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40
40화. 김가인과 임지호 (2)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진 후, 가장 많이 티격태격하는 단원은 김가인과 임지호라고 한다.
둘은, 정말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음악적 견해 차이까지, 안 싸우는 분야가 없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나는 동물의 왕국을 연상시키는 둘의 싸움을 자제시키면서, 앞으로 나아가려 애썼다.
“그냥 무난하게, 아르스 노바 트리오로 가자. 둘 다 어때?”
으르렁대던 둘의 표정이, 그 순간 확 피었다.
“으아닛? 그건 전혀 생각 안 하고 있었는데!”
“아르스 노바 트리오라…….”
“좋아. 나는 찬성. 나머지 한 명은?”
“내 영혼도 수긍하는 분위기다.”
휴. 간신히 첫 단계 넘겼다.
하지만, 그들과의 실내악은 산 넘어 산이었다.
“그 다음 단계. 레퍼토리는 무엇으로 할까?”
“저요! 이번에야말로 제 안목을 믿어 주세요!”
“그래, 김가인. 무슨 곡을 하고 싶으시죠?”
“멘델스존 어때? 멘델스존의 트리오 1번.”
“오, 멘델스존 좋지! 임지호는 어때?”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가끔씩은, 그런 부드러운 곡으로 지친 영혼을 달래는 것도 좋지.”
“그러면, 멘델스존의 트리오 1번 3악장으로 하자.”
“오케이! 그거 아주 좋아!”
그렇게, 본격적인 연습을 시작하려던 찰나.
우리는 자신 있게 나선 첫 팀의 결과를 전해 들었다.
‘[마드모아젤. 그래서 대체 하고 싶은 게 뭔가요?]’
‘아, 저는…….’
‘[농. 내 말은 그런 게 아닙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여러분들에게 가르쳐 준 거 말고, 본인이 하고 싶은 연주가 대체 뭐냐고요?]’
자신 있게 선발대로 나선 안덕예고의 첼로 강윤경과 피아노 한동우 듀오의 베토벤 첼로 소나타 3번 연주는, 마에스트로 장 포미에르의 신랄한 평가를 받고 침몰했다.
그 사건이 전해진 후, 도전하려는 팀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사실상 도전 과제를 완수할 것으로 여겨지는 후보는, 이강현과 우희경을 중심으로 뭉쳐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비상 퀸텟’과.
“너의 연주에는 영혼을 흔드는 에스프리가 부족하다, 김가인! 그런 연주로는 거장들의 인정을 받을 수 없어!”
“아니거든요? 저는 너무 잘하고 있거든요?”
단합도 안 되고 연주보다 말싸움 하는 시간이 더 긴 것 같은, 우리 ‘아르스 노바 트리오’뿐이었다.
‘와, 첫 번째 과제는 그냥 튜토리얼 수준이었네.’
이제, 이 둘의 말싸움은 통제가 힘든 수준이었다.
악장을 절반 정도 하다가 싸우고.
심하면 30마디도 못 하고 싸운다.
“아니, 누구 돌아가셨어? 이 트리오에서 그렇게 음침한 음색을 넣으면 무슨 맛으로 연주를 하냐고!”
“여기는 좀 더 깊고 진한, 밤하늘의 어두운 성간 물질 같은 음색이 필요하단 말이다!”
“어휴, 퍽이나 그러시겠어요. 남의 소리는 안 듣고!”
“너는 더하지 않느냐! 방금 전 그 악보에도 없는 뜬금없는 템포 변화는 대체 무슨 짓이냔 말이다!”
“이게 바로 아고긱*이거든요? 모르면 가만히 있으시죠?” (*Agogic. 일정한 템포에 미묘한 변화를 주어 다채로운 표현을 만드는 것.)
“그런 멍청한 템포 변화에 아고긱 같은 신성한 단어 붙이지 마라. 제발.”
그렇게, 하루의 반을 싸우고, 반을 연습했지만.
원하는 결과물은 계속해서 나오지 않았고.
이제 김가인과 임지호는, 진짜 싸울 기세였다.
보다 못한 나는 기어이 목소리를 높였다.
“둘 다 그만!”
개와 고양이의 싸움이 멈추었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선언했다.
“잠시 바다로 나가서, 머리 좀 식히고 오자.”
“응?”
“기분 전환 좀 하자고. 이대로 가면 될 것도 안 되겠어. 잠시 바닷가로 가서, 발 한번 담그고 오자고.”
임지호는 충격받은 얼굴을 하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마지막 날까지 연습해도 ‘비상’ 녀석들한테 밀릴 수 있는데, 그럴 여유가 있는 거냐, 김리듬.”
하지만, 김가인은 달랐다.
“나는 찬성. 일부러 수영복 챙겨 왔단 말이야! 이러다 바닷가에는 발 한번 못 담그고 돌아가게 생겼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다.”
“내 말이 맞아! 지금 우리가 하는 꼴을 보면 멘델스존도 혀를 찰 거라고! 우중충한 표정으로 틀어박혀서 음악이나 해 봤자 안 돼! 바다로 가자!”
