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74
74화. 고품격 클래식 음악 예능 다큐 (5)
≪희성예고 음악천재≫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내 주위는 다시 한번 급물살을 타고 요동쳤다.
일단, 2화의 시청률이 더 올라 무려 8.0 퍼센트라는 건 얘깃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쟤 맞지? 쟤가 김리듬이지?”
“사인 받을 수 있을까?”
“달라고 해 봐. 해 줄지도 모르잖아.”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이제 전교생 중에 나를 모르는 애가 0.1%도 안 된다는 점이며.
그리고, 두 번째는.
“쟤가 걔 맞지, 척추소녀?”
“아니, 어떻게 사람 별명이 척추소녀…… 크크큭……!”
포커스가 나에게만 집중되지 않고,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오만 가지 아이들에게로 분산된다는 점이다.
물론, 절대 긍정적인 포커스는 아니지만.
2화 마지막 보너스 영상의 여파 때문에 ‘척추소녀’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별명이 붙은 김가인을 보라.
“괜찮아, 김가인?”
“흐흐흐. 나의 척추가…… 크크큭…….”
“이게 다 오활하게 군 업보다, 척추소녀.”
“조용히 해, 임지호. 지금 씹고 있는 오징어채처럼 잘근잘근 씹어 버리기 전에.”
그녀는 오케스트라 최고의 건치라고 해도 좋을 가지런한 어금니로 오징어채를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그래도 척추소녀가 무척추동물을 씹고 있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으련다.
했다가는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르거든.
“하아, 예술인의 삶은 참으로 피곤하구나. 맘 편히 예술에만 집중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아.”
지금 네 유명세는 예술 때문이 아닌 것 같은데.
“일단 입 다물고 밥이나 먹자. 소화시킬 시간도 없이 바로 재능 기부 하러 가야 하니까.”
하지만 우리에게 입을 다물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잠깐만. 뭔가가 이쪽으로 오는 것 같은데.”
“시선 피해. 모르는 척해.”
“제발 좀 딴 데로 가라. 제발 좀…….”
“어라? 다들 여기 계셨네요?”
“젠장.”
다큐멘터리의 흥행 성공으로 민한기 PD만큼 신난 AD와 카메라가 이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온다.
외면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학교 급식은 맛있어요?”
“네. 맛있어요. 잘근잘근 씹는 맛이 있거든요.”
이제 가인이는 깍두기를 오도독 오도독 씹고 있었다.
만약 눈앞에 민한기 PD가 있었다면 저렇게 오도독 오도독 씹어 먹을 기세다.
“그러면, 여기서 질문 하나만 던져도 될까요?”
“저희 빨리 먹고 재능 기부 하러 가야 하는데.”
“빨리 끝내겠습니다. 우리 ‘아르스 노바’ 트리오가 생각하기에, 희성예고 급식 최고의 장점은 뭔가요?”
내가 ‘맛있어요’라고 의례적인 대답을 하려는 순간, 가인이가 선수를 쳤다.
“맛있어요. 영양사 선생님이 독보적인 분이시라.”
“어떤 점에서요?”
“음. 일단 실력도 실력이지만, 포커를 정말 너무 잘 치시더라고요. 준프로 수준으로.”
속보) 김가인, ‘척추소녀’ 여파로 자포자기.
라고 3화에서 대문짝만한 자막이 뜰 게 눈에 선하다.
아니, 도대체 급식의 질과 영양사 선생님 포커 실력이 무슨 상관이 있냐고!
“대체 그게 무슨…….”
“아니, 전에 같이 한번 쳐 봤는데 내가 그냥 반으로 접혔다니깐? 셔플하는 것부터 딱 보면 알아. 첫판부터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만드시더니, 그다음부터는 그냥 계속 아작이 나 버렸어.”
영양사 선생님,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김가인은 선생님을 희생양 삼을 생각인가 봅니다.
“그런데 김가인 학생. 왜 영양사 선생님하고 같이 포커를 친 거예요?”
“아, 먹고 싶은 메뉴가 있어서 딜을 한번 해 보려고 그랬죠. 물론 가차 없이 커트당했지만.”
“대체 어떤 메뉴인가요?”
“아. 별거 아니에요. 탕후루.”
김가인 인성 실화냐, 응?
전교생한테 탕후루 다 만들어 주려면, 어?
몇 시간 전부터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알아, 어?
“아, 그러시구나. 그러면, 김리듬 학생. 김리듬 학생이 생각하는 희성예고 급식의 장점이 뭔가요?”
“어…… 사실 저는, 주는 대로 잘 먹는 편이거든요.”
“괜찮아요. 그냥 평소처럼 얘기해 주세요.”
“가끔 드는 생각인데, 영양사 선생님은 음식을 음악처럼 다룰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이건 꾸며 내는 말이 아니라, 진짜다.
얼마 전에 급식으로 수제버거가 나온 적이 있다.
