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7
7화. 눈보라의 유령 (1)
오늘도 학교 근처 패스트푸드점으로 나를 유혹하는 정선율에게 합류하는 길에, 나는 민아의 말을 떠올렸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실력이 늘 수가 있어?’
그녀는 나를 경계하는 걸까?
내 연주가 조금 나아졌다고 해도, 민아가 그 정도의 경계를 할 수준이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데?
“저기요, 정윤성 씨.”
[어제는 마에스트로라며?]“아이,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아까 전에 이민아가 나한테 했던 말, 기억해요?”
[나는 나보다 약한 자의 말은 기억하지 않는데?]이것이 진짜 망령의 광기인가.
망령의 정신 상태는 나같이 평범한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미쳐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민아가 나를 신경 쓰는 거, 확실하죠?”
[그렇겠지.]“네?”
[김리듬. 지금 너 정도의 성장세를 보인 예고생이 그런 주목을 받는 건 당연한 거야. 거기에 얽매이지 마. 네 인생에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아.]중요합니다.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윤성에게 설명을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민아라는 애는요, 어릴 때부터 천재였어요. 입학은 뭐, 프리 패스였고, 다들 걔가 언제 세계 무대에 진출하느냐만 얘기해요. 아마 그 애라면, 쇼팽 콩쿠르 입상도 꿈이 아닐…….”
[자격지심은 그만 늘어놓고, 본론만.]“실력이 질투심에 비례한다고 들었거든요.”
[아하. 그런 거였군.]“걔하고 틀어진 애는 학교 제대로 다니기 힘들다는 소문도 있어요.”
[애가 좀 그렇네.]“마에스트로는 학교 선배잖아요. 뭐, 이런 상황에 도움 될 만한 조언 같은 거 없어요?”
[없어. 그런 거.]아, 거 참 매몰차네.
[그리고, 너 필요할 때만 마에스트로 들먹이지 마라. 그거, 아주 나쁜 버릇이야.]“쳇. 들켰네.”
[대놓고 말하지도 마라, 응?]그는 뭘 걱정하느냐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넌 쓸데없는 생각이 너무 많아. 네 노력에 내 천재성을 붙여서, 그 애를 뛰어넘어 버리면 되잖아.]와, 그거 정말 쉬운 해결책이네요.
곧 세계적인 콩쿠르에 도전할 아이를 이렇게 낮게 보는 존재가 이 귀신 말고 또 있을까?
* * *
“야, 왜 이렇게 늦었어!”
“일이 좀 있었어.”
사실은, 지금도 내 옆에 둥둥 떠다니는 귀신하고 앞으로의 진로(?) 상담 좀 하느라 늦은 거지만.
“빨리 시켜. 뱃가죽이 지금도 수축하는 중이라고!”
“아, 거참 굶어 죽은 귀신이 붙었나. 더럽게 쪼네.”
“나는 빅-맥을 먹어야겠습니다. 하루 일과에 지친 내 혈관이 지금 콜레스테롤을 원하고 있다고.”
“일찍 죽을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나는 상스치콤.”
저희 ‘선율과 리듬’ 듀오는 하루하루를 이렇게 삽니다.
그렇게, 메뉴를 정하고 주문을 마친 후 나오기만을 기다리는데.
“자, 여기.”
“고맙……!”
선율이가 건네는 세트를 받아 드는 순간,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려 하마터면 세트를 놓칠 뻔했다.
‘왜 이러지?’
분명히, 전에는 한 번도 없던 일이다.
손목은 아파도, 손가락이 떨리는 일은 없었는데.
나는 선율이의 시선이 돌아간 틈을 타 재빨리 윤성을 채근했다.
“귀신 양반. 왜 손가락이 계속 덜덜 떨리는 거죠?”
[쓰지 않던 근육을 써서 그래.]“운지법*을 바꾼 적은 없는데.”
(*핑거링. 피아노를 칠 때 손가락의 순서.)
[운지법이 똑같다고 연주가 똑같은 게 아니야. 손가락을 살짝 굽혀서 치는 걸 세워서 칠 수도 있고, 반대의 터치도 있는 법이니까.]“그러면, 그 디테일이…….”
[잘못된 연주법을 고쳐 주고, 시큰거리는 손목의 통증을 없애 주면서, 완전히 다른 연주를 완성시키는 거지.]그래서 그렇구나.
전보다 가볍고 상쾌하게 치고.
그래서 손목 통증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게 손가락이 떨리는 이유와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악마만 디테일에 숨어 있는 게 아니야. 음악의 신께서도 디테일에 숨어 계시지.]나는 그의 설명에 굳이 토를 달지 않고 먹는 데만 집중했다.
누가 봐도 피아노 치는 애들이라고는 믿기 힘들게 빅맥과 상스치콤을 해치우던 중, 선율이가 갑자기 새로운 대화 주제를 툭 던졌다.
“야, 그런데 김리듬. 너 혹시 봤어?”