그렇게 우리 셋은.
마스터클래스가 시작된 지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뜨거운 햇살이 가득한 바닷가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김리듬. 그 복장은 뭐야? 수영복 없어?”
“일부러 안 가져왔지.”
중학교 때 이후로 수영장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진짜로 없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흐응’ 하는 소리와 함께, 김가인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올라가는가 싶더니.
“크하핫! 죽어라, 김리듬!”
“우와악!”
첨벙!
나는 그때 김가인이 그렇게 사람을 바다에 잘 빠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커흑! 김가인……!”
“흐흐흐. 이리 와, 임지호. 이리 오라고.”
“안 된다, 김가인! 나는 태생적으로 몸이 바다를 거부한다는 말이…… 으헉!”
첨벙!
임지호도 들어가지 않으려다 결국 바다에 빠졌다.
강제 입수 당한 지호는, 갑자기 도약해 물귀신처럼 김가인에게 달려들었다.
“너를 침몰시키겠다, 김가인!”
“푸하핫! 꺄하하하핫!”
“그래! 죽어라, 김가인! 임지호, 협공이다!”
“어어, 이거 반칙이야! 어푸우!”
우리 셋은, 그렇게 해방감의 역치에 도달할 정도로 실컷 바다에 빠져들었다.
신나게 두 시간을 태워 버리고 돌아온 우리는, 태워 버린 시간만큼 살갗도 태웠고.
‘일단 오늘은 샤워하고 푹 쉬자’는 약속이 무색하게, 씻고 나오자마자 다시 연습실에 모였다.
우중충한 표정을 얼굴에 주렁주렁 단 채로.
“과제에 대한 압박 때문에, 도저히 쉴 수가 없었어.”
“나도 마찬가지야.”
“너희들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나까지 파멸로 끌려가고 있다. 이제 어쩔 거냐.”
“어휴. 일단은 연습부터 다시 하자. 3악장을…….”
그렇게, 3악장 악보를 펼치고 연습을 하려는 순간.
‘그런데, 왜 우리가 하는 음악이 갇혀 있는 느낌이 들었던 걸까?’
나는, 지금까지 나를 가두고 있던 의문에 꼭 들어맞는 열쇠를 찾게 되었다.
‘아, 그렇구나.’
음악이 갇혀 있었기 때문이구나.
내가, 그리고 우리가.
음악을 이 새장에 가두고 있었기 때문이구나.
그렇다면, 갇힌 음악을 해방하는 해답은.
‘음악에 뛰어들어 흠뻑 빠져야만 한다. 방금 전에 우리가 바다에 뛰어들었던 것처럼.’
굳어 있던 음표들이 그 순간 생생해지고 확실해진다.
“임지호. 김가인.”
“하아암……. 으, 응?”
“왜 그러냐, 김리듬.”
“지금부터, 나는 내가 치고 싶은 대로 칠 거야.”
“응? 갑자기 그게 무슨?”
“그러니까, 너희들도 최대한 따라오기를 바랄게.”
건반 위로 양손을 올린 나는, 바로 거침없이 음악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빠르잖아!’
그래. 너희들은 아마 그런 생각을 하겠지.
너희들이 급하게 나를 따라붙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엄청난 속도로 3악장을 해치워 나갔다.
믿으니까.
너희들이 따라올 것을 믿으니까.
전해진다.
너희들의 느낌이.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게 아니다. 유연하고 매끄러워.’
‘팍팍 치고 나가는데, 팍팍함이 없잖아? 게다가, 어딘지 모르게 귀엽기까지?’
그렇게, 미친 듯이 음악을 해방시켜 버린 나는.
마지막 음표에서 손을 떼자마자, 두 녀석의 얼굴을 번갈아 살폈다.
어라?
둘 다 왜 이렇게 표정이 굳어 있지?
“김리듬.”
“응?”
“아니다. 이건 김가인이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임지호는, 희한하게도 내가 주도한 연주의 촌평을 김가인에게 넘겼다.
“으음. 뭐랄까. 흐으음…….”
김가인이 이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는 건 생전 처음 보는 일이라, 나는 자연스럽게 긴장했다.
“정말이지, 과즙미 넘치는 연주였어.”
“…… 응?”
“어떻게 이런 연주를 생각한 거야? 너, 우리 모르게 따로 연습이라도 하는 거야?”
“정말 놀라웠다, 김리듬. 네가 이런 연주를 떠올릴 줄은 몰랐어.”
두 사람의 얼굴에는, 어느새 매료라는 감정이 꽉 차 있었다.
* * *
마침내, 결전의 날이 왔다.
“우리를 버린 김리듬. 미안하지만, 승리는 우리가 가져가겠어.”
“아, 하하하.”
이렇게 ‘아르스 노바’ 트리오를 도발한 ‘비상’ 퀸텟의 연주는, 솔직히 말해서 썩 괜찮았다.
그들은,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 2악장을 최선을 다해 연주했고.
평가를 위해 모인 4명의 마에스트로 또한, 나쁘지 않은 표정으로 연주를 끝까지 완청했다.