노릇하다 못해 황금빛을 띠는 브리오슈 번 사이에.
양상추의 녹색이 끼워지고.
양파의 보라색이 끼워지며.
잘 다진 소고기에 후추와 허브솔트와 파슬리 가루를 뿌린 후 잘 섞어 주어 양념을 완벽하게 해내고, 종이 호일로 감싸 반나절 정도 냉장 보관 한 다음 기름을 조금 둘러 웰던으로 구워 내, 뜨끈한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그대로 빵 사이에 끼워 입 안에서 소고기가 질주하는 느낌 그 자체인 패티의 갈색에.
마지막으로, 완성된 수제버거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블루베리의 진한 파란색까지.
“크으. 그 수제버거 진짜 JMT였는데. 내가 그거 다시 한번 먹어 보려고 포커로 또 덤볐다가 또 박살 났잖아.”
“그리운 메뉴이기는 하지.”
“그런데, 그 수제버거가 대체 어떤 맛이었길래 음악 같다는 얘기가 나오는 건가요?”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런데, 목관의 색채감을 수제버거에서 느꼈다고 해야겠네요.”
어째서일까.
김가인과 임지호의 표정이, 조금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은.
“흔히들, 목관 주자들 사이에서 하는 말이 있거든요. 목관에는 특유의 색감이 있다고.”
“오, 어떤 색인가요?”
“플루트는 파란색, 오보에는 녹색, 클라리넷은 보라색, 바순은 갈색. 마지막으로, 호른은 황금색이에요.”
블루베리의 파란색은 플루트.
양상추의 녹색은 오보에.
양파의 보라색은 클라리넷.
패티의 갈색은 바순.
마지막으로, 빵의 황금색은 호른.
“잠시만요, 김리듬 학생. 제가 알기로는, 호른은 목관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요?”
“물론 그렇죠. 하지만 호른 특유의 부드러운 소리는 목관과 잘 어우러져서, 목관 실내악 편성을 하면 호른이 같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목관 5중주는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이에요.”
“아하.”
농담이 아니라, 그 수제버거는 정말 음악 같았다.
목관의 5중주 같은 화음이 음식에서 느껴지던 순간.
“아니, 설마 그런 음식 하나하나를 먹을 때마다 음악을 생각하시는 거예요?”
“하하하. 그건 아니고요. 제가 워낙 버거를 좋아하는데, 급식에 처음 나온 수제버거가 워낙 인상 깊어서.”
“네, 알겠습니다. 수제버거에서 음악을 창조하는 우리 김리듬 학생. 수제버거 같은 연주 많이 해 주시고요. 그러면, 이따 대강당에서 뵙죠!”
“네, 네…….”
그렇게, AD와 카메라맨이 시야에서 사라진 후.
나는 나를 추궁하는 눈빛을 장착한 김가인, 임지호를 맞닥뜨려야 했다.
“아니, 김리듬 너는 대체…….”
“이런 멘트 집에서 준비해 오니?”
“그럴 리가 있니. 수제버거가 너무 감동적이어서 그랬어.”
“아니, 그것보다…….”
“김리듬, 너…….”
“너, 혹시 색청이야?”
나는, 일단 모르는 척을 하기로 했다.
“색청?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은 단어이기는 한데……?”
“색청 몰라? 화음을 들으면 그 화음에서 색을 보는 능력 있잖아! 극소수의 선택받은 음악가들만 타고난다는 그 재능 말이야!”
당연히 알지.
정윤성이 그런 것도 안 알려 줬을 리가 없잖아.
물론 나도 화음을 들을 때마다, 희미하게 색채 같은 것이 어렴풋하게 보일 때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정윤성만큼 확고하지 못하다.
그냥, 그 수제버거를 한 입 물었을 때 입 안에 퍼진 화음의 색채감이 너무 강렬해서 한마디 한 건데.
이게 이런 의심을 받게 될 줄이야.
“이거 들고 일어나야 하는 거 아냐? 김리듬이 색청이 있어! 이건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증거라고!”
이제 대놓고 앞 담을 하는 김가인과.
“김리듬이 색청이라니…….”
적잖이 충격받은 듯한 임지호.
일단은, 이 두 녀석의 입을 막는 게 우선이다.
* * *
“정말이라니까. 난 색청 같은 거 없어. 그냥 주워들은 대로 한마디 한 것뿐이야. 믿어 줘.”
“흐흠. 그러면, 일단은 우정과 의리로 눈감아 주지.”
“그래. 정말 고맙습니다, 김가인 학생님.”
두 녀석 다 내게 신경 쓸 만큼 한가로운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 천만다행이다.
연주회장에 들어가자마자 AD는 바로 카메라를 들이밀며 현악기 연주자들의 악기 조율 장면을 찍었고.
“다들 모이세요. 첼로 교습 시작합니다.”
재능 기부 시간이 시작되었다.
저번 독대 때 송수현 이사장이 천명한 대로, 우리는 지금 음악이 고프지만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학교로 초청해 이런저런 음악 시연을 시작했다.
