똑같은 곡은 두 번 다시 작곡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니, 다른 곡을 연주할 때마다 다른 영혼이 되어야만 하지요.”
‘내가 직접 보았기 때문에’ 라고는 하지 않겠다.
그것이 환상인지, 아니면 정말 과거인지는 모르니까.
하지만 그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작곡에 몰입하는 쇼팽은, 형편없는 자기 복제나 안일함을 단 한 순간도 용납하지 않았다는 것을.
“마에스트로 김리듬에게 묻겠습니다. 자기 자신을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무엇이라 하겠습니까?”
“저는 피아니스트입니다.”
아마 10년이 지나도, 아니 수십 년이 지나도 나에 대한 이 정의만큼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휘자이지요.”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계획이신지 물어도 될까요.”
“아직 섣불리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나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마지막 포부를 밝혔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연주하고 싶은 음악은 더욱 많습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조용히 음악만을 생각하면서 지내고 싶어요.”
* * *
나와 민아가 우승과 사랑을 조용히 자축하는 동안, 우리를 둘러싼 바깥에서는 격랑이 일어나고 있었다.
“리칭윈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어. 육체적으로도,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그래서 리칭윈도 입상자 콘서트에 참석할 수 없었다.
무너져 내린 리칭윈을 냉엄하게 내려다보던 왕린은, 전화로 본국에 조용히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중국의 모든 사정기관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그들이 뽑아 든 칼이 노리는 대상은, 바로.
공산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인 그의 부친과.
그의 모친이 연결된 텐셴바오보험사.
때맞추어, 중국에서 손꼽히는 권력가였던 중국 공산당 중앙정법위원회 서기가 해임되었다.
바로, 조슈아 창의 외삼촌이었던 인간이다.
“지금 중국에서는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어.”
숙청의 칼날은, 조슈아 창의 모든 것을 매섭게 도려내고 잘라 내기 시작했다.
“국가주석의 지근거리까지 자기 사람을 심어서 권력을 장악하려던 조슈아 창 파벌이 일제히 숙청당했고, 그들의 자금줄인 텐셴바오보험사는 아마 강도 높은 조사 후 해체되어 공중분해 당할 거야.”
전수정의 냉정한 브리핑을 듣는 우리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진 지 오래였다.
“조슈아 창은?”
“바르샤바를 떠나 미국으로 향한 것 같아.”
“미국이라고?”
“헛된 희망을 품는 중이지. 조슈아는 미국에 도착하는 순간 체포된 후, 중국으로 인계될 테니까.”
“중국으로 인계될 거라고?!”
“응. 체포를 피하기 위해 미국 측과 사법 거래를 시도했겠지만, 미국은 그를 받아 줄 생각이 없어. 그를 받아들여서 얻는 이익보다, 그를 중국에 넘겨서 얻는 이익이 더 크니까.”
전수정이 웃는다.
나와 본질적으로 다르게 느껴지는.
그런 류의 웃음이다.
“그렇게 오만하고, 야비하며, 역겨운 인간이 마지막 순간에 추해지는 모습을 보니, 정말 날아갈 것 같아.”
전수정은 진심으로 쾌감을 느끼는 것 같았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반서준은…….”
“반서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마, 김리듬.”
“…….”
“녀석은 이제 모두에게 철저히 버려졌어. 그냥, 없는 것처럼 무시해. 그것이야말로, 그 녀석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결말이니까.”
녀석도 입상자 콘서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며칠 전, 갑자기 사라졌다는 소식만 들었다.
녀석이 사라지는 모습을 본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녀석의 머리칼이 하얗게 세었다고 한다.
그렇고 야비하고, 집요하고, 비열한 방식으로 일관하던 녀석은, 결국 패배를 두려워하는 한낱 인간에 불과했던 것이다.
[너는 항상 실수를 두려워하고, 실패를 두려워하고, 패배를 두려워했지.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일어서서 다시 연주를 했어. 그게 네가 쉽게 넘어지지 않고, 쉽게 쓰러지지 않고, 쉽게 무너지지 않으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다.]‘정말 그럴까요.’
[내 말을 믿어라. 네가 지금까지 겪어 온 시련은, 그만큼 너를 더 강하게 단련시킨 담금질이 되었으니까.]아프고, 힘들고, 주저앉고 싶은 기억들이.
역으로, 나를 더 강하게 만든 것이다.
[반대로 반서준은 너무나도 쉽게 모든 것을 쟁취해 왔어. 빼앗으면 되니까. 그러니, 결국 아주 작고 약한 시련에도 무너질 수밖에 없지 않겠니?]하지만 비열한 방식으로 끝없이 완벽을 추구하던 녀석의 음악은, 어느새 실금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적인 순간에.
그 실금이 녀석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그런데, 전수정.”
“응?”
“서강준하고는…… 잘되고 있어?”
그 순간, 나는 보았다.
항시 침착하던 전수정의 눈동자가.
분명히,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하지만 그녀는 바로 냉정을 되찾았다.
“유준혁이 귀띔했지?”
“……응.”
“하, 그렇게 안 봤는데.”
그녀의 얼굴이.
아주 엷게나마, 붉어졌다.
“저기, 김리듬.”
“응?”
“이 얘기는, 좀 나중에 하자.”
그녀가 주제를 피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묻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 [리듬 군!]
“[아, 로제 교수님!]”
― [정말이지 완벽했어요. 그렇게, 완벽한 프랑스의 에스프리를 진하게 발산하는 쇼팽의 연주는, 정말 오랜만에 들어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제가, 곧 파리로 돌아가서 찾아뵙겠습…….]”
― [농, 농. 그럴 필요 없어요.]
“[네?]”
그리고, 바로 초인종이 울리고.
로제 교수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왜냐하면, 내가 직접 왔으니까.]”
“[교수님!]”
“[오늘만큼은, 나의 제자와 함께 밤을 즐기고 싶어서 직접 찾아왔지요.]”
나는 그날 프랑스 정찬의 진수와 함께.
와인과 코냑의 진수를 미친 듯 맛볼 수 있었다.
* * *
이제, 잔치는 다 끝이 났다.
콩쿠르 일정이 모두 끝난 바르샤바는.
이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고.
우리도,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일단은 파리로.
그리고, 한국으로.
콩쿠르 막바지부터 내 옆에 바싹 붙은 전수정은, 한국에서의 스케줄을 조율하면서 내게 물었다.
“만약 우승해서 돌아가게 된다면, 예술의전당 배유진 부장을 만나고 싶다고 했지?”
“그랬지.”
전수정은 피식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슈퍼 갑질 한 번은 하고 싶겠지.”
“이보세요, 전수정 씨. 갑질이라니요? 당연히 공연 스케줄을 위한 미팅 아니겠어?”
“뭐, 그렇다면 그렇다고 하지.”
이 바닥에서 나와 배 부장 사이의 악연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쇼팽 콩쿠르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돌아온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하, 이제 이틀 후면 돌아가네.”
파리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돌아갈 준비를 했다.
가장 큰 영광을 안은 채 돌아올 나를 위해.
이미 한국에서는 축하 준비가 한창이라고 한다.
그리고, 귀국 전날 저녁.
나는 천슈메이의 전화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