“[좋은 연주였어요. 다들 수고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에스트로.”
“클라리넷 괜찮네. 찍찍대는 소리도 없고. 나쁘지 않았어요.”
그렇게, ‘비상’ 퀸텟은 승리감 가득한 표정으로 무대를 내려갔고.
마침내 ‘아르스 노바’ 트리오가 무대에 올랐다.
“‘아르스 노바’ 트리오. 연주곡목은 멘델스존의 피아노 트리오 1번 라단조의 3악장입니다.”
연주를 참관 중인 거장들 옆에 있는 전수정은, 레이첼 포저 옆에 앉아 그들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좋아요. 그러면, 연주 시작하세요.]”
무대 위의 김리듬은, 연주를 시작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임지호, 김가인과 시선을 교환한 후.
‘자, 이제 실컷 달리자.’
음악이라는 이름의 새를, 새장에서 풀어 버렸다.
♪♪♩―!
그것은 마치, 뜨거운 여름 태양 같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동해 바다의 파도 같은.
풍덩 빠지고 싶은 바닷물 같은.
그런 멘델스존.
‘정말, 김리듬.’
전수정은,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광합성을 과도하게 한 듯한 ‘아르스 노바’ 트리오의 모습에 한 번 웃었고.
‘도대체 너라는 녀석의 한계는, 어디까지인 거지?’
방금 전 연주와는 달리 이 연주에 눈을 반짝이며 청취하는 거장들의 모습에 다시 한번 미소 지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엄청난 속도로 멘델스존의 트리오 1번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치웠고.
“Bravi!”
연주가 끝나기 무섭게 터진, 장 포미에르의 환호와 박수 소리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잠시만, 잠시만.]”
하지만 굳은 표정으로 일어난 레이첼 포저는, 전수정에게 마이크를 넘겨받아 김리듬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르스 노바’ 트리오에게 묻고 싶군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연주를 해냈죠?]”
“어, 그게…….”
김리듬은, 연주할 때의 태연자약한 표정과는 반대로 굳은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 어제, 연주가 풀리지 않아서 바닷가에 나가서 마음껏 파도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Uh, Huh.”
“그렇게 정신없이 달려가서 바닷물에 뛰어들고, 바닷물도 좀 마시고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좀 가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연습은 안 하고 바다에서 놀았다는 얘기군요?]”
“……네. 그렇기는 합니다.”
“[그러면, 이런 연주를 완성한 계기가 ‘삶을 바캉스처럼 즐겨라’였나요?]”
“아니요, 아니요! 어…… 그러다 보니, 뭔가 느껴지는 게 있었습니다.”
“[무엇을 느꼈나요?]”
“음악 속으로 뛰어들어 흠뻑 빠져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희가 바다에 풍덩 뛰어들면서 해방감을 느낀 것처럼요.”
전수정이 통역해 주는 답을 전해 들은 레이첼 포저는, 굳은 표정으로 풀고 만면에 미소를 띠면서 천천히 총평을 내리기 시작했다.
“[리듬 킴. 이 3악장의 악상기호를 기억하나요?]”
“Of course, Maestra. Leggiero e vivace(레지에로 에 비바체. 귀엽고 경쾌하게)입니다.”
“[잘 알고 있군요. 솔직히 말하자면, 따사로운 봄볕보다는 지중해의 뜨거운 여름 태양이 더 강하게 느껴졌던 연주였지만…….]”
그녀는, 비구름이 걷히고 나타난 햇살처럼 환한 웃음과 함께 말을 이었다.
“[놀랍게도 Leggiero e vivace의 요건을 충족하는 연주였습니다. Summa cum laude, Ars Nova Trio(수석 합격 축하해요, 아르스 노바 트리오)!]”
* * *
그 파문이.
아주 천천히 퍼져 나가서는.
점점 강렬하게 우리 세 사람을 흔들었다.
마치 크레셴도처럼, 아주 약하게 시작하지만.
결국 심장을 터뜨릴 듯 강렬하게.
“우와! 우와! 우와아아아아앜!”
“우리가 해냈다! 우리가 해냈어! 엉엉엉……!”
“우리가 운명을 극복할 줄이야……!”
정말, 그 순간의 우리는.
콩쿠르 우승한 것처럼 얼싸안고 기뻐했다.
다른 거장들도, 이런저런 코멘트를 붙여 주는 것은 잊지 않았지만, 칭찬 또한 아끼지 않았다.
“썩 괜찮았어요. 내 코레페티터를 시켜 보고 싶은 연주이기도 했고.”
“가, 감사합니다! 신혜경 선생님!”
나는 그녀의 칭찬에 90도 폴더인사로 답례했다.
“진심인가 보네, 리듬 군?”
“아, 하하하. 그건 아직…….”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넘겨받은 최시현은, 나를 대놓고 콕 집어 이렇게 말했다.
“역시, 제 안목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렇죠, 김리듬 학생?”
그는 지금, 나에게 Summa cum laude를 주었던 마스터클래스 얘기를 하는 것이다.
나는 씩 웃으면서 이렇게 답했다.
“물론입니다, 마에스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