먼저, 김가인의 브릿지 교체 시연을 보자면.
“악기의 좋은 소리를 위해서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정확한 브릿지 위치입니다. 지판 위에서 4개의 현을 받치는 요 나무판이 바로 브릿지예요.”
평소에 보여 주는 모습과는 다르게, 그녀는 프로다.
지금 당장 어느 오케스트라에 두어도 성공할 프로.
“그런데 말입니다. 이 브릿지는 지판에 고정된 게 아닙니다. 바로 이렇게.”
그녀는 현을 풀고, 브릿지를 지판에서 뺐다.
“뺄 수 있어요. 이제 이 브릿지를 다시 끼워야겠죠?”
브릿지를 다시 끼우고, 현을 조여서 다시 고정시킨 후, 그녀는 정확한 브릿지 위치 확인법을 시연했다.
“이제 정확한 브릿지 위치를 확인해야 하는데, 이거 간단합니다. 일단 첼로를 아주 많이 낮춰요. 그 상태로 첼로 머리 위에 시선을 두고 한쪽 눈을 감아요. 지판을 따라 시야를 향할 때 브릿지가 지판 끄트머리 정중앙에 있으면 합격. 없으면 재조정을 해야겠죠.”
한 줄 요약 : 참 쉽죠?
아니, 그보다 김가인은 어떻게 저걸 한 번에 하지?
지켜보던 학생들도 나와 같은 심경이었다.
“우와, 누나. 어떻게 이걸 한 번에 맞춰요?”
“맞아. 난 절대 안 되던데.”
“아니, 이건 쉬워. 잘 봐. 딱 위치가 있잖아. 여기에 착 달라붙듯이 놓으면 된다니깐?”
모르겠다, 아무리 봐도.
유준혁이 리드 깎는 모습이나 구경하자.
“지금 제가 들고 있는 이게 바로 리드의 주재료인 케인(Cane)입니다. 이걸 이 셰이퍼로 형태를 잡아 준 다음, 자로 눈금을 재고 칼로 깎아 줍니다.”
그는 연주를 하듯, 음악을 만들 듯 리드를 깎았고.
오보에를 든 학생들은, 유준혁의 손짓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전부 폰을 들고 영상을 찍었다.
“깎은 케인을 겹쳐서 이 원통형 코르크에 꽂은 다음, 팽팽하게 당긴 실로 꽁꽁 감싸 줍니다. 저는 빨간색 실은 오케스트라용, 파란색 실은 독주나 실내악용으로 구분하는 걸 좋아해요.”
한 줄 요약 : 간단하죠?
[하여간, 김가인이고 유준혁이고 이미 탈고딩 수준이야. 유명 오케스트라가 블라인드 오디션이라도 하면 바로 뽑힐 수 있다니깐.]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저 모습이 어떻게 찍힐까.
민한기 PD가 저걸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지는 않을 텐데.
* * *
민한기 PD는 오늘의 주인공을 내려다보았다.
숫기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얼굴로.
선혈의 라흐마니노프 연주를 해낸.
모두가 기다리는, 김리듬을.
“저기, 김리듬 학생. 다 모였는데요.”
“아, 네. 바로 시작하죠.”
희성예고가 이번 다큐멘터리와 연동해 추진하는 재능 기부 프로젝트에서, 김리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쟁률을 자랑했다.
“다들 라흐마니노프를 기대하고 오셨을 텐데, 아쉽게도 오늘 메인 곡은 다른 곡입니다.”
“아. 라흐마니노프 들으려고 왔는데~”
“맞아요! 한 번만 더 쳐 줘요!”
엷은 웃음소리가 흐른 후.
그의 손가락이 건반 위로 올라갔다.
“좋아요. 그러면, 첫 부분만 치고 시작하죠.”
리듬은 긴장하는 기색도 없이.
바로 라흐마니노프 연주를 시작했고.
민한기 PD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소리가 달라졌다.’
그냥 가볍게, 건반을 누르는 것 같은데.
매혹적인 괴물의 형상이 거칠게 그려진다.
‘화음을 누를 때마다, 세밀하게 커지는 음량이 들릴 정도로 더 정교해졌어.’
화음의 연타가 끝나고 질주가 시작되는 순간.
민한기 PD는 그의 손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그가 건반 위에 풀어놓는 비밀을.
최대한 자세히 기록할 수 있도록.
* * *
시간은 흘러가고.
어김없이 3화가 방영되었다.
나는 연습실 피아노 옆에 폰을 받쳐 놓고, 드디어 2화에서 던진 떡밥을 회수할 민아의 얼굴과 대면했다.
그녀의 입술에서, 드디어 떡밥 회수가 흘러나온다.
무엇일까.
분명히, 이민아가 하는 말은 사실인데.
부끄러움 수치 MAX를 찍어서, 지금 당장 수치사(死)할 것 같은 이 기분은.