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69
69화. 촬영의 계절은 끝나고 (2)
“빨리 뛰어, 김리듬! 희재 선배도!”
늦지 않게 도착했다.
“후우. 뛰니까 기분 좋지 않아, 김리듬?”
“전혀, 후우, 아닌데요. 희재 선배.”
[둘 다 정신 차려. 지금 너희들이 집중해야 할 건 마지막 화 촬영이야. 그 악령 생각은 나중에 해.]“알고 있어요.”
“아, 물론이죠.”
반서준에게 붙은 악령이.
이사장님의 쌍둥이 자매라는 사실은 충격이지만.
‘지금은 촬영에만 집중해야 해.’
지금은 촬영에만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지금부터, 우리는 마지막 화의 마지막 콘서트 촬영을 시작해야 하니까.
* * *
하지만, 마지막 화 촬영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NG!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감독님!”
평상시와는 다르게, NG가 계속 터진다.
[다들 심하게 피곤해 보이는데.]윤성의 말이 맞다.
스태프들의 얼굴에,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격렬한 피로감이 드러난다.
‘그래도,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어.’
이미 내가 해야 할 연기는 다 마쳤고.
이제 촬영은 마지막 화의 마지막 장면인,
베토벤 교향곡 9번 연주 장면만 남았다.
주인공 박현성이 포디엄 위에 서서.
마지막 공연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장면.
주인공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집중하기 위해.
거창한 벽등들이 그의 머리 위에 달려 있다.
‘시간이 흐른다.’
태초의 순간에서부터 흐르는 듯한.
언어의 표현을 뚫고 튀어나오는 듯한.
그 장엄한 음악이 흐르는 순간.
끼이익.
박현성의 머리 위에 달린 벽등의 나사가.
불길한 소리를 내며 기울어졌다.
피곤에 절은 스태프의 부주의 때문에.
벽등이 잘못 설치된 것이다.
그리고, 그 음악이 격렬한 파국이 되는 순간.
콰지직!
벽등이, 박현성을 향해 추락하고.
“꺄아아악!”
비명 소리가 터졌다.
“허억!”
“김리듬?”
눈을 뜨자, 촬영 직전의 촬영장 모습이 비쳤다.
촬영장에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이 흐르고.
희재 선배의 얼굴이 보인다.
“괜찮아, 김리듬?”
“무슨 일이야?”
어느새, 박현성도 다가와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히 박현성은, 천장에서 떨어진 벽등에……?
“김리듬, 정말 괜찮아?”
그의 얼굴에 노골적인 걱정이 묻어 있었다.
내 본능이 머릿속에서 소리쳤다.
지금 당장 말해야 한다고.
“벽등…….”
“응? 벽등이 왜?”
“벽등이…… 부실해요. 스태프 분이 부주의하게 설치해서, 굉장히 부실하게 달려 있을 거예요. 지금 당장이라도 떨어질 수 있어요.”
“김리듬, 진정해.”
박현성은 나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희재 선배의 시선은 달랐다.
“부탁해요, 박현성 씨. 감독님께 말씀드려서, 다시 한번 확인해 주세요. 꼭이요.”
“그래. 알았어. 걱정하지 말고.”
현성은 전상국 감독에게 다가가 내 말을 전했고.
전상국 감독은 조명 감독을 불러 확인하게 했다.
곧 그쪽에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니, 형님. 확인 끝났다니까요?”
“혹시 모르니까 다시 확인해.”
“젠장할. 대체 나를 뭘로 아는 거야! 애새끼 말만 믿고.”
그렇게, 조명 감독이 사다리를 가져오게 해 스태프에게 벽등을 확인하는 순간.
끼릭. 끼이익!
벽등이 불길한 소리를 내며 아래로 떨어지려 했고.
거기 있는 모두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 * *
“죽고 싶냐, 너?”
“……죄송합니다.”
“확인이 끝나? 벽등이 떨어지기 직전이었는데, 뭐? 확인이 끝나? 이런 미친 새끼가.”
지금 전상국 감독의 표정은, 내가 본 사람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무섭다.
방금 전까지 뻗대고 난리치던 조명 감독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변명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 당장 박현성 씨하고, 김리듬 군한테 사과해.”
그는 죽상이 된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정말…… 죄송합니다, 박현성 씨. 제 부주의입니다. 그리고 김리듬 학생, 정말 미안하게 됐네.”
“아닙니다.”
“……촬영 재개하죠.”
현성은 조명 감독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앞으로 그는, 이 바닥에서 힘들 것이다.
“괜찮겠어, 현성아? 점검 싹 하고 연기해도…….”
“괜찮아.”
딱딱하게 굳었던 현성의 표정이.
나를 바라보는 순간 부드럽게 풀렸다.
“김리듬만 옆에 있으면, 아무 일 없을 테니까.”
그 순간부터, 꽉 막혀 있던 촬영은 마지막 커트 사인이 떨어질 때까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컷!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아, 드디어 끝났다!”
드디어.
모든 드라마 촬영 일정이 끝났다.
마치, 방금 전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이.
재앙을 깨끗하게 씻어 버린 무언가가 된 것처럼.
