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48
48화. 첫 연주회 (1)
강준을 포함한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형형한 눈빛으로 단상 위의 노민탁을 포위했다.
일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 척하면서 몰래 돌아와 노민탁이 이곳으로 기어들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단원들은, 얼마 전부터 학교 주위를 어슬렁거리면서 비품과 간식거리를 훔쳐 가는 이 인간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드디어 잡았네. 이 쓰레기.”
“그런데, 이렇게 오래 기다릴 필요가 있었던 거야?”
“당연하지. 저 인간의 목적은 저 피아노를 테러하는 거였으니까. 물증이 남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거든.”
서강준 바로 뒤에 서 있던 전수정이 대답했다.
“피아노 테러라고? 설마, 연주회를 망치려고?”
“우와, 저거 진짜 나쁜 놈이네!”
“김리듬 중학교 때 괴롭힌 선생이라며? 어떻게 자기 제자 앞길을 저렇게 망치려 들 수 있어?”
얼굴이 일그러진 노민탁이 들고 있던 폰에 손을 대려는 순간, 전수정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경고했다.
“지울 생각 하지 마, 노민탁 씨. 그 스마트폰, 당신이 무슨 짓을 해도 내가 반드시 복구시킬 테니까.”
전수정의 목소리가 어찌나 차갑게 들리던지.
순간 노민탁이 멈칫하는 게 보였다.
그 틈에, 민첩한 단원 몇 명이 단상 위로 올라가 스크럼을 짜고 포위했다.
“자, 얌전히 오라를 받으실까.”
“그렇게는…… 못 해! 이 애새끼들아!”
그는 스마트폰을 꽉 쥔 채, 단원들을 밀치고 도망치려 했지만.
“아아악!”
벽력같이 달려든 김우진 실장에게 제압당했다.
단순한 영업 사원이라고 하기에는 기겁할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잡았습니다, 아가씨. 어떻게 할까요?”
“일단 허튼 짓 못 하게 꽉 붙잡고 있으세요.”
“이거 놔! 너희들 다 고소할 거야! 놓으라고!”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 처참한 몰골이 더 확연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김우진 실장과 서강준은 이 인간이 옴짝달싹 못하도록 꽉 붙들었다.
노민탁의 입에서는 끊임없이 험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인간이 입을 열 때마다 불쾌한 냄새가 자꾸 퍼져서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이 새끼들! 내가 누군지 알아! 어! 너네,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냐고! 다 죽여 버릴 거야!”
“누군지 알지. 도박에 찌든 실패한 인생이잖아.”
전수정은 바닥에서 버둥대는 그에게 차갑고 냉혹한 태도로 쏘아붙였다.
“내가 당신에 대해서 좀 알아봤는데, 내가 딱 경멸하고 혐오하는 스타일의 인간이더라고.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약한 인간한테는 악랄하게 굴면서,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세면 일관되게 굽실거리는, 조직에서 축출하는 게 답인 인간.”
“너, 젖비린내 나는 고등학생 주제에……!”
“내가 어디 가서 내 자랑은 잘 안 하는데, 똑똑히 알아 둬. 나, 너 같은 인생 패배자하고는 사는 급이 틀린 사람이야.”
나는, 지금까지 전수정이 이렇게 개인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사실 말이야. 나는 왜 지금까지 김리듬이 자기 실력을 못 드러냈는지 궁금했어. 그런데, 당신이라는 인간을 조사하다 보니 답이 나오더라고.”
나는 옆에서 그녀의 눈동자를 흘끗 봤다가.
바로 시선을 피했다.
노려보는 대상을 눈빛으로 도려내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불법으로 악보를 강매하고, 뒷돈 받고, 자기 눈 밖에 난 학생들은 철저하게 찍어서 매장시키려 들고.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우리 학교 입학시험을 통과한 김리듬이 대단한 거였더라고.”
덜컹.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리고 경찰들이 들어왔다.
“신고받고 출동했습니다. 학교에 무단으로 침입했다는 사람이 이 사람입니까?”
“네. 학교 무단 침입에, 재물 손괴에, 스토킹 범죄까지. 그리고…….”
전수정은 출동한 경찰들의 귓가에 뭔가를 속삭였다.
경찰들도 뭔가를 확인하더니,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 완료했습니다. 저번에 신고 들어온 절도 용의자가 맞는 것 같네요. 신고 감사합니다.”
곧 형사 한 명이 다가가 노민탁의 팔에 은팔찌를 채웠다.