“뭘?”
“오늘 반서준하고 붙을 때 이민아 말이야.”
“아니. 무슨 일 있었어?”
“와. 너 《발트슈타인》 치는 그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뚫어져라 네 손하고 페달 밟는 것만 보고 있더라.”
뭐라고?
내가 건반 위에서 정신없는 동안 그런 일이 있었어?
선율이는 나를 마치 곧 도살장에 끌려갈 소 보듯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김리듬. 너 이제 어쩌냐. 이민아한테 완전 찍혀서.”
“아,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찍히기는 누가 찍혀.”
“야, 너 이민아 별명 몰라? 공주야, 공주.”
“공주?”
“‘공’포의 ‘주’둥이라고. 걔 한번 빡돌지? 말로 사람 죽여. 와, 난 진짜 딱 한 번 봤거든? 말이 아니라 칼이야, 칼. 그 말로 사람을 푹푹 찔러 대는데…….”
녀석은 남의 속도 모르고 실컷 떠들어 댔다.
“아무튼 조심해. 이민아, 예중 때는 자기하고 완전히 척진 애 하나 전학 보내 버린 적도 있어.”
‘내 인생, 대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
귀신하고 팔자에도 없는 계약을 맺지를 않나.
학교 일진(?)에게 찍히지를 않나.
아까 전의 기쁨이 파사삭 날아가는 그런 하루다.
“아, 맞다. 우리 학교 괴담 업데이트 하나 해 줄까?”
“굳이?”
벌써 빅-맥 하나를 깔끔하게 이 세상에서 지워 버린 정선율 이 녀석은, 콜라를 쪼옥 한 모금 빨아 먹고는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이거 작년 여름에 있었던 일인데, 구교사 쪽에서 연습하던 애 하나가, 거기서 기겁할 일이 있었대.”
“또 뭔데, 대체?”
“아니. 전공 실기 곡으로 리스트의 《눈보라》를 연습하는데, 연습을 열심히 하다가 갑자기 소름이 쫙 돋고 오한이 일더래.”
“창문 열어 놓고 연습했네.”
“아니라니깐. 계절이 8월이었는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너는. 어쨌거나 갑자기 연습실이 너무 추워져서 창문 쪽으로 가 봤는데.”
“봤는데?”
“8월 말인데, 바깥에 미친 듯한 눈보라가 휘몰아치더라는 거야! 깜짝 놀라서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는데 또 문이 안 열렸다는 거야!”
“문 고장 났네. 그리고 에어컨…….”
“구교사에는 에어컨이 없잖아.”
“아이 씨. 야, 그런 얘기 하지 마…….”
“그런데 갑자기 귀신이 확!”
“아이, 깜짝이야! 이거 미친놈 아냐!”
그렇게 낄낄대던 선율이는 갑자기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 이제 전공 실기 코 앞인데. 김리듬. 나 좀 도와야겠다는 그런, 건설적인 생각 안 드니?”
“조울증이니? 그리고 어째서 결론이 그따위로 흐르는 것이지?”
“네가 나를 배신하고 혼자 치고 나가려는데, 의리가 있으면 좀 도와야지!”
[야, 그깟 도움 백 번이고 줘라, 그냥. 더러워서.]가만히 듣던 윤성이 갑자기 깜빡이 없이 끼어들었다.
“네 노하우 뺏으려는 거야. 혼자 치고 나가는 꼴 보니까 배가 아파서. 대신, 맥값은 내가 낸다?”
나는 그저 피식 웃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정말 좋은 친구를 얻었구나.
정말 ‘배가 아파서’ ‘노하우를 뺏으려는 거’면, 이렇게 도움을 청하지 않겠지.
“알았어. 도와줄게.”
“그래야지! 그래야 내 친구 김리듬이지!”
나는 바로 신나서 일어서는 녀석의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내 옆의 윤성의 표정이 좀 이상했다.
[눈의 귀신이라…….]“왜 그래요?”
[아니야. 아무것도.]그의 투명한 눈동자에 섞인 감정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된 것은, 며칠 후의 일이었다.
* * *
최근의 민아는 하교 때마다 고민이 부쩍 늘었다.
매일같이 이유를 만들고, 우연을 가장해서 김리듬의 연습실 앞을 지나가려고 하니.
고민이 늘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절대 그 녀석의 연주가 궁금해서 그쪽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야. 절대로.’
그녀는, 연습실 앞에서 마주쳤을 때의 시나리오까지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그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래. 도우러 가는 거야. 이 학교 최고의 천재인 내가, 그 녀석의 성장세가 갸륵해서 도움을 주는 거야.’
녀석의 연주는, 객관적으로는 아직 많이 처진다.
가끔은, 피식 조소가 터질 정도로 어설프기도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만 발걸음을 돌리게 만들어.’
순간순간 번뜩이다가 사라지는 날카로운 천재성.
몇 초 동안 이어지는 감탄이 터지는 탁월한 기교.