마지막 연기를 마친 박현성과 김세린에게는, 합격 목ㄱ…… 아니, 축하의 꽃다발이 주어졌다.
“정말 수고 많았어요, 현성 씨. 세린 씨.”
“백아현 작가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뭘요. 감사는 내 생애 최고의 연기를 보여 준 우리 두 사람이 받아야지.”
“아이고. 다들 고생 많았어요! 우리 현성 씨, 세린 씨! 한번 안아 봅시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감독님. 다음 작품도 저 뽑으실 거죠?”
“하하하하. 콜만 주면 바로 픽해야지! 우리 톱스타 김세린 씨께서 출연하고 싶으시다는데!”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아, 유경 양도 수고했어요.”
기쁨이 3분의 1.
해방감이 3분의 1.
감격이 나머지 3분의 1.
여기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통계 내면 이럴 것 같다.
나는 꽃다발을 든 박현성 앞에 섰고.
그는, 나를 끌어안았다.
“김리듬. 네 덕에 이 드라마가 완벽할 수 있었어.”
“수고했어요, 박현성 씨.”
“자, 바로 종방연으로 직행하시겠습니다! 셔틀버스 있으니까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거기 타시고요!”
어쩌다 보니, 나는 단원들을 실어 나르는 셔틀버스에서 희재 선배 옆에 앉게 되었다.
“연주 멋졌어, 김리듬.”
“선배도요.”
후시 녹음만큼 현장 녹음의 비율이 많은 촬영이라, 촬영 기간 내내 정말 쉽지 않았지만.
이제 잘 알겠다.
같은 장소에서 연기자와 대역이 호흡하며.
감정의 일치를 통해, 마침내 ‘같은 사람’이 되는.
그 촬영이 얼마나 경이로운 결과를 만드는지를.
“그런데 김리듬, 괜찮아?”
“네? 저는 괜찮은데요. 좀 피곤한 것만 빼면.”
“아니, 방금 전 박현성에게 경고하던 네 표정 말이야.”
그는 내게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말을 이었다.
“마치, 무서운 미래를 본 것 같았거든.”
* * *
박현성과 김세린이 나를 차지하다 못해 두 개로 나눠 가질 기세였던 종방연이 끝난 후.
나는 윤성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듣다가 박현성이 떨어진 벽등에 중상을 입는 미래를 봤다, 그거지.]“네. 정 마에.”
[김리듬. 너 혹시,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니?]잠시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다.
소멸하기 직전이던 희재 선배의 음이 들려준.
그의 고통스러운 과거의 모습.
“조금 다르지만, 있었어요.”
[이건 정말 희귀한데. 음악이 그의 기억을 들려주고, 그 음악에 실릴 미래까지 보여 준다니.]사실, 지금도 감정이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베토벤 교향곡 9번에 실린 미래를 보지 않았다면.
아마 박현성은 두 번 다시 연기를 하지 못했을 테니.
[잘만 하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네. 앞으로 있을 일정에서도.]“네?”
[드라마는 종영했지만, 이제 다른 일정이 시작될 테니까.]“아니, 당장 방송국에서 뭔가 할 게 없잖아요. 시즌 2는 찍지 않는다고 했고…….”
[드라마는 찍지 않지만, 다른 게 있지.]그는 눈을 치켜뜨며 나를 보았다.
[드라마국은 새 드라마 준비를 하거나, 아니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시즌 2 준비를 위해 체제를 변경하겠지! 하지만 방송국에는 드라마국 말고도 다른 부서가 또 있어. 바로 예능국과 교양국이라고.]“그렇다는 얘기는…….”
[그래. 바로 그거다.]윤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내놓았다.
[다음 차례는, 예능 아니면 다큐멘터리다.]* * *
TBS 중역 회의실로 가는 드라마국장 나경환은 만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왜 아니겠는가.
고심 끝에 삼고초려한 전상국 감독과 백아현 작가.
최고의 픽이라고 하기는 힘든 박현성과 김세린이.
자신에게 역대급 성공을 안겨 주었으니.
“안녕하세요, 국장님.”
“어이고, 반가워요. 다들 잘 지내지? 허허.”
사내 직원들도, 화창한 봄날 같은 표정의 나 국장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어이고, 다들 먼저 오셨습니까. 내가 좀 늦었어.”
“뭐 하느라 이렇게 늦어. 체력도 좋은 놈이.”
TBS 예능국장 윤석웅이 짜증스럽게 물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로 초대박이 터진 드라마국과 달리, 론칭하는 것마다 족족 말아먹는 예능국의 상황이 그대로 반영된 표정과 인사였다.
“매일같이 마라톤 회의 하느라 그렇겠지. 축하해, 나 국장. 드라마 정말 잘 뽑혔던데.”
“고마워, 차 국장. 거참, 다 같이 잘되어야 하는데. 허허.”
예능국장과는 달리, TBS 교양국장 차태주는 진심이 담긴 표정으로 드라마 국장에게 축하 인사를 보냈다.
그렇게 간단한 인사가 오간 후.
마침내, TBS의 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아, 다들 있었구만. 앉아요, 앉아.”