그럼에도, 그는 끌려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추하게 굴었다.
“이거 놔! 나는 시켜서 했을 뿐이야! 이것만 해 주면 입금해 준다고 했단 말이야! 난 잘못 없어! 잘못 없다고!”
“변명은 됐고. 같이 서로 따라가시죠.”
노민탁은 이미 전과가 상당했다.
내가 다니던 광현예중에서는 쫓겨난 지 오래였고.
무단 침입에, 재물 손괴에, 스토킹 범죄까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상습특수절도혐의에 특수폭행혐의까지 있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쌓아 올린 업보가 결국 터져 버린 것이다.
정윤성도, 만일 육체가 있었다면 주먹이라도 날렸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거 진짜 사람 새끼 아니다. 인두겁을 쓰고는 저런 짓 못 해. 내가 확 저주라도 내려서…….]“그러지 마요. 마에스트로.”
[왜, 김리듬. 나 정도 망령이라면 저깟 것한테 저주 내려서 지옥으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그러면, 마에스트로가 만드는 음악도 물들잖아요.”
그는 저주를 내리려던 손을 떨구었다.
“손댈 가치도 없는 쓰레기예요. 그냥 법의 심판을 받도록 내버려 둬요.”
하지만 윤성은 기어이 저 쓰레기에게 저주를 내렸다.
[그래도 탈모 정도는 괜찮잖아?]“…….”
여러분, 망령이 이렇게 잔인하고 무섭습니다.
* * *
대부분의 학생들이 돌아간 후.
나와 정윤성은 피아노를 살피면서 그 인간이 구체적으로 무슨 짓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보기만 해도 흉해 보이는 저주물이 든 봉지가.
내 피아노 현 안쪽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반서준 짓이지요, 이거?”
반서준은 해외에 있으면서 노민탁에게 돈을 부치고.
돈을 주는 대가로 이 저주물을 내 피아노에 붙이도록 한 것이다.
그 저주물은 걷어 냈지만, 저주의 검은 흔적은 내가 연주할 피아노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김리듬. 아무래도, 이 피아노로는 연주하지 않는 게 좋겠다.]윤성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저주, 생각보다 더 강해. 내가 힘을 쓴다고 해도 저주의 잔재가 남아서 너에게 어떤 위해를 가할지 몰라. 차라리 다른 피아노를 찾자.]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마에스트로. 지금 이 피아노만큼 나와 잘 맞는 피아노는 없어요.”
[고집 부리지 말고.]“마에스트로도 알잖아요. 피아노는 기계가 아니라는 거.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천천히 내 몸처럼 익숙해진다는 거.”
[그래서? 이 피아노가 네 손가락에 해를 입혀도 괜찮을 거라는 얘기야?]“그리고.”
나는 음절 하나하나에 힘을 실어 또박또박 말했다.
“이까짓 쓰레기 같은 저주 때문에, 반서준에게 지고 싶지 않아요.”
[너, 생각보다 무척 무모하구나.]“마에스트로를 믿으니까요?”
긴장한 내 얼굴이 이완하면서,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 이 피아노에 걸려 있는 저주, 마에스트로 정도라면 파훼 가능하죠?”
[대부분은 가능하지만, 완벽하게는 못 해. 그래도 할 거냐?]“네.”
[고집은, 정말.]그는 결국 내 고집에 굴복해 피아노에 앉았다.
[바흐 연주로 저주를 풀 거다.]“바흐요?”
[옛사람들은 음악에 힘이 있다고 했지. 음악과 텍스트에 실려 표출되는 감정이 실제 축복과 저주가 될 수 있다고 믿었어. 마치 소설이 실제가 되고, 우리가 책 속의 누군가가 되는 것처럼 말이지.]그는 천천히 건반을 누르며 바흐의 음악을 연주했다.
[바흐는, 그런 차원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음악이야.]그런데, 잠시만. 이 음악.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는데……?
아, 그래. 기억이 난다.
저번 여름방학 합숙 때 스치듯 지나치면서 들은 기억이 있다.
내 입술이 움직이며, 그 신성한 음악의 거룩한 이름을 천천히 읊었다.
“아담의 죄로 인해 모든 인간이 타락했으나(Durch Adam’s fall ist ganz verderbt).”
바흐 작품번호(BWV) 637번.
바흐가 작곡한 코랄 중 가장 기묘한.
죄로 인한 타락의 과정을 집요하게 묘사한 곡.
그러나, 음악이 여기서 그친다면 우리는 영원히 저주의 시간에 갇혀야만 할 것이다.