그런 것들이, 평범하고 모자란 연주에 섞여 있다.
‘무엇보다, 저 성장세가 진짜 무서워.’
그녀는 자신의 성장기를 되돌아보았다.
자신이, 지금의 김리듬처럼 무서운 성장세를 보여 준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아니. 나는 무난하게 성장한 편이었어. 녀석에 비하면 말이지.’
지금이야 전공 실기 20위권에 머무르고 있지만.
과연, 저 녀석이 다음 달에도 20위권 수준일까?
‘3년 후에는 어느 정도일까? 아니, 당장 내년에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김리듬의 성장세는 꺾일 것 같지가 않다.
지금도 확실히 들리지 않는가.
전보다 더 크고, 더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무장한 채 연습실 밖으로 터져 나오는 저 소리가.
‘리스트의 《32분음표》…….’
지금도 실시간으로 왼손과 오른손이 잡혀 가고, 미스 터치가 빠르게 줄고 있는 현황이 귀에 들릴 정도다.
민아는 기분 좋은 자극을 느꼈다.
자신보다 먼저 연습실 앞에 와 있는 반서준의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 * *
“김리듬. 오늘은 내가 여길 좀 써야겠는데.”
즐거웠던 하루가 깨지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런 방식은 내가 예상치도 못했던 것이라 짜증보다는 당황이 앞섰다.
“반서준.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반서준.
이제 이 녀석이, 무단 점거로 나를 방해하려 든다.
“그냥. 갑자기 오늘은 여기서 연습하고 싶어서.”
“여긴 항상 내가 하던 곳인데.”
“네가 이 연습실 전세 낸 것도 아니잖아.”
저 이죽거리는 표정.
남을 대놓고 깔보는 말투.
노골적으로 사람의 급을 나누는 듯한 기색까지.
“사실 말이야. 요즘 이상한 소문을 들어서 말이지.”
“뭔데?”
“이 연습실에서 연습하면, 괴담의 주인공인 망령의 사랑을 받는다는.”
“그런 거 없어. 너도 알잖아.”
“혹시 모르잖아. 희성예고의 바닥인 네가 갑자기 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나아진 거 보면, 나 정도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지.”
이 녀석의 입을 거친 말은, 평범한 것도 참 싸가지 없게 들린다.
이것도 참 대단한 재능이라고 생각하려는 찰나.
“여기서 또 보네. 김리듬 스토커 반서준.”
“야, 이민아!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이제는 너무 익숙한 전개라 놀랍지도 않다.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는 나와 달리, 반서준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기세였다.
“아니면, 김리듬한테 배우러 온 거야?”
“내가 미쳤어? 얘한테 배우게?”
“그게 아니면? 지금까지 잘만 쓰던 더 좋은 연습실을 내팽개치고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지 않나?”
“그런 너는 여기 왜 왔는데? 설마 김리듬 좋아하냐?”
“아. 그렇게 나오시겠다? 너 광현예중 1학년 때 그 선생님하고 어떻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야, 그만해!”
“응? 나는 네가 그 선생님하고 같이 연습했다는 이야기를 하려던 거였는데? 설마, 너 그 선생님을 충동질해서 나쁜 짓이라도 한 거야?”
치열한 기 싸움의 승자는 이민아였다.
정선율이가 말해 준 대로, 그녀는 진짜 공주(‘공’포의 ‘주’둥이)가 맞는 것 같다.
얼굴이 새빨개진 반서준의 표정과는 달리, 나는 그 내막을 알 것 같았다.
나와 녀석은 같은 예중을 다녔고.
‘그 선생’이 내게 남긴 상처는, 아직 생생하니까.
어쨌거나.
녀석은 묵묵히 짐을 싸서 바로 연습실을 나갔다.
어…… 이럴 때는 고맙다고 해야겠지?
“이민아. 고맙…….”
“아직 고마워하기에는 이른데.”
“응?”
“나는 너를 도우러 왔거든.”
도움은 지금 받은 걸로도 충분한데요.
“날 도와준다니. 감이 안 잡히는데.”
“김리듬. 나는, 네가 내 연주를 듣고 평가서를 써 줬으면 좋겠어.”
지금 얘가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 그 콧대 높은 이민아가.
내가 자기 연주를 듣고, 평가해 주기를 바라는 거야?
나는, 일단 이 애가 이러는 저의가 궁금했다.
“이민아. 그것만 물어보자. 왜 나야?”
“말했잖아. 널 도우려는 거라고. 내 연주를 듣고 평가서를 쓰면 그만큼 너한테 참고가 되지 않겠어?”
말을 마친 그녀는 일자로 앙 다문 입술을 한 채, 나를 송곳 같은 시선으로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저 시선에 뚫릴 것만 같다.
“다른 아이들도 많잖아. 굳이 내가 해야 할 이유가?”
“너한테서는 색다른 해석이 나올 것 같으니까.”
그녀의 눈빛이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넌 절대 거절하지 못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