TBS 대표이사 양일기.
‘드라마 왕국’ TBS를 일궈 낸 입지전적인 사내.
“일단, 이번 드라마 축하부터 해야겠어. 나 국장. 정말 수고 많았어.”
“사장님이 도와주신 덕이죠. 허허.”
나 국장이 사장에게 인사하는 동안, 예능국장은 교양국장을 향해 입모양으로 ‘저놈 또 아부 떠는 거 봐라’라고 쏘아붙였다.
“그러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느슨하던 분위기가, 그 순간 꽉 조여졌다.
“이번 가을 시즌 작품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잘되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전작인 ≪오후의 여름 정원≫ 성적이 조금 아쉬웠는데, 이번에 말끔하게 만회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 말인즉슨.
“뭐, 연장이나 시즌 2를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전상국 감독도 백아현 작가가 워낙 단칼에 거절해서 말이지. 허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양일기 사장은 태연하게 말했지만.
국장들의 표정은 조금씩 굳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줄여서 ≪죽. 왕. 파.≫의 흥행은 정말 놀라운 수준이에요. 우리 딸애가 말이지, 원래 우리 회사 드라마를 잘 안 보거든? 자기 취향에 안 맞는다고 말이야. 그런데, 이 애가 이번 우리 드라마에 갑자기 미치더라고. 내가 늦게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면 오늘 드라마 쩔었다면서, 자기가 직접 인물 관계도까지 정리를 해서 나한테 보고를 하지 뭐야. 허허허.”
일단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회의 때마다 무한 반복되는 딸 이야기.
세 국장의 머릿속에 ‘오늘은 30분 걸리겠군.’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래서, 연이어 이어지는 따님의 학업성취도와 요즘 마음에 드는 남자사람친구 관련 고민, 앞으로의 취업 걱정과 사소한 취향까지 시시콜콜하게 듣고 난 후.
“그런데 말이지, 딸애가 어제 나한테 그러더라고. ‘아빠. 저거 끝나면 이제 뭐 할 거야?’”
드디어.
양 사장의 입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 떨어졌다.
“그 말을 들으니 이게 생각나지 뭡니까. ‘아, 이 흐름을 이어나갈 방도를 찾아야겠구나.’”
그렇다.
지금 TBS는, 드라마로 급격한 상승 기류를 탔다.
이것을, 절대로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그러니, 이 흐름을 이어 나갈 방도를 찾아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네, 네네. 그래야지요…….”
“물론입니다. 사장님…….”
양일기 사장이 앉아 있는 의자에 편하게 몸을 기대자, 의자 받침대에서 끼이익 하는 소리가 크게 났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마음대로 소리를 낼 수 있는 자의 특권을 과시하는 순간이자.
휘하 국장들에게 가하는, ‘당장 새 먹거리 좀 내놔 봐라. 아무것도 없으면 알지?’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 순간.
“사장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아, 차 국장이? 어디 기탄없이 말해 봐요.”
드라마 나 국장과 예능 윤 국장도 ‘네가 여기서 왜 나와?’ 라는 표정으로 차태주 국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정리해 놓은 노트를 살펴보면서 나긋나긋하지만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이번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촬영에 희성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이 많이 동원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제가 드라마하고 같이 사람들의 반응을 봤는데, 이 아이들의 인기가 괜찮더군요. 일일이 아이들을 찾아서 정리해 놓은 카페도 있더라고요.”
“흠. 무슨 얘기인지 알겠어요.”
“특히, 주인공 박현성의 연주 대역을 맡은 김리듬이라는 학생은 전부터 그쪽에서 꽤 유명하더라고요. 마치 귀신 들린 듯한 연주를 들려준다고요.”
“호오. 그래요?”
“클래식 음악이라는 마이너한 분야로 이런 공전의 히트를 쳤으니, 김리듬을 중심으로 한 예술고 학생들의 실제 모습을 가감 없이 다큐멘터리로 찍는 건…….”
“그래. 바로, 그거야.”
양 사장의 반응은 이보다 나을 수 없었다.
“학생들의 고민, 연주를 향한 열정! 넘치는 끼와 젊음! 이런 것들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찍어 방영한다면, 드라마의 상승세를 그대로 이어 나갈 수 있겠지.”
“그렇습니다, 사장님.”
“그런데, 제작은 누구한테 맡길 생각이신가?”
교양국장 차태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확실히 정해진 것은 없지만, 저는 일단 민한기 PD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음, 좋아요. 기안서 작성해서 올리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러면,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회의가 끝나기 무섭게, 예능국장 윤석웅이 교양국장 차태주의 팔을 붙잡았다.
“야, 차태주. 너 제정신이야? 그걸 민한기한테 맡긴다고?”
“내가 생각하기에는, 한기가 가장 잘할 것 같아서.”
“야, 걔 돌아이야. 나도 걔 감당 안 돼서 결국 그쪽으로, 미안하지만, 좌천시킨 애인 거 알잖아.”
“나도 알아. 걔 돌아이인 거.”
교양국장 차태주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런 다큐멘터리 제작에는 우리 한기만 한 애가 없어. 특히,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는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