그 짝을 이루는 구원이 당도할 시간이다.
[이제 우리에게 구원이 이르렀도다(Es ist das Heil uns kommen her).]작품번호 또한, 앞의 곡과 짝을 이루는 BWV 638번.
집요한 저주의 검은 반점들이 윤성의 연주를 통해 천천히 씻겨 내려간다.
영원한 한 짝을 이룰 수밖에 없는.
타락과.
구원.
그 대극의 주제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라는 작곡가의 손에서 나와.
3백 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 유령의 연주를 통해.
저주받은 악기를 치유하는 음악이 된다.
마침내, 악기에서 검은 반점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유령도 건반에서 자신의 투명한 손가락을 떼었다.
[후우.]“괜찮아요, 마에스트로?”
[저주 파훼하려다가 내가 성불할 뻔했다.]그의 모습이 너무 희미하다.
나는 처음으로, 그가 갑자기 이렇게, 그릇에 묻은 얼룩을 슥 닦아 내듯 소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내 생각을 읽었는지 픽 웃으면서 그 투명한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톡 밀었다.
[김리듬. 얼굴 펴. 아직은 아니니까.]“알아요, 마에스트로. 적어도 저 90살 생일잔치까지는 같이 있을 거죠?”
[그딴 저주 걸지 마라. 불길하게시리. 90살 먹은 김리듬 얼굴 보느니 차라리 성불하고 만다.]“아니, 진짜! 사람이 걱정을 해 줘도!”
* * *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리허설을 하는 동안에는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수정은 대강당, 특히 피아노 경호를 강화했고.
나를 비롯한 단원들도 사실상 학교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비상시를 대비했다.
윤성은 마지막까지 인상을 쓰면서 경고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어. 저주를 완벽하게 파훼했다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연주하다가 네 손가락이 갑자기 꺾이거나, 피아노 덮개가 갑자기 내려와서 네 손목을 부러뜨리는 일은 절대 없을 거다.]“고맙습니다, 마에스트로.”
나는 웃으면서 뒷말을 덧붙였다.
“이 연주회, 생각보다 멋진 연주회가 될 것 같아요.”
[어휴, 노답.]그런 와중에.
까톡.
민아에게서 카톡이 왔다.
그녀의 카톡에는, 여름방학 합숙 때 전수정과 내가 같이 찍힌 사진이 있었다.
아니, 그것보다 도대체 저거 누가 찍은 거야.
― 사진 잘 나왔네. 김리듬 씨.
― 전수정과의 진지한 음악 토론이었습니다.
― 아 그러시군요?
그녀는, 한 장의 사진을 더 보내면서 다시 나를 추궁했다.
― 하지만 김가인이 네게 꽃새우 강정을 먹여주는 이 사진은 거짓말을 못 하는구나!
― 합성입니다;;
어떤 놈이야. 저거 찍은 거.
진짜 진지하게, 색출이라도 해야 하나?
― 꽃새우 강정이라니! 어떻게!
― 저거 먹고 입천장 벗겨지는 줄 알았어 김가인이 억지로 집어넣은 거라고
― 그렇군. 하지만 네가 합리적으로 김가인의 행동을 방어하지 못한 게 원인이 아니었을까?
커피 마시다가 혀나 데라, 라고 쓰려다가 참았다.
― 어쨌거나 연주회가 코앞이라고 들었는데
― 저번에 알려준 대로 내일이야
― 그래 내일 송출되는 유튜브를 잘 감상하겠다
― 내 정보 업데이트는 왜 그렇게 빠른 거야
전수정이 맨 처음에 유튜브 송출을 제안했을 때는 나도 의구심이 들었지만, 디센스가 편집한 티저 영상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녀들이 유튜브에 올린 나와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의 티저 영상은, 당일 조회수 1만을 기록한 후 그칠 줄 모르고 치솟는 중이다.
놀라운 기록이었다.
클래식 음악 관련 영상에서, 그것도 예고생들의 영상에서 이 정도 조회수면 정말 군계일학이니까.
게다가, 앞머리에 헤어 롤을 대롱대롱 매단 채로 첼로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김가인이나.
단체로 안대를 차고 객석에 누워서 잠을 청하는 단원들의 초췌한 영상은, 요즘 우울할 때마다 보면서 기분 전환하기에 딱 좋다.
― 듣고 평가해주겠어 너의 실력
― 그러면 고맙지
그렇게.
무더운 여름날.
내 인생의 첫 연주회가, 이제 내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